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192화 (192/463)

192화: 자연적인 것과 자연이 아닌 것

대황자가 목을 빳빳하게 세웠다. 이제 무슨 말도 들리지 않았다.

“그때 이 어미가 얼마나 힘들었을 때였는지, 설마 몰라? 태의원에서 최선을 다했다면…….”

“태의원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을 일이 무엇입니까? 내가 낫지 않았다면 부황이 태의원을 도륙했을 것이라고, 모비가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오늘은 이렇게 이야기하고, 내일은 저렇게 이야기하고, 어느 것이 진실입니까? 어느 것이 거짓입니까?”

대황자가 목을 빳빳이 세우고 또 말대답하자, 주 귀비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너! 감히 나도 들이받는구나! 감히 내게 말대답해? 난리 났구나! 어떻게 감히 말대답을! 외조모를 찾아가서 그런 말을 한 것도 모자라, 외조모의 물건을 부순 것이 네 효도냐? 내가 틀린 말을 했느냐? 감히 말대답해? 나는 네 어미다! 어미에게도 말대답하다니, 네 아버지도 안중에 두지 않는다는 것 아니고 무엇이냐! 클수록 어린애가 되는구나! 사가아보다 철이 없어! 네가 사가아 반만큼 철이 들었어도…….”

“모비 눈엔, 마음엔 사가아밖에 없지요! 사가아가 철이 들어요? 눈이 삐셨습니까? 말끝마다 제가 형님답지 않다고 하시는데, 그럼 넷째는요? 편애하고, 오냐오냐하고, 그놈이 아우답게 구는지, 한번 물어보시지요? 어째서 묻지 않으십니까? 형님은 아버지와 마찬가지라는데, 넷째가 저를 형으로 보는 줄 아십니까? 아우다운 모습은 눈곱만큼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건 왜 말씀하지 않으십니까? 왜 그놈은 나무라지 않으십니까? 모비 눈엔 무조건 제가 잘못한 것이지요?”

대황자는 벌떡 일어나서 분노한 눈으로 주 귀비를 바라보며 고함쳐댔다. 주 귀비는 눈이 휘둥그레지고 입이 벌어져서 그를 바라봤다. 주 귀비의 심복 시녀가 눈을 질끈 감고 나서서 대황자를 말렸다.

“대왕야, 이렇게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효도는 이런 게 아닙니다. 효도는 부모를 거역하지…….”

“꺼져라!”

대황자가 버럭 고함치자, 시녀는 겁에 질려서 몇 걸음이나 뒷걸음질 쳤다.

“너, 너, 너, 너! 난리 났구나.”

주 귀비는 얼굴이 누렇게 떠서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대황자를 가리키다가 한참만에 겨우 말을 내뱉었다. 대황자는 주 귀비를 향해 고개를 치켜들었다.

“모비 마음이 얼마나 기울었는지, 본인은 아십니까? 예, 난리 부릴 겁니다. 이게 다 모비 탓입니다! 모비가 핍박한 탓이라고요! 모비 눈에 사가아밖에 없는데, 아예 부황께 말씀드려서, 독주와 흰 천을 내려주십시오! 내가 죽으면 모비도 마음 편하지 않겠습니까? 마음에 쏙 드는 사가아가 있는데 얼마나 좋습니까!”

말을 마친 대황자는 거의 기절할 것 같은 주 귀비를 쳐다보지도 않고 돌아서서 대전 밖으로 나갔다. 화를 내고 무턱대고 나가다가, 회랑에 매달린 금강앵무와 부딪쳤다. 금강앵무는 주 귀비가 가장 아끼는 것으로, 성격이 대황자와 비슷했다. 마침 대 위에 앉아서 털을 가다듬다가 대황자와 부딪치자, 금강앵무가 날카롭게 고함치며 대황자의 머리를 쪼아댔다. 날카롭게 고함치며 정수리를 만지던 대황자는 손에 가득 묻은 피를 보고는 눈이 다 시뻘게져서 금강앵무를 덥석 잡아서 그대로 계단 위로 힘껏 내던졌다.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금강앵무가 처참하게 울부짖었고, 대황자는 성큼 다가가 이 시건방진 앵무새가 피떡이 되도록 짓밟았다.

온 장녕궁이 쥐 죽은 듯이 조용했지만 대전 안은 한바탕 난리가 났다. 가슴을 두드리고, 약을 먹인 끝에 주 귀비가 드디어 숨을 몰아쉬었다. 앵무새 일을 궁인이 보고하기 전에, 주 귀비는 이미 소리를 듣고 침상에 엎드린 채 한참 숨을 가다듬다가 겨우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당직하는 궁인을 모두 소환해서 매서운 목소리로 분명히 선포했다.

“오늘 일, 다 가슴에 묻어라. 감히 반 글자라도 퍼트리는 자는 일가를 다 멸문할 것이다!”

커다란 흠차 깃발이 높이 나부끼는 배 위, 강환장은 누렇게 뜬 얼굴에 초췌한 모습으로 면 두봉을 걸치고 선실에 앉아 있었다. 조금 멍한 얼굴로 강가의 소슬하게 물들어가는 가을빛을 바라보던 그는 짙은 숯 냄새에 몸을 조금 움직였다. 화로와 멀어지니 또 추위가 느껴졌다.

강환장은 희미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진하 부두에서 배에 오르자마자 쓰러졌다. 내내 길을 달려야 해서, 제때 의원을 불러 치료받을 수가 없었고 작은 병으로 몸져누운 것이 열흘 동안 일어나지 못한 큰 병이 되었다. 다행히 불조의 보우하에 드디어 몸이 나았다.

강환장은 두봉을 여미면서 과거와 현재를 배회하며 생각에 잠겼다.

전생에 이신에게 등 뒤에 칼을 맞은 후, 북부 군중에 좌천되었을 때도 병에 걸린 채 길을 떠났다. 지금, 인생에서 가장 저조했던 그때로 다시 돌아간 기분이었다.

얼마나 괴로웠는지, 똑똑히 기억했다. 그러나 그때 고통은 지금처럼 매일매일 힘겹고, 몸이 아프고, 의식주가 조악해서가 아니었다. 그때 고통은 손에 닿을 듯했던 승상 자리가 순식간에 사라진 괴로움 때문이었다.

북으로 가는 마차는 밖에서 보기엔 허름해도 안은 호화로웠다. 두툼한 면 이불과 요, 숯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 황동 화로에 마차 안은 봄처럼 따듯했고, 탕, 차와 식사는 저택에 있을 때와 한치 다름없었다. 항상 의원이 곁에서 대기하며 수시로 진맥했다.

그때 그가 떠났을 때 이씨는 몸져누워있었다. 그럼 고씨가 준비한 것일까?

강환장은 창틀에 머리를 기댄 채 한숨을 내쉬었다. 고씨가 아니다. 그가 떠날 때 고씨는 죽겠다고 울어대며 그의 옷자락을 붙들고 아무리 달래도 놓으려 하지 않았다. 그가 떠나면 자기와 아이는 죽는다고, 돌아오지 못하면 어쩌냐고. 새벽에 고씨가 쓰러졌고, 저택 사람은 불을 환하게 밝히고 절반은 그의 출발 준비를, 나머지 반은 중병 든 고씨를 보살폈다.

고씨가 아니다. 고씨는 제 앞가림도 하지 못했다.

그럼 이씨인가?

강환장은 열심히 기억을 더듬었다. 떠나기 전에 이씨를 찾아가 인사했던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때 그는 그녀를 원망하는 마음이 극에 달했다. 그를 승상 자리에서 끌어낸 것이 바로 그녀의 친족 오라비니까. 그자는 그녀와 그녀 어미에게 입은 큰 은혜를 보답할 길이 없어서…….

강환장은 살짝 몸을 떨었다.

보답할 길이 없던 게 아니라 보답했지. 그래서 자신이 북부로 좌천당해 고난의 시간을 겪은 것이고.

그때 문 이야가 뭐라고 했더라?

기억이 조금 흐릿했다.

눈과 마음이 멀었다고 했던가? 살길을 스스로 차단했다고 했던가?

그랬다. 또 이씨가 이번 병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감으면, 북부에 뼈를 묻을 준비를 하라는 말도 했었다. 온 강가도 뿔뿔이 흩어져 몰락할 준비도 하라고 했었다.

그때 내가 뭐라고 했더라?

강환장은 옛일을 열심히 더듬었다. 뭐라고 했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 일들을 거의 다 잊었다. 그가 가장 또렷하게 기억하는 건, 장자 일이었다. 얼마나 출중한 아들이었나. 그리고 고씨도. 고씨의 풍채, 고씨의 우아함…….

강환장은 갈수록 뒤로 멀어지는 가을빛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가 돌아온 지 반년쯤 되어간다. 이씨가 혼인해서 저택으로 들어온 지 반년, 과거 이때쯤엔 강가가 한창 활기를 띠며 과거의 번성을 되찾던 때였다.

고씨가 들어왔을 때, 수녕백부는 이미 환골탈태하여 새로워졌었다.

정말로 그녀가, 나와 강가의 운을 바꾼 것일까?

이번에 돌아가면 성밖에 가봐야겠구나.

능운루의 축하연에서, 대황자가 말을 몰고 사환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채찍을 휘둘러 다른 사환의 가죽을 벗긴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경성에서 눈치 빠른 사람은 훤히 알고 있었다. 사황자가 2층에서 고함친 의미가 무엇인지도 더더욱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그 축하연 이후, 원래 예정되었던 축하연이 소리 소문도 없이 취소됐다. 최대한 조용히 보내는 것이 좋은 때였다. 이 두 왕야 중 누구도 거스르고 싶지 않았다. 나아가 자신과 일족이 목숨을 잃고 다리가 부러질 화를 초래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염과 이신은 원래 계소영을 제대로 축하해줄 생각이었는데 이런 사달이 났다. 경성에서 축하하기엔 적당하지 않자, 이신은 생각한 끝에 자등 산장에서 하자고 제안했다. 문회를 연다고 하고, 평소에 마음 맞는 사람을 불러서 하루 떠들썩하게 보내면 계소영을 축하해 줄 수 있지 않겠냐고.

여염은 손뼉 치며 찬성했다. 자등 산장 주변은 경치도 지극히 좋고 경성과 그리 멀지도 가깝지도 않았다. 축하연을 열든 문회를 열든, 아무도 주목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자등 산장의 다과, 간식, 식사 모두 훌륭하지 않은가. 그들과 이신이 함께 있을 때 자등 산장에서 끊임없이 보내온 음식으로 이미 그 점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계소영도 기꺼이 찬성했고, 세 사람은 날짜를 정하고, 각자 마음 맞는 서생들을 불러서 그날 아침 말을 타고 성에서 나와 경치 구경하면서 자등 산장으로 들어갔다.

이동은 장공주에게 한마디 전하고 산장에 남아 손님을 접대했다.

문회든 화회든, 이런 일을 주최하는 일에선 그녀보다 경험 많은 사람이 있을까. 전생에 수녕왕부에서 열리는 화회는 경성에서도 손꼽힐 정도였다.

여염은 장원 안으로 들어서면서부터 연신 감탄하며 절찬했다.

이동은 후원 호수 동쪽의 작은 언덕에 있는 난각에 연회석을 마련했다. 이동의 분부하에 난각을 데우고 사방의 창문을 활짝 열어 두었다. 덕분에 늦가을 쌀쌀한 바람이 불어오는데 안은 포근하고 편안했다. 난각에서 밖을 내다보면, 사방에 다른 경치가 펼쳐졌다. 만개한 국화도 보이고, 가을바람이 불어 물결이 찰랑찰랑 이는 호수도 보이고, 오색찬란한 단풍도 보였다.

사람들은 모두 얼큰하게 취해서 시를 읊으며 사방의 경치를 감상했다. 여염이 잔을 들고 몸을 흔들며 이신에게 다가갔다.

“이 형, 이 좋은 경치를 오늘에야 보여주다니. 벌주 한잔해야지!”

이신이 실소했다.

“벌주가 벌써 몇 잔째인가. 여 형의 여부 경치가 절색이라던데. 아무 곳에나 손으로 네모를 그려도 하나같이 한 폭의 그림이 된다던데? 이번에 자네 여부에서 연회를 열었다면, 자네가 지금 나보다 벌주를 더 마셨을 걸세!”

조명헌이 얼른 다가와서 끼어들었다.

“여 대랑의 저택에 가본 적 있지. 나쁘진 않은데, 자네 산장과 비교할 수가 없어. 여부는 경치가 절묘하긴 한데, 하나같이 인공적인 조각이었네. 이 형, 자네 산장처럼 모든 것이 자연이 이룬 것이 아니야. 이 경치는 ‘자연’ 두 글자 때문에 더 빛나는걸세!”

그 말에 여염이 헛웃음 치며 쥘부채로 조명헌을 툭툭 쳤다.

“자연? 자연으로 이렇게 좋은 경치가 만들어지는 줄 아는가? 이 대랑에게 물어보게. 이 대랑, 자네 저택의 이 경치, 자연적으로 이뤄진 건가? 솔직히 이야기하게!”

“당연히 아니지. 저 국화 보이는가? 원래 하나같이 진귀한 색이었는데, 진작 다 졌지. 지금 있는 것들은 그제 새로 심은 걸세. 심은 것도 아니지. 땅을 파고 화분째 묻었어. 그래야 뿌리가 너무 뻗어서 내년에 지나치게 피는 걸 막을 수 있다고 말일세. 그리고 저쪽에 단풍, 그제 누이가 직접 지켜보는 가운데 바꾼 걸세. 붉은 단풍은 그때 새로 바꾼 걸세.”

이신은 주변을 가리키며 웃는 얼굴로 솔직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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