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201화 (201/463)

201화: 폭로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一

포정사 관아와 몇 거리 떨어진 곳의 작은 저택 안, 문 이야는 흔들의자에 앉아서 상반신은 꼿꼿이 세우고서 종복과 호위들이 쉴 새 없이 들어와서 하는 보고를 들었다.

흠차가 포정사 관아를 포위했다, 흠차가 좌 선생의 거처를 뒤집어엎었다, 흠차가 지금 동민의 후원을 수사 중이다…….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 무렵, 공대가 잔뜩 들뜬 얼굴로 들어왔다.

“이야! 나왔습니다! 동민 그자, 정말 재물을 잘도 축적하는군요. 물건이 산처럼 쌓였습니다. 은자, 은표만 족히 백만 냥 넘게 찾아냈습니다. 동민도 참. 은자, 은표를 그렇게 많이 모았으면 어서 고향 집으로 옮길 것이지, 거기에 남겨두다니요. 털릴 준비하는 게 아니고 무엇입니까.”

“동씨 일족과 사이가 좋지 않다. 그런 쓸데없는 건 됐고, 본론을 이야기해라.”

“예. 복륭 전장의 은표 20만 냥도 찾아냈습니다. 강환장이 특별히 따로 골라냈습니다.”

거기까지 들은 문 이야는 길게 안도하며 상반신을 의자에 기대고 앞뒤로 흔들었다.

“됐다. 할 일은 다했다. 여기서 할 일은 없으니 밤에 바로 출발해서 경성으로 돌아간다. 배는 준비됐느냐?”

“예. 벌써 준비됐습니다. 언제 떠날지 한마디면 됩니다. 바로 짐을 꾸리겠습니다.”

공대는 돌아간다는 말에 희색이 가득해졌다.

“음, 여복에게 들어오라고 해라.”

문 이야는 홀가분하고 편안한 얼굴로 분부했다. 공대가 나간 후, 여복이 휘장을 젖히고 들어왔다.

“어제 곡가 태태를 보러 갔었지? 이제야 묻는구나. 어떻게 됐느냐?”

“이야의 분부대로 의식주 모두 적절하게 마련해주었습니다. 다만 그 태태, 딸 걱정에 매일 눈물로 세수합니다. 비구니 암자 스님들에게 부탁해서 타일러 보라고 했는데, 말을 듣지 않고 울기만 합니다.”

여복은 쓴웃음을 지었다.

“음, 사나흘마다 의원을 모셔서 진맥하고 진료하도록 마련해 주어라. 휴, 무고한 사람이니 가능한 한 돌봐 주어야지.”

문 이야가 나지막이 분부했다.

“예! 걱정하지 마십시오. 소인 바로 가서 장궤에게 말해두겠습니다.”

“가 보아라. 서둘러 돌아오고. 곧 출발할 것이다.”

여복은 공손하게 물러갔다. 한 시진 후, 밤의 장막이 내려오고, 어둠 속에 문 이야 일행은 작은 저택에서 나와 부두로 직행했다.

포정사 관아 후원, 동민은 넋이 나간 채 아수라장이 된 서재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왜 이런 일이. 왜 갑자기 이런 일이. 좌 선생과 상의해야겠다……. 아, 좌 선생은 죽었지.

동민은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또 들이마신 후에 겨우 평정을 찾고 눈앞에 벌어진 일을 진지하게 생각했다. 대체 무슨 일일까? 멀쩡히, 왜 갑자기 일이 이렇게 흐를까?

설마, 강가 저놈, 사왕야의 사람인가?

그 생각이 밤하늘을 가르는 벼락처럼 머릿속을 스치자, 동민은 벌떡 일어섰다. 분명 그런 것이다! 처음엔 연막을 친 것이야! 목적은, 사실 나였어! 복륭 전장이 발행한 20만 은표, 그에게는 5만 냥밖에 없었다. 축가에서 받은 거라고 좌 선생이 그에게 주었다. 그런데 어떻게 20만 냥이 되었지?

그렇지! 강가 놈이 들고 들어온 것이구나. 목적은…… 나뿐 아니라 고 사사? 설마 고 사사를 노리고? 좌 선생이 그에게 말한 적 있었다. 이번 추시에서 고 사사가 그에게 부탁한 걸 보면 자기 사람으로 여기는 거라고. 자기 사람이라면…….

동민은 의자에 주저앉았다. 스스로를 지키지 못했을뿐더러, 고 사사도 연루하고 말았다. 대왕야의 성깔로는…….

대왕야의 성격을 떠올린 동민은 가슴이 쪼그라들어서 부르르 떨었다.

서둘러 이 일을 대왕야에게 알려야 한다! 그럼 조금은 만회할 수 있을지 몰라! 얼른, 즉시!

동민은 엉망이 된 바닥을 뒤져서 혼란한 물건들 사이에서 먹, 종이와 붓을 찾아냈다. 덜덜 떨면서 먹을 갈고, 틀린 글자를 신경 쓸 겨를 없이 오늘 있었던 일의 경과와, 강가 놈에게 복륭 전장 은표 20만 냥을 뒤집어쓴 경과, 그리고 강가 놈이 태평부에 들어오자마자 함정을 판 경과를 날 듯이 적어 내려갔다.

종이 열 몇 장을 채운 끝에야 겨우 대충 설명할 수 있었다. 동민은 바닥에서 봉랍을 찾아 서신을 밀봉하고 문으로 가서 가장 믿는 심복 관사를 불렀다. 그러고 그에게 서신을 내어주며 즉시 출발해서 밤낮없이 달려가 서신을 직접 대왕야 손에 전하라고 명했다.

경성, 오진 저택 안. 곡 대낭자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내고 있었다.

호 노야가 만들어 준 호화롭고 우아한 의복과 보석 장신구가 주는 기쁨도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호 노야가 7천 냥을 주면서 만 냥을 모아서 혼수를 마련해준다고 해도 한 시진 정도 기뻐했을 뿐이었다. 그 혼수를 들고 나갈 수 있으려나?

매일 재촉해도 호 노야는 시기가 아직 오지 않았다고만 했다. 시기가 오지 않은 걸까, 아니면 미루고 질질 끄는 걸까?

곡 대낭자는 밤낮으로 고민하고 초조한 나날을 보내느라 처음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가씨가 그녀와 혼수를 어떻게 마련해야 체면이 서고 눈에 띄는지 상의해도 귀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너무나 걱정됐다. 아버지의 형제나 다름없다는 그분이 대체 자신을 도울 마음이 있는 건지, 마음을 쓰고 있는 건지 모를 일이었다.

사실 입장을 바꿔서 자신이었다면 이런 일은 상대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곡 대낭자가 조바심에 거의 쓰러지기 직전, 호 노야가 기회를 찾았다고, 좋은 소식을 기다리라고 말했다.

대황자가 불벼락같이 화를 낸 후, 문회에 대한 사황자의 열정은 전례 없이 나날이 높아졌다.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곧바로 문회를 열었고, 그 문회는 갈수록 떠들썩해지고 갈수록 성대해졌다.

사황자의 문회에 참석하고 싶어하는 경성의 거인, 서생은 아무나 데리고 가줄 사람을 구하면 그만이었다. 호 노야를 누가 데리고 들어갔는지 몰라도, 호 노야가 강 백야를 데리고 들어갔고, 그렇게 호 노야와 강 백야, 한 쌍의 막역한 벗은 사황자 문회의 큰손님이 되었다.

이날 문회는 조용하고 운치 있기로 유명한 반가 화원에서 열렸다. 영원은 며칠 전부터 이신에게 반가 화원에서 열리는 문회를 놓치지 말라고 전갈을 보냈었다.

이신은 티 나지 않게 여염과 계소영을 초대했고, 이날 이른 아침부터 반가 화원에 도착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여염과 계소영은 모두 앞으로 나설 생각이 없었다. 특히 사황자가 중심이 된 그 무리엔 끼려고 하지 않았다. 이신은 두 사람을 따라 눈에 띄지 않는 구석을 골라 느긋하게 이야기 나누며 차를 마셨다.

호 노야와 강 백야는 이신 일행보다 일찍 도착해 있었다. 영해가 조용히 다가가 알리자, 이신은 여염과 계소영에게 알리고 강 백야를 찾아가 인사하고 잠시 이야기 나누며 사돈집 손아랫사람이 할 도리를 다했다.

강 백야는 얼굴에 홍조가 도는 것이 매우 좋아 보였다. 지기 호 노야가 경성에 온 이래, 그의 생활이 하룻밤 새에 십여 년 전만큼, 아니 십여 전보다 훨씬 위풍당당해졌다.

에고, 곡 형이 세상을 떠났을 때 내가 너무 슬펐나 보군. 어떻게 그 많은 옛일을 잊을 수가 있지. 그때도 분명 지금처럼 신선 같은 나날을 보냈을 텐데! 에고, 그 아름답던 시절의 기억이 아쉽구나!

영원은 주육, 묵칠 일행과 느긋하게 도착하느라 사황자보다 반각 정도 빨랐을 뿐이었다. 영원은 따분한 얼굴이었다. 글자도 다 깨우치지 않은 사람이 문회에 참석했기에, 저 멀리서 그를 바라보는 거인, 재자들의 눈빛엔 부러움도 경멸도 있었다. 아무리 글을 몰라도 상대는 당당한 4품 어전 시위니까. 큰 사고만 치지 않으면 몇 년 뒤엔 3품으로 승진할 것이다. 3품이다, 3품! 지금 이 안에 있는 사람 중 9할은 평생 이룰 수 없는 목표였다.

진정한 망나니인 주육은 여기저기 어슬렁어슬렁 다니며 모두의 문장을 평론하고, 시를 지은 걸 보면 목을 빼고 바라보다가 ‘불통!’ 하고 외쳤다.

무릇 알아보지 못하는 내용은 몽땅 불통이라고 외쳐대니, 한 바퀴 돌며 읽어 보아도 ‘통’이라고 말할 만한 시와 문장은 하나도 없었다.

모든 거인, 재자들이 대부분은 유들유들한 사람들이고 심지어 주육을 추켜세우는 사람도 있었으나 대부분 상대하지 않았다.

묵칠은 아무래도 출신이 달라서 자신의 학문이 떨어지는 것에 자괴감을 느끼고는 따분한 듯 앉은 영원 곁에 바짝 붙어서 무슨 바람이 불어서 여기 온 것이냐고 투덜거렸다.

“문회에 참석한 적은 있고?”

영원이 그를 흘겨보며 물었다.

“해마다 집에서 문회를 여는걸.”

영원이 허허 웃었다.

“하긴. 네 집안이 서생 집안인 걸 잊었구나.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게다가 이건 사왕야의 문회다. 너희 집에서 여는 문회와 비교할 수나 있고? 견문을 넓히기 위해서라도 한 번 와 봐야지. 아니면 아깝지 않으냐.”

“그건 그렇지.”

한참 답답해하던 묵칠은 일리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못 보고 넘어가는 게 있을 수 있나! 그래, 온 김에 식견이나 넓혀보자.

생각을 마친 묵칠은 일어서서 주육처럼 탁자마다 둘러보고 다녔다. 묵칠의 집안은 정통 학자 집안이고, 적어도 주육보단 안목이 높아서 진정한 통과 불통을 구별할 정도는 됐다.

한참 시를 짓고 문제를 파해(破解)한 뒤, 문회의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고 떠들썩해질 무렵, 영원은 일어나서 기지개를 켠 다음 어슬렁어슬렁 사황자 무리 뒤로 가서 머리를 내밀고 들여다봤다.

호 노야가 일어서서 싱글벙글 웃으며 강 백야를 일으켰다.

“가세. 우리도 가 보자고.”

“좋지!”

강 백야는 즐겁게 손뼉을 치며 찬성했다. 두 사람이 사황자 무리 곁으로 다가갔을 때, 호 노야가 갑자기 강 백야를 덥석 잡더니 소리 높여 고함쳤다.

“강가야! 사왕야 앞에서, 모든 사람 앞에서 말해 보게! 혼약한 걸 감추고 따로 며느리를 들이다니! 이러고도 사람인가!”

시끌벅적하던 분위기는 호 노야의 고함에 순식간에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사황자까지 포함해서 모든 사람이 일제히 그쪽을 바라봤다. 분노한 얼굴로 강 백야를 붙잡은 호 노야와 도통 무슨 일인지 몰라 망연한 강 백야를 모두가 번갈아 봤다.

“강 백야 같은데?”

사황자 무리 맞은편에 앉아 있던 계소영이 벌떡 일어서며 이신에게 말하고는 이신이 대답하기 전에 혼자 다급하게 달려갔다. 이신도 후다닥 일어나서 따라 뛰었다.

“가 보고 오겠네!”

“어이!”

여염은 한 박자 늦게 일어서서 허둥지둥 따라갔다.

“모두 이야기 좀 들어보시오!”

사람들이 에워싸자, 호 노야는 흥분한 얼굴로 눈시울을 붉히며 눈물이 그렁그렁해져서 말했다.

“소생 호가입니다. 여기 강 백야, 그리고 이미 세상을 떠난 곡 형과 막역하게 교제한 사이였지요. 14년 전에 강 백야가 곡 형에게 현숙하고 선량하고 인품이며 용모며 모두 뛰어난 딸이 있다는 걸 듣고 혀를 내두르며 칭찬하면서 꼭 곡 형에게 혼담을 넣어달라고 나를 졸랐소이다. 나는 두 가문이 걸맞고 어울리기에, 혼담을 넣었지요. 강 백야와 곡 형은 혼서를 썼고, 소생은 중매인이자 증인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곡 형이 병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강 백야가 곡 형의 고향집으로 사람을 보내 며느리의 행방을 찾지 않은 건 차치하고, 아들에게 다른 혼처를 찾아주었을 줄은 정말 몰랐소이다. 그동안 나는 집에서 부모상을 치르느라 그 일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지금 곡가 대낭자가 경성까지 찾아와서야 이 일을 알게 되었고요. 강 형, 말 좀 해 보게. 오늘 시원하게 이야기해 보게. 이 일, 그리고 곡가 대낭자를 어쩔 셈인가? 어떻게 처리할 셈이냔 말이야.”

사황자는 알 듯 모를 듯 들었고, 주육이 흥분해서 다가가더니 어떻게 된 일인지 불붙이고 덧붙여서 사황자에게 말해 주었다. 주육은 이 떠들썩한 일을 알고 있었다. 얼마 전에 강 백야가 활개 치며 곡 형이라는 자의 제사를 지낸 걸 똑똑히 봤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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