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화: 발 없는 혼수와 발 달린 혼수
이가가 강가를 고발한 일이 증거 없이 끝났으니, 매파들의 고발은 더더욱 증거 없이 끝났다. 이신은 매우 분노해서 사람들을 거느리고 수녕백부로 직행했지만, 매파들은 수녕백부에 손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상대는 백작 가문이라서 그들이 손을 댈 수가 없었다.
이번 일로 생긴 울화를 몇 년 동안 쌓아간 매파들은 그 후로 온갖 꿍꿍이를 써서 강가 두 낭자, 강완과 강녕의 혼사를 방해했다. 안 그래도 혼인이 쉽지 않은 강완과 강녕은 스물 넘어 서른이 가까워질 때까지 목을 빼고 혼인할 날을 학수고대하며 강가에서 살아야 했다.
오 어멈이 저택에서 나가겠다고 고하고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진 부인이 다리를 주물러 주는 봉운의 손길을 즐기며 편안하게 누워서 가물가물 아름다운 꿈을 꾸고 있는데 강완이 비명을 지르며 뛰어 들어왔다.
“큰일 났어요! 쳐들어왔어요! 어머니! 이가에서 쳐들어왔어요!”
진 부인은 화들짝 놀라 정신을 차렸다.
“뭐라고? 이가? 어찌 감히! 네 오라비는? 네 부친은? 내 팔자야……. 오 어멈은? 아이고, 나는 못 산다. 아이고, 내 가슴……. 아이고,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진 부인은 가슴을 부여잡고 목 놓아 울었다. 살 수가 없었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화가 나서 죽을 것 같았다. 팔자가 왜 이리도 고된 거냐!
그래도 강완은 침착하게 화항 앞에 서서 비처럼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잠시 서 있다가 돌아서서 밖으로 달려나갔다. 봉운은 얼굴이 창백해져서 진 부인의 등을 쓸어내리며 숨을 골라주다가 강완이 달려가는 걸 보고는 다급하게 고함쳤다.
“대낭자! 어서 의원을! 의원……. 여봐라, 어서 의원을 모셔라. 어서 가서 오 어멈을 불러라! 부인…….”
강완은 단숨에 우아하기 그지없는 부친의 서재로 달려가 대뜸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아비는 우울한 얼굴로 창가 침상에 드러누워 손에 책을 들고 시를 읊으며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강완은 달려오는 동안 놀란 마음이 어느 정도 진정되었다.
“아버지! 이가에서 쳐들어왔어요! 혼수를 가져가고 인연 끊겠대요! 이가에서 얼마 전에 들인 가짜 아들이요! 벌써 안까지 쳐들어왔어요. 아버지, 얼른 나가보세요.”
강 백야는 싫은 표정을 지었다.
“네 어미에게 가서 말해라! 내외가 유별하거늘, 나를 찾아오다니! 법도가 없구나! 어미에게 가라!”
강완은 후다닥 물러나서 서재 마당 앞에 한참 멍하니 있었다. 내외가 유별하다니. 사돈이 찾아와서 혼수를 들고 가고 인연을 끊겠다는 일이 안채에서 할 일인가?
강완은 돌아가는 길에 있는 난각으로 지척지척 들어가 구석에서 다리를 껴안고 눈을 감았다. 어머니가 알아서 하겠지. 나는 지쳤어. 잠시 쉬어야겠어.
강녕은 강완보다 훨씬 용맹해서, 사람을 데리고 올 테니 막고 있으라는 강완의 말에 달려나가서 문을 막아섰다. 하지만 만 어멈이 데리고 온 어멈들이 너무 많아서 달려나가자마자 두 어멈에게 달랑 들려서 석가산 꼭대기에 올려졌다. 강녕은 식겁해서 눈을 꼭 감고 석가산을 붙들고서 살려달라고 목이 찢어져라 고함쳤다.
만 어멈이 선두에 서고 이신이 뒤에서 받쳐주는 기세로 뛰쳐 들어오자, 대문에서부터 막는 사람이라고는 강녕 하나뿐, 다른 사람은 일부 소수는 팔짱 끼고 구경하고 대부분은 앞장서서 길을 안내했다.
만 어멈은 모두를 데리고 이동이 살았던 청휘원으로 들어가 물건을 들고나오고, 중문에 서 있던 이신은 쏜살같이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간 그는 깊이 들어가지도 않고, 몰락한 수녕백부와 주변에서 고개를 내밀고 구경만 하는 종복들을 바라보며 속으로 탄식했다.
처음으로 수녕백부에 들어오는 것인데 수녕백부의 쇠락과 혼란함은 그의 상상을 초월했다. 눈 앞에 펼쳐진 상황을 보고 자등 산장과 경성 이가 저택을 떠올린 이신은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착잡하기만 했다.
자등 산장은 아동이 관리하는 만큼, 지난번에 계소영 일행을 초대했을 때도 아동이 자신을 대신해서 모든 것을 준비했다. 비록 자신은 식견이 적다고 해도 여염과 계소영은 그렇지 않지 않나. 두 사람은 지금까지도 그 이야기가 나오면 혀를 내두르며 칭찬하고 또 칭찬했다.
누이의 집안을 다스리는 능력을 따라잡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랴.
흐트러짐 없이 사람들을 거느리고 쳐들어온 만 어멈, 만 어멈을 따라 들어 온 어멈 모두 이동의 배가 종복이었다. 원래라면 이 어멈들은 지금 이 저택에서 이동을 도와 이 저택을 자등 산장처럼 화려하고 아름답게 꾸몄을 것이다. 지금처럼 달려와서 물건을 들고 나가고 부수는 것이 아니라.
이가의 은자는 그가 아는 게 전부가 아니겠지만, 그가 아는 것만 해도 말이 안 나올 정도로 많았다. 그 은자는 원래 모두 이동의 것이고, 지금이라도 이동이 달라고 하면 모친은 그게 얼마든 모두 내어줄 것이다. 자신이라 해도 마찬가지고. 이 이가의 은자는 모두 누이의 몫인 것이다.
만 어멈은 강환장이 혼인한 후에 오통신이 붙었다고 했다. 이런 아내를 눈이 삐어서 홀대하고 집 밖으로 내쫓다니, 오통신이 붙었다는 것 말고는 다른 해석을 할 길이 없었다.
이가가 쳐들어왔다고 들은 고 이낭은 겁에 질려 혼비백산했다. 따지고 보면 이씨의 지참금이 모두 자신에게 쓰였으니까. 그리고 이씨의 혼수는…….
고 이낭은 생각할수록 두려워졌다. 오라버니도 저택에 없는데, 장 태태가 자신을 팔아 버리면 어쩐단 말인가.
배가 잔뜩 부른 고 이낭은 달아나고 싶어도 밖으로 갈 수가 없었다. 나갔다가 잡히면 어쩌나. 이 거처에 안전한 곳이 있나? 고 이낭은 거처를 빙글빙글 돌다가 석가산 뒤 낙엽 더미 아래 쭈그리고 앉아 눈을 감고 이가 사람이 자기를 찾아내지 못하도록 불조가 보우해주길 빌고 또 빌었다.
청서는 그래도 담담한 편이었다. 일단 거처 문부터 잠그라고 명한 뒤, 떨리기도 하고 기대도 되는 마음으로 숨어 있었다. 고가 천것을 달랑 들고 가서 팔아 버리면 좋을 텐데! 팔지 않더라도 유산하도록 때리기는 해야 대내내에게 미안하지 않지!
추미는 완전히 들떠서 이불을 바닥에 집어 던지고는 베개 밑에서 작은 보따리를 꺼내서 안고 밖으로 달렸다. 보따리야 진작에 싸두었었다. 오늘 같은 날이 오면 바로 들고 나가려고.
거처 문 앞까지 달려가던 추미는 다급히 걸음을 멈추고는 다시 뒤돌아서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상방 문 앞에서 얼떨떨하게 자기를 바라보는 동유 앞으로 대뜸 달려갔다.
“뭘 넋을 놓고 있어! 갈 거야 말 거야?”
“어딜?”
동유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집으로!”
추미는 즐거운 듯이 작은 보따리를 흔들었다.
“만 어멈, 그리고 우리 대야가 사람을 데리고 왔어. 혼수 들고 가고 인연을 끊을 거야. 넌 어쩔 거야? 갈 거면 얼른 따라가고. 우리도 혼수잖아!”
“어?”
동유는 넋이 나갔다. 정말로 혼수를 가져가러 왔다고?
“어는 무슨 어야! 갈 거니 말 거니? 아니면 난 간다!”
추미는 보따리를 어깨 위에 걸쳤다.
“가, 가, 갈 거야!”
동유는 추미를 따라 밖으로 달렸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서 무슨 일인지 제대로 깨닫지도 못했고, 짐 정리해야 한다는 것도 잊었다.
동유를 데리고 밖으로 달리던 추미는 거처에서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또 급하게 걸음을 멈췄다. 동유는 미처 걸음을 멈추지 못하고 앞으로 고꾸라지려 했지만 다행히 추미의 등에 부딪히지는 않았다. 신기할 정도로 날렵해진 추미는 벌써 방향을 틀어 춘연의 거처로 달려가고 있었다. 동유도 뒤따라 달렸다.
추미가 춘연의 거처 문을 두드렸다. 춘연 대신 하섬이 놀라고 두려워하는 얼굴로 문을 열고 나오자, 깔깔 웃더니 나무라듯 말했다.
“만 어멈이 혼수를 찾아가려고 사람을 데리고 온 건데, 문은 왜 잠가? 우리 집에서 사람이 온 거라고! 정말 멍청하네. 춘연은?”
“안에 있어.”
하섬은 동유보다 더 빨리 반응했다. 생각해 보니 그랬다. 만 어멈이 찾아온 건데 문을 잠그긴 왜 잠그나. 하섬은 한 번 연 문을 닫지 않고 추미를 따라 안으로 달렸다.
추미는 성큼성큼 달려가 휘장을 젖히고 한 발로 문턱을 밟고 상반신만 내밀었다.
“춘연은? 얼른 가자! 만 어멈이 혼수를 되찾아가려고 왔어. 우리도 얼른 가자. 우리는 발 달린 혼수니까 제 발로 가면 돼!”
“정말로 가려고?”
춘연이 눈이 휘둥그레져서 추미를 바라보자, 추미는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말이 그래? ‘정말로 가려고’라니? 당연히 진심이지. 넌 어쩔 거야? 안 가면 난 간다. 잘 들어, 지금 안 가면 마차 지나고 나서 손 드는 격이야.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고.”
춘연은 매우 갈등했다.
“나는…… 추미, 세자야가 우리한테 잘해주시잖아. 다정한 분이시잖아…….”
“그럼 넌 남아.”
추미는 매우 시원스럽게 보따리를 휙 돌리며 돌아섰다.
“난 간다. 다시는 만나지 말자!”
하섬이 다급해져서 추미를 덥석 잡았다.
“추미 언니! 그럼 나는? 나도 있어! 나는?”
“너도 혼수잖아. 갈 거면 얼른 가자. 이거 놓고. 옷이 다 구겨지잖아. 옷이 구겨진 채로 집에 가는 건 우아하지 않아.”
하섬은 추미가 손을 쳐내기도 전에 손을 놓고 방 안으로 달려갔다.
“추미 언니, 잠깐만 기다려! 바로 짐 챙겨서 나올게.”
“머리 장식은 챙기고, 옷은 버려. 집에 입던 옷 잔뜩 있어!”
추미는 까치발을 하고 목소리를 높이고는 상방 앞에 서서 다급한 듯 발을 쿡쿡 찍으며 기다렸다. 춘연이 문틀을 잡고 갈등하는 얼굴로 눈물을 흘렸다.
“추미, 너 정말로 갈 거니? 우린 다 머리 올리고 이낭이 된 사람이야. 돌아가서 어쩌려고. 여인은…….”
“될 대로 되겠지.”
추미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 대답하고는 왼발, 오른발 굴러가며 초조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하섬을 기다렸다.
“추미, 멀리 생각해야 해. 우리처럼 깨끗한 몸이 아닌 여인은…… 낭자 곁에서 시중들지도 못해. 잘 생각해야 해.”
그 말에 추미가 돌아서서 춘연을 바라봤다.
“난 생각 끝냈어. 너도 잘 생각해. 이 저택에서 아무도 우리를 사람 취급하지 않아. 세자야도 우릴 사람으로 여긴 적 없고.”
“그럼 대내내는 우릴 사람으로 여겼어? 우린 원래 개, 고양이 같은 존재야.”
춘연이 반박했다.
“음. 그럼 개, 고양이라고 쳐. 개나 고양이도 어떤 개, 고양이인지 다르지. 낭자 곁에 있는 개, 고양이는 잘 먹고 잘 입고 매일 놀기만 하면 돼. 이 저택의 개, 고양이는 죽여서 고기를 먹는다고.”
추미는 대충 대답하고는 조바심에 다시 까치발을 들고 고함쳤다.
“하섬, 얼마나 꾸물거릴 생각이야! 안 나오면 안 기다리고 간다!”
“가, 가!”
하섬은 보따리를 묶지도 못하고 안은 채 달려 나와서 춘연을 향해 무릎을 구부렸다.
“이낭, 난 가요. 몸조심해.”
“어서 가자, 어서 가.”
추미는 매우 즐거운 듯이 단걸음에 계단에서 내려가서 마당을 가로질러 밖으로 달려나갔다.
“추미! 추미야!”
춘연은 방 안에서 튀어나와 추미를 불렀다. 추미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대답만 하고 돌아보지도 않고 사라졌다.
이동의 혼수 중에 지금 강가에서 눈에 보이는 건 큰 가구뿐이었다. 그 큰 가구 중에서도 옮길 수 있는 건 거의 없었다. 없어진 가구 중에 대낭자의 거처에 뭐가 있는지, 고 이낭의 거처엔 뭐가 있는지, 심지어 진 부인의 거처에 뭐가 있는지, 알려주려고 하는 종복이야 얼마든지 있었다. 만 어멈은 단자로 정리해서 중문 정자에서 기다리는 이신에게 가지고 갔다. 이 가구들을 몰수할지 말지, 대야의 결정을 따라야 했다.
단자를 들고 대충 훑어본 이신은 할 말을 잃은 나머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그래도 세습 백작 가문인데 이 지경까지 퇴락하다니! 정말 너무 망신스러웠다.
이신은 가지고 갈 것 없다고 만 어멈에게 전하고, 찾지 못한 혼수는 따로 정리하라고 했다. 강씨 종친을 만나서 직접 이야기할 생각이었다.
그날, 만 어멈은 나머지 혼수를 경성 이가 저택에 가지고 가는 걸 지켜본 후에 추미와 두 사람을 데리고 밤새 달려 자등 산장으로 돌아갔다. 이신은 영해 일행을 데리고 경성 저택에 남았다. 잃어버린 혼수 문제를 강가 종친하고 정리해야 하고, 내일 예부에서 결론을 내릴 거라는 여염의 전갈이 있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