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화: 곡 대낭자 당도요!
동민은 또다시 자세히 셈해 보고는 주안상을 준비해서 좌 선생을 모셨다.
술을 한참 마시다가, 동민이 일어서서 좌 선생을 향해 깊이 장읍했다.
“긴 세월 동 아무개가 순조롭게 있을 수 있었던 건 모두 선생이 보좌해준 덕분이네.”
“동옹, 이게 뭐 하시는 겁니까.”
좌 선생은 깜짝 놀라서 얼른 동민을 부축하고 동민을 향해 읍했다.
“동옹, 지금 저를 죽이시려는 겁니까? 어찌 감당하라고.”
“선생은 내 은인이네.”
동민의 간절한 표정에 좌 선생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동옹, 과언이십니다. 가당치 않아요. 동옹, 취하셨습니다.”
“선생, 한 번 더 나를 살려주게. 이 내가, 반드시 이 은혜를 기억하겠네. 평생 잊지 않을 걸세.”
동민은 다시 허리를 굽혀 고개를 숙이며 더욱 간절하고 진지하게 그를 대했다.
“동옹, 진정하세요. 벌써 몇 번이나 의논하지 않았습니까. 대왕야가 수수방관하지 않으실 겁니다. 흠차가 진왕부 장사 아닙니까. 게다가 이 일엔 고 사사도 있습니다. 고 사사는 지금 은총 깊은 분입니다. 위험한 일 같아도 사실 그 정도는 아닙니다. 분명 무사히 넘길 수 있을 겁니다. 동옹.”
좌 선생은 동민이 이러는 것이 너무 걱정되고 두려워서 그러는 줄 알고 얼른 분석해주며 타일렀다.
“선생의 말이 옳네. 선생의 말대로, 대왕야는 수수방관하지 않았네. 흠차도 우리 사람이고. 다만…….”
동민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선생도 말했듯이, 시제가 노출된 이 일, 철통같은 증거가 산처럼 쌓였네.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어.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어!”
좌 선생의 눈이 서서히 커졌다. 불길한 예감이 강렬하게 치밀었다.
“축청정이 죽기 전에 수기로 유언을 남겼네. 모든 것이 선생이 시킨 일이라고. 선생, 날 한 번 구해주게. 선생의 큰 은혜, 내가 내세에 결초보은하겠네. 반드시 갚겠어.”
좌 선생은 얼떨떨하게 동민을 바라보다가 한참만에 뻑뻑한 목소리로 물었다.
“동옹, 진작 계획한 것이지요? 동옹, 앞으로 아무도 동옹에게 조언할 사람이 없을 겁니다. 두렵지 않습니까? 동옹…….”
“선생의 큰 은혜, 내가 가슴에 새기겠네.”
동민은 일어서서 다시 장읍했다. 이번에 좌 선생은 꿈쩍하지 않고 탑상에 단정하게 앉아서, 장읍하고 또 장읍하는 동민을 내려다보다가 별안간 큰소리로 웃음을 터트렸다. 웃음소리가 그친 후, 그는 한 손으로 주전자를 쥐고 다른 손에 술잔을 들고 연거푸 잔을 비웠다. 비우고 또 비우고, 그렇게 한 주전자 술을 모두 비웠다.
동민은 탑상 앞에 서서, 연달아 술을 비우는 좌 선생을 바라보며 내심 안도했다.
좌 선생이 만취해서 나왔을 때, 강환장은 관아 앞에 흠차 의장기를 세우고 포정사 관아로 뛰어 들어왔다. 좌 선생은 가슴을 활짝 펴고 당당하게 다가가 술에 취해 몽롱한 눈빛으로 강환장을 보다가 손가락질하면서 크게 웃었다.
“다 한통속이지! 관리는 관리끼리 감싸고 돈다더니! 그래 알았다! 뭐라고 불면 되는가? 그래! 그래, 좋다! 시제는 내가 훔쳤다. 내가 팔았고! 됐는가? 똑똑히 들었는가? 얼른 사람을 불러 진술서를 써라! 서명하고 지장을 찍어주마! 관리들끼리 감싸겠다는데 그렇게 해주어야지. 마주 앉아 술잔을 들고 축하하게 해주어야지!”
강환장은 술에 취해 주정을 부리는 좌 선생을 눈살을 찌푸리고 보다가 서반에게 그가 한 말을 적으라고 하고 손 모양을 그리고 지장을 찍었다.
“일단 가두고, 술이 깨면 다시 심문하겠다.”
새벽, 좌 선생은 옥 한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비스듬히 들어오는 달빛 아래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시제를 훔치고 판 죄는 목이 날아갈 죄였다. 올해 가을 처형은 이미 지나갔고, 내년……. 혹시 목이 날아가면 내년 지금쯤엔 황토에 묻혀 만두 소가 될 것이다.
“선생!”
동민이 어둠에서 나와서 굵은 옥문 난간을 사이에 두고 멍하니 앉은 좌 선생을 바라봤다.
“동옹, 여기는 또 무슨 일입니까?”
술이 깬 좌 선생은 간도 쪼그라들어서 기운 없이 물었다.
“모처럼 달빛이 좋은 밤이군. 선생은 고상한 사람이니, 차라리 오늘 밤에 떠나시게.”
동민의 목소리가 음습하고 냉혹했다.
“뭐, 뭐라고요?”
좌 선생이 믿을 수 없는 눈빛으로 바라보자, 동민은 조금 위축되어서는 뒤로 한 걸음, 또 한 걸음 물러났다.
“선생, 편안히 가시게.”
“이놈!”
좌 선생이 벌떡 일어났다. 그가 달려들기 전에, 옥문이 열리더니 심복 둘이 성큼 들어와서 팔을 비틀고 입에 천을 쑤셔 넣었다. 눈 깜짝할 사이, 좌 선생은 사람 키를 훌쩍 넘는 감옥 난간에 매달렸다.
동민은 잠시 버둥거리다가 이내 굳어버린 좌 선생을 빤히 보면서 합장하고 경건하게 축문을 읊었다.
“선생, 편안히 가시게. 내세가 있다면 내가, 반드시 이 은혜를 갚겠네.”
강환장이 축청정의 수기 자백을 받았을 때, 축청정은 이미 죄가 두려워서 자진했고, 좌 선생의 취중 진술을 받자마자 그날 밤에 좌 선생도 죄가 두려워서 자진했다.
강환장은 얼굴빛이 잔뜩 가라앉더니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증거를 대놓고 내어주더니, 이번엔 대놓고 증인을 죽였다. 나를 머저리로 아나?
이번 임무는 제대로 이름을 알릴 작정을 하고 온 것이었다. 대황자 혹은 사황자 눈 밖에 나도 아무런 상관없었다. 그에게 대황자와 사황자는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이미 칼끝을 서로에게 겨눈 대황자와 사황자는 대놓고 싸우고 있었고, 서로를 제거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은 아무것도 안중에 없었다.
그러니 마침 이 기회에 자신의 명성과 위엄을 떨칠 생각이었다.
전생엔 철이 없어서 사사건건 거리끼고 조심했다. 처음에 진왕과 재난 구원하러 갔을 때도, 만사 지나치게 거리꼈다. 이 사람 눈 밖에 날까 봐 조심하고, 저 사람 눈 밖에 날까 봐 조심하느라 사사건건 끌려가다가 결국 목숨까지 잃을 뻔했다.
문 이야가 처음 그를 만났을 때 큰일을 하려면 용맹하게 직진해야 한다고 했었다. 그 후로 십여 년, 몇십 년 동안 문 이야는 그 말을 자주 했다.
맞다. 큰일을 하려면 원래 용맹하게 직진해야 한다.
강환장은 전복의 진술, 축청정의 진술, 그리고 서반이 기록한 좌 선생의 진술을 들고 몇 번이고 꼼꼼히 살핀 다음 탁자를 살며시 내리쳤다. 착수할 방향을 찾았다!
경성, 진하 부두.
곡 대낭자가 식사를 마쳤을 때, 밖에 오동나무 새 마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마차 주변에 두른 푸른 항주 비단 네 자락에 붉은 유소가 달랑거렸고, 말을 끄는 말 두 마리는 건장하고 아름다웠다. 곡 대낭자는 눈을 떼지 못하고 마차를 바라봤다. 마음에 쏙 드는 것이, 태어나서 처음 보는 훌륭한 마차였다.
곡 대낭자는 기쁨과 호기심을 애써 억누르며 표정을 굳혔다. 이런 마차, 이런 호화로움에 진작 익숙해진 것처럼 태연하게 어멈이 발판을 놓는 걸 지켜봤다. 조심조심 마차에 올라간 곡 대낭자는 휘장을 젖히자마자 눈부신 마차 안의 사치스러운 배치에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더는 참지 못하고 나직이 환호했다.
다행히 들은 사람이 없는 듯해, 곡 대낭자는 얼른 입을 꾹 다물고 얼굴에 힘을 주면서 옅은 광채가 흐르는 비단 방석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치맛자락을 당기다가 조금 넋이 나가고 말았다. 제 치마는 마차 안에서 가장 질 떨어지는 방석에 쓴 천에도 미치지 못하는 듯했다.
마차 안으로 따라 들어온 옥연은 무릎을 구부리고 앉아서 바닥에 감춰진 작은 서랍을 열었다. 작고 정교한 홍니로를 꺼내고 은주전자를 올려 물을 끓이고는 이어서 차를 그을리고 갈아서 차를 내렸다. 찻잔을 놓을 수 있도록 특별히 조각한 홈에 찻잔을 놓고는 다른 서랍을 열어서 정교한 간식, 과일, 밀전을 꺼냈다.
명문가에서는 이런 걸 누리는구나!
곡 대낭자는 상상도 못 한 일들에 정신이 멍해질 지경이었다.
지극히 훌륭한 차는 청향이 가득했고, 간식, 과일은 트집 잡을 수 없을 만큼 정교하고 맛있었다. 곡 대낭자는 양손으로 잔을 들고는 휘장 사이로 점점 뒤로 멀어지는 나무들을 바라봤다. 지금 느끼는 감정을 말로 설명할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계속해서 이런 생활을 보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강가에서 이 혼사를 인정하도록 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수녕백부에 들어갈 거야!
마차가 멈추더니 가씨가 엄숙한 얼굴로 고개를 내밀었다.
“대낭자, 소인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옥연, 뒤에 마차로 가라.”
옥연이 마차에서 내리고, 가씨가 마차에 올라 곡 대낭자의 맞은편에 앉았다.
“대낭자, 전에 경성에 수소문할 사람을 먼저 보내지 않았습니까. 소식이 왔습니다.”
“뭐래?”
곡 대낭자는 상반신에 힘을 주며 절박한 표정으로 가씨를 바라봤다. 가씨가 한숨을 내쉬었다.
“대낭자, 일단 진정하세요. 휴. 일단 안 좋은 소식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대낭자, 우리 고야, 올해 2월에 성혼했답니다.”
곡 대낭자가 날카롭게 고함쳤다.
“뭐라고? 성혼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내가…… 내가…….”
가씨는 다급해서 양손을 휘둘렀다.
“대낭자! 대낭자! 진정하세요! 버티셔야 합니다! 성혼했다고 해도, 대낭자가 먼저입니다. 기회가 없는 게 아니에요. 대낭자, 진정하세요! 진정하고 내 말 들으세요!”
“나랑 정혼해놓고. 아버지와 그의 아버지가 정한 거잖아! 나와 정혼했어!”
곡 대낭자는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대낭자, 내 말 들으세요. 걱정하지 말고요. 이 혼사, 소인이 목숨 걸고 쟁취하겠습니다!”
가씨가 가슴을 두드리며 장담했다.
“우린 당당합니다. 아무리 백부라고 해도, 도리는 지켜야지요! 대낭자,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의 혼약이 먼저입니다. 설령 성혼했다고 해도, 그건 무효입니다!”
가씨가 가슴을 치며 호언장담하는 말에 곡 대낭자는 드디어 무너지기 직전에 정신을 차렸다. 적어도 이야기를 계속 들을 상태는 되었다.
“남은 건 다 좋은 일입니다. 첫째, 우리 고야와 혼인한 사람이 상인 가문 여식이랍니다. 고야는 그 상인 가문 여식을 매우 언짢아하고요. 혼인한 지 두 달 만에 그 여인을 친정으로 내쫓았답니다. 지금까지 그 낭자는 친정에 살고 있대요.”
“정말?”
곡 대낭자는 눈물 흔적이 가득한 얼굴로 방긋 웃었다. 가씨도 따라 웃었다.
“정말이고 말고요! 두 번째 좋은 일, 대낭자에게 말씀드렸던 호 노야, 그분도 지금 경성에 계신답니다!”
곡 대낭자는 더욱 놀라고 기뻐했다.
“아버지와 가장 친했던 호 아저씨? 나랑, 그 사람 혼사를 중매한 분? 그리고 나를 양녀로 삼으신 분? 초상 치르러 고향으로 돌아간 이래 오랫동안 소식이 없다고 하지 않았어?”
오는 내내 가씨는 곡 대낭자에게 그녀의 아버지와 호 노야, 그리고 강 백야의 감탄 나오는 감동적인 우정을 세세하게 몇 번이나 이야기했는지 모른다.
“그러니까 운이 좋은 거지요!”
가씨는 곡 대낭자보다 더 기뻐 보였다.
“호 노야도 두어 달 전에야 경성에 왔답니다. 호 노야는 부친이 병이 들어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부친은 나았는데 모친이 병으로 세상을 떠났답니다. 모친이 떠난 다음에 부친도 너무 상심한 나머지 따라 눈을 감았고요. 호 노야는 효성 지극한 사람이라, 부모 묘지 앞에서 꼬박 6년 동안 상을 치렀답니다. 6년 상을 치른 뒤, 성장한 아들이 또 재능을 보여서 집에 남아 친히 아들을 가르쳤답니다. 아들이 거인이 된 다음엔 아들을 데리고 견문을 넓히느라 2년 정도 돌아다니다가 이제야 경성에 왔다네요.”
“그랬구나.”
곡 대낭자는 몹시 부러워하며 이야기를 들었다.
“호 노야 말씀이, 경성에 들어와서야 우리 노야가 세상을 떠난 걸 알게 되었답니다. 휴. 그 당시 그분이 경성을 떠났을 때 우리 노야가 이미 쓰러진 걸 뒤늦게 알고 많이 자책했답니다. 작은 병을 키워서 큰 병이 된 바람에 병이 깊어 고치지 못했다고요. 호 노야는 우리 노야가 그리워서 태평부에 사람을 보내 우리를 찾았답니다. 그런데 우리가 먼저 출발했을지 몰랐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