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202화 (202/463)

202화: 폭로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二

“강가도 참. 쯧쯧. 너무 염치없지 않습니까. 은자 때문에 상인 가문 이씨와 혼인하더니, 혼수를 가로채고 이씨는 친정으로 내쫓은 것도 모자라 그 전에 이미 혼인 파기한 일이 있었다니요! 쯧쯧, 염치가 없어도 너무 없는 거죠!”

사황자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조정 훈귀 가문이 이토록 뻔뻔하고 염치를 모르다니, 너무 창피한 일이었다.

인파 중심에 있는 호 노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신이 어느새 호 노야와 강 백야 앞으로 달려와서 강 백야를 손가락질하면서 얼굴은 호 노야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 말이 다 사실입니까? 강가가 진작 곡가와 혼인을 맺었다고요?”

“여기, 강 백야가 직접 쓴 혼서가 있네!”

호 노야가 품에서 정교하고 아름다운 비단 두루마리를 꺼내서 이신에게 건넸다. 이신은 경계하는 눈빛으로 강 백야를 보며 뒤로 몇 걸음 물러나서 혼서를 열었다. 노루글 읽듯 훑어보고는 곁에 있는 계소영에게 혼서를 건넨 이신은 성큼 앞으로 나가서 손을 치켜들더니 온 힘을 다해 강 백야의 뺨을 철썩철썩 갈겼다. 강 백야의 얼굴이 순식간에 부어오르고 손자국이 짙게 생겼다.

사방에서 놀라 고함치는 소리가 울렸다. 며느리의 친정 오라비가 사돈 어르신을 때려? 의절할 만한 일 아냐?

영원은 감탄한 눈으로 이신을 바라봤다. 이신, 너무 잘하는데? 이가 사람들, 하나같이 영특하고 머리가 좋단 말이지. 나와 너무 잘 맞는걸? 속이 후련하구나!

“강가에서 우리 이가의 은자를 탐내고 내 누이의 혼수를 강제로 꿀꺽했지. 강가의 파렴치한 행동이 거기까지인 줄 알았더니, 웬걸, 더 대단한 일이 있었군!”

이신은 분노를 참을 수 없는 듯이 목이 찢어져라 버럭버럭 고함치다가 결국엔 눈물을 흘렸다.

“파렴치하다! 파렴치하기 짝이 없어! 우리 이가엔 이런 사돈은 없소이다! 파렴치한 것들!”

여염이 후다닥 달려가 파르르 떠는 이신을 껴안았다.

“대랑, 진정하게! 이 형! 심호흡하게! 대랑, 진정해!”

이신은 여염의 어깨에 기대서 목놓아 울었다.

영원은 하마터면 박수갈채를 보낼 뻔했다. 이신, 연기를 너무 잘하는데? 박진감 넘쳐! 탄복한다, 탄복해!

혼서를 다 읽은 계소영은 뒤로 물러나서 곧바로 사황자에게 건네주었다. 사황자가 두루마리를 펼치자, 주육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글씨도 참 별로네. 사람을 닮았네요.”

사황자는 그리 길지 않은 혼서를 금세 다 보고는 주육에게 건넸다.

“본인에게 보여줘라. 직접 쓴 것이 맞는지 보라고 해라.”

혼서를 받은 주육이 신이 나서 달려가는데, 영원이 손을 들어 상기시켰다.

“조심해라, 뺏어가서 삼켜버릴라!”

“어딜 감히!”

주육은 이미 넋이 나가서 나무토막처럼 굳은 강 백야 앞으로 달려가서 혼서와 강 백야 사이에 서서 혼서를 쫙 펼치고는 뒤를 돌아보며 강 백야에게 물었다.

“자자, 확인해 보십시오. 백야의 글씨지요?”

강 백야는 멍하니 혼서를 바라봤다. 정말로 그의 글씨였다. 곡 형과 혼약을 맺었다고? 아니, 호 형, 내게 조용히 말하면 될 것을. 어째서!

“백야 글씨가 맞습니까?”

강 백야가 멍하니 대답하지 않자, 주육이 버럭 고함쳤다. 강 백야는 깜짝 놀라서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맞아. 맞아.”

“정말이었네.”

주육은 두루마리를 거두고 강 백야 곁을 빙글 돌았다.

“생긴 건 그럴싸하게 생겨서, 어쩌면 이토록 염치없는 짓을 하실까.”

“어찌할 셈인지 물어보아라.”

사황자는 더 화가 난 모습이었다.

“어쩔 셈입니까? 이 혼서, 어쩔 셈입니까? 찢고 말아?”

주육은 제가 알아서 말을 보탰다. 오늘 이 떠들썩한 구경에 기분이 매우 유쾌했다.

“사, 사… 사왕야, 하관의 아들은 이, 이, 이, 이미 이씨를 처로 들였습니다. 하관……, 하관은 아들이 하나뿐이라…….”

강 백야가 어쩌면 좋을지 방법이 있을 리가 있나. 지금 머릿속이 온통 혼란스러워서 뭐가 뭔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어쩌냐고? 그러게, 어째야 하나.

그래, 이미 혼인했는걸, 이를 어쩌나.

사황자는 사시나무 떨듯이 떠는 강 백야를 노려봤다. 이 일을 어쩐다. 정말 난감한 일이로군!

“이 일은 국법, 예제(禮制: 국가 규정의 예법)에 관련된 일입니다. 경부 관아 혹은 예부에 넘겨 의논해야 합니다.”

사황자의 막료가 사황자의 표정을 보고 다급히 다가가 귓속말했다.

“음, 이런 추악한 일이라니! 쯧!”

사황자가 콧방귀를 뀌며 호 노야를 가리켰다.

“곡가 낭자가 경성에 왔다고 하니, 네가 관아에 데리고 가서 고발장을 써라. 그리고 예부에도 한 부 보내고. 국법과 예제를 어긴 추악한 일이니, 관아와 예부 모두 방법을 생각해 내야 할 것이다.”

“예! 감사합니다, 사왕야. 사왕야는 정말이지…… 영명하신 분입니다!”

호 노야는 감동해서 비처럼 눈물을 흘리며 쉴 새 없이 고개를 조아렸다.

사황자의 문회에서 일어난 이 추문은 돌풍보다도 빠르게 그날 당장 온 경성의 크고 작은 거리로 퍼졌다. 온 경성의 한가한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수군대며 수녕백부의 무수한 흑역사를 끌어냈다.

아이고, 역시, 이런 파렴치한 짓은 하루 이틀 만에 길러지는 게 아니구나!

여염과 계소영은 이신을 자등 산장에 바래다주고 말을 타고 나왔다. 여염은 말 위에 앉아 넋을 놓은 계소영을 돌아보다가 그의 멍한 눈빛이 한참을 지나도 돌아오지 않자 채찍으로 쿡쿡 찔렀다.

“멍하니 왜 그래? 무슨 생각하는가?”

“아! 아닐세.”

계소영은 정신을 차리며 대답하고는 곧이어 입을 열었다.

“이 대랑의 누이가 참……. 어쩌다가 그런 집안과 혼인했는지 생각했네.”

“그러게 말이지!”

여염은 사실 계소영보다 더 걱정이 많고 짜증이 났다. 그의 조부가 이씨 조상에게 큰 은혜를 입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났으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런 일에 어떻게 끼어들겠나.

이씨의 혼인을 인정하게 하자니, 이토록 파렴치하고 저속한 집안이니 이씨를 똥통에 생으로 밀어 넣는 일 아닌가. 정말이지……. 그렇다고 곡 대낭자라는 사람의 혼약을 인정하게 하자니, 이씨가 강가에 혼인하여 들어간 일은 뭐가 될까.

여염은 생각할수록 속이 상했다.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이냐!

“저기, 예부에서 어떤 결론이 날까?”

계소영은 여염이 자기를 채찍으로 찔러 정신 차리게 해놓고 이번엔 자기가 넋 나간 걸 보고 똑같이 채찍으로 찌르며 물었다.

여염은 골치 아파 죽을 것 같았다.

“어떤 결론이든 다 어렵지! 곡가 낭자도 그렇고, 이가 낭자도 그렇고 멀쩡한 낭자가……. 어휴. 자네가 말해 보게. 이걸 어찌 결론 짓지? 자네라면 어쩌겠나.”

“나라면 이씨와 강가가 화리하는 걸로 결론 짓겠네. 비록…….”

계소영이 말을 멈추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 대랑도 있고, 우리도 마음 써주면 되지 않겠나. 앞으로 좋은 혼처를 찾아서 대랑의 누이를 다시 시집보내면 되지. 재가가 부끄러운 일도 아니고. 설령 조금 좋지 않다고 해도, 강가 같은 인간들과 엮이는 것보다 낫지. 게다가 강환장이 잘 하지도 않는걸.”

“그건 그렇지. 하지만 결국 이 낭자 본인의 뜻이 어떤지 봐야지.”

“이 대랑 같은 사람이 손까지 댔는데, 분명 화리할 생각이 있는 게지.”

계소영이 확실하게 하는 말에 여염이 그를 흘겨봤다.

“이 대랑을 그렇게 이야기하면 안 되지. 내 보기엔 너무 화가 나서 그런 걸세.”

“그렇게 생각하려면 그렇게 생각하게. 어찌 됐든, 난 이씨와 강가가 화리하는 것으로 결론 짓겠네.”

계소영의 마지막 말은 정중한 선포 같기도 했다.

여염은 연거푸 한숨을 내쉴 뿐 대답하지 않았다. 돌아가서 할아버님께 보고하고 할아버님 말씀을 들어 봐야겠다 싶었다.

문회에서 나온 영원은 말을 타고 곧장 경부 관아로 달려가서 목을 빼고 소장을 기다렸다. 구경하느라 신난 주육도 영원에게 딱 붙어서 목을 빼고 기다렸다.

묵칠은 잠시 주저했지만 구경하고 싶은 마음이 다른 모든 것을 이겼고, 결국 두 사람을 따라갔다. 묵칠을 말리지 못한 소자람은 할 수 없이 자기가 외조부와 외숙에게 이 큰일을 보고하러 묵 승상부로 달려갔다.

그날, 호 노야는 곧바로 누가 쓴 것인지 모를 구구절절 이치에 맞고 내용이 명백한, 심금을 울리는 소장을 경부 관아와 예부에 올렸다.

곡 대낭자는 크게 안도했다. 적어도 호 노야는 그녀를 도와주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관아에서 대체 어떤 결론을 지을까. 이가는 말도 못 할 정도로 부자라던데, 이씨에겐 거인 오라버니도 있다고 들었는데. 그런 사람과 싸워서 이길 수 있을까?

곡 대낭자의 조마조마한 마음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문회에서 일어난 촌극을 들은 복안 장공주는 큰 소리로 깔깔 웃었다.

“영원 그놈, 대체 연극을 얼마나 많이 본 거야. 이런 방법으로 폭로하다니. 음, 떠들썩하긴 하네!”

이동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숙인 채 찻잎을 그을렸다.

“너 오늘 이 마당에 들어왔을 때부터, 아니, 아마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였겠지, 아무튼 계속 이렇게 웃고 있었니? 좀 감춰야지. 네 오라비 좀 보렴. 듣자 하니 그때 화가 나서 몸을 부들부들 떠느라 하마터면 기절할 뻔했다던데?”

“정말로 화난 거예요. 반년 동안 화가 쌓인걸요.”

이동이 오라비 대신 해명하자 복안 장공주가 코웃음 쳤다.

“나한테 그딴 헛소리 하지 마. 그런 건 다른 사람에게나 하렴. 네 오라비, 단순한 사람이 아니야. 창념작타(唱念做打), 못하는 게 하나도 없네. 연기를 아주 잘 해.”

(※창념작타唱念做打: 창唱·대사·연기·무술. 중국 전통극 배우가 갖추어야 할 네 가지 기본기)

이동이 복안 장공주를 흘깃 쳐다봤다.

“들어 봐. 넷째가 이 일을 경부 관아와 예부에 넘긴 건, 아주 잘 된 거야. 경부 관아에선 분명 진술만 받고 나서서 일 처리 하려 하지 않을 거야. 어떻게 처리하는지는 예부에 달렸어. 예부는 지금 첫째가 맡았지. 하지만 이름만 건 거라, 이번 일에 굳이 끼려고 하지 않을 거야. 끼려고 한들, 넷째가 있으니 걱정할 것 없어.”

이동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역시 대황자가 성질을 부려 일을 망칠까 걱정이었다.

“네 오라비 연기 솜씨가 그렇게 좋으니, 어떻게든 예부 상서 해유덕을 만나도록 자리를 마련해 봐. 해유덕은 양절 포정사 주홍년의 시험관이었고, 주홍년은 네 오라비가 거인이 된 해 시험관이었으니, 네 오라비더라 해유덕 앞에서 제대로 울어 보라고 해.”

복안 장공주의 제안에 이동은 눈빛을 빛냈다.

“알겠어요!”

“그리고 예부는 여 승상이 관리해. 너희 집안과 여 승상 집안의 인연이 있잖아. 네 마음을 여 승상에게 알려야 해. 아니면 괜히 널 생각한다고, 오히려 일을 복잡하게 만들면!”

복안 장공주가 피식 웃었다.

“의리니 도덕이니, 그런 거나 읊는 나약한 인간들이 생각하는 널 위한 일과 네가 원하는 것은 천지 차이니까!”

“네! 그것도 오라버니에게 말해둘게요.”

이동은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여 승상 쪽엔 확실히 말해둘 필요가 있었다. 어쩌면 여 승상이 정말로 본인이 생각하는 그녀를 위하는 ‘좋은 일’을 위해 곡 낭자에겐 다른 길을 마련해 주고 강가 그 똥 덩어리를 그녀 머리 위에 얹어줄지도 모를 일이었다.

복안 장공주는 즐거운 듯이 팔걸이를 두드렸다.

“우리도 팔짱 끼고 지켜만 볼 수는 없지. 법회를 열 때가 되었네. 백 노부인은 한 마디면 통할 거고, 전 노부인은…… 네가 제대로 울어 봐. 네 오라버니가 했던 것처럼. 강가가 너무 파렴치해서 더는 강가 며느리로 살 수 없어요, 창피해서는 못 살아요, 훔친 샘물의 물을 마시고 싶지 않아요, 하면서.”

“네.”

이동은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얘 좀 봐. 자꾸 웃음이 나오니? 잘 들어, 너 그 노부인, 부인 앞에서 울다가 웃음 터지지 않도록 조심해!”

복안 장공주가 흘겨보자 이동이 웃으며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중요한 일인데 웃음이 터지겠어요?”

“한마디만 더. 돈은 따지지 마. 혼수를 찾아오진 못할 거야. 버려. 다만…….”

복안 장공주가 말꼬리를 길게 늘이며 다리를 흔들었다.

“강가 점포와 장원, 그건 네 어머니가 되찾아 준 거지? 네 어머니처럼 영리한 사람이라면 분명 근거를 남겼을 거야. 그건 봐줄 것 없어. 몽땅 되찾아와!”

복안 장공주가 팔걸이를 철썩 내리치며 하는 말에 오히려 이동이 놀랐다.

“뭐 하러…….”

복안 장공주가 이동의 말을 막았다.

“강가 좋은 일 할 필요가 뭐가 있어? 내 말대로 그렇게 해. 가지고 올 수 있는 건 싹 다 가지고 와.”

“네.”

이동은 할 말을 잃고 복안 장공주를 바라봤다. 장공주가 요즘 갈수록 성격이 거칠어졌다. 갈수록 속세를 떠난 고수의 모습은 사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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