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189화 (189/463)

189화: 부자 두 사람

두 사람은 물론이고 진 부인도 그런 일을 떠올리지 못했다. 오 어멈은 생각했지만, 말 꺼낼 생각이 없었다. 진 부인의 규칙은 말을 꺼낸 사람이 그 일을 하는 것인데, 지금 그녀는 쓸데없는 일에 관여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정원에서 나간 강환장은 길 끝에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우선 청서의 거처로 걸음을 옮겼다. 어째서인지 몰라도, 오늘은 그다지 고씨를 만나고 싶지 않았다.

강환장이 내일 일찍 출타한다는 말을 들은 청서는 조바심도 나고 아쉽기도 했다.

“왜 이렇게 급하게 가시게 됐어요? 그럼 의복이며 가지고 가야 할 물건이며……. 세자야 거처에 지금 그런 걸 맡아서 할 사람이 없으니 제가 챙길게요.”

청서는 말은 다급하게 하면서 행동은 굼떴다. 몸이 무거워서 한참 버둥거려도 침상에서 내려가지도 못했다.

“몸이 너무 무거워요. 오늘 아침에 배가 또 한참 못 견디게 아팠어요. 대낭자가, 한 달 쓸 돈이 적어 의원을 모시지 못한대요. 괜찮아요. 사람을 불러 업고 가라고 할게요.”

강환장은 조바심만 내고 꿈쩍도 하지 못하는 청서를 바라봤다.

“됐다. 추미에게 시키면 된다. 너는 푹 쉬어라. 의원 문제는 이따 내가 아완과 아녕에게 너와 고씨 일에 은자를 아끼면 안 된다고 당부하마. 두어 달 동안 스스로 잘 챙겨라.”

강환장은 뭔지 모를 감정이 들었다. 청서 거처에 잠시도 머무르고 싶지 않아서 청서 거처에서 나왔다. 그는 잠시 그 자리에 서 있다가 고 이낭의 거처로 향했다.

고 이낭은 진 부인과 마찬가지로, 강환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눈물을 주룩주룩 흘렸다.

“오라버니, 오라버니가 떠나면 나와 아이는 어떡해요? 이 집안이 어떤지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아완과 아녕은 여전히…… 두 사람의 혼수를 내가 그런 것도 아니고…… 오라버니, 오라버니가 떠나면 나와 아이는 어떡해요?”

“아완과 아녕이 또 난처하게 하는 것이냐?”

강환장은 짜증이 가득 치밀었다.

“오라버니가 집에 있으면 그러지 못하죠. 하지만 오라버니가 떠나면 어떻게 나올지 누가 알아요. 이모님은 또…….”

고 이낭은 울먹울먹했다. 회임한 후에 정말로 못나진 건지, 아니면 느낌인지, 쉴 새 없이 울어대는 고 이낭의 얼굴이 밉기만 했다.

“강가의 자손을 품었는데, 어머니가 널 어쩐단 말이냐. 네가 아니더라도 네 배 속의 아이는 생각해야지. 아완과 아녕도 마찬가지다. 감히 널 어쩌지 못한다. 넌 마음 놓고 네 몸을 잘 돌보기나 해라. 매일 이렇게 훌쩍이면 아이에게도 안 좋다.”

강환장은 더는 억제하기 힘든 짜증을 애써 억눌렀다. 고 이낭은 더 심하게 훌쩍였다.

“이럴 줄 알았어요. 오라버니도……. 아이고, 내 팔자야. 오라버니가 날 나무랄 줄 알았어요. 오라버니, 난 정말 모르겠어요. 엉엉. 그래요, 내 팔자가 사나운 거죠. 알고 있었어요.”

강환장은 툭하면 자유자재로 눈물 콧물 흘리는 고 이낭을 보자, 가슴 가득하던 짜증이 순간 무기력해졌다. 그가 한 말을, 그녀는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그 물건들, 그건 다 내 거예요. 힘들게 모은 거라고요. 그런데도 오라버니는 항상……. 내 은자, 그건 나와 아이가 쓸 은자예요. 오라버니, 떠나더라도 일단 그건 찾아와야 해요. 난 어떻게 살라고요.”

고 이낭은 은자만 생각하면 괴로워서 살고 싶지 않아졌다. 내 돈!

강환장은 허벅지를 내리치며 울어대는 고 이낭을 퍼레진 얼굴로 멍하니 바라봤다. 예전의 고씨, 그 고씨와 지금 고씨는 같은 사람이 아닌가?

강환장은 깨질 것 같은 머리를 부여잡고 뜨락 문을 나와서 비틀거리며 거처로 돌아갔다. 거처로 돌아간 후에야 그제야 정신이 드는 것 같아서 문틀을 붙잡고 멍하니 서 있었다. 한참 서서 크게 숨을 들이켜며 겨우 정신을 가다듬었다. 아직 짐을 꾸리지 않았고, 남으로 데리고 갈 사람도 고르지 않았다. 그리고 물건은 뭘 가지고 가야 할까?

그날 밤, 강환장은 눈 한 번 감았다가 떴더니 날이 밝은 기분이었다. 방 안과 마당 안에 물건이 엉망으로 쌓여 있었다.

강환장은 기진맥진하고 말았다. 흠차의 출발 시각은 다 정해져 있고 곧 출발할 시간이라, 독산의 지휘에 따라 다들 어수선하게 물건을 마차에 실었다. 엉망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가면서 정리할 수밖에.

강환장은 말에 올라 성문으로 향해서 전별주를 마셨다. 차가운 술이 들어가자, 그제야 어젯밤부터 지금까지 간식 한입 먹지 못한 것이 떠올랐다.

오리정을 벗어났을 때, 강환장은 천천히 말 등 위에 엎어졌다. 지치고, 배고프고, 졸려서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독산, 마차에서 잠시 쉬게 부축해다오.”

강환장이 무기력하게 부르자, 독산이 멈칫했다.

“세자야, 반나절이면 진하 부두에 도착한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진하 부두까지 반나절이라서 마차를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세자야도 알다시피, 저택에 마차는 두 대뿐인데, 백야께서 한 대를 쓰시고 한 대는 이번에 저희가 짐을 싣고…….”

“알았다.”

강환장은 독산의 말을 자르고 애써 허리를 세웠다. 그렇게 잠시 앉아 있다가 못 견디고 다시 엎어졌다.

“독산, 빈 마차가 있는지 보고 얼른 나를 부축해라. 조금 쉬어야겠다. 머리가 너무 아프다.”

독산은 다급히 말에서 내려 마차 세 대를 살피고 또 살폈다. 그중 한 마차에 물건을 힘껏 안으로 밀고 겨우 공간을 조금 비웠다. 강환장은 물건 사이에 끼어 앉아서 금세 잠이 들었다.

강환장이 흠차가 되어 강남 과거장 부정행위 사안을 처리하러 남으로 내려갔다는 소식을 들은 강 백야는 흘려듣고는 금세 까맣게 지웠다. 지금 그에겐 더 중요한 일이 있으니까. 제문 한 편을 제대로 지어야만 했다. 자신의 수준, 자신과 곡 거인의 바다보다 깊고 금보다 단단한 우정, 그리고 곡 거인의 하늘 높은 재능, 풍채를 드러낼 수 있는 제문을. 어찌 됐든, 전무후무한, 누가 들어도 눈물을 쏟을 법한 절세의 제문을 지어야만 했다. 그런 다음 지기 호 노야와 함께 거창하고 품격 높게 곡 거인의 제사를 지내야 했다.

그는 거창하고 품격 높은 것이 제일 좋았다. 특히 자신이 주인공이고, 돈을 자기가 쓸 필요 없는 품격 높은 장면이면 더 좋고.

강 백야는 호 노야의 지도하에 머리를 쥐어짜며 풍부하고 세밀한 제문을 적었다. 그와 곡 거인이 어떻게 알게 된 것인지, 또 얼마나 막역한 벗인지, 어떻게 형제보다 더 가까워졌는지, 그런 세세한 내용과 마음을 주고받은 말들, 그리고 곡 거인과 대대손손 친밀한 사이를 이어가며 친분을 맺고 싶은 절절한 마음을 적어 내려갔다.

그러고는 호 노야가 큰돈을 들여 한림학사를 모셔와서 강 백야의 문장을 윤색했다. 문장이 다시 되돌아왔을 때, 강 백야는 한림학사가 자신의 문장을 그다지 고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문장을 고치지 않고도 이토록 출중하고 박진감 넘치는구나!

정말로 대대로 전해도 될 훌륭한 문장이로세!

강 백야와 호 노야는 하루 전에 목욕재계하고 경건하고 성스럽게 그날을 기다렸다. 그날이 오자, 조회가 끝날 시각에, 호 노야가 큰돈을 들여 대사를 모셔서 정한 그 시각에, 강 백야는 소복을 입고, 마차에도 하얀 천을 두르고 정중하고 엄숙하게 수녕백부에서 나와서 호 노야를 만났다. 두 사람은 사람이 바글바글하고 떠들썩한 큰 거리를 따라 엄숙하고 장중하게 성을 나갔다.

가는 내내, 사람들이 이 엄숙하고 장중한 제사 대열을 에워싸고 구경했다. 내막을 잘 아는 무수한 한가한 사람들이 쉴 새 없이 강 백야와 곡 거인의 그 옛날 심장을 두드리는 감동스럽기 짝이 없는 우정에 관해 이야기했다.

강 백야는 가슴을 당당히 펴고 인파 속을 걸으며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만인의 주목을 만끽했다. 걸음걸음 모두 구름을 밟는 기분이었다. 가슴이 후련한 것이 크게 웃음을 터트리고 싶었다.

하지만 웃으면 안 된다!

엄숙하고, 비장하고, 애통해야 한다!

아이고, 애틋한 나의 벗 곡 형이여!

이신은 영해를 데리고 다루에 서서, 천천히 스쳐 지나가는 강 백야와 호탕한 제사 행렬을 바라봤다. 이신은 위풍당당한 강 백야가 아니라 몇 걸음 뒤에서 강 백야를 따르는 호 노야를 바라봤다.

이 호 노야, 가문이 청백하고 내력이 분명했다. 심지어 영해가 온갖 수단을 써서 예부의 명부도 확인했는데 이 호 노야가 거인이라는 것도 놀랍게도 사실이었다. 십여 년 전에 경성에서 몇 년 산 것도 사실이었다. 경성에 있는 몇 년 동안 무엇을 했는지, 누구를 사귀었는지는 너무 세월이 오래 흘러서 영해조차 찾아내지 못했다.

“우리 사람이 돌아오려면, 아무리 일러도 석 달은 걸립니다.”

영해는 이신이 호 노야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걸 보면서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호 노야의 고향 집을 조사하라고 서둘러 사람을 보냈다. 그러나 왕복하려면 적어도 석 달은 걸린다. 그 석 달 안에 무슨 일이 생길지 어찌 알까.

“급하지 않다.”

이신은 한마디 하고는 영해에게 눈짓했다.

“나가 보자.”

“강가 세자야의 몸은 좋아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아까 배에 오를 때만 해도 열이 심하게 났다고 합니다.”

영해가 이신 뒤에서 보고하면서 내려갔다.

“신경 쓸 것 없다. 그쪽은 알아서 돌볼 사람이 있다.”

이신이 대답했다. 그러나 이신이 말한 돌볼 사람이라는 말은 영해의 말과는 다른 의미였다.

제사 행렬은 경성의 가장 떠들썩한 큰길을 따라 크게 한 바퀴 돈 후에 서서히 성 동쪽 보안사로 향했다.

곡 거인은 보안사 뒤에 묻혔다. 전에 호 노야가 돈을 내고, 강 백야가 나서서 곡 거인의 묘지를 새로 보수했고, 또 보안사에 큰돈을 시주하고 법사도 여러 번 열었다.

이신은 거창하기 짝이 없는 제사 대열을 따라갈 인내심까지는 없어서 바로 보안사로 향했다. 사찰 안에 들어가서 훑어봤더니, 깃발이 나부끼고 승려들은 하나같이 법의를 입고 곡 거인의 법사를 준비 중이었다. 이왕 사찰 안으로 들어온 이신은 곡 거인의 영전에 향을 피웠다. 하지만 뭐라고 기도해야 좋을지 몰랐다.

이쯤 되니, 호 노야와 태평부 본적인 곡 거인은 영원과 문 이야의 수완임을 거의 확신했다. 하지만 어째서 이런 일을 하는 건지는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알아낼 수 있는 정보가 너무 적었다. 이 두 사람, 하나는 십여 년 전에 죽었고, 하나는 십여 년 전에 경성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갔다. 두 사람 모두 그 당시엔 이름 없는 필부라서 도저히 알아낼 수가 없었다.

이신이 참예(參詣: 부처에게 비는 것)하고 나오자 영해가 다가가서 나직이 고했다.

“대야, 사찰의 지객승이 그러는데, 영 칠야가 우리가 오기 얼마 전에 왔답니다. 영 칠야와 주가 육소야, 묵 승상댁 칠소야 일행이 이 앞을 지나갔답니다.”

이신은 살짝 눈살을 찌푸리다가 이내 웃었다.

“영 칠야는 어디에서 참예하는지 알아보아라.”

영해가 잠시 멍하니 있다가 대답했다.

“이곳이 동문에서 멀지 않다고는 하지만, 이 보안사를 제외하고는 참예할 만한 곳이 없습니다. 영 칠야가 자주 이쪽으로 오는 이유는 여기에서 동쪽으로 가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개 산책하기 좋은 숲이 있어서입니다. 어쩌면…….”

“오늘은 분명 구경하러 온 것일 게다. 사람을 보내 넌지시 알아봐라. 눈치채게 하지 말고.”

이신은 영해의 말을 자르고 긴 설명 없이 분부했다. 영해는 재빨리 종복을 골라 영 칠야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보라고 보내고는 이신 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강 백야가 여는 법사에 무언가가 있음을 은연중에 깨달았다. 그게 무엇인지 대야는 알고, 영 칠야도 아는데, 자신은 모른다.

영해가 지객승에게 은자를 찔러주자, 지객승이 이신 일행을 옆의 종루로 데리고 가더니 얼마 후엔 차와 다과도 보내주었다.

이신은 종루 창가에 서서 성문 쪽을 바라봤다. 머지않아, 강 백야의 웅장하고 떠들썩한 제사 행렬이 성을 나서서 서서히 보안사를 향해 다가왔다.

종복은 한참만에 겨우 돌아와서 보고했다. 영 칠야 일행은 정말 이 주위에서 참예하지 않고 반지르르한 세견들을 거느리고 동쪽 숲으로 가서 토끼를 풀고 개 산책 중이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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