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190화 (190/463)

190화: 구경거리

그러나 영 칠야 일행은 평소보다 빨리 돌아왔다. 보안사 입구에 이르러서는 지나치게 방대한 제사 행렬 때문에 사찰 안에 들어오지 못했다. 사찰 문 앞부터 길게 늘어진 무리가 길을 다 막고 있는 모습에, 떠들썩한 구경은 그게 뭐든 놓치지 않는 놀이꾼인 영원은 들어가서 구경하자고 제안했다. 안 그래도 안장을 밟고 서서 안을 들여다보던 주육은 그 제안이 딱 마음에 들어서 대답도 하지 않고 말에서 뛰어 내려 채찍을 휘두르며 사찰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묵칠 역시 구경 좋아하는 사람이고, 소자람도 굳이 반대할 사람이 아니었다. 다른 세도가 제자들 역시 대부분 구경 좋아하는 사람이라, 모두 말에서 내려 입방아를 찧어대며 우르르 사찰 안으로 들어갔다.

이신은 우르르 몰려오는 망나니들을 종루 위에서 내려다봤다. 영해는 까치발을 들고 이신 뒤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그들이 누구인지 소개했다.

“초록빛 장삼을 입은 분이 예부 해 상서 댁 오소야입니다. 은남빛 장삼이 형 부윤의 조카인데, 형 부윤 밑에서 글공부하고 있습니다. 글공부를 퍽 못한다고 합니다.”

묵칠의 뒷배는 묵 승상, 주 육소야 뒷배는 수국공부와 주 귀비, 해 오소야는 예부 해 상서, 조명헌은 예부 조 시랑, 그리고 손방서는 조부 손 한림……. 예부, 경부 관아, 한림원…….

이신은 가슴을 활짝 펼치고 정좌한 채 풍부한 감정과 음색으로 제문을 읽는 강 백야 곁을 에워싼 공자, 소야들을 하나씩 뜯어봤다.

영 칠야가 공들여 고른 사람들이겠지.

무슨 생각일까?

“대야!”

이신은 영해가 잡아끌길래 뒤를 돌아봤다. 영원이 번쩍거리는 채찍을 흔들며 문턱을 밟고 서서 그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채찍을 흔드는 모습이 공수하는 듯하기도 하고, 채찍을 휘두르는 것 같기도 했다.

“아래를 다 내려다볼 수 있다니, 좋은 곳이군. 이 형, 잘 지냈는가.”

영원은 문턱을 넘어 안으로 들어와서 한 바퀴 둘러보고는 아까 이신이 서 있던 자리에 섰다. 고개를 갸웃하고 잠시 바라보다가 끌끌 혀를 찼다.

“정말 깊디깊은 정이로군. 참으로 감동스러워.”

이신이 영해에게 눈짓하자, 영해는 곧바로 알아듣고 사환을 물리고 자기도 문 앞으로 나가서 지켰다. 이신은 영원 곁으로 다가갔다.

“칠야 솜씨입니까?”

“그렇지.”

영원이 지극히 시원스럽게 대답하자, 이신은 그 시원스러운 대답에 얼떨떨해하다가 곧바로 물었다.

“곡 거인이라는 사람도 정말로 있는 겁니까?”

“그야 물론이지!”

영원이 이신을 돌아봤다.

“틀림없는 진짜지. 곡 거인은 인품이 뛰어나고 재능이 출중한데 안타깝게도 단명했거든. 곡 거인의 본적은 태평부 청양진, 경성에 과거 보러 들어오기 전에 혼인했고, 딸이 하나 있지. 곡 거인의 여식이 용모며 인품이며 모두 뛰어나다고 하더군. 글공부도 하고 예법에 바른 여인이라 강 백야 댁 세자와 나이도 맞아서 상당히 잘 어울리지.”

이신은 멍해졌다.

“그것도 다 진짜입니까?”

“그야 물론이지! 곡가 대낭자는 문 이야가 직접 본 여인이야. 문 이야 말이, 강가 세자와 선남선녀, 천생배필이라고 하더군!”

영원이 검지 두 개를 세워서 나란히 붙이더니 꼼지락거렸다.

“저 곡 거인, 문 이야가 칠야에게 골라 준 겁니까?”

이신이 툭 묻자, 영원은 눈썹을 까닥였다. 그저 감탄하는 눈빛으로 실실 웃을 뿐, 이신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호 노야는요? 정말 있는 사람입니까?”

영원은 뿌듯한 모습으로 채찍을 휘둘렀다.

“물론! 호가는 경성과 그리 멀지 않아서 수소문하려고 들면 왕복 서너 개월이면 되거든.

서너 개월이면, 가을이 지나고 겨울도 반은 지났을 때지. 수소문하면 하라지. 이 몸이 하는 일에 남이 수소문할까 두려워해서 되겠나?”

영원이 돌아서며 말을 이었다.

“오늘 이 떠들썩함은 아무것도 아니야. 이제 시작일 뿐이거든. 이 형도 이런 구경을 좋아한다면, 앞으로 오늘처럼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생기면 사람을 보내 알리지.”

“그럼 고맙겠습니다.”

이신이 깊이 장읍하며 정중하게 감사하자 영원이 웃었다.

“형제 사이에 감사는 무슨. 자네 일이 내 일이지. 우리 두 가문은 체면 차릴 것 없어. 됐네. 난 이만 가 봐야 하거든. 또 보자고.”

영원은 공수하고 돌아서서 나갔다.

곡 거인의 거창한 제사는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모든 순서가 끝났고, 지전을 태우고 제사용품을 치웠다. 호 노야는 우느라 몸을 못 가누는 강 백야를 부축하고 사찰에서 나와서 마차에 올라탔다.

“강 형, 슬픔을 거두게. 지나치게 상심하면 안 되지. 곡 형이 구천에서 어찌 편안히 눈을 감겠나.”

호 노야가 눈물을 훔치며 권하자, 강 백야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가련한 곡 형! 오늘도 그 당시 일이 눈에 선하거늘! 참으로 비통하구나!”

강 백야는 다시 비처럼 눈물을 흘렸다. 정과 의리를 중시하는 자기 모습이 너무나 감동이었다.

“강 형, 슬픔을 거두게. 강 형이 이리 비통해하니 아무래도 기분을 좀 풀어야겠네. 강 형, 기분 풀러 어디로 가면 좋겠나?”

“곡 형은 가을을 가장 좋아했지. 오늘 우리 형제 둘이 마주 앉아 노래하며 통쾌하게 그리워해 보세!”

강 백야는 아름다운 사람, 음식, 술이 있는 놀잇배를 타고 변하에서 물살을 따라 흘러가는 걸 제일 좋아했다.

“그럼 바로 운수 소저를 부르도록 하지.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운수 소저가 강 형을 참으로 흠모하는 것 같더군.”

호 노야가 부러운 듯이 말하자 강 백야가 웃음 지었다.

“또 농을 하는군. 이 나이에 흠모는 무슨. 운수가 그 당시 심 대가보다 더 어여쁘긴 하지. 오늘 밤에 배를 타고 성에서 나가면 운수에게 금을 타라고 하고 나는 달빛 아래서 다시 곡 형을 그려야겠네. 휴. 곡 형도 곁에 있다면 자네와 내가 얼마나 즐겁겠나!”

강 백야는 자기가 지은 제문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아까 충분히 읊지 못했으니 이따 운수의 곡조와 달빛에 맞춰서 다시 한번 읽을 생각이었다. 아이고, 정말 절묘한 문장이지!

“강 형의 제문, 실로 너무나 훌륭하이. 솔직히 나도 글공부 적잖게 한 사람인데, 강 형 문장의 십 분의 일만큼 되는 문장을 몇 편 못 보았네. 강 형의 제문, 실로…… 전대미문이고, 후세에도 따라잡을 사람이 없을 걸세!”

“아닐세, 아니야.”

호 노야가 혀를 내두르며 칭찬하자, 강 백야는 신이 나서 눈썹이 다 휘날리도록 겸손 아닌 겸손을 떨었다.

“강 형의 이 문장은 절대로 묻혀선 안 되지. 잘 새겨서 사방에 뿌려야겠네. 좋은 문장은 나눠야지. 강 형, 인색하면 안 되네!”

간지러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호 노야의 제안에 강 백야는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강 백야는 뿌듯해서 몸이 두둥실 떠오를 것 같았다.

“호 형, 과찬일세. 아이고, 과찬이야. 자네가 타박하지 않는다면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문장이 좋아서가 아닐세. 문장은 그저 그렇다네. 매우 평범해!

곡 형을 추모하려고 퍼뜨리는 거네. 곡 형의 인품, 재능, 정말 하늘이 영재를 시기한다고 할 수밖에! 좋은 판공을 구하고, 최고로 좋은 종이로 많이 찍어서 뿌려야겠네. 그래야 곡 형 볼 낯이 있지.”

“그렇지! 그렇게 해야 곡 형 볼 낯이 있고, 강 형의 이 절묘한 문장 앞에 면이 서지!”

호 노야는 강 백야보다 더 호탕하게 웃었다.

그들의 놀잇배는 가장 호화롭고 큰 배였다. 배엔 강 백야가 상상한 대로 아름다운 사람, 술, 음식이 가득했다. 나긋나긋한 미인에 취하고, 좋은 술에 취하고,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벗은 더더욱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물살을 따라 서서히 성 밖으로 흘러갔을 땐 이미 은빛 달그림자와 금빛 물결이 출렁였다.

강 백야는 흰 옷 차림으로 뱃머리에 서서 옷자락을 펄럭이고 있으니, 자신이 신선이 아니었나 싶기도 했다. 그런 기분으로 운수의 금소리에 맞춰 자신의 절묘한 문장을 한 번 더 읽었다. 그래도 부족해서 또 한 번 읽고 은그릇에 넣어 태워 버리고도 여운이 남아 눈물을 훔쳤다. 곡 형을 위해, 그리고 신선 같은 자신의 문장을 위해.

“강 형의 이 문장, 실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네.”

호 노야는 눈물을 훔치며 덮어두고 문장부터 칭찬했다. 강 백야도 눈물을 훔쳤다.

“가련한 곡 형! 나와 곡형은 백아(伯牙)와 자기(子期)처럼 정이 깊은 사이일세. 아이고!”

(※ 춘추시대 초나라 사람인 백아는 금에 매우 뛰어난 사람으로 종자기와 깊은 교류를 했으며 그가 죽은 뒤, 지음을 찾기 어렵다며 다시는 금을 타지 않았다.)

“그렇지. 그 당시 강 형과 곡 형 모두 재능이 출중한 재자였지. 백아와 자기처럼 부러움을 샀어. 강 형, 기억하는가? 자네에겐 아들이 있고 곡 형에겐 여식이 있어서 종종 아이들을 혼인 맺어주자고 농담하듯 말했었지. 기억하는가?”

거나하게 취한 강 백야는 후회하듯 손뼉을 쳤다.

“아? 그랬지! 안타깝게도 곡 형이 너무 빨리 세상을 떴지 않나. 곡 형의 식솔은 어찌 됐는지 모르겠군. 곡 형을 잃은 일로 죽을 만큼 괴로워서 그걸 소홀했군. 곡 형과 나는 친형제 같은 사이였는데, 곡 형이 불행히도 요절했으니 처자식을 마땅히 내가 돌봤어야 하거늘. 내가……. 휴, 다 내가 너무 상심한 탓일세!”

강 백야는 호 노야가 몇 번이나 후회한 과거를 다시 돌이키며 후회했다.

“강 형 탓이 아니지. 멀고 먼 곳이었잖은가. 게다가 곡씨도 친족이 있으니, 설령 곡 형이 세상을 떠났대도 식솔이 유리걸식할 일이야 있겠나. 게다가 곡 형은 출신이 부유했네. 강 형, 지나치게 자책하지 말게.”

호 노야는 평소에 강 백야가 자신을 설득하는 말을 다시 반복했다.

“그렇긴 하지. 아이고! 가련한 곡 형!”

강 백야는 자기 문장을 다시 떠올렸다. 문장은 감정이 매우 중요했고, 이렇게 절세 문장을 쓸 수 있던 건 모두 곡 형을 향한 자신의 진실하기 짝이 없는 깊은 정 때문이었다.

“휴. 곡 형이 살아 있다면 3품 관리는 당당히 되었을 것을. 강 형과 곡 형이 진작 사돈이 되었겠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호 노야가 다시 유감을 표했다.

“그러게 말일세! 그야말로 그렇지!”

강 백야는 힘껏 팔걸이를 내리쳤다. 호 노야보다 더 유감이었다. 곡 형이 살아있다면 사돈이 3품 관리이고 미래의 승상에, 며느리는 정통 서생 가문, 고관의 여식이었을 것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아깝다, 아까워!

능운루는 길상한 ‘능운’이라는 이름 덕에 경성에서 추시, 춘시를 준비하는 서생들이 모여서 문회를 열거나, 추시, 춘시가 끝난 후 축하 연회를 여는 곳으로 가장 먼저 손꼽히는 곳이었다.

오늘 안팎에 등과 오색 천을 내건 능운루엔 환호하는 목소리와 웃음소리가 가득한 것이 유난히 떠들썩했다. 사황자가 능운루를 빌려 올해 경성 추시 합격자를 위한 연회를 여는 중이었다.

대황자는 떠들썩하고 소란스러운 능운루를 말에 탄 채 샛눈으로 바라봤다. 능운루 밖에 걸린 오색 주단에 속이 뒤집히고 눈꼴이 셨다. 건물 안에서 수시로 들리는 폭소 소리, 금소리, 가락 소리, 노랫소리, 모든 소리가 속을 쿡쿡 찔러서 속에서 천불이 끓어오르는 듯했다.

넷째, 지금 이게 무슨 짓이냐? 위세를 떨려고? 내 체면을 짓밟으려고? 온 경성 사람 앞에서?

모비의 총애를 믿고 갈수록 지나치게 구는 것 아니냐. 보석을 태우고, 재물 길을 막더니, 이제 내 손발을 잘라놓고 방자하게 대놓고 축하 연회를 열어?

대황자는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어서 손에 쥔 고삐를 갈수록 틀어쥐었다. 목이 죄여 초조 불안해진 말이 비스듬히 앞으로 튀어 나가서 능운루 대문으로 뛰쳐 들어갔다. 문 앞에서 손님을 맞이하던 사환 중에 몇몇이 대황자를 알아보고 허둥지둥 달려 나와서 대황자의 말고삐를 쥐어 주려고 했다.

노여움으로 한창 타오르던 대황자는 능운루가 넷째와 한 패거리라는 생각에 손에 쥔 채찍을 높이 휘둘러 사환을 내리쳤다. 사환 둘이서 비명을 꽥꽥 지르며 안으로 달려 들어갔고, 대황자는 고삐를 당기며 그 뒤를 쫓았다. 모질고 거센 채찍질에 넘어지던 사환은 발치의 두꺼운 붉은 융단에 걸려 철퍼덕 쓰러졌고, 대황자는 그대로 말을 몰아서 그 사환을 짓밟고 지나가더니 계속해서 다른 사환을 쫓아 채찍을 휘둘렀다. 대황자의 채찍질에 사환의 머리와 온몸에 터진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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