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198화 (198/463)

198화: 알아서 찾아온 증거

다음 날 아침, 이신이 막 아침을 먹자마자 이동이 찾는다고 사람이 왔다. 찾아갔더니, 이동이 어제 영원이 왔다는 소식과 곡 대낭자 이야기를 했다. 이신은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모를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영원이 어째서 나를 찾아오지 않았을까? 하긴, 강가의 일이니까. 강가의 일이니 당연히 아동이 가장 잘 알겠지. 내게 말하면, 내가 다시 가서 아동에게 확인해야 했을지도 모르고. 곧바로 아동에게 이야기하는 게 낫긴 하군.

자등 산장에서 진하 부두까지 가까운 편은 아니어서, 두 사람은 짐을 꾸렸고 이동은 아예 남장했다. 두 사람은 장 태태에게 인사한 후에 마차와 말을 끌고 진하 부두로 향했다.

곡 대낭자의 배는 점심시간 전에 진하 부두에 정박했다.

이동과 이신은 부두에서 가장 가까운 다루에 나란히 서서 밖을 내다봤다. 길고 긴 초사 멱리를 쓰고 어멈의 손을 잡은 곡 대낭자가 배에서 천천히 내렸다.

“아룁니다, 대야, 낭자. 저들이 지금 막 주루에 독채를 잡았답니다. 열몇 가지 요리를 시키고 자기네 낭자가 당도하자마자 따듯한 요리를 올려야 한다고 분부했답니다.”

영해가 들어와 두 사람 뒤에서 나지막이 보고했다.

“꽤 거창하군.”

이신이 나직이 평가했고 이동은 고개를 끄덕였다. 곡 대낭자를 모시던 어멈과 시녀는 하나는 죽고 하나는 멀리 팔려 갔다.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은 모두 영원이 준비한 사람이리라. 오는 내내 거만한 낭자 노릇하는 법을 가르쳤겠지.

“문 이야가 고른 사람이래요.”

이동은 영원이 느긋하게 하던 말을 떠올리면서 말했다.

한참만에 이신이 한숨을 내쉬었다.

“지나치게 표독하구나. 가자. 우리도 주루에 가보자.”

이신과 이동은 밖으로 나와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 곡 대낭자 일행을 뒤따라 주루로 들어갔다.

영원은 이신과 이동의 뒤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채 쥘부채를 흔들면서 유유자적 따라갔다.

곡 대낭자는 밥 한 끼 먹는 동안 탕 그릇을 던지고 생선 접시를 깼다. 탕은 너무 짜고, 생선은 꼴이 말이 아니라나. 생선 접시를 깨는 것까지 보고 이신이 이동을 향해 눈짓했다.

“더 볼 것 없다. 밥 먹고 돌아가자. 이야는…….”

이신은 말을 하다가 말고 다시 삼켰다. 하지만 이동은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았다. 문 이야의 일 처리 풍격이야 이신보다 그녀가 더 많이 알았다. 강가가 편안하다면, 문 이야가 어찌 조용히 세월을 보낼 수가 있을까.

영원은 주루에 들어가지 않고 주루 맞은편 다루에서 차를 홀짝이며 이가 오누이가 들어갔다가 나오는 걸 지켜봤다. 남장한 이동과 이신을 번갈아 보고, 또 이신과 이동을 번갈아 봤다. 두 사람이 함께 서 있으니 눈이 즐거웠다.

그러나 영원은 눈은 즐거운데 마음은 즐겁지 않았다. 무슨 느낌인지 설명할 수 없어도, 어쨌든 마음이 불편했다.

건강을 회복한 강환장은 아픔이 사라지자 야심이 치솟았다. 내내 길을 서두른 강환장은 거의 곡 대낭자와 비슷한 속도로 움직였고, 곡 대낭자가 진하 부두에 당도했을 때, 강환장의 흠차 선박은 태평부 부두에 정박했다.

강환장은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독산과 흠차를 수행하는 호위, 서반 몇을 데리고 뭍에 올라 마차로 갈아탔다. 미복 행차부터 할 생각이었다.

태평부 외각은 경성 못지않게 떠들썩해서, 성문에서 5리 정도 떨어진 곳에 주루와 다관이 잇달아 있었다. 곧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강환장은 모두를 데리고 매우 떠들썩해 보이는 주루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성 밖이라 주루에 독채가 없었다. 물론 있긴 한데, 강환장도 독채로 들어갈 생각이 없었다. 미복 행차 아닌가.

꽤 넓은 대청에 사람이 가득했다. 강환장은 대충 자리 잡고 앉아서 독산에게 알아서 음식을 시키라고 하고 자기는 차를 홀짝이며 대청을 가득 채운 식객을 살폈다.

주루에 있는 사람은 매우 다양했다. 각반을 차고 단의(短衣)를 입은 사내도 있고, 장삼에 관을 쓴 우아한 서생도 있고, 불룩 나온 배를 내민 반백의 부자도 있었다.

주루의 손님을 훑어보던 강환장의 시선이 탁자 두 개 사이를 두고 앉은 사람들에게 향했다.

강환장 대각선 맞은편에 쉰 남짓한 사내가 있었다. 뼈가 보일 듯이 앙상한 노인의 얼굴은 시커먼데 양손은 곱고 하얬다. 게다가 직금 비단 장삼을 입었는데, 화려하고 귀한 장삼을 걸친 것이 누가 봐도 어울리지 않는 곳에 걸쳐 놓은 모습이었다.

강환장이 그를 주시한 이유도 딱 봐도 훔친 듯한 옷이었기 때문이었다.

사내는 직금 비단 자락 아래 보이는 다리를 구부려 의자에 발을 올리고는 손엔 술잔을 들고 있었다. 술이 과한 모습으로 손을 흔들어대면서 게거품을 물고 옆에 있는 사람들과 큰 소리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잘 들어 봐. 날 보라고! 거짓말이 아니야, 다 사실이라고! 잘 들어, 이번 과거에서 거인 절반, 적어도 절반은 내 손을 거쳤다. 봤나? 이 손, 내 손! 내 손을 거쳤다고. 내가 그들을 밀어 올린 거라고! 고개는 왜 저어? 식견하고는. 잘 들어, 거짓말이 아니다. 됐다, 됐어. 일을 도모할 사람이 따로 있지, 이런 촌뜨기랑 무슨 이야기를 하겠나. 너희들이 뭘 알아!”

직금 비단은 턱을 치켜들고 ‘너희 같은 건 내 눈에 차지도 않아.’라는 표정을 지었다. 같은 탁자에 앉은 사람들은 상반신을 뒤로 젖히면서 침을 피하는 와중에도 손은 재빨리 움직여 먹고 마셨다. 그러면서 얻어먹는 값으로 가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강환장은 등을 곧게 펴고는 호위에게 명령했다.

“저 노인 보았나? 잡아 와라. 조용히.”

강환장은 분부한 다음 밥도 먹지 않고 일어서서 주루에서 나왔다. 마차에 타고 외진 곳으로 가서 기다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두 호위가 찡그린 얼굴로 두려운 듯 버둥거리는 직금 비단 노인을 끌고 왔다.

“이름이 무엇이냐? 어디 인사야? 무슨 일을 하며 먹고사느냐?”

강환장은 마차에 단정히 앉아서 노인을 노려보며 매섭게 물었다. 아무래도 그는 몇십 년 동안 관리의 위엄을 부린 사람이었고, 그런 강환장의 모습에 노인은 털썩 무릎을 꿇고 재빠르게 대답했다.

“아룁니다, 나리. 소인의 이름은 전복, 복양 사람, 태평부에서 점을 봐주며 먹고삽니다.”

“이번 과거 거인 절반이 네 손을 거쳤다고 했느냐? 네가 그들을 밀어 올렸다고? 어떻게 한 것이냐?”

강환장이 이어서 물었다.

“아?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런 적 없습니다!”

전복은 겁에 질린 얼굴로 양손을 미친 듯이 휘저으며 반사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잡아라!”

노인이 달아나려고 하자, 강환장이 매섭게 분부했다. 호위가 전복의 궁둥이를 걷어찼다.

“가만히 있어라!”

“예, 예. 가만히 있겠습니다. 소인 고분고분히 있겠습니다. 나리, 그런 적 없습니다. 정말 없습니다!”

“말하지 않겠다? 손가락을 잘라라!”

강환장이 눈을 가늘게 뜨고 싸늘하게 웃었다.

“나리, 살려주십시오. 말하겠습니다! 해요! 다 말하겠습니다!”

호위가 칼을 꺼낼 것도 없이, 전복은 이미 혼비백산해서 팔을 치켜들고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소인은 그저 점쟁이일 뿐입니다. 소인이 조금 수행한 바가 있어서, 추, 추시 전에 하늘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눈이 뜨여 시제를 본 것입니다. 소인은 어떻게 된 일인지도 모르고, 실로 너무 가난해서 시제를 팔아 돈을 벌었습니다. 나리, 소인을 믿어주셔야 합니다!”

전복은 쭈글쭈글해진 오이같이 얼굴을 구기며 외쳤다.

“뒤져라!”

강환장은 가슴을 부여잡은 전복의 양손을 빤히 바라보다가 호위에게 분부했다. 두 호위가 앞으로 나서서 재빠르고 날렵하게 전복의 직금 장삼을 깔끔하게 벗기고 그 자리에서 빙빙 돌려가며 뒤졌다. 가슴에 둘둘 두른 비단을 뜯어내자 비단 안에서 천 주머니가 떨어졌다. 천 주머니를 본 전복이 처참하게 고함치며 덥석 달려들었지만, 호위에게 걷어차여 바닥을 나뒹굴었다.

호위가 천 주머니를 바치자, 강환장은 독산에게 풀라고 눈짓했다. 천 주머니 안에 두꺼운 은표가 가득했다. 독산은 눈이 다 휘둥그레져서 재빨리 세어 보고는 침을 꿀꺽 삼키며 보고했다.

“세자야, 모두 11,300냥입니다!”

“이 은표들, 어디에서 난 것이냐? 시제를 팔아서 얻은 것이냐? 시제는 어디에서 난 것이냐? 고분고분 말하는 게 좋을 것이다. 괜히 육신의 고통을 받지 말고!”

강환장이 전복을 노려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천 주머니를 빼앗긴 전복은 뼈가 다 뽑힌 듯이 흐느적흐느적 바닥에 주저앉아 눈물 콧물을 흘렸다.

“나리, 이러는 법은 없습니다. 소인이 평생 점을 봐주고 모은 돈입니다. 나리, 정말 눈이 뜨인 거랍니다. 소인 어릴 때부터 도를 배우고 불법을 연구했습니다. 소인 정말로 눈이 뜨인 겁니다.”

곁에 있던 서반은 하마터면 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도를 배운 사람이 불법을 연구해? 쉽지 않은 일이지.

“손가락을 잘라라.”

강환장이 코웃음 치며 분부하자 전복이 눈물 콧물을 훔치며 외쳤다.

“나리, 살려주십시오. 말하겠습니다! 소인 다 말하겠습니다! 살려주십시오! 소인 탓이 아닙니다. 소인이 주웠습니다. 정말로 주웠습니다…….”

전복은 툭하면 손가락을 자른다는 강환장의 협박 속에 모든 것을 다 털어놓고 서명하고 지장을 찍었다.

전복의 진술에 따르면, 그는 좌 선생의 심복과 동향이었고, 상당히 친분이 깊다고 했다. 그래서 좌 전생이 이번에 돈 벌 기회를 그에게 주었고, 추시 시제도 좌 선생이 주었다고 했다.

시제를 팔아서 모은 돈을 좌 선생의 요구에 따라 모두 위에 바쳤다. 나중에 좌 선생이 수고비를 주었고, 만 냥 넘는 이 돈은 시제를 팔 때마다 몇백 냥에서 몇천 냥 웃돈을 붙여서 모은 것이다.

전복은 기억력이 지극히 좋아서, 어느 날, 어디서 누구에게 팔았는지, 얼마나 은자를 모아서 좌 선생에서 얼마 주고 얼마를 자기가 남겼는지, 명명백백하게 불었다.

강환장은 전복의 진술, 그리고 시제를 판 명세를 얻고 기분이 후련해졌다. 이번 생도 전생처럼 운수가 좋았다.

동민은 강남을 3, 4년 동안 휘어잡고 있었고, 추시 일로 사달이 났어도 조정에서 곧바로 그의 직책을 파면하지 않았다. 태평부 경내에서는 변함없이 동민의 수완은 통했다.

그는 강환장의 배가 강남서로 경계로 들어오자마자 보고 받았고, 강환장의 배가 태평부 외각 부두에 정박하고, 강환장이 평복으로 마차에 올라서 성으로 들어오는 것까지 똑똑히 알고 있었다. 강환장이 전복을 잡아들이고, 전복이 무슨 말을 했는지까지 심복들이 똑똑히 알아냈다.

동민은 심복을 통해 전복이 무슨 말을 했는지 듣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실이 아니다! 왜 이런 일이…….

동민은 갈수록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수국공부를 떠올렸다. 수국공부에서 전복, 저자를 준비한 걸까? 나를 보호하려고? 혹은 대왕야의 솜씨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강 흠차가 대왕야의 분부를 듣고 온 것일지도 모르지. 전복 저자도 강환장이 계획하고 잡아들인 건지 모르고.

동민은 생각할수록 그 생각이 맞다고 생각했고, 갈수록 들떴다. 그렇지. 대왕야가 나를 버릴 리가 있나. 대왕야를 위해 이 땅에서 가장 부유한 강남서로를 지켜왔거늘. 해마다 바친 재물은 둘째치고, 내가 이 자리에 있으면 강남서로가 대왕야의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대왕야가 나를 지켜내지 못하면 강남서로도 함께 잃어!

동민은 생각할수록 허리에 힘이 들어갔다. 대왕야가 나를 지키는 문제가 아니라, 강남서로를 지키느냐 마느냐의 문제다!

전복은 어쩐다. 음, 대왕야가 하나를 했으니 이제 내가 수습할 때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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