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화: 상대하는 사람 없음
당연히 나서야 할 형부와 예부 두 부서에서 사람을 뽑을 수 없다면 나머지 부서 중 호부는 사황자가 맡고 있고, 병부는 추밀원과 관계가 얽혀 있으니 그 두 부서에서 사람을 뽑는 건 대황자가 또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이부와 공부밖에 없는데, 추신(秋汛: 입추에서 상강 사이에 강물이 불어나는 것)이 코앞이라 공부는 지금 바쁘든 아니든 이리저리 핑계를 댈 것이고, 또 이부는 계 천관이 긴 세월 관리해왔으니 두 황자가 같이 반대할 것이 뻔했다.
여 승상은 묵 승상이 아무런 말을 하지 않자 두 황자를 훑어보고는 황상을 향해 웃으며 말을 꺼냈다.
“강남 이 건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낙점하면 즉시 출발해야 하고, 가는 내내 밤낮없이 달려야 합니다. 강남에 도착해도, 과거와 관련된 안건은 처리하기 매우 복잡하니 내내 바쁠 것입니다. 그러니 이번 흠차는 젊고 건강한 자가 좋을 듯합니다.”
황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었다.
인가를 얻은 여 승상은 계 천관을 돌아보며 웃는 얼굴로 말했다.
“젊고 건장하고, 체력도 좋은 데다가 이번 임무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을 몇 고를 수 있겠는가, 계 천관? 다 같이 상의해 볼까?”
“신, 적절한 인선이 한 명 떠올랐습니다. 수녕백 세자 강환장, 현임 진왕부 장사입니다. 얼마 전에 양가 사건을 매우 적절하게 심리했습니다. 황상께서도 매우 칭찬하셨지요.”
계 천관은 이번엔 지극히 시원스럽게 인선을 천거했다. 묵 승상은 놀란 눈빛으로 계 천관을 힐끔 봤다. 계소영이 갑자기 추시에 참가해서 방에 이름을 올렸다. 지금은 한창 춘시 준비 중이라고 들었고. 계가, 움직일 생각이 생긴 건가.
여 승상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강환장이 진왕부 장사가 된 지 반년이 되었지?”
여 승상이 묻자, 계 천관이 허리를 숙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진왕이 그를 자주 칭찬합니다. 성숙하며 진중하고, 매우 뛰어난 데다가 젊습니다. 신, 동의합니다.”
여 승상이 자기 의견을 드러냈다.
사황자는 아무런 말 없이 대황자를 힐끔 봤다. 강환장이 연향루 사안을 유들유들하게 처리한 방식이 매우 마음에 들긴 했다. 분별 있는 자였는데, 강남 사안도 원만히 무마하려 할까?
이번처럼 큰 사안을 원만히 무마하는 게 어디 쉽나? 게다가 고서강이 말하길 강남 사건에 배후가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있다고 치자.
음, 이따 셋째 형님을 찾아가서 강환장에게 경고하라고 해야겠군. 감히 무마하면 절대로 용서하지 않아! 셋째 형님이 감히 내 말을 거역한 적이 없지!
대황자도 속으로 머리를 굴렸다.
진왕 외숙의 혼사가 아직 내 손에 있지. 연향루 사건이 그렇게 되긴 했지만……. 사실 그다지 신경 쓰지는 않았지.
이번 사안은, 이따 셋째를 찾아가야겠군. 강가 놈이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흥!
대황자와 사황자가 둘 다 말이 없자, 묵 승상과 여 승상 그리고 계 천관을 비롯한 신하 모두 내심 안도했다. 사람을 낙점했으니 뒷일은 수월할 수밖에 없겠지.
역시나, 그 뒤로는 훨씬 순조로워졌다. 시험지를 거둬올 흠차를 다 함께 정하고, 다른 세세한 부분을 정한 다음 그 자리에서 서둘러 강남으로 출발해 강남 과거장 부정행위 사안을 심리하라는 성지를 썼다.
성지를 받은 강환장은 우선 성은에 감사하며 성지를 받으려 입궁했다. 황상을 직접 만나진 못했고, 묵 승상과 여 승상을 찾아가 만났다. 묵 승상과 여 승상 모두 매우 태도가 좋았고, 온화한 말투로 매우 세심하게 당부했다. 물론 곰곰이 생각해 볼 것도 없이 살짝만 생각해도 아무 내용 없는 당부였다.
강환장이 성지와 흠차 관인 등 물품들을 받고 진왕부로 돌아갔을 때, 이미 대황자와 사황자에게 각각 협박받은 진왕은 창백한 얼굴로 안절부절못하며 강환장이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소화, 이번 흠차, 물릴 수 없겠나?”
강환장을 만난 진왕은 대뜸 그것부터 물었다. 강환장은 얼떨떨해하다가 이내 웃어 보였다.
“대왕야와 사왕야가 무슨 말씀을 하던가요?”
강환장이 이토록 사리에 밝은 걸 본 진왕은 안도하며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소화, 이것 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일이다! 이번 흠차, 방법을 생각해 보아라. 가면 안 된다.”
강환장이 진왕 옆에 앉았다.
“왕야, 제 말을 믿으십시오. 대왕야와 사왕야를 신경 쓸 것 없습니다. 두 사람은…….”
강환장은 경멸 가득한 얼굴로 웃었다.
“두어 해 지나면 아십니다. 전혀 신경 쓸 것 없습니다.”
진왕은 매우 조바심이 났다.
“소화, 그 말…… 두어 해를 어찌 기다리나. 이번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자네와 내게 지금 당장 큰 화가 닥친다!”
“왕야, 진정하십시오. 양 구야의 사안도 얼마나 걱정하셨습니까. 나중에 결국 황상께서 칭찬하셨잖습니까. 이번 안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안심하세요. 다 생각이 있습니다. 생각이 없었다면 제가 어찌 감히 받았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강환장은 방향을 바꿔서 진왕을 설득했다. 대왕야와 사왕야는 그의 왕야를 어쩌지 못한다. 기껏해야 난처하게 몰아세우고 눈치나 줄 뿐, 진심으로 싸운다? 흥. 하라고 해도 하지 못한다. 게다가 왕야의 천운을, 단명할 그 두 사람이 건드릴 수나 있기나 하고?
무서울 게 무엇이랴. 다만 왕야는 자기처럼 미래를 예지할 수 없으니, 두려워하고 걱정하는 것도 당연했다.
“왕야, 안심하십시오. 이번 안건도 양 구야 안건처럼 우리에겐 이득뿐입니다.”
강환장이 장담하자, 진왕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 일을 알게 되었을 때 이미 성지까지 내려왔다. 무슨 수를 써서든 이번 임무를 맡지 말라고 말한 것도 그저 해본 말이었다. 이번 일을 바꿀 여지가 없는 걸 그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소화, 반드시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반드시 중간을 지켜야 해. 큰형님과 넷째, 모두 우리가 거슬러선 안 될 상대다.”
진왕은 자기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알고, 강환장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반복해서 당부했다.
“왕야, 마음 푹 놓으십시오. 제게 다 생각이 있습니다.”
강환장은 재차 장담하고 또 진왕을 붙들고 마음을 한참 풀어준 다음에 물러났다.
진왕부에서 나왔을 때 하늘이 이미 어둑해져서, 강환장은 짜증스러운 듯 하늘을 올려다봤다. 이부에서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하라고 했다. 행장을 준비하고 수행할 사람을 골라야 하는데 벌써 날 저물었다.
강환장은 짜증이 울컥울컥 몰려오는 기분으로 말에 탔다.
전생엔, 똑똑히 기억하기로 대왕야와 사황야가 파멸하기 1년 전에 진왕을 모시고 하북에 재난 구제하러 떠났다. 가는 길에 진왕이 병이 나서 쓰러져서 홀로 하북으로 향했었다.
그때 출발하기 전에 어떻게 행장을 준비하고 어떻게 사람을 골랐더라.
잊은 게 아니라, 예전엔 그런 일을 신경 쓴 적이 없었다. 출타할 일이 있으면 저택에 한마디 하면 그만이었다. 언제 출발하는지, 어디로 가는지, 얼마나 걸리는지만 말해두면, 출발할 땐 모든 것이 준비되었다. 가는 내내 조금도 부적절한 점이 없었고, 설령 가끔 부족한 것이 있어도 곳곳에 저택의 점포가 있어서 모든 것이 편리했다.
그 점포들, 강부 것이었던가, 아니면 이가 것이었던가.
그런 것을 한 번도 신경 쓴 적이 없었다.
강환장은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성지를 받은 다음 저택에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아완과 아녕이 집안일을 맡은 후로도 집안은 조용해지지 않았다. 강환장은 싫은 듯이 얼굴을 찌푸렸다. 전생에 아완과 아녕은 자기 집안일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 똑똑히 기억하는데, 두 사람은 혼인한 후에도 항상 소란스러웠다. 아완과 아녕은 이씨와 화목하지 않았고, 무슨 일만 생기면 울면서 그를 찾아오거나 어머니를 찾아갔다. 그 바람에 골치가 아프고 짜증이 나서 이씨를 새벽까지 무릎 꿇린 적도 있었다. 벌을 내리게 된 세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았고, 아녕이 친정으로 돌아와서 첩이 방자하다고 울며 호소했던 것만 기억난다.
기껏해야 어렴풋한 기억만 남았을 뿐, 집안일 대부분을 기억하지 못했다.
고씨의 태맥이 계속 불안했다. 전생에도 첫 아이를 가졌을 땐 그랬던 것 같은데, 한동안 아예 저택에 의원 둘을 상주하게 한 적도 있었다. 청서도 지금 태맥이 불안했다. 거의 매일 일이 생기는 그 두 사람을 떠올린 강환장은 억제하지 못할 정도로 짜증이 치밀었다.
저택이 왜 이리 혼란스러운 건지. 이씨 하나 없다고? 이씨가 아완과 아녕의 작은 잘못을 물고 늘어지며 성 밖으로 옮겨가서? 그래, 예전엔 이씨가 저택을 잘 다스렸다는 걸 인정한다.
고씨의 이번 회임이 너무 빨랐다. 고씨가 회임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집안일이 손에 익어 잘 처리할 것이다. 이씨만큼 하지 못한다고 쳐도 비슷하게는 했겠지.
그런데 하필 이 시기에 회임했고, 태맥이 불안하기까지 했다.
회임하기 전엔 고씨가 저택을…….
강환장은 말 위에서 흔들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 전엔 집안일과 서무를 맡으려 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글공부하고 시를 읽었지, 이런 속된 일을 못 한다고 했다.
이런 속된 일을 못 한다고!
‘고 이낭은 트집 잡는 것에나 능하지, 일 처리는 제대로 못 해요.’
강환장은 별안간 추미의 말이 떠올랐다. 그때 매섭게 추미를 혼냈었다. 그런데 청서도 그렇게 말했다.
그가 매일 고씨를 찾아갈 때마다, 고씨는 몇 마디 만에 아완과 아녕이 오늘 또 무엇을 잘못 처리했는지, 무엇이 면밀하지 못했는지, 나라면 이렇게 저렇게 했을 것이라고 읊어댔다.
강환장은 힘껏 고개를 저었다. 청서와 추미의 말에 현혹되었나 보다. 하지만 고씨는……. 예전의 고씨가 맞을까? 예전의 고씨가 어땠는지, 몇십 년 동안 봐왔다. 절대로 잘못 볼 리가 없다! 내가 사람을 잘못 볼 리가 있나?
그럴 리가 있나.
혼란스러운 와중에, 강환장은 수녕백부 앞에서 말에서 내려서 곧장 진 부인의 정원으로 향했다. 일단 어머니에게 말하고 인사한 다음에 얼른 행장을 꾸려야 한다.
진 부인은 강환장이 내일 출발한다는 말을 듣자마자, 말이 끝나기도 전에 비 오듯 눈물을 흘렸다.
“벌써 9월이라 곧 날이 추워지고 땅이 얼 것이다. 그런데 출타한다니. 집에서는 안온하게 지내도 출타하면 곳곳이 어려움인데,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이냐.”
“부인, 울긴 왜 우세요. 세자야가 이번에 이렇게 큰 임무를 받았습니다. 흠차입니다! 세상없는 경사이고 좋아해야 할 일인데 왜 우세요.”
오 어멈이 얼른 나서서 설득하자, 진 부인이 그 말에 눈물을 그쳤다.
“출타하면 얼마나 고생할까 생각해서 그렇지.”
“고생을 이겨내야 큰 인물이 되지요! 게다가 대야가 출타하는데 무슨 고생을 하겠습니까. 흠차의 출장이 어떤지 잘 아시면서요. 어딜 가든 마중하고 배웅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가 감히 흠차를 홀대합니까? 아이고, 세자야, 축하드리는 걸 잊었습니다. 세자야, 승관 축하드립니다. 앞으로 탄탄대로가 펼쳐지실 겁니다!”
진 부인을 설득한 오 어멈은 얼른 강환장을 향해 예를 갖추며 축하했다. 안 그래도 혼란스러운데 뜬금없이 눈물을 흘리는 진 부인의 모습에 짜증이 치민 강환장은 싸늘한 얼굴로 대충 얼버무리고는 얼른 짐을 꾸려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정원에서 나갔다.
강완과 강녕은 오 어멈의 말에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오라버니에게 탄탄대로가 펼쳐지면, 두 사람도 당연히 따라서 그 길을 걷게 될 테니 큰 경사 아닌가. 두 사람은 탄탄대로가 펼쳐지면 얼마나 좋을지 재잘재잘하다가 탄탄대로에 오른 다음의 일을 계획했다. 마지막엔 내일 오라버니를 배웅한 후에 제대로 축하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이야기도 나누었다.
두 사람은 먼 길을 떠나기 전에 준비할 것들, 노신(路神)들에게 제사를 올려야 하는 이런 것들을 아무것도 몰랐다. 수녕백부는 두 사람이 출생한 후에 먼 길을 떠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