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화: 사건 마무리
영원은 홀로 번루 2층 독채에 앉아 아래를 지켜보고 있었다. 수녕백부 강화원이 변하에서 집으로 돌아가려면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길이었다.
아래층에 마차 두 대가 앞뒤로 지나갔다. 마부를 살펴본 영원은 뒤에 상자가 가득 쌓인 마차를 힐끔 보며 피식 웃었다.
유월이 살그머니 올라와 공손하게 고했다.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모든 게 순조로웠답니다.”
“그래.”
영원은 기분이 좋은 듯이 느긋하게 식사를 마치고 유유히 아래로 내려가서 말에 올라 곧장 관아로 향했다.
영원이 관아로 들어가자 아전과 서반이 우르르 몰려와서 너도나도 한마디씩 하며 오전에 강 장사가 양 구야 사건을 심리한 과정을 이러쿵저러쿵 늘어놓았다.
연향루 사람은 행수부터 심부름꾼까지 이구동성으로 자기들과 눈곱만큼도 상관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조대라는 사람이 양 구야를 꼬셔서 옷을 벗기고 이리저리 뛰어다니게 한 것이라고.
조대를 잡아들였더니, 단번에 인정했다. 양 구야와 예전에 말다툼 몇 번 한 원한이 있어서 전부터 양 구야 망신 주려고 작정했고, 그날 양 구야가 연향루 아래 쭈그리고 있는 걸 보고 가서 꼬셨다고. 옷을 벗고 달리면 아라를 만날 은자를 준다고 했더니, 양 구야가 그 자리에서 옷을 벗고 온 거리를 뛰어다닐 줄은 몰랐다고, 일이 커진 걸 보고 놀라서 달아났다고 했다.
강 장사는 그 자리에서 사건을 마무리하고 연향루 모두를 놓아주고 조대를 잡아 가뒀다. 이 사건은 이렇게 간단히 마무리됐다.
영원은 전혀 흥미 없는 얼굴로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관아에서 또 한 번 벗었다면 재미있었겠지만, 전혀 재미없다! 자자, 내기나 하자. 이 몸이 오늘은 운이 좀 좋은 것 같다. 어쩌면 너희들 바지까지 싹 다 벗길 수도 있을 것 같구나!”
큰일은 아니지만 큰 골칫거리였던 양 구야의 사건을 마무리한 아전과 서반, 소리는 안 그래도 홀가분했는데 영원이 그렇게 말하자 웃음을 터트리며 서둘러 탁자를 깔고 담요, 주사위를 내왔다. 눈 깜짝할 사이에 꾸려진 노름판에서 영원은 한 다리로 의자를 밟고 고래고래 고함치며 주사위를 던졌다.
아라와 행수기녀 등, 목숨 걸린 이 사건에서 무사히 벗어난 사람들은 연향루가 망가진 일은 입에 올리지도 못했다. 망가졌으면 망가진 거지. 어찌 됐든 상대는 황자였다. 설사 양 구야 사건이 없었고, 진왕이 아무런 이유 없이 연향루를 부쉈대도 끽소리 못 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아라는 일단 옆 건물, 류만의 비연루로 가서 목욕하고 단장하며 불길함을 털어냈다. 그러고 바로 주 육소야에게 사람을 보냈다. 위봉낭이 영 칠야의 말을 전한 후로 하루도 안심하고 잠들지 못했다. 눈만 감으면 위봉낭이 그녀의 다리를 잡고 벼랑에서 내던지려고 하는 악몽을 꾸었다.
심부름꾼을 돌려보낸 주육은 아라와 약속한 일을 떠올렸다. 골치가 너무 아팠다. 이리저리 생각하던 주육은 영원 형님을 찾아가 상의하고 방법을 얻어보기로 했다.
관아에서 이 사건의 판결서를 아직 쓰고 있을 때, 주 추밀부사는 벌써 소식을 듣고 호부로 달려갔다. 사황자가 호부의 업무를 맡은 때라, 요즘 대부분 호부에서 공무를 처리했다.
사황자가 말을 다 듣고 눈살을 찌푸리자, 주 추밀부사가 웃음 띠며 입을 열었다.
“사왕야, 깊이 생각할 것 없는 일입니다. 추시 일이 아니더라도, 사왕야는 황상과 귀비 마마의 마음을 헤아리셔야 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왕야는 대왕야와 동복 형제입니다. 부모 마음은 다 같습니다. 왕야가 대왕야를 형님으로 공경하면서 우애 좋게 지내시길 바랍니다.”
“흥!”
사황자가 싸늘하게 비웃었다. 첫째 같은 무지렁이를 공경해? 공경이라는 말이 어울리긴 하고?
“우리가 계속 물고 늘어지면, 사안이야 간단하지만, 황상이 언짢아하실 겁니다. 귀비 마마는 더더욱 마음 아파할 것이고요. 하관의 생각으로는, 만사 황상과 귀비 마마의 마음에 들도록 노력하고, 두 분의 환심을 얻는 것이야말로 중요합니다.”
주 추밀부사는 조심스러운 모습으로 매우 완곡하게 말했다.
“음,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한참 만에 사황자의 안색이 조금 좋아졌다. 내키진 않지만, 그래도 그렇게 대답했다. 주 추밀부사는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 대왕야와 비교하면 사왕야는 그래도 남의 말을 듣는 편이었다.
“하씨 가문을 주시해주세요. 그 장사, 다시는 할 생각 못 하게요!”
사황자는 도저히 화를 삼킬 수가 없어서 이를 악물고 분부했다. 주 추밀부사는 얼굴이 살짝 굳어서 멈칫하다가 나지막이 말했다.
“장사 이야기가 나와서 말입니다. 사왕야, 우리도 장사를 몇 가지 해야겠습니다. 은자 들어갈 곳이 작년보다 배는 늘었습니다.”
사황자는 눈살을 살며시 찌푸렸다. 금명지 그 일 후로 사람이 필요해졌다. 스스로 보호하고 첫째를 대적할 인원을 키워야 했다. 사람을 거두는 데 쓰이는 돈은 그야말로 흐르는 물처럼 든다.
“추시 방이 붙은 후, 화회(花會)와 문회를 몇 번 여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쓸 만한 사람이 있으면 얼른 포섭하고요. 가난한 서생이라면 저택에, 은자에, 돈이 많이 듭니다.”
주 추밀부사는 지금부터 연말까지 예상하는 각항 지출을 나지막이 읊었고, 사황자는 들을수록 짜증이 났다.
어머니에게 드리려고 산 주렴 값 10만 냥도 아직 소육에게 갚지 못했다. 소육도 몇 번이고 재촉했고. 그리고 외조모의 생신도 다가온다. 모친은 해마다 그와 형님이 외조모 생신 선물로 무엇을 준비하는지 지켜본다.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매우 언짢아하고.
휴, 모친 생신 선물을 준비할 때 외조모를 생각하지 못했다. 첫째가 그 난리를 부리는 바람에 그 주렴이 10만 냥이라는 걸 모친이 알게 되었으니, 외조모의 생신 선물도 10만 냥에 맞춰야 했다.
그 20만 냥을 어디에서 구하나.
“당당한 황자가 이렇게까지 궁핍해야 한다니! 정말 우스워 죽겠군!”
사황자가 씩씩대며 불평하는 모습에 주 추밀부사가 웃었다.
“사왕야는 둘째치고 황상도 매일 돈 걱정하시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
사황자는 요 며칠 군비 때문에 골치 아파하는 부황의 모습을 떠올리며 콧방귀를 뀌었다.
“부황은 너무 너그러우시다니까. 나라면 북삼로의 군비를 바로 반으로 줄일 텐데. 영원을 보라고요. 영가에 돈이 넘쳐나는 겁니다. 반으로 줄여도 충분해요!”
“영가에 은자가 많긴 해도……. 군비는, 군비는 그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주 추밀부사가 허허 웃으며 설명했다. 영가의 은자로 북삼로 절반의 군비를 감당할 수 있다면 영씨 일족 무덤의 풀이 사람을 묻을 수 있을 정도로 자랐을 것이다.
“이건 외숙이 방법을 생각하셔야 할 일입니다. 은자를 더 줄일 수 없어요. 전에 말했듯이, 장원의 사람도 너무 적습니다. 연말엔 적어도 배는 늘려야 합니다. 그리고, 무슨 수를 쓰든 50만 냥을 구해오세요. 왕부에 돈 쓸 곳이 너무 많아요.”
“예.”
사왕야의 분부에 주 추밀부사는 입맛이 썼지만, 눈 질끈 감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 돈 때문에 머리가 다 하얗게 셀 정도였다.
예부, 소식을 들은 대황자는 순간 벼락처럼 화를 냈다.
“가서 강환장을 잡아들여라! 내 앞에 끌고 와라! 눈이 삔 것 아닌지 물어봐야겠다! 감히 이 사안을 이리 처리해? 죽고 싶은 것이라더냐?”
“대왕야, 화 푸십시오.”
주유해는 곁에서 얼른 설득 좀 하라고 막료 장(蔣) 선생에게 눈짓했다. 얼굴이 퍼렇게 뜬 장 선생은 치밀어 오르는 기침을 애써 참으며 숨을 내쉬고 나직이 설득했다.
“왕야, 진정하십시오.”
“셋째까지 이렇게 내 체면을 구기는데, 어떻게 침착하란 말이냐! 어? 자네 체면이 아니란 거지?”
대황자는 단번에 장 선생의 말을 막았다. 진작 익숙해진 장 선생은 기운 없이 이어서 말했다.
“이 사안은 얼렁뚱땅 넘길 수 있으면 그게 제일 좋다고, 그제 의논하지 않았습니까.”
“이게 얼렁뚱땅 넘어간 것이냐? 이건 이 몸의 체면을 짓밟은 것이다!”
대황자는 여전히 화를 길길이 냈다. 장 선생은 그가 버럭 고함치는 걸 기다렸다가 아까 하던 말을 계속했다.
“왕야와 사왕야는 동복 형제입니다. 게다가 왕야는 형님이잖습니까. 황상과 귀비 마마는…….”
“그놈이 날 형님 대접한 적은 있고? 안중에 이 형님이 있느냔 말이다!”
대황자의 분노는 아직도 활활 타고 있지만, 장 선생은 평온하게 제 할 말을 했다.
“왕야, 사왕야는 신경 쓸 것 없습니다. 왕야가 고민할 건 황상과 귀비 마마입니다. 제가 몇 번 말씀드렸습니까. 왕야와 사왕야는 황상과 귀비 마마의 총애를 다퉈야 합니다.”
“어머님도 판단이 흐려지셨다! 넷째만 편애하셔! 마음이 기울다 못해 밖으로 튀어나올 지경이다!”
대황자는 더욱 분노해서 버럭버럭 고함쳤고, 장 선생의 눈썹이 꼬였다 풀렸다.
“나는 장자이다! 그놈이 뭐라고!”
“왕야, 적자가 한 분 더 계십니다.”
장 선생의 작지만 냉랭한 목소리에 대황자는 말문이 막혀 숨을 들이마셨다.
“적자는 무슨! 쯧! 부황은 아들로 생각하지도 않는다!”
“왕야, 귀비 마마가 편애하시더라도 황상도 계십니다. 게다가 귀비 마마가 편애한다고 해도 참으셔야 합니다. 참고 마음을 빼앗아 와야 합니다.”
“말을 참 쉽게도 하는군. 빼앗아? 어떻게? 넷째 그 염치 없는 놈과 다투라고? 엉?”
대황자는 분노 가득한 얼굴로 장 선생을 삐딱하게 바라봤다.
“그럼 왕야께서는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장 선생이 지극히 가차 없이 되물었다.
“자네!”
대황자가 얼굴이 새파래져서 장 선생의 코끝을 삿대질했다.
“왕야, 황상과 귀비 마마의 환심을 살 생각이 없으신 듯한데, 그럼 어쩔 작정이십니까?”
장 선생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고개를 든 채 대황자를 직시하며 물었다.
“이게 다 넷째 그 축생 때문이다!”
대황자가 탁자를 내리쳤다.
“왕야께서 사왕야를 어쩔 도리가 있습니까? 황상과 귀비 마마는 갈수록 사왕야를 편애하시는데, 왕야께서 뭘 어쩔 도리가 있습니까? 사왕야는 황상과 귀비 마마의 총애를 등에 업고 왕야를 짓누르고 있습니다. 왕야께서 뭘 어쩔 도리가 있습니까? 어느 날, 사왕야가 왕야의 머리 위에 올라서도 어쩔 도리 없이 당하지 않겠습니까?”
장 선생의 말은 갈수록 각박해졌다. 대왕야는 생으로 가죽을 벗기고 싶은 듯이 그를 노려봤다. 장 선생은 대황자의 분노 가득한 눈빛을 싸늘하게 마주 봤다.
“왕야, 어쩔 작정이십니까?”
“이번 일은 넷째가 온 경성 사람들 앞에서 내 체면을 밟은 것이다. 그런데 아무렇지 않게 넘기고 참으라는 것이냐?”
대황자는 거의 장 선생의 얼굴에 붙을세라 이를 갈며 으르렁거렸다.
“그럼 왕야께선 어쩔 작정이십니까?”
장 선생의 눈빛에 은근히 피로한 기색이 스쳤다.
“이대로 끝낼 수는 없지!”
“그래서 어쩔 작정이십니까?”
장 선생이 또 반복해서 되묻자, 대황자 얼굴의 반쪽이 일그러졌다. 조마조마하며 지켜보던 주유해가 서둘러 나와서 분위기를 풀었다.
“대왕야, 진정하십시오. 선생의 말에도 일리가 있지 않습니까. 대왕야, 일단 앉으십시오. 차를 마시면서 선생이 차분히 생각하도록 기다려 보십시오.”
대황자는 그 김에 의자로 돌아와서 앉다가 곁에 활짝 핀 자줏빛 국화 화분을 휙 걷어찼다.
“양설곤의 증언은 얻었습니까?”
장 선생이 돌아보며 묻자, 주유해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받았습니다. 양설곤은 글을 몰라서 인장만 찍었습니다.”
“궁에 가지고 가게 잘 챙겨두어라!”
대황자가 탁자를 내리치며 버럭 고함쳤다.
“잘 거둬두십시오.”
장 선생은 대황자를 상대하지 않고 주유해를 향해 당부하고 대황자를 돌아봤다.
“지금은 때가 아닙니다. 왕야. 귀한 황자가 허투루 나설 일이 아닙니다. 후환을 남기지 않도록 일격에 목숨을 거둘 수 있을 때 나서야 합니다. 아직은 때가 아닙니다. 이번 안건은 여기서 마무리해야 가장 좋습니다. 강환장은 총명한 사람입니다. 만나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강환장과 진왕부를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이득이 크고 해는 하나도 없습니다.”
“셋째 그 무지렁이를? 그놈을 내가 어디에 쓰라고? 이득이 많고 해가 없어? 자네 정말 판단이 흐려진 모양이군!”
대황자는 원망 가득한 눈빛으로 장 선생을 노려봤다.
대업을 이루는 날, 네 놈을 반드시 가죽을 벗겨 버리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