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화: 큰 사건의 전주
“자네, 형님을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지? 형님과 비슷하다고?”
영원이 최신을 삐딱하게 바라봤다. 강환장이 형님과 비교된다고? 형님 발가락의 때만도 못할걸!
“침착한 점 하나만 보면 말입니다. 대야와 견줄 만합니다. 노야와 비교해도 크게 떨어지지 않고요.”
최신은 솔직하게 있는 대로 말했다. 이건 정북부후의 법도였다. 영원은 콧방귀 뀌고는 곧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최신의 안목을 믿었다. 큰형님은 어릴 때부터 성숙하고 침착하기로 이름났다. 강환장이 큰형님과 비교될 정도이고, 심지어 아버지와 비교해도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는 건, 보통 대단한 게 아니었다.
“기세가 강하다는 건 무슨 말이지?”
최신이 형용할 표현을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거만하고 권력을 중시하고 안하무인입니다. 그런데 또 잘 감추고 겸손하고 예의 바른 척합니다. 묵 승상과 닮았으면서도 다릅니다.”
“재미있군.”
영원이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다른 건? 특별한 점은 없고?”
“없습니다. 다만 대외적인 일 처리나 행사를 보면 수녕백부가 그렇게까지 어지럽다는 걸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 점이 매우 괴이하고요.”
“아, 그거…….”
영원이 피식 웃었다.
그건 이상하지 않지. 수녕백부의 후원이 혼란한 건, 아마도 자등 산장 그분을 벗어날 수 없어서겠지.
“곡씨 일은 어떻게 되어가?”
영원은 두서가 잡히지 않자 잠시 강환장을 내려놓고 다른 중요한 일을 물었다.
“준비됐습니다. 조가(刁家) 형제에게 맡겼습니다.”
“상고 휘묵을 강화원에게 팔았다는 형제?”
최신이 빙긋이 웃음 지었다.
“예, 칠야께서 상고 휘묵 일을 알려주지 않았다면, 소인, 정말로 인재를 놓칠 뻔했습니다. 이 형제들…….”
최신은 뭐라고 설명하기 힘든 표정을 지었다.
“자네도 속았어?”
영원이 예리하게 묻자, 최신이 머쓱한 듯 대답했다.
“예. 조가 삼형제 중에 둘째는 요절하고, 첫째는 수재 출신에 셋째는……. 에효!”
최신의 한숨에 찬탄이 가득했다.
“젊었을 때 잔재주를 부리다가 수재 명분을 박탈당하고, 첫째까지 연루되었습니다. 첫째는 수재 명분은 지켰는데, 녹봉을 박탈당하고 다시는 벼슬길에 오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형제가 이 길로 들어왔습니다. 겉으로는, 조대는 각 가문의 문회에 참석해서 흥을 돋우고 삽니다. 만사통에 우아하고 고상하기로 유명하지요. 조삼은 경성의 신진 부잣집 자제를 돕는데, 뒤에서 형제가 판을 짜서 부잣집 자제를 속여서 가산을 탕진하게 한 일이 많습니다. 상고 휘묵 일은, 형제가 가볍게 장난친 것으로, 강화원을 속이고 얻은 은자는 경성의 가난한 서생에게 나눠주고 나머지는 모두 대상국사에 시주했습니다. 경성에 꽤 아는 사람이 많은 이야기입니다.”
“정말 인재는 곳곳에 있군!”
영원이 칭찬했다.
“맞습니다. 이 형제는 만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너무 똑똑하고 빈틈이 없습니다. 소인, 예전에 장대에게 썼던 수단으로 애를 먹고 겨우 거뒀습니다.”
조가 형제를 손에 넣은 경과를 떠올린 최신은 저도 모르게 식은땀을 훔쳤다.
“음. 힘으로는 사람을 손에 넣을 수 없지. 두 형제가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 장차 두 사람에게 7품직을 주겠다고 전하게.”
“예!”
최신의 그 ‘예’에 큰 기쁨이 배어 있었다.
그렇게만 되면 두 형제도 염려할 필요가 없어진다. 조대는 그래도 괜찮았다. 앞날에 그리 연연하지 않으니까. 그러나 형님의 앞날을 망친 조삼에게는 가장 크고 무거운 죄책감이었다.
“준비가 다 되었으면 서둘러 움직여. 빠를수록 좋아. 그리고.”
영원이 잠시 말을 멈췄다.
“형제를 종종 쓰도록 해. 두 사람은 경성에 남으라고 하고, 식솔들은 북삼로로 보내. 며칠 안에 출발하도록 하고.”
“예!”
“연향루 대신 희생양이 될 사람은, 이 일은 목이 날아갈 죄니까, 모든 걸 잘 안배하고.”
“마음 푹 놓으십시오.”
최신이 대답하자, 영원은 가도 좋다고 손가락을 까딱였다. 최신이 공손하게 물러나서 측문으로 나갔다.
영원은 휘장 너머로 위봉낭이 문 앞으로 걸어오는 걸 보고는 휘장을 사이에 두고 분부했다.
“연향루 사람들을 모두 관아에 넘겨. 명심해. 진왕부에서 보낸 거다. 두(杜) 행수에게 전해. 이 일은 시킨 사람이 따로 있다고. 연향루와 무관하다고. 누가 주모자인지, 알게 되면 알려주겠다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그리고 아라에게도 이야기해두고. 또 하나, 이 몸이 시킨 일, 어떻게 했는지 물어봐.”
“예!”
위봉낭이 공손히 물러가자, 영원은 휘장 너머에서 잠시 넋을 놓고 있다가 휘장을 걷고 곧장 돌아갔다.
강남 태평부.
문 이야는 서신을 꼼꼼히 두 번 읽고 등불에 태운 다음, 공손히 서 있는 두 사람을 살폈다.
“오기 전에 자네 나리가 뭐라고 분부하셨는가?”
문 이야가 빙그레 웃으며 대수롭지 않은 듯이 묻자, 두 중년 사내 중 나이가 좀더 많아 보이는 자가 웃으며 대답했다.
“아룁니다, 이야. 이야의 일손이 부족할 거라고, 이야의 분부를 무조건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소인 둘을 제외하고, 강남로에 몇 사람 더 있습니다. 마음껏 부리십시오, 이야.”
문 이야는 매우 흡족한 모습이었다.
“음. 두 사람, 며칠 푹 쉬게. 바로 경성으로 돌아가야 하네. 강남로에 자네 둘처럼 뛰어난 자가 있으면 하나 불러주고. 밤에 나갈 일이 있네.”
문 이야의 말에 두 사람은 빙그레 웃었다.
“과찬이십니다. 강남로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우리 형제보다 낫습니다. 소인 바로 가서 불러오겠습니다.”
“그리하게, 그리해.”
문 이야는 기분 좋게 손을 휘저었다.
저녁 무렵, 문 이야는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휘장 안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휘장 밖에 서 있는 중년 사내에게 물었다.
“이름이 무엇인가?”
“아룁니다, 나리. 소인, 조재라고 합니다.”
문밖에 있는 중년 사내는 우직하고 충성스러운 얼굴인데 두 눈이 지나치게 밝고 날카로워서 눈알을 굴리면 충성스러운 느낌이 싹 다 사라졌다.
“인재? 아니면 재물 재?”
“아룁니다, 나리. 재물 재입니다.”
“음. 좋군! 자네 나리 성격다워.”
조재의 표정이 굳었다. 우리 나리의 성격이 재물이라고? 어쩐지 칭찬이 아닌 듯한데?
“슬슬 시간이 되었군. 출발하세.”
하늘이 어둑어둑해지자, 문 이야가 공대와 조재에게 말했다. 공대는 밖으로 나가 마차를 준비했고, 조재는 받침대를 들고나와서 문 이야를 마차에 태우고 공대 곁에 가서 앉았다. 골목을 나간 마차는 곧장 성 밖으로 향했다.
문 이야는 느긋하게 공대 옆에 앉은 조재를 그물창 너머로 바라봤다.
영 칠야, 적어도 사람 쓰는 면에서는 감탄이 나오는군. 아까 그 두 사람은 눈빛이 밝고 침작했지. 반응도 빠르고, 심지는 굳고. 지금 이자는 눈빛만 봐도 생각이 깊은 걸 알 수 있지. 지금도 이렇게 침착한 것 좀 보게. 매우 귀한 일이지. 칠야, 꽤 수완이 있는 것 같군.
성을 나간 뒤, 공대는 내내 채찍을 높이 치켜들고 길을 달렸다. 한 시진 정도 달렸을 때, 마차가 등불이 환히 켜진 큰 장원 앞에서 속도를 줄이고 빙 둘러서 장원 뒤쪽으로 갔다.
“여기가 어딘지 아는가?”
휘장 사이로, 문 이야가 조재에게 물었다.
“계가입니다.”
조재가 시원스럽게 대답하자, 문 이야가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공대는 마차를 계가 장원 뒤로 몰고 고요한 숲을 지나 작은 각문 옆에 세웠다.
“이걸 들고 들어가서 기별을 넣고, 계가 이야를 여기로 모시고 나오게.”
계가 이야는 계가 이방의 적장자, 계 노승상의 친조카로 강남 계씨 가문의 가주였다.
조재는 마차에서 내려 성큼성큼 각문 곁으로 다가갔다. 별 동작을 하는 것 같지 않고 그냥 툭 민 것 같은데 각문이 소리도 없이 열리고, 조재가 재빠르게 장원 안으로 들어갔다.
공대는 겉으론 느긋한 척 속으로는 긴장한 채 마차 위에 서서 귀를 쫑긋 세우고 주변에 집중했다. 문 이야는 마차 안에 다리를 틀고 앉아 눈을 감고 수양했다.
길어야 이각 정도, 두 사람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계가 후원 깊은 곳에서 빠른 걸음으로 달려 나왔다. 공대가 마차를 살짝 두드리자, 문 이야가 눈을 떴다.
그림자가 가까워지고 각문이 안쪽에서 열리자, 이미 마차에서 뛰어내린 공대가 문 이야를 부축했다.
“너희들은 여기에 있어라.”
문 이야는 달빛 아래 산책하는 듯 느긋한 걸음으로 다가가 계 이야를 향해 공수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계 이야는 신중하게 문 이야를 살폈다.
“선생, 성함이…….”
“소생은 이름 없는 필부일 뿐입니다. 영(令) 형의 전갈, 진작 받으셨겠지요?”
“그렇소.”
“그럼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추시는 이미 상황에 돌입했습니다. 이번 추시에서 계가는 아마 별 수확이 없을 겁니다.”
문 이야는 계 이야의 표정을 살폈다. 달빛 아래, 얼굴이 굳은 계 이야의 얼굴엔 별 변화가 없었다.
“계가야말로 이 강남의 진정한 주인이지요.”
“가당치 않소. 말씀 신중히 하시오. 계가로서 감당 못 할 말이오.”
문 이야의 말이 끝나기 전에 계 이야가 그의 말을 무질렀다.
문 이야가 가볍게 헛웃음 치며 쥐새끼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 시제, 진짜입니다.”
계 이야의 안색이 변했고, 문 이야는 다시 웃었다.
“방이 붙으면, 그때 나서 주십시오. 이야.”
계 이야는 매서워진 눈빛으로 문 이야를 빤히 바라봤다. 그가 뭐라고 말하기 전에 문 이야가 손을 저으며 웃었다.
“이야, 안심하십시오. 가장 먼저 나설 사람은 이미 골라놨습니다. 이야는 영 형과 비교하면 역시…….”
문 이야가 허허 웃었다. 희미한 달빛 아래에서도 문 이야의 붉어진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눈앞에 이 옹졸하게 생긴 ‘선생’이 이미 그를 훑어보고 파악했다. 그는 확실히 사촌 형님의 식견과 기개에 미치지 못했다.
“계가에서 가장 먼저 나서게 되면 당쟁이요, 신구원한이 더 쌓이게 되지 않겠습니까.”
문 이야의 말투는 담담했지만, 계 이야는 움찔했다. 어떻게 감히 신구원한이라는 네 글자를 입에 올릴 수 있는 게야.
“가장 먼저 나서는 사람이 있겠지만, 세를 모는 건 계 이야께서 수고해 주셔야 합니다.”
“어느 정도까지 말이오?”
잠시 후, 계 이야가 목을 가다듬으며 물었다. 단호한 사촌 형님의 전갈, 조금 전의 신구원한이라는 말에, 안 그래도 그리 많지 않던 망설임이 사라졌다.
보아하니 이번 일로 동민을 치려는 것이다. 동민은 대황자의 사람이고, 대황자와 사황자의 모친은 모두 주씨, 어느 쪽이 되든 미래의 태후의 성이 주씨면 계가엔 더 큰 어려움이 닥친다. 계가 이번 대 가주에게 그 점은 논의할 필요 없이 공감하는 일이었다.
“크면 클수록 좋습니다. 온 세상 사람이 다 알도록 떠들썩해지면 가장 좋지요. 올해 추시, 강남 서생은 누구나 불평을 품고, 백성은 분노해야 합니다. 안정시킬 수 없을 만큼 큰 분노요.”
“좋소.”
계 이야의 눈빛이 빛났다. 그의 대답을 들은 문 이야는 깊숙이 장읍하고 돌아서서 마차에 올랐다. 공대는 채찍을 치켜들었고, 조대는 마차에 튀어 올랐다.
계 이야는 각문 앞에 서서 뒷걸음치며 마차가 서서히 숲으로 들어가는 걸 보다가 돌아서서 안으로 들어갔다.
태평부와 그리 멀지 않은 청양진. 오동나무 마차가 툭 하고 밀면 쓰러질 것 같은 곡가 작은 마당 앞에 멈춰 서더니 매우 멀끔한 여인이 내렸다. 여인은 말없이 빙긋이 웃더니 콧물을 흘리며 고개를 치켜들고 그녀를 바라보는 아이에게 소당(酥糖: 물엿에 콩가루나 참깻가루를 반복하여 묻혀서 가느다란 실타래 모양으로 만든 사탕류)을 건넸다.
“곡 거인 댁이 어느 댁이냐?”
“바로 여기예요!”
아이는 소당을 받고서 기쁜 듯이 고함치고는 여인이 다시 소당을 달라고 할까 봐 무서운지 돌아서서 달아났다. 여인은 깔끔한 옷을 탁탁 털고서 다가가 문을 두드렸다.
“저기요. 이 댁이 곡 거인 댁입니까?”
“소쇄! 문 열어라! 소쇄! 문 열지 않고 무얼 하냐!”
마당에서 왕 어멈의 목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