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215화 (215/463)

215화: 제자리로 보내다

호 노야의 오진 저택에서 예부의 판결서를 받은 곡 낭자는 너무 기쁜 나머지 눈물을 흘리면서 진심으로 호 노야에게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자기 팔자가 좋아서지만, 호 노야에게 큰 도움 받은 건 사실이니까.

호 노야는 자신이 전혀 공을 내세우지 않았다면서 절도 한 번밖에 받지 않고 서둘러 가씨에게 당부했다.

“얼른 자네 낭자를 부축해서 일으키게, 이러면 안 돼! 이 절을 내가 어찌 받겠나.”

가씨는 서둘러 곡 대낭자를 부축해 일으켰고, 호 노야는 대견스레 수염을 쓰다듬었다.

“대낭자가 얻어 마땅한 것이지. 대낭자가 매우 마음 고생하지 않았나. 대낭자도 참으로 선량하군. 이런 낭자는 참으로 드물지. 따지기는커녕 오히려 고마워하다니.”

가씨도 얼른 호 노야의 말을 받아 곡 대낭자를 추켜세웠다.

“그러니까요! 대낭자와 강가 고야는 어릴 때 혼약을 맺은 결발 부부인데, 강가가 세상에……. 휴. 대낭자가 너그럽다고 해도 강가 고야가 다른 사람과 머리를 엮었었으니, 어찌 됐든 두 번째 혼인인 셈이지요. 우리 대낭자가 얼마나 억울합니까! 역시 대낭자가 너그럽고 대범한 겁니다!”

호 노야도 마음 아픈 얼굴로 따라 한숨을 내쉬었다.

“휴. 그러게 말일세! 강 백야와 몇 년이나 사귀어 오면서 이렇게 염치없는 일을 할 줄 어찌 알았겠나! 정말이지…… 내가 미안해서 말이야. 이 숙부가 미안하구나. 강가가 더 미안해해야 하는데 따지지 않는다니……. 네가 정말 대범하구나. 하지만 대낭자가 따지지 않는다고 해서 강가 잘못이 없는 건 아니지. 그리고 나도 말이다. 얼마나 괴로운지 모른다. 정말 미안하구나.”

“제게 미안해하실 것 없으세요.”

기뻐서 미칠 것 같은 곡 대낭자는 호 노야와 가씨가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하는 말에 껄끄러워졌다.

“하루 부부는 백일의 인연이라고 하잖아요. 강가 고야가 이씨와 혼인한 건 벌써 1년이 다 되어간답니다. 휴, 강가 고야 마음엔 이가 낭자야말로 결발처고 대낭자가 후실일까 봐 걱정이네요.”

가씨의 말이 조금 듣기 거북한지 호 노야의 안색도 어두워졌다.

“음, 강가 후원 일이 참. 휴. 자네가 대낭자에게 말해주게.”

“저도 이제야 알게 되었어요. 대낭자. 이씨가 성 밖으로 나간 건, 알고 보니 강가 고야 마음에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외사촌 누이 고 낭자밖에 없어서랍니다…….”

언변이 매우 좋은 가씨는 살을 보태고 부채질하며 고 낭자가 어떻게 강가 고야를 유혹했는지, 어떻게 염치없이 강가 고야의 침상에 기어 올라갔는지, 또 외간 사내와 도피한 건 어떻게 된 일인지 등등, 어찌 됐든 경성에 퍼진 이야기는 다 했고 퍼지지 않은 사소한 이야기도 진짜처럼 이야기했다.

곡 대낭자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강가 고야의 보배 덩어리만 아이를 품은 게 아닙니다. 청서 이낭도 있어요. 청서 이낭은 어릴 때부터 고야를 모시던 대시녀인데 강가 고야가 매우 총애한대요.”

가씨는 강가 고야가 하나도 모자라서 청서를 얼마나 총애하는지 이야기하고는 이어서 고 이낭 시녀인 묵란이라는 새 여인도 있다고 이야기했다.

호 노야는 차 맛도 없어진 모습이었다.

가씨가 드디어 강가 고야 후원의 보물들 이야기를 끝냈을 때 곡 대낭자의 얼굴은 파랗게 질리고 눈빛은 서늘하게 빛났다.

“이씨는 지극히 나약한 사람이래요. 휴. 안주인이 가장 보여선 안 될 모습이 나약함이지요.”

가씨는 탄식하며 지금까지 한 소개를 잠시 멈췄다. 호 노야가 매우 심란한 듯 관자놀이를 눌렀다.

“휴! 나도 그런 이야기를 들었나. 질녀야, 마음에 담아 두지 마라. 첩이 수작을 부리는 건, 명문가에 안 그런 집안도 있더냐? 네가 들어간 후에 잘 정리하고 가르치면 될 일이다. 정 말을 듣지 않으면 아이만 남기고 어미는 팔아 버리면 그만이야. 신경 쓸 것 없다.”

가씨가 살기등등한 곡 대낭자를 힐끔거리며 말을 꺼냈다.

“노야, 소인 우리 대낭자 대신 노야께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말하게! 뭐든 말하게!”

“노야, 우리 대낭자가 강가에 들어가는 일, 빠르면 빠를수록 좋겠습니다. 미룰 수가 없어요.”

가씨는 그렇게 말하면서 쉴 새 없이 곡 대낭자를 살폈다.

“하지만 강환장이 아직 강남에 있지 않은가. 흠차로 간 것이라 아무래도 돌아오길 기다렸다가 혼인을 치러야지.”

호 노야는 강환장이 강남에 가느라 경성에 없는 것이 모두 자기 탓이라는 듯 미안한 표정이었다.

“강가 고야가 돌아오려면 거의 섣달 아닌가요. 그럼 내년 봄, 여름까지 미뤄질 겁니다. 내년 봄, 여름이면 대낭자가 한 살 더 먹어요. 뭐 그건 그래도 기다릴 수는 있어요. 하지만 강가 후원이…….”

가씨는 말을 멈추고 곡 대낭자를 바라보며 뼈 있는 말을 했다.

“대낭자도 아시잖아요. 진 부인의 몸이 그지 좋지 않습니다. 혹시라도……. 강가 고야 곁엔 모두 여우뿐이에요. 강가 고야는 사사건건 고 이낭의 사주하는 대로 따른답니다. 강가가 효를 내세우며 고집하면 낭자는 3년, 5년 동안 강가 대문 안에 들어가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노야, 그건 안 됩니다. 강가 고야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순 없어요. 대낭자, 안 그런가요?”

호 노야가 눈살을 잔뜩 찌푸린 채 곡 대낭자를 바라봤다.

“그것도 그렇군! 질녀야, 네 생각은 어떠하냐?”

“저는 모두 아저씨 말을 따를게요.”

곡 대낭자는 가씨의 말에 화도 나고 간이 작아졌다. 맞는 말이었다. 예부의 판결서만으로는 안 된다. 얼른 강가에 들어가야 한다. 빠를수록 좋고.

“그럼 좋다. 내가 준비하마. 다만 네가 서러워도 좀 참아야겠구나. 환장이 경성에 없는 데다가 혼사가 너무 촉박해서 떠들썩하게 할 수 없을 것이다. 그건 이해해라. 이게 다 강가 때문이다!”

호 노야는 곡가 질녀의 서러움을 탄식하면서 모든 잘못을 자연스럽게 강가에게 미뤘다. 곡 대낭자는 고개를 젓고 또 저었다.

지금은 서럽고 말고를 따질 때가 아니고 일단 강가 대문을 넘고 볼 일이지. 지금 서러움은 나중에 두고 보자.

강씨 종친들이 이씨 혼수로 애를 단단히 먹고 있을 때, 호 노야까지 곡가를 대표해서 찾아왔다. 강가의 며느리가 아직 호가에 살고 있다고, 얼른 집안으로 들이라고, 아니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초두난액(焦頭爛額: 불에 머리를 태우고 이마를 그슬려 가며 불을 끈다는 뜻으로, 어려운 일을 당하여 몹시 애쓰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 된 강씨 종친과 마찬가지로 초두난액인 강 백야가 허술하기 짝이 없는 혼례를 준비했다. 다행히 호 노야가 예법을 따지지 않았고, 곡 대낭자의 혼수도 그런대로 나쁘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곡 대낭자의 혼례가 얼마나 간소했는지, 곡 대낭자 본인은 전혀 알지 못했다. 꽃가마에서 내리자, 강완이 오라비를 대신해서 첫 올케인 이씨보다 훨씬 괜찮은 새 올케를 신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날 밤, 강완과 강녕이 신방을 지켰다. 가증스러운 상인 가문 여식의 전례가 있었기에, 강완과 강녕 모두 새 올케에 매우 만족해했고, 두 사람의 열정에 강가의 호의를 느낀 곡 대낭자도 꽤 흡족해했다.

다음 날 아침, 친지에게 드리는 문안도 제법 순조로웠다. 불만스러운 것이 있다면, 곡씨가 시부모와 두 시누이에게 아무런 답례도 하지 않고 빈손으로 문안을 올린 점이었다. 어이없고 불만스러워진 강가는 강 백야부터 강녕까지 통틀어서 겨우 신발 한 쌍을 선물했고, 그 선물을 받은 곡씨도 똑같이 어이없고 불만스러워했다.

지난번 신부는 강 백야에게 그가 오랫동안 가지고 싶어 했으나 사지 못한 옥정(鼎)을 선물했고, 진 부인에게는 그 선물을 받은 후로 가장 아끼는 물건이 된 옥팔찌를, 강녕과 강완에겐 각각 홍보석 머리 장식을 선물했었다.

강가가 묵란을 감싸는 것에 분노하던 고 이낭은 지난번 안주인 이씨가 남긴 인상과 환장 오라버니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나야말로 진정한 이 집안의 안주인이야. 오라버니 마음속엔 나만이 유일한 강가 안주인이야!

그래서 안주인이 바뀌는 것, 그리고 새 안주인이 집안에 들어온 것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안중에 두지도 않았다.

청서는 곡씨가 집으로 들어온 그 날, 본능적으로 밤새 악몽을 꾸었다. 곡씨가 친지 문안드리기 전에 이미 잠에서 깬 청서는 눈을 뜨자마자 추미와 상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금세 추미가 떠난 것이 떠올랐다.

그래, 추미가 이가 사람을 따라갔었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단 말이지. 됐어. 지금은 그런 걸 생각할 때가 아니야. 춘연하고 상의하자.

하지만 춘연과도 아무것도 상의하지 못했다. 춘연은 상의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 그녀는 오로지 지금이라도 떠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할 뿐이었다. 배방 시녀 넷 중에 셋이 떠났고 자신만 가지 않았다. 이가가 찾아와서 돈을 돌려달라고 하면 어쩌나 걱정하기만 했다. 자신을 사느라 이가에서 꽤 많은 돈을 들였는데. 듣자 하니 이가가 강가와 혼수를 청산하고 있다고도 했고. 태태가 자신의 몸값을 돌려달라고 하면……. 대야도 집에 없는 마당에 어떻게 돌아가나.

이런저런 걱정으로 잠을 못 이뤘지만, 그중에 새 안주인이 들어오는 걱정은 없었다.

강가 후원의 이낭들에게 안주인이란, 지금껏 존재하지 않던 완전히 새로운 일이었다.

그러니 곡 대내내가 아무리 기다려도 이낭들이 인사 오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그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문안 올리고 돌아왔더니, 호 노야가 집에 급한 일이 있어서 오늘 바로 출발해서 고향으로 떠나야 한다고 전갈을 보낸 것이다.

가씨가 그 말을 전하러 왔는데, 가씨 자신도 곡 대내내를 따른 후 몇 번이나 은퇴 이야기를 했었다. 대낭자 거취를 잘 마련해준 다음엔 지아비 유해를 조상 묘에 안치해야 한다고. 곡 대내내는 한 번도 허락하는 말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노비가 무슨 조상 묘가 있다고.

출가하기 전에 가씨는 다시 대내내에게 부탁했고, 대내내가 대답하지 않자 곧바로 호 노야에게 부탁했다. 호 노야가 은자 5백 냥으로 가씨를 속량해 주면서, 곡 대내내가 혼인하는 그 날 가씨는 배가 어멈으로 함께 강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가씨가 고용한 옥연과 단청은 저당(抵當) 계약이었는데, 곡 대내내가 출가하기 보름 전에 저당 기간이 만료되었다. 곡 대내내는 호 노야에게 두 사람을 사들여서 배가 시녀로 보내달라고 요구했지만, 호 노야는 승낙하지 않았다. 옥연과 단청의 몸값이 만만치 않은 데다가 옥연과 단청도 종신 계약은 하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곡 대내는 혼수를 홀로 들고 강부에 들어오게 되었다.

강가로 들어간 첫날, 아무런 조건 없이 뒷배가 되어줄 것 같던 호 노야가 이미 떠났다는 소식이 들어왔고,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혼수를 도둑맞은 것을 알게 되었다. 머리 장식, 그리고 새로운, 아직 입지도 않은, 힐수방에서 가지고 온 옷이 반 이상 사라졌다.

강가엔 세상이 혼란스럽길 바라마지 않는 사람이 잔뜩 있었고, 누가 장신구를 훔쳤는지 누가 옷을 가지고 갔는지, 매우 들뜬 마음으로 달려와 고자질하는 사람이 당연히 있었다.

곡 대낭자의 분노가 수녕백부를 태울 듯이 활활 타올랐다. 배가 시녀가 없어도, 친정이 없어도, 곡춘영을 만만하게 보지 말라고!

영원은 대영의 보고를 즐겁게 듣고 있었다. 강가 신부 곡 대내내가 어떤 식으로 칼을 들고 강 대낭자와 이낭자 앞에서 휘둘러서 혼수를 찾아왔는지, 또한 어떤 식으로 울면서 강가 사당으로 달려 들어가 강가 종친 앞에 목매고 죽겠다고 밧줄을 들고 위협하며 강가의 핍박을 강가 종친에게 알렸는지, 보고를 마친 대영은 감탄한 듯 꿍얼거렸다.

“정말 대단한 암호랑이입니다.”

“대단한 안목이군!”

영원도 감탄했다. 강가에 이런 며느리를 골라준 문 이야를 칭찬하는 말이었다.

“강가를 지켜봐라. 무슨 일 생기면 당장 보고하고.”

대영이 영원을 힐끔 보자 영원이 팔걸이를 내리치며 매섭게 외쳤다.

“보긴 뭘 봐! 요즘 내 생활에 즐거움이라곤 이것뿐인걸!”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