소설리스트

금동-216화 (216/463)

216화: 아라의 위기

강남 과거장 사건에 대한 상주서가 경성으로 들어왔다. 강환장은 이 사안을 전혀 질질 끌지 않고 사람들이 생각한 것보다 명쾌하고 시원스럽게 심의했다.

과거장 부정행위의 주모자는 시험관인 동민이고, 조력자는 좌 선생인데 동민이 그 좌 선생을 죽이고 입막음했다고 했다. 축가가 부정행위에 가담하였기에 탕가도 무사히 벗어날 수는 없다고 했다.

영원은 강환장의 상주서를 꼼꼼히 여러 번 읽으면서, 꼭 집어 말할 순 없어도 자꾸만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강환장은 이번 사건을 아무런 사심 없이 공정하게 처리했다. 너무나 공정했고, 너무나 사심이 없었다. 강환장이 이런 인품을 가진 위인이었다면 후택이 그 지경으로 혼란스러울 리가 있나.

뭐가 잘못된 걸까?

“유월!”

유월이 금세 안으로 들어왔다. 영원은 고개를 숙인 채 상주서를 바라보다가 한참만에 다시 손을 저었다.

“됐다. 물러가라.”

이 사안에 대해 느껴지는 찜찜함은 직접 문도를 만나 이야기해 봐야 할 듯했다. 그리고 이 낭자에게도 물어보고.

강환장의 상주서는 그날로 복안 장공주 손에도 들어갔다.

“이번 사건, 축가 배후가 탕가가 아니라는 것만 빼면 정말로 명명백백하게 조사해냈네. 억울한 사람이 아무도 없어.”

복안 장공주가 손에 든 상주서를 툭툭 쳤다.

“이것 좀 봐. 단번에 동민을 끌어냈으니, 이번 일은 제대로 첫째 성질을 건드린 거야. 탕가를 지적했으니 고서강 눈 밖에 났고, 고서강 눈 밖에 났다는 건 넷째 눈 밖에 난 거지. 이 사안 하나로 첫째와 넷째를 모두 거슬렀어. 바보라고 하기엔 사안 처리한 것만 봐도 조금도 어리석지 않아. 나라를 위한 일념에 아무런 사심 없이 공정하게 처리한 좋은 신하잖아. 강환장, 이렇게 이해관계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활로에 연연하지 않는 공정한 사람이었어? 이렇게 백성을 위한 일념뿐인 사람이라고?”

이동은 대답하지 않았다.

강환장이야 물론 대황자와 사황자, 곧 죽을 두 사람 눈 밖에 나는 걸 두려워하지 않겠지. 나라를 위한 일념뿐인 좋은 신하라는 형상을 하루빨리 수립하는 것이야말로 좋은 선택일 테고.

복안 장공주가 혼란스러운 얼굴로 등받이에 기댔다.

“셋째를 내세워서 집안을 일으키려고 한다기엔 또 아무런 움직임이 없어. 나라 걱정하는 훌륭한 신하라기엔…….”

복안 장공주가 코웃음 쳤다.

“웃기는 이야기지. 정상이 아닌 일엔 문제가 있기 마련이야. 이 일, 문제가 어디에 있을까?”

이동이 그녀를 돌아봤다.

“양 구야의 혼사, 진척이 있을까요?”

“음? 갑자기 그건 왜 물어? 아직 없어. 따지고 보면 그 일이 아직 첫째 손에 있지.”

복안 장공주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상주서를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아라는 이틀 숨어 있던 곳에서 위봉낭에게 끌려 나왔다. 위봉낭이 안심하고 연향루로 돌아가라는 영원의 말을 전했지만, 아라는 연향루로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물론 돌아가지 않을 엄두도 나지 않지만.

다다를 데리고 연향루로 돌아간 아라는 아래층에서 누군가 큰 소리로 이야기하는 게 들리기만 해도 기겁해서는 아래로 뛰어내리고 싶었다. 그렇게 연향루에서 반나절을 버티다가 저녁 무렵엔 도저히 살이 떨려서 앉아 있을 수 없게 되자 아예 다다를 데리고 류만이 있는 비연루로 들어갔다. 안전하게 숨어서 마음이 진정되도록 류만과 이야기나 나눌 생각이었다.

기녀 문제로 탄핵할 때 사황자 하나만 탄핵할 순 없어서 적어도 서넛을 함께 탄핵했다. 한창 그 일로 시끄러운 때라 경성 기녀들은 눈에 띄게 한가해졌고 류만도 매우 한가해졌다. 아라가 위층으로 올라갔을 때, 류만은 시녀를 데리고 국화차를 끓이고 있었다.

아라가 올라가자 시녀가 찻자리를 마련해 주었고 두 사람은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네 얘기, 나도 들었어. 괜찮은 거지?”

한담 몇 마디 나눈 후, 류만이 조심스러운 말투로 먼저 물었다.

“사왕야 일? 괜찮을 거라고는 하는데, 나는 조금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집에 있어도 조마조마해서 언니를 찾아온 거야.”

아라의 얼굴이 근심으로 가득했다.

“누가 괜찮다는데? 사왕야?”

아라의 말에 류만도 걱정이 됐다.

“아니야. 며칠 동안 뵙지도 못했는데. 그게…….”

아라는 말을 멈췄다. 영원의 이름을 말할 수 없었다.

“묵 승상이셔. 그날 소식을 듣고 갈피를 전혀 잡을 수 없을 때 가장 먼저 칠소야가 떠올랐어. 무턱대고 묵부로 찾아갈 수밖에 없었지. 그래도 운이 좋았는지, 칠소야는 안 계셨는데 마침 승상 나리가 계셨어. 참 좋은 분이시더라고. 그렇게 좋은 분은 처음이야.”

아라는 지금 묵 승상을 떠올려도 여전히 마음이 포근했다. 그런 조부가 있다니, 칠소야는 정말 복이 많은 분이야.

“묵 승상?”

류만이 몹시 놀라 되물었다.

“응, 승상 나리께서 이 일은 내 탓이 아니라고, 무서워하지 말라고 하셨어. 괜찮을 거라고. 그러다가 이틀 숨어 있다가 돌아왔지. 그런데, 에효.”

더 말할 수는 없었다. 위봉낭이 그녀더러 돌아가라고 했을 때, 이제 평안 무사해지는 거냐고 물었더니, 위봉낭이…….

위봉낭이 한 말을 떠올린 아라는 심장이 쪼그라들었다. 칠야 밑에 있는데 아무런 일이 없을 리가 있냐고 했다. 일은 많을 거라고……. 많을 거라고!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지. 묵 승상께서 괜찮을 거라고 한 거니까.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까, 언니도 알지? 내가 거스른 사람이 누구야? 주 귀비야. 사왕야가 탄핵당한 일, 주 귀비가 다 내 탓을 하잖아!”

류만의 안색이 변했다.

“주 귀비라고? 어쩌다가 그분을 거스른 거야……. 하긴, 어미란 원래 말이 안 통하는 존재지. 자기 아들이 호색하고 변변치 못한 걸 다 우리 탓으로 돌리다니. 묵 승상도 주 귀비가 널 해치려는 건 걸 알아? 승상께 주 귀비 일을 말씀드렸어?”

“했어. 그걸 내가 꼭 말해야 아시겠어? 묵 승상 나리가 얼마나 똑똑한데. 내가 말하지 않아도 짐작하셨어. 휴, 묵 승상 나리 정말 좋은 분이셨어. 칠소야의 일도 내 탓을 하지 않았어.”

이 중요한 대목에서도 아라는 본성을 잃지 않고 샛길로 새고 있었다.

“묵 승상이니까. 그런 분이 세상에 몇 분이나 있겠니. 휴, 어쩌다가 주 귀비를. 정말이지…….”

류만이 걱정스러운 듯 아라를 바라봤다.

“어쩌다가 주 귀비가……. 심 대가를 좀 봐.”

아라는 류만이 너무나 걱정하는 얼굴이자 오히려 호기로워졌다.

“심 대가가 왜? 멀쩡하게 살아 있잖아. 예전에 주 귀비가 심 대가를 없애려고 했는데 결국 어쩌지 못했잖아.”

류만은 하려던 말을 생으로 삼키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건…… 그래. 그렇지. 그럼 넌 앞으로 어쩔 생각이니? 심 대가처럼 은퇴하고 운수 같은 아이를 키울 거니?”

“내가 운수를 왜 키워…….”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라는 얼떨떨해졌다.

“응? 지금 그게 무슨 말이야? 나 이제 손님도 못 받는다는 거야? 내가 태후 상 중에 노래를 한 것도 아니고……. 내 문제가 그 일보다 더 심각해진 거야?”

“주 귀비 일이 없더라도 네가 사왕야를 모신 걸 모든 사람이 알게 됐잖아. 알 사람은 다 알았을 텐데, 누가 감히 널 찾아오겠어. 사왕야는 성격이 안 좋대.”

류만은 미칠 것 같은 아라를 동정하면서도 웃음이 날 것 같았다. 이런 문제를 생각하지 못했단 말이야?

아라는 정말로 생각하지 못했다.

“사왕야의 성격이 안 좋은 건 맞아. 그럼 나는 어쩌지? 이건 아니잖아. 말도 안 돼. 사왕야가 나를 품었다고 이제 나는 다른 사람에게 안기면 안 되는 거야? 우리 같은 사람은 앞문으로 새 손님을 맞이하고 뒷문으로 옛 손님을 보내는 거 아니야? 다 그런 거 아니냐고.”

아라는 거의 울 것 같았다. 이 나이에 심 대가처럼 은퇴해서 문 닫고 수행해야 한단 말이야?

“사왕야는 너에게 어때?”

류만은 아라가 본래도 생각을 많이 하진 않았지만 이 일도 그러는 걸 보고 매우 걱정스러워졌다.

“뭐가 어떻겠어. 그냥 그래! 우리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야. 처음엔 괜찮았는데, 두 번째는 바로 옷을 벗으라고 하더니, 옷을 다 벗기도 전에 달려들었어. 나중엔 겨우 좀 괜찮아졌고. 나중에 내가 줄곧 곁에서 시중들던 시녀에게 물었더니 그 시녀 말이, 나리들은 다 그런 거 아니냐고 하더라고. 언니, 들어 봐. 다 그래!”

아라가 울상을 지으며 하는 말에 류만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걸 물은 게 아니야. 사왕야가 널 황자부에 들일 건지 물은 거야.”

아라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꿈도 크다! 사왕야가 누군데. 우리는 누구고. 나를 왕부로? 차라리 귀비로 봉하라고 하지? 일개 기녀가 황자부에 들어가? 웃기는 이야기지!”

“그럼 넌 어쩔 셈이야?”

류만이 생각해 봐도 그렇긴 했다. 자신들은 기녀였고, 동기(童妓)도 아니다. 게다가 사황자는 황상이 될 가능성이 있는 황자인 것을.

“생각한 적 없어! 이렇게 될 줄 전혀 몰랐는걸.”

아라는 거의 울 것 같은 모습이었다.

“묵 승상은 뭐라고 하셔? 괜찮다고 하셨다며. 뭐가 괜찮다고 하셨는데?”

류만이 다정하게 물었다.

“내가 어떻게 알아.”

묵 승상이 이야기하지도 않았는걸. 설사 묵 승상이 이야기했대도, 그 당시 이런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아라는 혼란스러워 죽을 것 같았다. 황자부에 들어갈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 누구의 집에도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은 그랬다. 사왕야를 모셨더니, 그 사실을 모두 알게 될 줄도 알지 못했다. 게다가 이제 아무도 그녀를 찾지 않으려 하다니. 주 귀비가 그녀를 죽이려고 한 그 일이 목숨뿐만 아니라 생계를 끊어놓을 줄이야!

이젠 어쩌지?

“나 돌아갈게!”

아라가 벌떡 일어섰다.

위봉낭을 만나야 해. 어떻게 해야 할지 칠야에게 물어봐야겠어. 칠야가 이 사실을 아는지 물어봐야겠어. 그리고 정말로 손님을 받을 수 없게 된 건지도.

이 일의 심각성과 두려움은 주 귀비가 그녀를 죽이려고 하는 것보다 더 심각했다.

다다가 찾아가서 말을 전하고 왔으나, 밤이 깊어도 위봉낭은 그녀를 찾아오지 않았다.

저녁이 되자마자, 위봉낭은 영원을 모시고 또 자등 산장으로 향했다.

시종과 함께 나온 문 이야는 산장과 멀리 떨어진 모퉁이를 돌고 돌아 숲에서 영원을 만났다. 보자마자 거처로 가자고 말하고는 영원이 묻기도 전에 문 이야가 먼저 해명했다.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칠야, 자등 산장은 정북후부만큼 엄중한 곳입니다. 여기를 보십시오. 저쪽이 바로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거리입니다. 차라리 제 거처가 여기보다 더 마음 놓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자등 산장의 차와 다과가 매우 훌륭한걸요.”

“그러지.”

문 이야의 말이 끝나자마자, 영원이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자등 산장에 여러 번 들렀는데, 이 낭자의 거처는 매우 마음이 놓이는 곳이었다. 문도의 거처도 아마도 비슷하리라. 자등 산장은 매우 엄중한 곳이 맞았다.

문 이야가 걸어서 온 길로 돌아가면서 영원은 심복 호위들에게 흩어져서 지키라고 명령하고는 자기는 위봉낭과 대영, 대웅 두 사환을 데리고 모퉁이를 돌아서 문 이야보다 먼저 자등 산장으로 들어갔다. 그는 중문 그늘에서 문 이야를 기다렸다가 함께 문 이야의 거처로 들어갔다.

문 이야는 시중 들 여복 하나만 남기고 모두 물렸다. 여복은 영원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담담하고 침착하게 몇 번 오가면서 직접 요리를 들고 들어왔다. 홍동 솥과 얇고 적당하게 썬 양고기, 생선, 채소, 야들야들한 게살 완자, 그리고 다른 쇄과자(涮鍋子: 샤브샤브) 요리 재료를 들고 들어왔다.

영원도 체면 차리지 않고 문 이야와 마주 앉아서 끽소리 없이 배를 채우고 탕을 떠서 홀짝이며 웃어 보였다.

“쇄과자가 참 괜찮군. 이야, 입이 호강하겠어.”

“평생 복이라곤 먹을 복만 조금 있습니다. 칠야, 기회가 보여서 오신 겁니까, 아니면.”

문 이야는 말을 멈추고 상반신을 살짝 내밀었다.

“강환장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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