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화: 각자의 관점
“네가 보기에는?”
계 천관의 물음에 계소영은 눈살을 찌푸리고 집중해서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모를 겁니다. 문도가 강남에 가기 전에 저와 이신, 그리고 여염이 장원에 들어갔었습니다. 추시 며칠 전까지 반 발짝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예, 몰랐습니다.”
계소영의 단정적인 마지막 말에 계 천관이 ‘그래.’ 하고 대답했다.
“전에는 몰랐겠지만 이 방과 게시물을 받았을 때 알게 되었겠지. 아무래도 이신은 양자로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계소영은 주저하다가 말했다.
“제 생각엔, 이가 태태와 이가 고내내도 모를 것 같습니다. 요 몇 달 동안 저와 이신이 가장 많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신은 생각도 깊고 배포도 있습니다. 드물게도 순수한 마음이 아직 있습니다. 이가 태태의 많은 일화를 들었는데, 이가 태태는 평범한 내택 여인이 아닙니다. 이신을 양자로 들인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감추거나 남으로 대하지 않을 사람입니다.”
계 천관은 안도한 듯했다.
“그렇다면 장공주가 그저 이가에서 사람을 빌린 모양이다. 그럼 되었다. 나도 이신이 마음에 든다. 자주 왕래하도록 해라. 그리고 이신의 누이는…….”
계 천관은 말을 멈췄다가 이었다.
“이신의 누이와 강가의 일도 어떻게든 설득해 보아라. 강가가 꼴 같지 않긴 해도, 그래도…… 휴, 별일 아니지 않으냐. 당분간 엄하게 집안일을 처리하고, 첩들은 정 안 되면 아이를 거두고 제거하면 된다. 다 사소한 일이라 잘 수습하면 그만이다. 강환장이 재능이 평범하긴 해도 신중하고 본분을 지키는 장점이 있다. 진왕을 잘 보필하고, 최근 일어난 사안을 잘 처리했다. 이신의 누이가 장공주와 자주 왕래하던데, 장공주에게 물들지 말아야지. 장공주처럼 이도 저도 아니게 암자에서 살 생각은 아닐 것 아니냐. 그렇게 되면 이신의 명성에 해가 되고 또 벼슬길에서도 손가락질당할 것이다.”
계소영은 고개를 숙이고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왜 그러느냐? 남모르는 사정이 있는 것이냐?”
계 천관이 민감하게 물었다.
“그건 아닙니다.”
계소영은 뭐라고 말하면 좋을지 생각하는 듯 멈칫했다.
“이신이 누이의 일을 이야기하면서 이런 예를 들었었습니다. 강환장과 이가 대낭자는 군신 같은 존재라고요. 주군이 잘못을 한두 건 한 게 아니라, 이 주군이 아둔하고 포악하답니다. 장점이 하나도 없다고요. 신하 된 자는 당연히 받들 만한 좋은 주군을 골라야지요. 좋은 주군이 없으면 차라리 은거하여 자연을 벗 삼아 지내는 것이 낫습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저처럼요.”
계소영의 마지막 말은 전혀 자신감 없이 작아졌다. 계 천관은 웃음 지었다.
“말도 안 되는 비유로구나. 부부 사이가 어찌 군신의 도리와 같을 수가 있나. 부부 사이는 떠나지 않고 버리지 않는 의리가 중한 것이다. 이가는 상인 가문 출신이라 어쩔 수 없이 식견이 얕구나.”
“예.”
계소영은 부친의 말을 찬성하지 않는 듯이 나직이 대답했으나 계 천관은 유의하지 않았다. 혹은 유의했더라도 아들이 은근히 내비친 부동의의 뜻을 신경 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부친의 몇 마디 당부를 더 들은 후 계소영은 물러나서 서재 뜨락에 나와 꽃나무 아래 잠시 서 있었다. 뭐라고 설명해야 좋을지 모를 혼란스러움이 느껴졌다. 또 그 혼란이 어디에서 온 건지도 알 수 없었다.
강남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영원은 모든 이보다 빨리, 그리고 모든 이보다 많이 알았다.
영원은 그 합격방과 게시물을 벽에 붙이라고 분부한 다음 의자를 끌고 와 맞은편에 앉아서 턱을 등받이에 괸 채 합격방과 게시물을 번갈아 봤다.
그가 바라는 대로 계가를 이 혼란에 끌어들인 것이 이번 강남에서 일어난 일을 통틀어 가장 큰 수확이었다. 계가가 보좌하려는 황자가 누군지 몰라도, 첫째는 아니라는 것을 확신했다. 넷째도 아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첫째와 넷째를 제외하면 다른 이는 두려울 것이 없지. 계가? 흥! 계가엔 두 번째 계 노승상도 없는걸.
장공주는……. 장공주가 이번 강남 일을 꾸민 것이 정말로 오로지 대황자에게 본보기를 보이려는 것이었을까? 대황자 같은 물건이 이번 일이 장공주의 징벌임을 알기나 알까?
대황자는 둘째치고, 문도의 명시적인 암시가 없었다면 자신조차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도 모르는 이 징벌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설마, 그저 60명의 호위 하나 때문에 장공주도 이 흙탕물에 끼어들기로 한 것일까?
모를 일이긴 하지!
영원은 벌떡 일어나서 합격방 앞으로 다가가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세세히 보았다.
축씨 제자는 문도의 재량일까, 아니면 장공주의 지시일까? 축가를 이용해 연루시킨 고서강은 최근에 주택헌과 지극히 가깝게 지냈다. 주택헌은 사황자의 사람이고.
영원은 이마를 툭 쳤다. 장공주의 한수로 첫째를 한 방 먹이는 동시에 넷째도 한 방 먹였다. 장공주, 무슨 생각일까?
이것이야말로 고단수지. 진면모를 꼭꼭 숨기고 있어서 진정한 목표가 무엇인지 전혀 알 수 없는 것이.
됐다. 일단 그건 접어두고, 눈앞에 닥친 일을 제대로 하자.
영원은 한발 물러나고 또 한발 물러나서 돌아서서 밖으로 나갔다.
보림암 작은 뜨락 차 탁자 옆쪽 벽에 게시물은 없고 합격방만 붙어 있었다. 이동은 합격방을 바라보고 복안 장공주는 유쾌한 듯 다리를 흔들고 있었다.
“문도, 과연 기세가 보통이 아니야. 축가 사람을 끌어내서 써먹다니.”
장공주는 말을 다하기 전에 까르르 웃었다.
“아마 영원도 얽혔겠지.”
“네?”
이동이 장공주를 바라봤다. 장공주의 사고 회로가 너무 빨리 뛰어서 따라잡지 못하는 때가 잦았다.
“그동안 고서강이 북부 군비용을 자주 깎았거든. 영원이 그를 원망하는 것도 당연해. 게다가 근래 고서강이 주택헌과 가깝게 지낸다더군. 흥! 손을 뻗을 생각이면 등 뒤에서 칼 꼽힐 각오도 했어야지.”
복안 장공주가 싸늘하게 웃자 이동은 가슴이 철렁했다. 이가도 손을 뻗은 것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복안 장공주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손에 든 잔을 돌렸다.
“영원 이놈, 갈수록 재미있어지네. 얼마 전에 내가 그 별궁에 손대 봤거든? 어떻게 됐을 것 같아?”
“한 방 먹으셨어요?”
이동의 빠른 반응에 장공주가 과장되게 눈썹을 치켜들었다.
“응? 똑똑해졌네? 한 방 먹은 건 아니고 소득이 아무것도 없었어. 밖에 떠도는 소식이랑 별다른 소식이 없더라고.”
“그 소식대로라서인지도 모르죠.”
예전에 영 황후와 오황자는 시종일관 아무런 소문도 없이 조용히 왔다가 조용히 갔다.
복안 장공주가 이동을 흘겨봤다.
“흥! 똑똑하다고 칭찬하자마자, 이렇게 뒤통수를 칠 거니? 그 소식대로? 영씨가 약골이라고? 오황자가 약골이라고? 오황자를 못 본 것도 아니고. 약골이든? 그런데 뱃전 밖에 매달기까지 했어?”
이동은 머쓱해졌다. 오황자는 건강했을뿐더러 영특하고 귀여웠다.
“영씨는 입궁할 때 시녀 여덟, 어멈 넷, 이렇게 모두 열둘만 데리고 왔어. 궁에서도 오로지 그 열두 종복에 의지해서 자신을 지키고 오황자를 지켰어.”
“오황자를 지켜준 건 장공주였잖아요.”
이동이 한마디 끼어들었다.
“난 그저 문신(門神)이 되어서 한 번 막아준 거지, 영 왕후와 오가아를 지켜준 것까진 아니야. 영 황후 본인이 자기 모자를 지켰어. 영가엔 쭉정이가 없다지. 오가아도 영가 혈통인 셈 아니니?”
복안 장공주는 화제를 급히 바꿨고 이동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
“혈통뿐만 아니라 소양도 중요하잖아요.”
“맞는 말이야. 바로 그래서 오가아도 영가 혈통인 셈 아니냐고 묻는 거야.”
이동은 곧바로 깨달았다. 오가아는 별궁에 살았고 그가 배운 모든 것은 영 황후의 풍격, 영가의 가풍이라는 것을.
“영가는 무인 가문이잖아요…….”
이동이 황가가 아니라는 뒷말을 삼키자, 복안 장공주가 피식 웃었다.
“역대 황조를 통틀어도 가장 용맹하고 뛰어난 인재는 모두 개국 태조야. 개국 태조 중에 제왕의 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도 있어?”
“임씨 가문에도 용맹한 제왕이 나올 때가 됐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그런 생각까지 한 적은 없어. 너무 멀리 갔네. 우리 이야기하자. 강남 일, 어떻게 된 건지 너도 이제 알겠지?”
복안 장공주가 억지로 화제를 바꿨다.
“네.”
이동은 고개를 끄덕였다. 설령 고서강까지 끌어들이지 않았더라도, 강남 서생의 마음을 위로하려면 북부 서생 등용은 3년 뒤로 미뤄야 하게 되었다. 그렇게 되면 오라버니 급제는 걱정할 것이 없게 된다.
“이렇게 큰일을 하시려는 건 줄 알았으면 전 차라리 오라버니가 3년 늦게 급제하길 바랐을 거예요. 혹은…….”
이동은 예전에 문 이야와 손잡고 일으켰던 식량난을 떠올렸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어머니가 그녀를 뒤로하고 떠났고, 그녀는 두어 해 몸져누워있었다. 나중까지 지병으로 남았고. 불조께서 징벌을 내린 것이라 줄곧 생각했다. 일개 개인의 이득을 위해 그렇게 큰 업장(業障)을 지었으니까. 무수한 사람의 원기가 그녀를 벌주고 고통을 준 것이라 생각했다.
“겸사겸사야. 동민은 탐욕스럽고 어리석어. 문도가 강남에 가지 않았어도 강남 이번 과거는 이렇게 되었어. 동민이 관리하는 추시가 공평무사할 리가 없잖아. 난 그저 문도를 통해 이번 과거의 부정행위를 밝힌 것뿐이야. 불조 가르침대로라면 이것도 공덕이지.”
복안 장공주의 표정은 태연했다.
“너도 불법(佛法)을 배울 때 너무 구애받을 것 없어. 인과응보, 하늘의 섭리라는 건, 내가 생각하는 것, 네가 생각하는 것, 세상 사람이 생각하는 것, 다 다를 수밖에 없어. 양심에 가책만 없으면 돼. 인과는 알아서 흐르겠지. 다음 생에 윤회해서 정말로 아귀의 길에 들어가게 한다고 해도, 난 그냥 다 내려놓고 마구 죽이고 다닐 거야. 통쾌하겠지.”
이동은 할 말을 잃고 장공주를 바라봤다.
이동은 복안 장공주에게 인사를 고하고 나와서 마차에 탄 후 장공주의 말을 곱씹었다. 손을 뻗을 생각이면 등에 칼 꼽힐 각오를 하라…….
우리 집안은 지금 생각만 하는 게 아니라 이미 뻗은 셈이겠지. 나, 어머니, 그리고 오라버니 중에 칼을 맞는다면 오라버니가 먼저 맞을 테고.
“대야 계셔?”
이동은 자등 산장 중문에서 마차에서 내린 다음 문지기 어멈에게 물었다.
“계세요. 날이 밝자마자 말 타고 한 바퀴 돌다가 한 시진 만에 돌아오셨어요.”
문지기 어멈의 공손한 말에 이동은 가볍게 대꾸하고 중문으로 들어가서 수련에게 분부했다.
“네가 대야에게 다녀와. 오후에 나가는지 물어보고, 나갈 일 없다고 하면 내가 식사 후에 찾아간다고 전해. 할 말이 있다고.”
식사를 마친 이동은 화원 깊은 곳 호수 중간에 덩그러니 있는 수각(水閣: 물 위에 지은 정자)에서 이야기하자고 이신에게 사람을 보냈다.
이신이 구불구불한 구곡교를 따라 수각에 들어갔을 때, 수각 안에 다구와 화로가 준비되어 있고 이동 혼자 세심하게 차를 내리고 있었다.
이신의 표정이 은근히 심각해졌다. 이런 곳에서, 또 단둘이 이야기하려는 걸 보면 긴밀하고 중요한 이야기가 있는 것이다.
계가 장원에 몇 달 갇히듯 있다가 산장으로 돌아와서 지금까지, 몇 달 동안 많은 일이 일어났음을 은연중에 느끼고 있었다. 중요한 많은 일이.
“강남 과거에서 일어난 부정행위, 오라버니도 들었죠?”
이동이 양손으로 찻잔을 밀어주면서 입을 열었다.
“들었다. 강남 장궤가 급보로 합격방, 게시물, 그리고 낙방한 서생의 연판장을 내게 바로 보냈더구나.”
이신은 말을 멈추고 목소리를 낮췄다.
“어머니 말씀이, 문 이야가 지금 태평부에 있다고 하시더라.”
“장공주가 보내셨어요.”
이동은 자기 앞에 놓인 차탕을 천천히 저으면서 대답했다.
“몇 달 전에, 한번은 장공주가 물으시더라고요. 오라버니가 내년 춘시에서 순조롭지 않으면 어떻게 되냐고요. 그래서 제 생활이 조금 힘들어질 거라고 했죠.”
이신은 이동이 하는 말을 집중해서 들었다.
“며칠 뒤에, 장공주께서 내년 춘시는 아마도 고서강이 시험관으로 낙점될 거라고, 북부 서생을 등용할 때가 되었다고 그러시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