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화: 형식적 재판
호 노야가 곡가 낭자 대신 강가의 혼약 파기 사건을 고발한 건 따지고 보면 작은 사안이었다. 훈귀 가문 일이라고는 하나, 형 부윤은 수녕백부 같은 집안을 전혀 안중에 두지 않았다. 게다가 예부가 처리해야 한다고 사황자가 대놓고 말한 이상, 이 작은 사건이 더 수월해졌다.
경부 관아 형 부윤은 담담하게 소장을 받았고, 소장을 쥐고 곧바로 예부로 달려갔다. 예부에 등록하고 돌아와서는 구경거리를 기다리느라 목이 길어진 영원에게 사건 검증을 아예 넘겨 버렸다.
경부 관아에서는 이번 사안의 사실관계만 확실히 검증해서 예부로 올리면 그만이었다. 어떤 판결을 할지는 예부가 알아서 할 일이었다.
호 노야의 소장이 예부로 올라갔을 때, 예부를 맡은 대황자는 이미 주유해를 통해 사황자의 문회에서 일어난 이번 소동을 알고 있었다. 물론 대황자는 어디 내놓을 만한 것도 못 되는 이런 작은 일에 손대는 법이 없었다.
이번 사안의 사실 여부 검증을 맡은 영원은 반드시 조수가 되겠다는 주육, 그리고 구경하느라 곁을 떠나지 못하는 묵칠과 함께 다음 날 아침 가장 먼저 호 노야를 소환했다.
호 노야가 하나부터 열까지 세세히 말한 다음, 곡 대낭자를 소환했다. 서생 가문 규수인 곡 대낭자가 직접 대당에 나올 수는 없어서 가씨를 대신 보냈다. 가씨는 눈물을 훔치며 어찌 된 일인지 설명했다. 내내 울면서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대당의 아전들도 모두 탄식했다.
그리고 수녕백부 강화원을 소환했다. 하룻밤 지난 뒤, 강화원은 정신이 조금 돌아왔는지, 죽어도 이 일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정말로 바보도 아니고, 설령 그때 정말 혼약을 맺었대도 지금 인정할 순 없지 않나. 아들은 이미 며느리를 얻었다. 게다가 며느리 집에서 저택이니 점포니 장원을 되찾아줬고 거기에 며느리의 혼수가 있는데…….
이 혼서, 인정할 수 없지!
주육이 화가 나서 강화원에게 형을 가하겠다고 길길이 뛰어다니자, 영원이 한 대 때려서 정신 차리게 했다.
강화원은 백작이다! 형을 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란 말이다!
주육은 강화원 앞으로 달려가서 손가락질하며 물었다.
“대답해 보시지요! 어제 사왕야 앞, 그리고 우리 모두 앞에서 말했지요? 이 혼서, 분명 백야의 글씨입니다. 그건 틀림없지요?”
강화원이 대답하기 전에 영원이 곧바로 말했다.
“잘 생각하고 대답하십시오. 백야의 글씨면 별문제 없지만, 혹시 아니라면, 사왕야 앞에서 허튼소리를 한 겁니다. 어이, 그건 무슨 죄냐?”
영원이 서반을 돌아보며 물었다.
“주군 기만죄에 해당합니다.”
영원이 강 백야를 협박할 생각인 걸 아는 서반은 손발 맞춰 잘 협조했다. 강 백야는 기겁해서 파르르 떨었다. 주군 기만죄? 그건 목이 달아날 큰 죄인데!
“그게…… 그게…… 보아하니…… 그런 것 같군. 응, 응, 응, 내 글씨가 맞다.”
“얼른 써. 제대로 써라!”
영원이 서반에게 눈짓하자, 서반은 곧바로 알아듣고 얼른 ‘강화원 왈: 혼서는 확실히 친필로 기록하였다.’라고 기록했다.
“수녕백 부인을 소환해라. 그리고 듣자 하니 수녕백 세자 부인(夫人)이…….”
영원의 말에 서반이 냉큼 나섰다.
“칠야, 부인이라고 부르면 안 됩니다. 소인 어제 미리 알아봤습니다만, 수녕백부에서 아직 이씨에게 고명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부인이라고 부르면 안 됩니다.”
“뭐라고?”
영원이 꽥 고함치며 주육과 묵칠을 돌아봤다.
“이것 좀 봐라. 이게 무슨 일이냐. 이 집안 정말이지…….”
영원은 도저히 못 봐주겠다는 얼굴로 혀를 끌끌 찼다.
“너무 염치없군!”
주육이 즐겁게 말을 받았다.
“됐다. 그럼 그 이씨는 부를 것 없다. 이씨, 맞지?”
영원이 묻자 서반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이씨는 부를 것 없고, 수녕백 세자 강환장 곁에 누가 있는지 알아봐라. 듣자 하니 강환장의 후원에 여인이 가득하던데, 그중 하나를 소환해라.”
영원이 분부했다.
사람을 데리러 간 아전은 금세 돌아왔다. 진 부인이 직접 대당에 나올 리 없고, 오 어멈이 왔다. 강환장의 첩은, 고 이낭과 청서 이낭 모두 배가 불러와서 추미와 춘연을 불러왔다.
오 어멈은 근심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들어와서 무릎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수녕백부를 통틀어서 똑똑한 사람을 굳이 하나 고르자면 단연코 오 어멈이라 할 것이다. 이틀 전에 만 어멈이 전한 소식을 듣고, 나열된 장원, 점포 단자를 본 날 밤에 눈도 붙이지 못했다.
혼약인지 뭔지, 어쩌면 함정일지도 모른다. 이가가 분명 관계있을 것이고. 상대가 원하는 건 화리해서 벗어나는 것이다. 대내내가 정말로 혼수를 들고 가려 하면…… 하지만 혼수는 이미 없어지지 않았나. 혼수는 없어졌고, 장원, 점포도 다 이가에서 되찾아준 것이다. 상대가 따지지 않고, 그깟 돈 부족하지 않으니 내던지고 간다고 쳐도, 강가가 그 점포와 정원으로 며칠이나 버틸까? 전에 대낭자는 벌써 부인과 대야 몰래 점포를 저당 잡히겠다고 상의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돈도 못 벌잖아요.’라면서.
곡 낭자라는 사람, 분명 좋은 물건이 아닐 것이다. 멀쩡한 낭자가 이런 부도덕한 짓을 할 리가 있나.
대내내가 강가를 떠나고 속셈 모를 곡 대낭자가 들어오면, 이 집안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오 어멈은 상상조차 하기 두려웠다. 세자가 지금 관운이 형통하다지만, 내택은……. 휴, 그 곡 낭자가 진 부인 같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부인은 팔자가 좋은 편이었다. 노야가 아무리 변변찮아도 대야보다 나은 점이 하나 있으니, 노야는 첩은 들이지 않았다. 통방 몇은 있었지만 정이 깊지 않았다. 첩이 없으니 서자, 서녀도 없어서 부인 같은 사람도 지금껏 잘 살아왔다. 그러나 세자의 후원은…….
고 이낭과 청서가 반년 동안 주고받은 수작을 떠올린 오 어멈은 생각만 해도 골치가 아팠다. 그리고 쉴 새 없이 불을 지피던 추미와 추연도 있고. 오 어멈은 무심결에 옆에 꿇어앉은 추미와 춘연을 흘겨봤다.
이따 관리 나리가 물으면 대체 뭐라고 말해야 할까?
오 어멈은 몹시 갈등했다.
사실대로 이야기해?
그러자니, 그 점포에 몰래 다녀온 일이 떠올랐다. 하나같이 훌륭한 점포였다. 장원은, 남편의 말을 들어보면 모두 상등 땅이란다. 정원도 잘 지어졌다고 한다. 튼튼하고 겉모습도 멋지다고…….
만 어멈의 뜻대로 이야기해? 그럼 강가는 어떻게 되는 걸까?
오 어멈은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그리고 세자, 강 세자는 거의 자신이 키우다시피 했는데.
높은 단상 위, 주육이 영원 뒤에서 고개를 내밀고 추미와 춘연을 위아래로 살피며 혀를 내둘렀다.
“강환장 그놈, 여인 복은 많구나. 소칠, 좀 봐봐라. 저 둘 모두 좀처럼 보기 힘든 미인이다.”
묵칠도 목을 빼고 내다봤다.
“정말 그렇군!”
“고씨라는 이낭이야말로 절색이랍니다. 강 세자가 그녀를 사 오려고 10만 냥도 선뜻 냈다던데요.”
서반도 덩달아 호사가처럼 나불거렸다. 주육이 다시 혀를 내둘렀다.
“나도 들었다! 이씨 혼수인 지참금을 썼다지! 정말이지 낯짝이 너무 두껍다고.”
“입 다물어라!”
영원은 그들을 돌아보며 호통치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턱을 쓰다듬으며 대당 아래 무릎 꿇은 세 사람을 살폈다.
오 어멈은 지극히 기강 잡힌 모습으로 단정하게 무릎 꿇었고, 추미는 무릎은 꽤 단정하게 꿇었는데 두 눈은 쉴 새 없이 주변을 살폈다. 춘연은 어찌나 추미 곁에 딱 달라붙어 있는지, 한 사람으로 보일 정도였다.
영원은 눈을 굴리고 굴리다가 자기에게로 굴린 추미를 힐끔 보고는 그녀를 가리켰다.
“너, 그래 바로 너! 대답해라, 이름이 무엇이냐?”
“아룁니다, 나리. 소인, 추미라고 합니다.”
추미는 다급히 시선을 거두고 단정하게 대답했다.
“언제 수녕백부에 들어간 것이냐?”
“아룁니다, 나리. 소인과 춘연은 우리 대내내의 배가 시녀입니다. 대내내가 몸져누우셨을 때, 나리 시중들 사람이 없다고, 소인과 춘연, 그리고 하섬, 동유의 머리를 올려 세자 곁에 보내셨습니다.”
추미는 하나를 물으니 열을 대답했다. 영원이 눈을 가늘게 뜨고 웃었다.
“정말 여인 복이 많군. 너희 세자가 전에 혼약이 있었다는 이야기, 들은 적 있느냐?”
“아룁니다, 나리. 저택에선, 제 말은, 저택에서 종복들이 그런 말을 하는 걸 들은 적은 없습니다. 다만…….”
추미가 난처한 듯 손수건을 비틀었다.
“한 번은, 세자야가 술에 취해 돌아오셨을 때, 정혼한 적이 있다고 하는 걸 어렴풋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날 세자야가 술을 드셨고, 많이 취하셔서 말도 똑똑히 못 하셨습니다. 그래서 소인, 제대로 들은 것은 아닙니다.”
춘연은 경악한 얼굴로 추미를 바라봤고, 오 어멈의 고개는 더 수그러들었다.
“솔직히 대답해라! 너희 세자가 대체 뭐라고 했느냐!”
영원이 경당목을 내리치자, 추미가 깜짝 놀라서 몸을 움츠렸다.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리, 살려주세요! 세자야가 그날 술에 취해서, 우리 대내내에겐 구린 돈 냄새밖에 나지 않는다고, 강가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전에 정혼한 낭자는 서생 가문 출신이라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고……. 세자야가 또…… 세자야가 우시면서 박복하다고, 전에 정혼한 낭자와 순조롭게 혼인했으면 이끌어줄 사람이 있어서 진작 탄탄대로에 올라 관리가 됐을 거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몇 마디하고는 나중엔 울다가, 울다가 잠이 드셨습니다.”
“너! 너는 이름이 무엇이냐? 너도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 있느냐?”
영원은 멍하니 추미를 바라보는 춘연을 가리키며 물었다.
“아룁니다, 나리. 소인, 소인은 춘연. 소인은 춘연이라고 합니다.”
춘연은 놀라고 두려워서 몹시 당황했다. 영원 때문에 조금 놀랐고, 추미의 말에 더 심하게 놀랐다.
그녀는 어리석은 편이 아니었고, 일이 이렇게 되자 큰일이 생겼음을 명명백백하게 깨달았다. 어제 추미가 그녀에게 앞으로 수녕백부에 남아서 세자야 곁에 있고 싶은지, 아니면 대내내를 따라갈 건지 물었었다. 어제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다.
춘연은 머릿속이 혼란해졌다. 세자야 곁에 남아? 대내내를 따라가?
“들었느냐, 못 들었느냐!”
영원이 경당목을 탁탁 두드리자, 춘연은 식겁해서 철퍼덕 바닥에 엎드렸다.
“소인, 소인은 모릅니다.”
“모른다? 흥! 잘도 모른다는 소리가 나오는구나! 너, 오씨지? 부인 곁에서 얼마나 오래 있었느냐?”
영원은 코웃음 치며 오 어멈을 심문했다.
“아룁니다, 나리. 소인은 어릴 때부터 부인을 모셨고, 부인을 따라 수녕백부에 들어왔습니다. 줄곧 부인을 곁에서 모셨습니다.”
오 어멈은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한없이 축 늘어뜨린 채 대답했다.
“줄곧 있었다라…….”
영원이 그녀의 말을 반복했다.
“그럼 너희 노야가 세자와 곡가 낭자의 혼사를 정해주었다는 말을 들은 적 있느냐?”
오 어멈은 멈칫하다가 고개를 더 숙였다.
“아룁니다, 나리. 들은 적 있습니다.”
“음! 좋다. 무엇을 들었는지 상세히 말해 보아라.”
영원은 눈썹을 까딱이며 속으로 연신 감탄했다.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가의 일 처리, 정말로 모든 것이 적절했다.
“10여 년 정도 됐을 겁니다. 하루는 노야가 돌아오셔서 대야의 혼인을 정했다고 하셨습니다. 나중엔 그 댁 노야가 병으로 돌아가셨고 그 낭자는 경성에 없다고 하셨습니다. 더 나중엔, 노야와 부인이 그 일을 이야기하는 걸 들은 적이 없습니다.”
오 어멈은 고개 한 번 들지 않고 덤덤하게 이야기했다.
강 백야는 추미가 이야기할 때부터 오 어멈의 지금 이야기까지, 넋이 나가서 듣고 있었다. 혼란스러운 마음이 더더욱 혼란스러워져서 뭐가 뭔지 알 수 없어졌다.
오 어멈도 알고 있다니. 정말로 내가 아들과 곡 낭자의 혼사를 정해주었었나? 그 일이 정말이었나? 정말로 정말이었나?
하지만 왜 조금도 떠오르지 않는 걸까? 이렇게 큰일을 잊을 수도 있나?
“이제 확실히 다 확인한 셈이겠지?”
영원이 서반을 돌아보며 물었다.
“예, 예. 확실합니다!”
서반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이래도 확실하지 않다면, 얼마나 더 물어야 확실할까.
“그럼 됐다. 두 사람 지장 받아라.”
영원은 그렇게 선포하고 일어서서, 만족스럽게 구경한 주육과 묵칠을 한 손에 하나씩 잡아끌고 같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