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196화 (196/463)

196화: 길을 막는 자 죽음뿐

“대낭자! 이러시면 안 돼요! 어제 저것이 낭자를 데리고 어딜 간 겁니까? 가씨 저 망할 여편네! 좋은 사람이 아닐 줄 알았습니다. 낭자를 데리고 누군가를 만난 거지요? 판답니까?

그럴 줄 알았습니다! 대낭자! 우리 갑시다! 남으로 돌아가요! 대낭자를 꼬드겨서 태태를 태평부에 버리게 하다니.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고요! 가련한 태태……. 태태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는데, 낭자를 팔려고 하다니! 하늘이 두렵지도 않으냐! 대낭자가…….”

곡 대낭자의 무한한 상상이 왕 어멈의 분노한 질타에 깨져버리고 말았다.

곡 대낭자가 벌떡 일어서더니 향로를 들어 올려 힘껏 왕 어멈을 향해 던졌다. 향로는 정확히 왕 어멈의 이마에 맞았고, 왕 어멈은 꽥 고함치며 비틀비틀 뒷걸음질 치다가 갑판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이마를 만져보니 손에 피가 잔뜩 묻었다.

“대낭자, 미쳤어요? 미쳤군요! 누군지도 모를 사내 때문에 어머니를 버리더니, 이제 체면도 버리는군요!”

왕 어멈이 목놓아 울면서 욕을 했다.

“입을 막아라, 어서! 얼른 뒤 칸으로 끌고 가”

가씨가 휘장을 열고 들어와서 옥연과 단청에게 분부했고 옥연과 단청은 힘을 모아 왕 어멈을 뒤쪽 선실로 끌고 갔다.

가씨가 곡 대낭자에게 다가가 설득했다.

“대낭자, 화내지 마세요. 왕 어멈이 노망났나 봅니다. 따질 것 없어요.

그런데 대낭자, 제가 한마디 하겠습니다. 왕 어멈의 저 입, 아이고, 대낭자, 잘 단속하셔야 합니다. 나중에 우리가 경성에 들어갔을 때, 저런 헛소리를 해 보세요. 대낭자가 어머니도 버렸다는 허튼소리를 누가 듣고 악용하면요, 심각하게 말하면 이건 불효입니다. 귀한 가문에서는 효도를 가장 중시합니다. 대낭자, 잘 이야기하셔야 해요.”

“걱정하지 말아.”

곡 대낭자는 입술을 깨문 채 한참만에 잇새로 말을 내뱉었다.

새벽, 온 배의 사람이 단잠이 든 가운데, 곡 대낭자가 살금살금 일어나서 까치발을 들고 뒤쪽 선실로 향했다. 곡 대낭자의 침상 앞에서 자고 있던 가씨는 일어나려는 옥연에게 그냥 자라고 눈짓하고 자기는 살금살금 숨죽이고 일어서서 곡 대낭자의 뒤를 따라갔다.

곡 대낭자는 뒤쪽 선실 문 옆에 몸을 숨기고 살며시 고개를 내밀고 선실 안을 살폈다.

선실 안으로 들어간 곡 대낭자는 단잠에 빠져서 드렁드렁 코를 고는 왕 어멈을 한참 바라보다가 돌연 뒤돌아서 살피더니 뒤로 두 걸음 물러서서 걸음을 멈췄다. 그러더니 돌연 앞으로 후다닥 달려가서 덥석 이불을 잡아당겨 왕 어멈의 얼굴을 죽어라 눌렀다.

대번 놀라서 잠에서 깬 왕 어멈이 쉴 새 없이 버둥거렸다. 곡 대낭자의 두 손은 바위처럼 죽어라 이불로 왕 어멈의 얼굴을 눌렀다.

가씨는 입을 살짝 벌린 채 겁에 질린 얼굴로 왕 어멈을 바라봤다. 왕 어멈은 처음엔 격렬하게 버둥거리더니 뒤이어 파들파들 경련을 일으켰다. 또 몇 번 경련하더니 마지막엔 온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왕 어멈의 온몸이 뻣뻣하게 굳은 지 일각 정도 되었을까, 곡 대낭자는 그제야 양손을 살짝 거두고 이불 아래 왕 어멈을 빤히 바라봤다. 그렇게 한참 있다가, 이불 아래 왕 어멈이 꿈쩍도 하지 않는 걸 보고서야 길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비틀거리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난 그녀는 다시 비틀거리고는 돌아서서 비틀비틀 선실에서 나왔다.

가씨는 곡 대낭자가 손을 풀 때 허둥지둥 앞쪽 선실로 돌아가서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눈빛으로 무슨 일인지 묻는 옥연에게 얼른 자라고 눈짓하고 자기도 두 눈을 꼭 감았다.

곡 대낭자, 예상을 초월할 정도로 악랄하고 독하구나!

경성 정북후부, 영원은 의자에 삐딱하게 앉아 있고 짐꾼 차림의 사내가 공손하게 그 앞에 서서 보고 중이었다.

“입방정 하나 때문에, 곡 대낭자가 직접 왕 어멈의 숨통을 끊어놓았습니다. 죽은 사람은 후대해야 한다는 나리의 명에 따라 조대가 좋은 관을 사고 따로 배를 빌려서 왕 어멈을 청양진으로 데리고 가서 잘 묻어주었습니다. 또 태평부로 사람을 보내 문 이야께 이 일을 보고했습니다. 조대가 이 일이 큰일인지 아닌지 본인이 결정 내릴 수 없다고, 나리께 보고하라고 소인을 보냈습니다.”

“음. 잘했다. 시녀는 어떻게 됐지?”

“아룁니다, 나리. 소쇄라는 그 시녀는 왕 어멈과 같은 곳에서 자고 있었습니다. 가 어멈이 그 계집애가 다 봤을 거라고 해서, 조대가 우리 북부로 팔아버렸습니다.”

영원은 매우 흡족한 얼굴로 다리를 흔들었다.

“음, 배가 경성으로 들어오려면 며칠 걸리느냐?”

“매우 서둘러 오고 있어서, 열흘이면 진하 부두에 들어올 겁니다.”

영원의 흡족해 보이는 모습에, 사내는 긴장을 풀고 은근히 미소 지었다.

“너는 얼른 돌아가서 조대와 가씨에게 곡 대낭자를 잘 시중들라고 전해라.”

“예, 소인 바로 돌아가겠습니다.”

사내는 얼른 대답하고는 곧 웃으며 말했다.

“이 낭자가 참……. 가 어멈이 너무 놀랐다고 합니다.”

“놀라?”

영원이 코웃음 쳤다.

“가씨의 모든 손가락에 사람 목숨이 걸려 있는데, 이런 사소한 일로 놀라? 약한 척하기는!”

“예. 소인 이만 물러갑니다.”

사내는 머쓱해져서 서둘러 공손하게 물러났다.

영원은 사내가 나가는 걸 바라보며 유유자적 다리를 흔들었다. 곡 대낭자가 악랄하고 독하다니, 정말 잘 되었군!

“봉낭!”

잠시 후, 영원이 소리 높여 고함치자, 위봉낭이 안으로 들어왔다.

“아라는?”

“사왕야에게 두 번 불려갔습니다. 뿌듯해하는 걸 보니 사왕야의 환심을 산 모양입니다.”

“그 계집애가 어리석기 짝이 없긴 해도 밉진 않다. 꽤 귀여운 구석이 있지. 운도 좋고. 항상 때를 잘 맞추지 않느냐. 내일 가서 힐수방에 가서 옷을 지으라고 전해라. 원하는 만큼 지어도 된다고 해라. 너도 힐수방에 가서 경성 명문가 규수들이 입는 최신 양식으로, 치마, 웃옷, 뭐든 두어 벌 맞춰 와라. 서둘러야 한다. 열흘 안에 모두 마무리해야 한다. 그리고…… 네가 알아서 은루를 골라서 머리 장식도 두어 벌 만들어라. 이것도 열흘 안에 다 준비해야 한다.”

“예.”

위봉낭은 쓸데없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영원이 손을 젓자 그녀는 공손하게 물러나서 곧바로 연향루에 말을 전하고 힐수방으로 갔다.

강남 태평부. 해가 막 졌을 때, 번루 탕가의 경성 결정권자 탕 칠야와 축가 경성 일파 가주 축 대야가 비단 점포 뒷문 입구에서 힘겹게 말에서 내렸다. 두 종복이 서둘러 다가가 그들을 부축하고 비단 점포 안으로 들어갔다.

후문 안, 태평부 일파 축가 족장 축 노태야가 축청정 등 이번 과거에 거인이 된 축씨 자제를 거느리고 급한 걸음으로 마중 나와서 두 사람을 향해 공수했다.

“두 분, 이렇게 일찍 도착하느라 고생했네. 오는 내내 고생했어.”

“일단 목욕하고 약부터 바르고 이야기합시다.”

축가 대야는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 탕 칠야와 상의하는 건지, 아니면 축 노태야를 향해 명령하는 건지 모를 그 말에 축 노태야는 난처하고 겸연쩍은 표정으로 얼른 한쪽으로 비키며 쉴 새 없이 공수하며 웃음 띠었다. 축청정의 안색은 매우 안 좋았다.

탕 칠야와 축 대야는 금세 목욕하고 약을 바르고 두 사람 모두 훨씬 상쾌해 보이는 모습으로 나왔다. 탕 칠야는 그래도 은근히 예를 차린 모습이었는데, 축 대야는 축 노태야가 허리를 반쯤 숙이고 공수해도 솥 바닥처럼 시커먼 얼굴로 대충 손을 들어 보일 뿐이었다. 그는 공수하는 건지 예를 갖출 것 없다고 손을 젓는 건지 모를 동작을 하고는 축 노태야를 지나쳐서 곧장 상석에 앉았다.

탕 칠야도 양보할 것 없이 그냥 왼쪽 첫 번째 의자에 앉았다. 축 노태야의 허리가 더 굽어져서는, 힘껏 목을 가다듬고는 축 대야의 아래쪽에 앉아 눈을 내리깔고 두 사람이 이야기하길 기다렸다.

“대체 무슨 일이냐? 네가 한 일이냐?”

축 대야는 아무도 자리에 앉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일렬로 선 신진 거인을 훑어보다가 마지막에 축청정을 바라봤다.

“예, 접니다.”

축청정이 앞으로 한 발짝 나왔다.

“이렇게 된 일입니다…….”

축청정은 이숙이 어떻게 자기를 찾아왔는지, 또 무슨 말을 했는지, 뭐라고 하며 은자를 주었는지, 자기는 어떤 일을 했는지를 단숨에 다 털어놓았다.

말주변이 좋은 축청정은 이번 일을 명확하고 빠르게 이야기했고, 사람들은 그야말로 이야기꾼의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었다. 축청정이 거의 단숨에 이야기를 끝낸 후, 축 대야와 탕 칠야가 뭐라고 하기 전에 축청정 옆에 서 있던 축 구야가 먼저 외쳤다.

“이런 일을 어째서 한마디도 우리에게 이야기하지 않은 것이냐? 그 만 냥은…….”

“입 다물어라!”

축 노태야가 축 구야의 고함을 매섭게 무질렀다.

“정말이지 하늘에서 떨어진 떡이었겠군.”

축 대야는 비아냥거리는 표정이었다.

“경성 축가와 산서 축가가 그 당시 어떻게 태평부에서 떠났는지, 생각도 하지 않은 것이냐? 어르신이 아직 살아 계신다. 그런데 이런 터무니 없는 생각을 해? 함정일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어?”

축 대야의 지나치게 각박한 말에 축 노태야의 얼굴이 살짝 퍼레졌다. 그 당시 일에 대해 그도 잘 알지만, 아무리 그래도 같은 가문에서 나온 같은 피가 흐르는 축가 사람인데, 어쩌면 저렇게 원수 이야기하듯 하나.

축청정은 벌게졌던 얼굴이 시퍼레졌다가 다시 시뻘게졌다가, 수치스럽고 화가 나서 어쩌면 좋을지 몰랐다.

“다 너, 너희들의 탐욕과 어리석음 때문에 탕가, 고가, 고 사사가 하마터면 큰 골탕을 먹을 뻔했다!”

축 대야는 갈수록 화가 나서 탁자를 내리쳤다. 일렬로 선 신진 거인 너덧 명을 바라보고 있으니 파리를 몇백 근 집어삼킨 듯이 속이 거북했다.

“잘 들어라. 이번 일은 여기까지다! 진사가 될 거라는 망상은 여기서 접어라! 너희들, 태평부에서 반 발짝도 나올 생각을 하지 말아라! 거인이 된 것만으로 큰 이득을 본 것이다! 여기까지다!”

축 대야는 길게 말하기도 싫어서 단도직입적으로 명을 내렸다. 축 노태야는 창백해진 얼굴로 입을 꾹 다물고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축청정이 획 고개를 들더니 축 대야를 빤히 노려봤다.

“당신이 뭐라고요.”

“뭐라고?”

축 대야는 축청정이 이렇게 대들 것이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당신이 뭐냐고 물었습니다! 우리 태평부 축가가 경성과 산서 축가의 덕을 본 게 아니라면서요? 그럼 우리가 거인이 된 건 우리 능력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멈추라니, 태평부 반 발짝도 나가지 말라니, 당신이 뭔데요?”

축청정은 축 대야를 노려보며 서슬 퍼렇게 따졌다.

“너희의 능력? 쯧!”

축 대야가 벌떡 일어서더니 축청정을 향해 혀를 찼다.

“무슨 염치로 그런 말을 하는 게냐! 함정에 빠져서 축가, 탕가, 고가를 위험에 빠뜨려놓고 무슨 염치로 그런 말을 하는 것이냐!”

그 말에 축청정이 힘껏 얼굴을 쓸어내렸다.

“염치없을 게 무엇입니까? 내가 왜 염치없습니까? 경성 축가, 산서 축가가 우리 태평부 축가를 가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내가 함정에 빠졌든 말든,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경성 축가, 산서 축가, 탕가, 고가가 또 무슨 상관입니까? 가족이라고 여기지도 않으면서 무슨 자격으로 우리가 진사가 되는 걸 막는 겁니까?”

축청정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너무 화가 나서 한마디, 한마디 검날처럼 매섭게 외쳤다.

축 대야가 벌떡 일어섰다. 고개를 돌리고 쳐다보지 않는 축 노태야를 잠시 바라보다가, 이곳저곳 다른 곳을 보면서 곧 죽어도 자기는 절대로 쳐다보지 않는 축가 신진 거인들을 하나씩 노려봤다. 기가 차서 웃음이 나왔다.

“좋다. 그래, 좋아! 이게 태평부 축가의 뜻이라는 것이지? 좋다, 좋아! 그럼 알아서 해라. 해 보아라! 태평부 일파가 멸문당하는 것이 두렵지 않으면 해 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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