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206화 (206/463)

206화: 둘이 아니라 셋

“곡 낭자가 책을 읽어 예를 안다고? 그럴 줄 알았다. 서생 가문 출신 낭자 중에 그렇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나. 우리 어렸을 때는 낭자들도 글공부해야 했는걸. 사내들과 함께 공부하지 않아서 그렇지. 우리 자매가 함께 글선생을 모셔서 여훈, 여서를 배웠지. 선생과 수업할 때는 반드시 병풍을 쳤어.”

진 부인은 흥분해서 주절주절했다. 오 어멈이 어릴 때부터 자신의 시중을 들어서 지금 말하는 내용을 직접 겪었다는 것도 잊고서.

“노야도 참. 이렇게 큰일을 어떻게 내게 한마디도 하지 않을 수가 있지. 아무리 혼사는 바깥사람들이 정하는 일이라고 해도 이 혼사는……. 됐다, 됐어. 노야의 성격이 그런 걸 어쩌겠누. 이런 속된 일은 염두에 두지 않는 분인걸. 이렇게 소탈한 분인걸. 자네, 곡가 낭자를 봤나? 못 봤어?”

진 부인의 유감은 금세 사라졌다.

“분명 나쁘진 않겠지. 곡 거인의 화상, 우리 모두 봤잖나. 신선 같더군. 우리 노야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았지. 곡 낭자가 아버지를 조금만 닮았대도 나쁘지 않을 걸세…….”

“부인, 세자야는 혼인했습니다.”

오 어멈이 더는 참지 못하고 완곡하게 상기시키자, 진 부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나는 처음부터 이씨가 마음에 들지 않았어! 상인 가문 여식, 처음에 볼 때부터 구린 돈 냄새가 났는데…….”

“어찌 됐든 혼인했잖습니까.”

오 어멈은 불평하는 진 부인의 말을 무지르고 다시 상기시켰다.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해도 강가에서 정식 혼인 절차를 밟고 시끌벅적 떠들썩하게 집안으로 들인 며느리잖습니까. 게다가 정혼하자마자 그 구린 돈을 써댔고, 혼인한 지 몇 달 되지 않아서 40만 냥 지참금을 몽땅 써버렸잖아요!

“그래도 선후는 지켜야지. 곡가 낭자가 먼저였네. 우리 같은 집안은 상인 가문과 달라서 평처(平妻: 두 명 이상의 정실부인을 가리키는 말) 같은 예법은 없네. 따지고 보면 일개 상인 가문 여식이 우리 같은 가문에 들어온 데다가, 대가아의 인품이 있는데 첩으로 들여줬대도 잘 대우해준 것이네.”

호 노야의 선물이 쉴 새 없이 들어오기 시작한 이래 진 부인의 기세는 예전과 달라졌다. 오 어멈은 그런 진 부인의 모습에 돌연 의욕이 모두 사라져서 아무런 말도 하고 싶지 않아졌다.

점포를 고를까, 아니면 장원으로 할까. 점포는 경성에 있으니 아무래도 그렇겠지. 역시 장원이 좋겠어. 남편의 꿈이 장원을 갖는 것인데……. 얼른 벗어나는 게 좋겠다. 부인이 놓아줄지 모르겠네. 정 안 되면 은자를 써서 속량해야지. 만 어멈이 뭐라고 했더라? 그래, 세자가 돌아오기 전에 속량하고 저택에서 나가는 게 좋다고 했지.

강완과 강녕은 두 눈을 빛내며 집중해서 진 부인이 하는 말을 들었다. 온몸이 뜨거워지고 들떴다.

그 ‘새언니’를 새언니로 여긴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일개 상인 가문 여식이 백부 규수의 올케라니. 꿈도 크지!

이제 잘 된 거야. 아버지가 진작 오라버니를 위해 곡가 같은 서생 가문 낭자를 골라줬을 줄이야. 곡가는 태평부에서 명망 높은 가문이라고 했잖아. 계가도 강남에 있는데, 계가하고 비교하면 어쩐지 모르겠네. 적어도 계가만큼은 되겠지!

강완과 강녕은 수시로 고개를 숙이고 수군거렸다. 들을수록 흥분되고 수군댈수록 기뻤다.

오라버니가 다시 혼인하면 분명 많은 혼수가 또 들어오겠지! 지난번보다 더 많을 거야! 지난번 혼수는 고가 계집이 거의 다 빼앗아 갔지만…….

이번에 새언니는 분명 이씨보다 훌륭할 거야. 이씨처럼 되먹지 못한 물건은 아니겠지!

우리 혼수도 분명 10만 냥보다 더 많이 준비해주겠지.

아전이 데리고 갔던 추미와 춘연이 돌아오길 문틀을 붙들고 오매불망 기다리던 청서는 드디어 두 사람을 만났다.

청서는 지금 대내내가 그보다 더 만족스러울 수 없을 정도로 만족했다. 대내내가 바뀌게 되면, 누구로 바뀐들 지금 대내내보다 좋을 리가 있나.

추미는 청서가 묻기도 전에 매우 통쾌해하며 그녀와 춘연이 관아에 다녀온 일을 거기에 윤색까지 해서 낱낱이 이야기했다. 어떻게 관아에 들어갔는지, 관아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잘생기고 목소리가 좋은 나리가 무엇을 물었는지, 그녀는 뭐라고 대답했는지, 오 어멈은 또 뭐라고 대답했는지, 나중에 어떻게 돌아온 건지, 그야말로 이야기꾼처럼 이야기했다.

청서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너, 네 말은……. 그게 말이 돼?”

“왜 말이 안 돼요? 오 어멈도 아는 일인 걸요. 형님은 세자야 곁에서 그렇게 오래 시중들었는데, 설마 세자야가 말씀하지 않았어요? 그럴 리가요.”

추미는 스스로 차를 따르고는 즐겁게 차를 홀짝이며 청서의 물음에 대답했다.

“난 한 번도 들은 적 없어! 말도 안 돼!”

청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지금 눈앞에 벌어진 일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분명 가짜야! 세자야가 알게 되면…… 내 말은 정말 혼약이 있었으면 세자야가 대내내와 혼인했을 리가 있어?”

그 말에 추미가 입을 비죽였다.

“돈 때문이죠, 뭐. 대내내는 부자니까. 그때 노야가 저택도 잡혔잖아요. 세자야가 대내내와 혼인하지 않았다면!”

추미는 청서의 얼굴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형님이 지금 이 거처에서 살 수 있었겠어요? 진작 어디로든 팔려 갔지. 형님네 세자야도 방법이 없었잖아요. 돈 한 푼 없이 어떻게 영웅이 되겠어요. 세자야가 무슨 방법이 있어서요? 끽소리 없이 혼약을 파기하고 대내내를 속여서 집으로 들인 거죠.”

“말도 안 돼!”

청서는 믿을 수가 없고, 믿고 싶지도 않았다.

“말이 되든 안 되든, 우리 같은 노비가 할 말이 아니에요.”

며칠 전부터 기분이 날아갈 것 같은 추미는 이번엔 손수건을 흔들긴 했지만 청서 얼굴을 치진 않았다. 기분이 좋으니까.

“노야께서 직접 정한 혼처니까, 우리는 물론이고 세자야도 안 된다는 말은 하지도 못해요.”

청서는 숨을 들이마셨다. 그녀가 믿든 말든, 일이 그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대내내가 이미 들어왔는데, 뭘 어쩌겠어?”

“뭘 어쩌긴요. 그 뭐더라? 명분을 제대로 돌려놓는다?”

추미가 어디에서 이런 율법 문제를 들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이런 일이 아니더라도, 멀쩡한 혼인도 무르는 일이 많잖아. 그런 혼인도 이렇게 하는 건 못 봤는데?”

청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지금 대내내가 없어지는 걸 바라지 않았다. 지금 대내내가 사라지고, 성품이 어떤지 성질이 어떤지, 가장 중요한 건 세자야가 좋아할지 아닐지 모를 대내내가 들어오는 건 죽어도 싫었다.

청서의 말은 추미의 즐거운 기분에 눈곱만큼도 영향 주지 못했다.

“그건 맞는 말이네요. 혼인을 무르는 사람 중에 염치없는 사람은 많으니까요.

알게 뭐예요. 어쨌든, 우리 낭자가 형님네 대내내면 나도 이 저택에 살고, 우리 낭자가 형님네 대내내가 아니게 되면 나도 짐 챙겨서 낭자랑 집으로 돌아갈 거예요. 뭐든 상관없어요! 난 원래 가리는 게 없어요. 아, 지쳤다. 돌아가서 쉴래요.”

추미는 한마디 던지고 밖으로 나가기도 전에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근심 가득한 춘연은 청서에 인사하는 것도 잊고 추미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청서는 멍하니 화항에 앉아 넋을 놓았다. 너무 혼란했다. 생각할수록 혼란하고 정리할수록 심란했다.

원래라면 이 저택에서 이 일을 가장 신경 쓸 사람은 고 이낭이었다.

고 이낭은 지금 미치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러나 혼약이니 곡가니, 그런 문제 때문이 아니라 묵란 때문이었다.

며칠 전부터 묵란이 이상한 걸 눈치챘다. 아니, 며칠 전이 아니라 몇 달 전부터였다. 몇 달 동안 묵란이 이상했다!

오늘 드디어 뭐가 잘못된 건지 깨달았다. 묵란은 그녀처럼 아이를 가졌다. 자신은 아이를 가진 지 6개월인데 묵란은 5개월이었다.

감히 그 아이가 환장 오라버니의 아이라고 한다. 환장할 일 아닌가.

말이 돼? 말이 안 돼. 오라버니가 묵란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잖아. 오라버니가 묵란 같은 천것을 품을 리가 없잖아. 이 천것, 분명 헛소리하는 거야. 그년이 헛소리하는 거야!

묵란은 거의 5개월 동안 온갖 수단을 다 쓰고도 배 속의 살덩이를 떼지 못했다. 감출 수 없는 걸 안다. 이쯤 되면 더는 감출 수가 없었다.

고 이낭이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긁기 전에, 묵란은 밖으로 달아나 진 부인의 거처를 향해 내달렸다.

죽기 싫어, 살아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살 거야.

고가에서 지낸 마지막 두 달, 그 두 달도 견뎠다. 그 두 달도 견디고 살아냈다. 지금도 살아야 한다. 살아야 해!

오 어멈을 붙들고 기뻐서 어쩔 줄 모르며 곡 대낭자가 집안으로 들어 온 후에 생활이 얼마나 아름답고 체면이 서고 풍족할지, 어찌 됐든, 모든 것이 뜻대로 될 거라고 이야기하기 여념 없는 진 부인, 그리고 이번엔 혼수가 몇천 냥 더 많아질 것으로 생각하는 강녕과 강완 앞에, 묵란이 미친 듯이 달려들어 와서 털썩 무릎을 꿇더니 웅얼거리며 울며불며 읍소했다.

세 사람은 꼭두각시 세 개가 된 듯 한참 동안 넋이 빠졌다가 겨우 차례로 정신을 차렸다.

진 부인은 얼떨떨하다가 곧 화가 좀 났다. 시첩이 아이를 배다니. 이런 이야기가 퍼지면 좋을 게 뭐가 있나.

강완과 강녕 모두 망연한 얼굴이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집안에 임산부가 둘이 아니라 셋? 그런데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이고, 이 임산부는 왜 이리 멀쩡해? 몇 달 동안 아무런 일도 없었다니. 아이를 품고도 울지도 난리를 부리지도, 유산할까 봐 의원이 매일매일 대기하지도 않았잖아?

오 어멈은 진 부인 침상 앞에서 눈물을 펑펑 흘리는 묵란을 삐딱하게 바라보며 싸늘하게 웃었다. 정말 아무나 수작을 부리는구나. 세자야가 저택에 없으니 저택에 아무도 없다고 만만하게 보고 이런 큰일도 세자야에게 뒤집어씌우려 하다니.

정말 세자야의 아이라면 자기가 직접 이야기할 일이 뭐가 있을까. 세자야가 진작 이야기했을 것을. 세자의 아이? 하! 누구 씨인지도 모를 잡종을?

그렇지. 저택에 들어오기 전에 고가 대야가 거뒀었다고 했지? 고가 노야도 몇 번이나 불러서 시중받았다던데…….

배 속에 아이가 누구 씨인지 어찌 알고?

“내가 그랬지, 우리 가문에 시운이 온 거라고. 이것 좀 보게, 손 귀한 집에 한 번에 셋이나 생겼어!”

진 부인은 기쁨 가득한 얼굴로 봉운에게 분부했다.

“어서 일으켜라. 어쩐지, 까치가 울더라니.”

오 어멈은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큰 경사예요! 부인, 정말 영명하세요.”

됐다. 이런 주인, 이런 집안. 그동안 나도 할 만큼 했다. 난 당당해. 누구 앞에서도 당당해!

오 어멈은 원래도 많지 않던 자책감과 거북함이 순간 연기처럼 사라졌다. 떠날 바에 얼른 떠나야겠다. 어떻게 부인에게 이야기를 꺼낼까. 부인이 뭐라도 주길 바라지는 말아야지. 지금까지 살면서, 거의 평생, 부인이 누군가에게 상을 주는 걸 본 적이 없다. 은자를 받지 않고 저택에서 내보내 주거나, 값을 덜 부르기만 해도 그녀의 체면을 세워주는 것이다.

봉운의 부축을 받고 일어난 묵란은 마음이 살짝 놓였다. 그녀는 훌쩍이며 방 안에 있는 모두를 은근슬쩍 살폈다.

“대가아가 돌아온 뒤에 이낭으로 올려야 하나? 내 생각엔 대가아가 돌아오길 기다릴 것이 없을 것 같네. 첩이 낳은 아이는 상관없지만, 시녀가 아이를 낳았다는 건 듣기 좋은 일이 아니니까. 안 그런가?”

진 부인은 기쁨 가득한 얼굴로 오 어멈의 의견을 구했다. 정신이 딴 데 팔린 오 어멈은 그렇다고 대답하고는 묵란을 힐끔 봤다. 찔리는 게 있는 묵란은 안 그래도 오 어멈이 제일 두려웠는데, 사실 별 의미 없는 오 어멈의 시선에도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했다.

오 어멈을 속일 수 있으리라 바라지도 않았다. 하지만 정말 방법이 없었다. 시도해 보지 않으면 죽음뿐이었다. 시도해 보면 적어도 살 희망이 반은 있고.

오 어멈은 자기가 힐끔 쳐다보자 입술을 달달 떨면서 매우 두려워하는 모습으로 자기를 바라보는 묵란의 모습에 모든 것이 불 보듯 환해졌다. 그러나 이번엔 한마디도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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