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195화 (195/463)

195화: 곡 대낭자가 운이 좋다.

“낭자, 괜찮아요. 무서워할 거 없어요. 큰 돛에 밧줄이 끊어졌대요. 금방 괜찮아질 거예요. 어머나, 너희 둘, 얼른 대낭자 잡아주지 않고 뭐 하니?”

가씨가 머리를 내밀고 설명을 다 하기도 전에 배가 또 기우뚱하더니 곡 대낭자가 다시 저쪽으로 굴러갔다.

그러나 그렇게 흔들리고는 이내 배의 흔들림이 멎었다. 옥연과 단청은 하나는 이마가 붓고, 하나는 산발이 된 채 얼른 일어나 곡 대낭자를 부축했다.

왕 어멈이 제일 안달이 나기도 하고 제일 심하게 부딪혀서 이마가 깨지고 손도 까진 상태로 기어가서 곡 대낭자부터 살폈다. 그녀는 자기네 낭자가 다친 곳 하나 없는 걸 보고 그제야 안도하며 바닥에 앉아서 수건으로 상처를 둘둘 말면서 잔소리해댔다.

“멀쩡히 돛이 왜 부러져. 돛이 부러지는 건 좋은 징조가 아니에요. 제가 그랬잖아요. 경성으로 가는 게 아니었다고요. 보세요. 그런 좋은 일이 어디 있겠어요? 은자에, 사람에, 몇십 년 살면서 이런 횡재가 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네요. 대낭자, 굳이 경성에 가겠다더니, 보세요, 돛이 다 부러지고…….”

“난 괜찮으니까, 자넨 뒤 칸으로 가!”

곡 대낭자는 싫어죽겠다는 듯 왕 어멈을 흘겨보며 악을 썼다.

“다 대낭자를 위해서예요! 대낭자가 태어나자마자 제가 시중들었어요. 저는 대낭자가 크는 걸 본 사람이에요. 다 대낭자를 위해서예요.”

눈물을 훔치는 왕 어멈은 머리도 아프고 손도 아팠다. 정말로 낭자가 걱정이었다. 저 가씨, 아무리 봐도 좋은 사람 같지 않아. 그리고 밖에 있는 호위들도, 뱃사람들도 수상하기만 하고. 또 이 시녀 둘이 매일 대낭자에게 하는 말들, 그게 자기네들 같은 집안에서 상상이라도 생각할 수 있는 일들인가.

좋은 사람이 하나도 없는데!

“뒤로 끌고 가!”

곡 대낭자는 더욱 신물이 났다.

가씨가 다가가 왕 어멈을 달래며 밀었다.

“어멈, 다쳤으니 얼른 뒤로 가서 씻고 상처 좀 감싸요. 이것 좀 봐요, 이런 모습으로 대낭자 앞에 있다니 체통을 지켜야지요. 어멈도 서생 가문 출신인데, 이런 법도도 모릅니까?”

가씨가 왕 어멈을 끌고 가자, 곡 대낭자는 안도했다. 다치진 않고 넘어진 곳이 조금 아플 뿐이었다. 머리카락도 흐트러졌고.

옥연과 단청은 그녀가 분부하기 전에 거울과 화장함을 꺼내와서 다시 얼굴을 닦고 머리를 빗겨 주었다.

“대낭자, 마침맞게 저 앞이 바로 유양 부두랍니다. 큰 돛이 부러진 때, 위치, 정말 대낭자의 복이라고 할 수밖에요. 이도 저도 아닌 자리에서 부러졌다면 밧줄을 어디에서 사서 바꾸겠어요? 큰 문제가 될 뻔했어요. 대낭자의 운수가 정말로 너무나 좋은 거라고요!”

왕 어멈을 끌고 간 가씨가 웃으며 들어와 보고했다.

곡 대낭자가 눈살을 찌푸렸다.

“멀쩡히 밧줄이 왜 갑자기 끊어진 거지? 뱃사람들, 어쩜 그렇게 거칠고 소홀해? 얼른 바꾸라고 하게. 아직 갈 길이 멀어. 그리고 이런 일이 생겨서 일정이 지체됐어. 나는 다치기까지 했고. 뱃삯을 깎아야 해. 자네가 가서 이야기하게!”

“예! 마땅히 그래야지요.”

가씨가 시원스럽게 대답하고는 그 김에 대낭자를 칭찬했다.

“대낭자처럼 해야 진정한 가주인 겁니다. 명문가는 이런 격식을 따져요. 하나는 하나, 둘은 둘. 공로가 있으면 상을 주고, 잘못이 있으면 반드시 벌을 주지요. 걱정하지 마세요, 바로 우두머리를 만나서 제대로 훈계하겠습니다.”

“그래.”

곡 대낭자는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가 어멈과 두 시녀와 함께 있으면서 배운 게 참 많았다.

가씨는 금세 돌아왔다.

“낭자, 큰 돛의 밧줄을 바꾸는 게 쉽지 않답니다. 반나절은 걸린답니다. 우두머리에게 이미 이야기해 뒀어요. 오늘 안엔 무슨 일이 있어도 바꾸고, 내일 날이 밝자마자 즉시 출발해야 한다고요. 뱃삯 문제도 닷 냥 뺄 거라고 우두머리에게 이야기했어요.”

곡 대낭자는 얼굴을 구긴 채 한참 후에야 마지못해서 알겠다고 대답했다. 어서 경성으로 가서 그 좋은 혼사를 성사하고 싶은 마음에 여간 초조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큰 돛의 밧줄이 끊어졌다니. 그래도 부두 근처라 다행이긴 한데. 아니었다면 얼마나 더 지체됐을지 모르고.

가 어멈의 말이 맞아. 내 운수가 좋아서야.

곡 대낭자의 생활은 매우 규칙적이었다. 점심 먹고 차 두어 잔 마시고 경치 구경하면서 반 시진 동안 소화하고 낮잠을 잤다. 한 시진 정도 자고 일어나서 조금 걸어 다니다가 밀전, 건과, 신선한 과일에 차 몇 잔 마시고, 글자를 쓰다 보면 슬슬 저녁 시간이 된다.

곡 대낭자는 차를 마시고 옥연이 종이를 깔고 먹을 갈려고 하는데 가씨가 휘장을 젖히고 들어왔다.

“대낭자, 제가 잠깐 내려갔다 왔는데, 이 유양 부두, 꽤 큰 부두더라고요. 떠들썩해요. 민물 요리를 잘하는 주루가 있대요. 그리고 연지분 점포도 있는데 경성에서 아주 유명한 점포래요. 경성의 명문가 낭자나 부인은 다 그 점포에서 연지와 분을 사거든요. 대낭자, 배에 갇혀 있느라고 답답할 텐데, 내려서 좀 걷고 민물 요리 좀 먹은 다음에 연지를 사 오면 어떨까요?”

곡 대낭자는 다 듣기도 전에 벌써 눈빛을 빛내며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 옥연, 단청에게 거울을 내오라고 해서 앞뒤로 꼼꼼하게 살피고는 다시 머리를 빗고, 옷도 갈아입었다. 단청이 얇은 면 두봉을 걸쳐주고, 가씨가 초사 멱리를 꺼내와 까치발을 하고 곡 대낭자에게 씌워주었다.

가씨가 곡 대낭자에게 멱리를 씌워주며 연신 칭찬해댔다.

“대낭자, 이 분위기 보세요. 아이고, 정말로 귀티 하며 우아함 하며. 경성 명문가 낭자며 소내내며 태태, 부인, 많이 만나봤어도 대낭자처럼 귀티 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대낭자는 천생 귀인이네요!”

비슷한 칭찬을 몇 번이나 들었지만, 곡 대낭자는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고 부족했다.

곡 대낭자는 옥연과 단청, 가씨, 왕 어멈, 그리고 종복 차림을 한 호위 둘을 데리고 일렬로 선 뱃사람들의 공손한 배웅을 받으며 배에서 내렸다. 자긍심 넘치고 당당한 모습으로 계단을 밟고 올라가 부두에 올라서서는 살짝 턱을 치켜들었다. 매우 작지만, 청양진보다 훨씬 떠들썩한 유양 부두의 거리를 눈이 아른거릴 때까지 구경했다.

연지와 분을 산 다음, 가씨는 곡 대낭자를 이끌고 유양 부두에서 가장 좋고 가장 호화로운 주루도 들어갔다. 독채를 골라서 주루의 대표 요리를 몇 가지 시키고 대낭자가 막 먹기 시작하는데, 종복이 독채 입구에서 가씨를 향해 손짓했다. 가씨가 다가가자, 종복이 귓가에 뭐라고 속닥였다. 가씨의 놀란 두 눈썹이 머리카락 안으로 사라질 만큼 높이 치켜 올라갔다.

“아이고, 대낭자, 운수 좀 보라지! 정말이지, 좋아도 이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아까 경성에서 온 흠차의 배도 유양 부두에 정박했는데 그 흠차도 이 주루에 식사하러 오셨대요. 대낭자, 흠차가 누군지 맞춰보세요. 아이고, 대낭자는 짐작도 못 하실 거예요. 우리 고야랍니다. 어머나, 어머나, 대낭자, 운수가 참!”

곡 대낭자는 흥분해서 벌떡 일어섰다가 다시 서둘러 자리에 앉았다.

너무 흥분하면 안 돼! 너무 흥분하는 건 나 같은 명문가 규수 신분에 어울리지 않아!

“흠차가 되었다고? 천사(天使: 황제가 파견한 사신)? 정말로 흠차야?”

곡 대낭자는 자리에 앉긴 했는데 목소리가 떨리는 건 막을 수가 없었다. 이건 제가 제어할 수 없는 문제였다. 물론, 이런 세세한 부분은 전혀 유의하지 못했다. 그녀는 지금 너무나, 너무나 들떴다.

미래의 지아비가 이 젊은 나이에 흠차가 되었다. 흠차! 이야기책 속에서 흠차 이야기를 몇 번이나 봤는지 모른다. 어느 이야기 속에도 가장 뛰어난 사람은 흠차였다. 나의 지아비, 젊은 나이에 벌써 조정 중신이구나!

곡 대낭자는 머리가 다 어질어질했다.

“대낭자, 가서 보지 않으시렵니까?”

“응!”

가씨가 웃는 얼굴로 나직이 제안하자, 곡 대낭자가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봐야지! 내 지아비인데. 매일매일 꿈까지 꾸는 지아비인데. 이런 세상없는 기연으로 우연히 만났는데, 당연히 봐야지!

“대낭자, 어딜 간다는 말씀이세요. 이런 공개적인 곳에서. 가 어멈! 또 대낭자를 꼬드겨서 무슨 창피한 짓을 하려고! 이 나쁜 년! 네가 또…….”

왕 어멈은 곁으로 다가가긴 했는데 가씨와 자기네 낭자가 뭐라고 귓속말하는지는 듣지 못했다. 가씨가 사악하게 웃으면서 자기네 낭자를 꼬드겨서 밖으로 나가려는 걸 보고 조급해진 왕 어멈은 덥석 달려들어서 대낭자를 막고는 가씨에게 욕을 퍼부었다.

곡 대낭자가 왕 어멈의 얼굴을 내리쳤다.

“입을 막고, 사람을 불러서 배로 끌고 가. 창피해 죽겠네!”

곡 대낭자에게 맞은 왕 어멈은 멍해졌다. 종복이 들어와서 제 입을 틀어막고 양손을 묶고 뒷문으로 끌어당기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화도 나고 다급한 마음으로 얼굴이 퍼렇게 떠서 미친 듯이 버둥거렸다. 왕 어멈이 버둥거리며 곡 대낭자가 있는 쪽으로 가려고 하자, 종복은 아예 시원스럽게 그녀를 기절시키고 뒷문으로 들고 나가 마차에 던져넣고 배로 끌고 갔다.

가씨는 곡 대낭자에게 멱리를 잘 씌워주고 독채에서 데리고 나갔다. 모퉁이를 돌아 병풍 뒤에 멈추더니, 병풍 너머를 보라고 눈짓했다.

“대낭자, 보세요. 중간에 앉은, 월백색 장포를 입은 저분이 바로 우리 고야랍니다.”

보름 정도 앓고 완쾌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강환장은 경성에 있을 때보다 조금 더 마르고 창백했다. 단정하게 탁자에 앉아 천천히 탕을 마시는 그의 움직임은 준수하고 우아하고 훤칠한 가운데 은연중에 음울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이 오히려 눈길을 사로잡았다.

곡 대낭자는 입을 살짝 벌리고 멍하니 강환장을 바라봤다. 두둥실 구름 위로 날아오른 기분이었다.

이 사람이 내 지아비다. 이런 분이…….

그녀는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지 몰랐다. 형용할 말이 없었다. 그는 그녀가 본 중에 가장 잘생기고, 가장 귀티 넘치고, 가장 우아한…… 뭐든 최고인 사내였다. 이 사람이 그녀의 지아비, 아버지가 고르고 골라준 지아비였다.

곡 대낭자는 자기가 어떻게 배로 돌아왔는지, 어떻게 자리에 누운 건지 알지 못했다. 깊은 밤, 온 배에 코 고는 숨결이 들리는 가운데, 곡 대낭자는 돌연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그녀가 항상 불평했던, 심지어 욕도 무수히 했었던 아버지가 알고 보니 이렇게나 그녀를 아꼈다니.

곡 대낭자는 밤새 잠이 든 듯 만 듯 가물가물 눈을 감았다가 해가 밝기도 전에 가씨가 밖에서 서두르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출발을 재촉하는 목소리는 달콤하기 짝이 없고 또 서글프기 짝이 없었다. 하루빨리 경성에 도착하면 하루빨리 지아비와 혼인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출발하면 지아비와 멀어져야 한다.

그녀는 북으로, 그는 남으로.

그대는 장강 초입으로, 나는 장강 끝으로…….

(※나는 장강 상류에 살고

그대는 장강 하류에 산다네.

날마다 그대 생각하나 만나질 못해

같이 장강의 물만 마실 뿐이라네.

아주장강두我住長江頭

군주장강미君住長江尾

일일사군부견군日日思君不見君

공음장강수共飮長江水

-이지의李之仪, 복산자卜算子)

곡 대낭자는 몸을 뒤척이면서 물살 소리를 들었다.

이 강물이 그녀를 싣고, 또 그를 싣고 가는구나!

아, 나의 신선 같은 지아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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