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179화 (179/463)

179화: 생각은 짧고 낯짝은 두껍고

강환장의 오만함과 무례함에 속을 부글부글 끓이던 형 부윤은 강환장이 관아에서 나가기도 전에 어느새 화가 거의 풀렸다. 양 구야가 옷을 벗고 난동을 피운 그 미친 짓의 전후 사정을 거의 파악했다. 사실 큰일도 아니었다. 다만 지금은 존귀하기 짝이 없는 두 왕야 모두 이 일을 크게 키우려고 하니, 더는 작은 일이 아니게 되었을 뿐이다.

두 왕야가 무슨 패를 쥐고 있을지, 또 어떤 판을 꾸밀지 누가 알까.

진왕야는…….

형 부윤의 입꼬리가 처졌다.

연향루 사람을 잡으려면 주가 육소야와 주가 사야의 승낙에 달렸지. 두 사람이 안 된다고 하면……, 강환장이 탄핵한다면 하라지. 강환장의 탄핵이야 전혀 개의치 않아.

형 부윤이 주 추밀부사에게 소식을 보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가늠하고 있는데, 사환이 연향루 두 행수가 자수한다고 관아에 찾아왔다고 기별했다.

형 부윤은 어리둥절해졌다. 자수한다고 찾아와? 강환장이 연향루 모두를 체포하라고 찾아오자마자, 연향루 행수가 찾아와?

주 추밀부사, 이건 무슨 패인 겁니까?

형 부윤은 이마를 두드렸다.

생각할 것 없지. 이번 안건은 제대로 생각하지 않는 게 상책이지. 휴. 이 안건의 담당이 내가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지. 정말이지 큰 행운이야.

형 부윤은 아라를 대했던 것처럼 예를 갖춰 두 행수를 옥에 거두고 독채를 내어주어 잘 돌볼게 했다.

두 행수를 옥에 가두기도 전에 연향루 심부름꾼 몇이 자수하러 왔다. 형 부윤은 몽땅 옥에 가두고 잘 돌보라고 분부했다.

자수하러 온 사람이 끊임없이 찾아오는 가운데, 주 육소야도 관아에 들어왔다. 아라를 만나러 왔다는 말에 형 부윤은 재빨리 아라를 데리고 나오고 방 한 칸을 비워 두 사람을 만나게 해주었다.

안으로 들어온 아라는 대뜸 주육의 품에 안기며 눈물을 주룩주룩 흘렸다. 아버지와 사황자가 한 말이 있으니, 주육은 느긋한 마음으로 아라를 안고 위로했다.

“며칠 옥에 있었을 뿐, 큰일도 아니지 않으냐. 울지 말아라. 어찌, 형 부윤이 괴롭히는 것이냐?”

“옥에 갇히기까지 했는데 괴롭지 않겠어요? 여기가 어디 사람 살 곳인가요? 행수까지 잡아들였어요. 육소야, 말씀해보세요. 저 이제 죽는 건가요?”

아라는 두려운 듯이 울먹이며 나약한 표정으로 주육을 바라봤다. 정말로 무서웠다. 아까 위봉낭이 칠야의 말을 전하고 갔다. 하라는 심부름은 어찌 됐냐고 했다. 그래도 그 정도 머리는 있어서 그 말이 무슨 말인지는 안다. 이런 때에 그런 말을 묻다니, 제때 일을 마치지 못한 것을 탓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이번 일로 자신을…… 죽여 버릴지도 모른다. 그런데 무섭지 않을 수가!

“그럴 리가. 왜 이렇게까지 겁에 질린 것이야?”

주육도 아라가 두려워하는 걸 눈치챌 정도였다.

“네 모습 좀 보아라. 며칠 갇혀 있기만 하면 된다고, 아무 일 없다고 내가 말하지 않았어.”

“아까, 주단 상행에 숨어 있으라고 할 때도 그렇게 말씀하셨잖아요. 아무 일 없다고, 점포에 며칠 숨어 있으면 된다고. 관아 사람은 절대로 들어와서 잡아가지 못한다고까지 하셨잖아요. 그런데 소야가 멀리 가기도 전에 이렇게 관아 사람에게 붙들려 옥에 들어온걸요.”

아라의 말에 주육은 부끄럽고 화가 나서 얼굴이 시뻘게졌다.

“그건…… 이건…… 그거랑 이거는 다르다!”

“육소야, 저를 버리시면 안 돼요.”

아라는 정말로 슬퍼서 눈물을 흘리며 주육을 바라봤다.

“하지만 육소야는…… 스스로 지키지도 못하는데.”

주육은 아라의 몇 마디 말에 얼굴이 퍼레졌는데 아라는 그저 그를 붙들고 울기만 했다.

“육소야, 나 죽기 싫어요. 제발, 제발 방법을 생각해 주세요. 아니면, 사왕야를 만나게 해주세요. 사왕야는 저 같은 사람을 좋아할 거라고 하셨잖아요. 부탁이에요. 사왕야를 만나면…… 분명, 분명 절 좋아하시게 될 거예요. 제가 그렇게 할 수 있어요.”

“무슨 허튼소리냐. 왕야가 어디 네가 만나고 싶다고 만날 수 있는 분이냐. 일개 기녀가!”

주육이 버럭버럭 화를 냈다.

“제가 만날 수 없는 분이니 소야에게 부탁하는 거잖아요. 저는 기녀지만, 그래도 교방(敎坊)에 이름 올린 기녀예요. 교방이 바로 황상과 황자를 모시는 곳이잖아요. 아직 임무를 받지 못했고, 궁에 들어가 본 적이 없을 뿐, 이치로 따지면 저도 입궁해서 모실 자격이 있어요. 입궁하면 황상과 사왕야를 만날 수 있잖아요. 왜 만나면 안 돼요?”

아라는 울면서 죽어라 주육의 소맷자락을 붙들었다. 주육이 가버리고 갈까 봐 걱정이었다. 그렇게 되면 영원이 시킨 일은 완전히 끝난다. 그 일을 제대로 못 하면, 아마도 죽게 되리라.

“그렇대도 사왕야께서 널 만날 리 없다! 널 만날 리가 있겠느냐!”

“그래서 부탁하는 거잖아요. 육소야, 절 구하지 못하고 지켜주지 못하면서, 사왕야를 만나게 해주는 이런 작은 일도 못 하시는 건가요? 그러고도 수국공부 사람인가요? 소야가 도와주지 못하면 전 죽어요!”

아라는 체면을 내려놓고 죽어라 매달렸다. 생각은 짧지만 낯짝은 두꺼웠다.

“알았다, 알았어. 일단 놓아라.”

주육은 골치가 지끈지끈 아팠다.

“승낙부터 하세요! 맹세하세요, 육소야. 이번만 도와주시면, 제가 소야를 위해 장생(長生) 위패를 모실게요.”

주육은 장생 위패라는 소리에 목이 턱 막혔다.

“놓아라! 일단 놓아라. 알았다, 알았어. 도와주면 될 것 아니야. 이것 놓아라.”

“싫어요. 놓았다가, 달아나면 어쩌라고요. 저 때문에 질린 거 알아요. 손 놓았다가 달아나시면 난 죽어요. 차라리 그냥 목 졸라 죽여주세요. 육소야 손에 죽는 게 다른 사람 손에 죽는 것보다 나아요. 엉엉엉, 육소야. 부탁드려요. 차라리 손수 제 목을 졸라서 죽여주세요.”

죽음이 두려운 아라는 이판사판으로 주육, 이 지푸라기를 죽어라 붙들었다.

“알았다, 알았어! 아니, 그게 아니라! 널 죽이겠다는 게 아니다! 목 집어넣어라!”

주육은 아라에게 붙들린 소매를 놓지 못했을뿐더러, 머리통을 제 품으로 들이미는 아라에게 시달렸다.

“육소야, 나는 못 살아요. 목 졸라 죽이세요. 적어도 육소야 손에 죽으면 눈이라도 감겠죠.”

아라는 막대기에 들러붙은 뱀처럼, 이제 주육의 소매가 아니라 옷깃을 잡고 머리를 품에 대고 비비고 문질렀다. 주육은 땀이 삐질 흘렀다.

“일단 놓아라! 알았다! 그러마! 아이고, 제발 부탁이다, 이것부터 좀 놓아라. 응? 아이고! 물지 말아라! 아라, 이것아! 알았다, 알았어. 물지 말아라!”

“그럼 바로 데리고 가주세요.”

아라는 깨무는 건 멈췄지만, 두 손은 여전히 옷깃을 단단히 붙들고 있었다.

“지금? 넌 지금 옥에 갇혀 있다.”

주육은 온몸에 땀이 주룩주룩 흘렀다.

“여기에 갇혀서 못 나가니까 사왕야를 만나게 해달라는 거잖아요. 사왕야에게 살려달라고 빌려고요. 사왕야가 아니면, 제가 이 옥에서 나갈 수 있겠어요? 육소야 때문에 제가 옥에 갇힌 거잖아요? 이 옥에서 나가려고 사왕야를 만나려고 하는 거고요.”

아라가 줄줄 내뱉은 말은 주육을 성공적으로 혼란스럽게 한 동시에 자기도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게 되었다.

“사왕야를 만난다고 해도 당장은 방법이 없다. 하지만 알았다. 그래, 그래. 맹세하마. 나 주유민이 혹시…….”

“이틀 안에요!”

아라가 다급하게 말을 잘랐다.

“이틀 내에 반드시 사왕야에게 데리고 가 주세요!”

“아라, 이틀 내엔 안 된다. 그래, 그래! 물지 마라! 착하지, 아라. 물지 말아라. 더 물면……. 알았다, 알았어! 이틀이다, 이틀. 나 주유민, 이틀 내에 반드시 사왕야를 만나러 데리고 가주마.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그래, 그래. 내가 멍청이다! 됐지?”

주육이 정말로 맹세하자, 아라는 안도하며 손을 놓고서 두 손으로 부드럽게 주육의 구겨진 옷깃을 펴줬다.

“주 육소야, 역시 소야가 최고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아라가 사왕야를 만나면, 사왕야가 아니라 황상을 봬도 아라 마음엔 육소야가 최고예요.”

“황상을 만날 생각까지 해?”

주육이 하하 웃었다.

“아니요. 사왕야만 한 번 만나면 돼요. 육소야, 사왕야를 만나게 되어서 사왕야의 환심을 사면, 반드시 매일매일 육소야의 좋은 말을 할게요. 육소야, 최고예요!”

주육은 아라의 말에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 주제에 사왕야의 환심을 사려고 하고 거기에 좋은 말까지 하겠다고 생각하다니. 그래, 이렇게 마음 써주는 것도 대단하지.

“일단 돌아가라. 난 다른 일이 있다. 안심해라, 안심해! 이틀 내에 반드시 연향루로 돌려보내고, 사왕야도 만나게 해주마. 안심해라. 난 이만 간다. 걱정하지 말고 있어라. 안심해. 아무런 일 없을 것이다.”

주육은 눈물을 머금고 손을 흔드는 아라와 인사하고 관아에서 나오면서 땀을 연신 훔쳤다.

아라, 이 정도로 이렇게까지 기겁하다니. 참 성가시군.

이틀 안에 아라를 관아에서 꺼내는 건 쉽지. 영원 형님을 찾아가서 방법을 내달라고 하면 쉽지. 하지만 사왕야는 어떻게 만나게 해주나. 사안이 마무리되어야 사왕야가 아라를 만나도 만날 텐데.

주육은 이마를 내리쳤다. 아까는 아라 때문에 혼이 빠졌었다. 사안이 마무리되기 전에 사왕야가 가장 큰 혐의자를 만날 리가 있나. 정말로 만나면 일이 얼마나 커지겠나.

아이고, 이를 어쩐다.

어가 동쪽, 변하 연안에 다루가 얼마나 셀 수 없이 많이 잇달아 있는지 모른다.

어가 쪽의 다루는 특히 더 청아한데, 그중 한 다루 2층 창가 자리에 강녕백 강화원 혼자 앉아서 뭍에 정박한 놀잇배를 따분한 듯 바라보고 있었다.

근래 몇 개월, 이가와 혼인을 맺기 두어 해 전으로 돌아간 듯이 생활이 나날이 궁핍해졌다.

강 백야는 놀잇배에 어렴풋이 보이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며 무미건조하게 차를 홀짝였다. 이가와의 혼사를 가장 반대한 사람은 바로 그였다. 이가 같은 상인 가문과 어찌 혼인을 맺는단 말인가. 다 그 불효자식 때문이었다. 강 백야는 아들 강환장만 떠올리면 이가 갈렸다. 정말 불효자다.

혼인도 그랬다. 그가 반대했는데 아들이 거역했다. 그래, 그건 그렇다고 치자.

강 백야는 이가와 사돈이 된 후의 1년을 떠올리고 마음이 저릿저릿해졌다. 그 1년 동안은 조금은 편하게 살았지! 다 쓰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은자가 부족하진 않았다. 그리고 심부름꾼들도 조금은 세상 물정을 알고 이치에 밝았다. 은자도 있고, 사람도 있고. 매일 청아하고 떠들썩하게 보냈다. 이 변하의 놀잇배도 드디어 다시 한번 타보게 되었다. 그런데 나중에는…….

강 백야는 분통이 울컥울컥 치밀었다. 다 그 불효자 때문이다!

애초에 혼인을 반대할 때는 말을 듣지 않고 죽어도 하겠다더니, 혼인하자마자 사달을 일으켜? 며느리를 해치더니, 이어서 10만 냥 넘는 돈을 고가에 줘? 고가 그 천것 하나 때문에? 그 천것이 조금 자태가 있다고 그놈의 불효자가 눈이 돌아가?

그러더니, 이 불효자가 감히 월전을 각박하게 깎아? 한 달에 겨우 열 냥을 준다고! 열 냥!

몇 달 내내 월전을 고작 열 냥밖에 못 받은 걸 떠올리자 화가 나서 손이 또 달달 떨렸다. 불효자식! 이낭을 기를 돈은 있고, 친아비를 봉양할 돈은 없다니! 이 불효막심한 아들놈을 예부에 고발하고 싶은 심경이었다.

강 백야는 차를 털어 마시고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불효막심한 놈!

“응? 혹시…… 강 백야?”

옆에서 목소리가 들리자, 강화원은 지극히 안 좋은 표정으로 힐끔 바라봤다. 비슷한 연배인 사내가 기품 넘치는 모습으로 서 있었다. 비단 장삼 허리춤엔 옥 장식이 달린 사조(絲絛: 레이스)를 맸고, 머리에 쓴 천 복두 정중앙엔 색이 지극히 고운 양지옥이 번쩍이는 것이, 부귀의 빛이 휘황찬란했다.

귀인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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