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204화 (204/463)

204화: 마음이 아프다

예부 상서 해유덕이 이신의 시험관의 시험관이라고는 하나, 이렇게 에두른 관계만으로 무턱대고 찾아갈 수 없었다. 그래서 이신은 해유덕이 아니라 여염을 찾아갔다. 여염에게 누이 사건이 어떻게 될지 지금으로서는 완전히 해 상서 손에 달렸다고 솔직히 말하면서 해 상서를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여염은 지극히 시원스럽게 승낙했고, 해 상서가 오늘 정오 전후에 저택에 있다는 소식을 알아내서 이신을 데리고 해가 저택으로 직행했다.

예부 상서는 예비 승상이라고도 불리지만, 해 상서는 중서성에 들어갈 뜻이 없었다. 그는 여 승상보다 한 살 더 많아서 중서성에 들어가는 건 마음이 있어도 여력이 없었다. 들어가라고 해도 버틸 기력이 없었다. 뜻이 없으니, 무욕즉강(無欲則剛), 욕망이 없어야만 의연한 경지에 오를 수 있다고 하듯이, 욕망이 없는 건 아니라도 적어도 달관은 했다.

여염이 이신을 소개하자, 해 상서는 이신이 말을 꺼내기 전에 여염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도 들어서 알고 있다. 경부 관아에서도 이미 확실히 조사했고. 수녕백 강화원이 아들과 곡가의 혼약을 맺은 게 확실하더구나. 모두 강가의 잘못이고 이가와 곡가는 무고하다. 이가 낭자와 곡가 낭자 모두 참으로 가련한 일이지. 강가의 혼사는 어느 쪽으로 판결되든 정당하다. 네가 신중하고 사리에 밝다고 네 조부께서 종종 칭찬하셨다. 네가 이신을 데리고 나를 찾아온 걸 보면 네 조부의 의중이 있으시겠지. 뭐라고 하시더냐?”

여염은 해 상서의 말에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참으로 화통하십니다……. 할아버님의 뜻은, 곡가 낭자는 의지할 곳도 없고, 이 혼사 때문에 홀로 경성에 왔는데 수녕백부 대문으로 들어가지 못하면 살길이 없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혼인은 했는데 돌아갈 곳이 없는 것이지요. 이가 낭자는 집안이 부유하고 의지할 모친과 오라비가 있습니다. 게다가 이 형의 뜻은, 이가와 누이 이 낭자 모두 강가의 부덕한 행실에 질렸고, 수치스러워서 더는 혼인을 이어갈 수 없다고 합니다. 할아버님은 차라리 양쪽의 바람을 이뤄주는 것이 좋다고 여기십니다.”

해 상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신을 바라봤다.

“주 사사가 서신에서 자네를 종종 칭찬하더군. 보아하니 확실히 출중한 인물이로군. 적어도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는 인물은 아니야. 예법에 얽매여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도 아니고. 자네 누이는 무고하고 가련한 사람이다. 자네와 자네 모친이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무턱대고 혼인을 맺었지. 잘못은 자네와 자네 모친에게 있네. 앞으로 마음 써서 자네 누이에게 좋은 혼처를 다시 알아봐 주게.”

“감사합니다, 해 상서.”

이신은 가슴이 뜨거워져서 눈물을 흘릴 뻔했다.

“됐다. 이만 돌아가라. 난 나이도 많고, 여 승상처럼 기운이 넘치지도 않아서 오후에 잠깐 눈을 붙여야 한다. 아니면 버티지 못해.”

해 상서가 일어서자, 여염과 이신은 다급하게 인사하고 물러났다.

해가 저택에서 나온 뒤, 이신은 여염을 향해 깊이 장읍했다. 여염이 다급히 그를 일으켰다.

“뭐 이리 체면 차리는가. 어제 할아버님이 돌아오셔서 이 일을 말씀하시면서 한참 동안 마음 아파하셨네.”

그 말에 이신은 얼떨떨해졌다. 한참 동안 마음 아파하셔? 이번 일로 여 승상이 한참 동안 마음 아파할 곳이 어디 있어서?

정북후부, 영원은 힐수방의 길고 긴 계산서를 쥐고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봤다. 이가 부득부득 갈렸다.

이 곡 낭자, 돈 한번 잘 쓰는군. 열 벌도 모자라서 이만큼을 더 짓다니!

그리고 1만 냥 혼수까지…….

영원은 계산서를 흔들며 생각할수록 울화가 치밀었다. 강가, 이렇게 쉽게 넘어가선 안 되겠군!

“유월 있느냐!”

영원이 갑자기 버럭 고함치자 유월이 후다닥 들어왔다. 영원은 계산서를 탁자에 던지며 분부했다.

“최신에게 전해라. 강가와 이가의 혼담을 진행한 관매가 누구인지, 몇 명인지 알아보라고 해. 그리고 소문내라고 해라. 음. 강가에서 퍼트린 것으로 하고, 애초에 혼담이 오갈 때, 강가와 곡가가 혼담이 있었던 걸 강가가 명명백백하게 매파에게 알렸고, 매파도 명명백백하게 이가에 알렸다고. 곡가가 연락이 끊겼기 때문에 이가와 혼인한 걸 이가에서도 아는 일이라고.

그리고 이런 소문도 내라. 혼인하기 전에 곡가 낭자의 행방을 알게 되고, 혼인하지 않은 걸 알게 되면, 강가는 반드시 곡가 낭자를 정실부인으로 맞이해야 하니 이가 낭자는 첩이 되어야 한다고, 혼수도 가져가지 못한다고, 강가가 이가 사람에게 똑똑히 명명백백하게 말했다고. 이 모든 걸 혼인하기 전에 이가도 승낙했다고.”

영원이 분부한 후, 유월은 그가 한 말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반복했다. 영원은 잠시 생각하다가 손을 저었다.

“됐다. 그렇게 해라. 그 정도면 됐어. 서둘러야 한다고 최신에게 전해라. 명심해라. 이 내용, 강가에서 나온 말로 되어야 한다.”

유월이 공손하게 물러간 뒤, 영원은 탁자 위에 계산서를 흘깃 봤다. 기분이 아주 조금 좋아진 느낌이었다.

동민이 서신을 전하라고 경성으로 보낸 심복은 동민이 따로 당부할 것도 없이, 숨이 붙어 있는 한 쉴 새 없이 말을 달렸다.

심복은 동민 밑에 있으면서 몇 년간 호가호위하면서 큰돈 적은 돈 할 것 없이 적잖게 모아왔다. 동 노야가 무너지면, 심지어 옥에 갇혀 머리가 날아가면, 위풍당당했던 과거와 큰돈 적은 돈이 사라지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종신 계약된 관아 소속 노비인 그도 머리가 날아가지는 않더라도 멀리 쫓겨나게 된다.

지금 그는 자신을 위해 말을 달리고 있었다.

그렇게 동민의 심복은 역대 최고, 최정예 사자에 버금가는 속도로 경성으로 달려 들어가서 동민의 구조 요청을 대황자의 손에 전했다.

대황자는 서신을 다 읽기도 전에 탁자의 물건을 바닥으로 쓸어 내던졌다.

소식을 듣고 온 장 선생, 그리고 잠시 후 달려온 주유해가 서재로 들어갔을 때, 서재는 온통 아수라장이었다. 온 서재를 때려 부순 대황자는 광폭하게 화를 풀어버린 후 오히려 훨씬 평온해졌다.

“너도 이걸 좀 봐라!”

대황자는 물에 젖은 책을 밟고 서서 바닥 가득한 흙, 도자기 조각, 그리고 각종 물건 사이에 발 디딜 곳을 찾는 주유해를 가리키며 장 선생을 바라봤다.

장 선생은 동민의 서신을 주유해에게 건넸고, 대충 훑어본 주유해는 순간 얼굴이 창백해졌다.

“삼왕야가 사왕야에게 붙은 겁니까?”

“그건 아닙니다.”

주유해가 툭 묻는 말에 장 선생은 불만인 듯 주유해를 힐끔 봤다. 대왕야가 이렇게 성질을 내는데, 그런 말을 어찌 함부로 하는지.

“그놈이 무슨 왕야냐. 냄새나는 벌레 같은 놈이다!”

대황자가 혀를 찼다. 냄새나는 벌레라는 말이 셋째를 가리키는 건지 아니면 넷째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강환장의 이번 행동, 참으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장 선생은 미간을 단단히 좁혔다. 동민의 서신에 적힌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면, 수녕백부 세자는 이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야말로 정신이 나간 것이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우리가 준비한 걸 강환장이 망쳤다니요? 동민이 그렇게 쓰지 않았습니까.”

주유해가 바라보며 묻자 장 선생은 고개를 저었다.

“너무 공교로웠던 겁니다. 다만, 대왕야가 준비한 건 아니었습니다.”

“벌레 같은 놈들!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더는 부술 것이 없자, 대황자는 자단목 탁자를 쾅 내리쳤다.

“강환장이 미복으로 성에 들어가서 시제를 판매한 전복이라는 자를 길에서 잡고, 전복이 동민의 심복 막료 좌 선생을 불고, 좌 선생은 동민을 지키려고 자수한 다음 자진하다니. 누군가가 준비한 것이 아니라면, 이 일련의 일이 너무 공교롭다고 할 수밖에요.”

장 선생은 참을 수 없이 터지려고 하는 기침을 애써 참았다.

“나도 너무 공교롭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사왕야는 아니겠지요?”

주유해의 말에 장 선생은 불만인 듯 주유해를 흘겨봤다.

“사왕야일 리가 있겠습니까? 동민이 서신에서 강환장이 대왕야가 준비한 일을 망쳤다고, 대왕야의 체면을 짓밟은 거라고 쓰지 않았다면 난 동민이 준비한 것으로 여길 뻔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해서 무얼 해!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해 보라고 불렀다. 이딴 소리만 하는 게 무슨 소용이야!”

대황자는 짜증을 내며 지극히 불만스러운 얼굴로 장 선생의 분석을 잘랐다.

겨우 참아 낸 기침이 다시 터지려고 하자, 장 선생은 가슴이 찢어질 듯이 기침했다. 대황자는 기침하느라 허리도 펴지 못하는 장 선생을 싫다는 듯이 흘겨봤다.

“어떻게 된 일인지 확실히 알아야 대책도 세웁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된 일인지를 생각해야 아나?”

대황자가 장 선생의 말을 무질렀다.

“누가 있겠나? 넷째의 짓이다! 내 손발, 팔을 자르려는 거다! 이걸 생각할 필요가 있나?”

장 선생은 뒷걸음질 쳐서 바닥으로 기운 진열장에 몸을 기댔다.

“대왕야, 이번 일은 사왕야가 아닌 듯합니다. 사왕야였다면…….”

“그럼 누가 이런 짓을 해? 셋째의 계략이라는 건 아니겠지? 셋째가 망상을 품고 천하를 손에 넣으려고 한다는 건 아니겠지? 응?”

대황자는 장 선생에게 다가가려고 걸음을 내디뎠다가 장 선생이 또 기침해대자, 혐오스러운 표정으로 다시 뒤로 물러났다.

“그럼 어찌하실 계획입니까?”

장 선생의 염증 난 눈빛에 낙담이 느껴졌다.

“강가 놈, 온몸에 부스럼이 가득한 주제에 감히 내 앞에서 날뛰다니. 탄핵 상주서를 올려! 혼약을 파기하고 다른 여인과 혼인하고, 사기 혼인에 재물도 가로챘다고. 파렴치한 인간 같으니!”

대황자가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분부했다. 장 선생은 눈을 내리깔고 대답하지 않았고, 주유해는 끽소리하지 않는 장 선생을 힐끔 보다가 알겠다고 대답했다.

“넷째는 부덕하게 기녀를 끼고 놀았지. 상주서를 올려서 그 추문을 까발려라!”

대황자가 이어서 분부하는 말에 장 선생은 희미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미적지근한 상주서 몇 번 올리는 게 무슨 소용이 있다고. 휴!

큰일에 능한 최신은 작은 일은 더 깔끔하게 처리했고, 반나절 만에 영원이 시킨 그 말은 경성 반쪽에 싹 퍼졌다.

만 어멈은 수녕백부와, 곡 낭자와 호 노야가 산다는 오진 저택을 지켜보다가 그런 유언비어를 듣고는 화가 반쯤 치밀다가 금세 다시 차분해졌다.

아니지. 조금 이상해. 강가 인간들은 하나같이 어리석은데 이런 방법을 생각해 낼 사람이 어디 있나. 물론 좋은 방법도 아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해봤자 얼굴에 먹칠해달라고 찾아오라는 것밖에 안 되니까.

낭자인가? 낭자는 순조롭고 당당하게 강가에서 벗어날 수 있기만 바라서 이런 쓸데없는 짓을 하지 않을 것이다. 태태인가? 태태도 말도 안 돼! 그럼 대야? 그런 것 같진 않은데…….

만 어멈은 갑자기 튀어나온 이런 뜬소문을 이해할 수 없어 하면서 마차를 준비해서 다급하게 자등 산장으로 돌아갔다.

만 어멈이 경성에 갑자기 퍼진 헛소문을 낱낱이 이야기하자, 이동은 곧바로 영원을 떠올렸다. 영원의 수법 같았다. 그녀는 그저 강가에서 벗어나기만 바라는데, 영원과 문 이야는 어떻게든 강가를 한 방 먹이고 똥칠하거나 이득을 볼 생각인 것이다.

장 태태가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갑자기 왜 그런 헛소문이 도는 건지, 어떻게 된 일인지 몰라도, 우리를 노리고 온 것이다. 가만히 있을 수 없다. 가만히 있으면 묵인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만 어멈, 바로 돌아가게. 그때 혼담을 성사한 매파는 네 사람이었네. 매파가 우리에게 명백하게 말했다고 한다니, 그럼 매파를 찾아가 확실히 따져야지. 매파가 이런 일을 어떻게 알리지 않을 수가 있나. 이렇게 큰일을 감히 속이다니. 우리는 절대로 참으면 안 되네. 소란을 피울 대로 피워야지.”

“예! 걱정하지 마세요, 태태. 바로 가겠습니다.”

만 어멈은 북소리처럼 둥둥거리며 달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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