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화: 감사할 것 없음
다음 날 조회가 얼마나 떠들썩했는지, 영원은 식견이 넓어진 느낌으로 감탄하며 지켜봤다.
우선 어느 어사가 주 추밀부사가 집안을 다스리지 못해서 아들의 허튼짓을 방종하여 양빈의 아우가 모욕당했다고 주 추밀부사를 탄핵했다. 그 어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른 어사가 튀어나오더니 진왕이 정과 의리가 없이 집안을 돌보지 않고 생모의 아우가 생활이 궁핍하여 거리에서 구걸하는 걸 방임했다고 진왕을 탄핵했다.
그렇게 시작된 난리는 얼마 되지 않아서 더 커졌다. 이쪽에선 주유해가 사적 재산을 감췄다고 탄핵하고, 저쪽에선 주유민이 하도 공사비를 착복하고 묵신이 독직을 방종했다고 탄핵하다가, 그길로 수국공, 주 추밀부사 그리고 백성과 이득을 다툰 대황자, 부하를 종용해 불을 지른 사황자까지 탄핵했다.
황상은 기가 차서 얼굴이 창백해졌고, 숨이 쉬어지지 않아서 그 자리에서 기절해 쓰러질 뻔했다.
이런 난리는 그날 오후 바로 복안 장공주의 별원으로 그대로 전해졌다.
막 뜨락에 당도한 이동은 복안 장공주가 손수 차를 그을리는 걸 보고 놀라서 그 자리에 선 채 잠시 바라봤다. 한참 후에야 장미 덩굴을 지나 회랑으로 들어가서 다시 잠시 서 있다가 복안 장공주의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무슨 일이 생겼나요?”
이동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복안 장공주는 이동을 상대하지 않고 열심히 차를 그을렸다. 그런 다음 차를 갈 준비를 해놓고 이동 쪽으로 밀었다. 이동이 받아들자, 복안 장공주가 등받이에 기대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제 조회에서 첫째랑 넷째가 대놓고 말다툼을 벌였다는군.”
“아.”
이동은 눈꺼풀도 들지 않았다. 그게 뭐 대단하다고. 조정에서 크게 싸운 것보다 격렬하고 흉악한 일이 뒤에 벌어지는걸.
“영원 이놈, 일을 성사하는 건 못 봤는데 일을 키우는 재주는 그야말로 으뜸이네.”
복안 장공주는 눈을 가늘게 떴다가 다시 제대로 뜨고는 코웃음 쳤다.
“영원이 벌인 일인가요?”
이동이 복안 장공주를 바라보자 복안 장공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별것 아닌 일인데, 영원이 부채질해서 큰일이 되었지.”
“달걀이 깨지지 않았으면 파리가 들러붙지도 않았겠죠. 불이 있어야 부채질도 하는 거고요. 대황자와 사황자가 이렇게 쉽게 선동된다면, 본인들도 허점이 많은 거예요.”
이동은 서로 칼을 겨누는 동복 형제에게 조금도 호의를 보이지 않고 가차 없이 불손하게 대답했다.
“시발점이었던 사소한 일도 아마도 영원이 일을 키운 거겠지. 연향루 기녀 아라를 부추겨서 미색으로 양빈 친아우 양설곤을 홀려서 옷을 발가벗고 거리를 활개 치고 다니게 한 거겠지. 영원이 할 만한 일이야.”
이동은 얼떨떨해졌다.
“양설곤이요? 양 구야요?”
그녀는 양 구야를 여러 번 만났었다. 다들 그가 구제불능으로 어리석다고 하고, 강환장은 더더욱 그의 이야기만 나오면 경멸하지만, 그녀는 양 구야에 대한 인상이 줄곧 좋았다. 그는 성격이 매우 좋고 남을 참 잘 이해했다. 한번은 양 구야가 쭈그리고 앉아 어린애와 이야기하는 걸 본 적 있는데, 이각이나 조금도 짜증 내지 않고 놀아주었다. 그리고 그는 다른 사람을 대할 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문지기든 시녀든 허드렛일 하는 어멈과도 웃으며 이야기했다.
물론 그녀가 그를 알게 되었을 땐 진왕이 이미 태자가 된 후였다. 양 구야에게 이런 시절이 있었는지는 알지 못했다.
“양설곤이라는 그 틈에 영원이 파리처럼 들러붙은 거야. 마흔 되어서까지 아직 혼인하지 않은 일을 들고 일어났고, 아라를 이용해서 꼬셨지. 흥! 대단한 놈이야!”
복안 장공주의 안색이 좋지 않았는데 절대로 화난 건 아니었다. 이동은 그녀를 올려다볼 뿐,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복안 장공주가 잠시 침묵하다가 눈을 가늘게 뜨고 말꼬리를 늘이며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눈빛으로 이동을 바라봤다.
“황상이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양설곤 일을 철저히 조사하라고 명하셨대. 첫째가 자기 사람을 열심히 추천했는데, 넷째가…….”
복안 장공주가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이번엔 머리를 좀 썼어. 주택헌이 나서서 진왕의 장사, 강환장이 이 일을 조사하는 게 좋겠다고 추천했어.”
이동의 손이 떨리더니, 은수저에 담긴 찻가루를 찻잔 밖으로 쏟고 말았다. 그 모습에 복안 장공주가 싱긋 웃었다.
“난 네가 나보다 더 잘 수련한 줄 알았더니. 만사 동요하지 않는 줄 알았어.”
이동은 일어서서 젖은 수건으로 찻가루를 닦았다.
“주택헌이 왜 강환장을 추천했나요?”
복안 장공주는 이동의 추태에 몹시 흡족한 듯 생글생글 웃었다.
“생각해 봤어?”
“제가 이런 일이 있을지 어떻게 알고요.”
이동은 쓴웃음을 지었다. 강환장, 결국 이번에도 두각을 드러내는구나.
“예상하지 못했어?”
복안 장공주가 눈알을 굴렸다.
“음. 정말 못한 것 같네. 아무리 희한할 정도로 노숙하다고 해도 어쨌든, 어리니까. 게다가 네가 아무리 똑똑해도 아무래도 식견에 한계가 있겠지. 이런 일은……. 휴. 난 또 네가 예상했을 줄 알았지.”
“전 아둔한 사람이에요. 아시잖아요.”
“넌 아둔하지 않아.”
복안 장공주가 고개를 갸웃하고 이동을 바라봤다.
“그럼 말해 봐. 강환장이 이번 임무를 망치고 진왕을 연루할 것 같니, 아니면 깔끔하게 끝내고 황상 앞에 얼굴을 알릴 것 같니.”
“아마도 얼굴을 알릴 거예요. 강환장은 정말로 재능이 있는 사람이에요.”
이동의 진심이었다.
“음. 이번 일은 분명 깔끔하게 끝낼 거야. 다만, 그건 강환장의 능력이 아니야. 그건…….”
복안 장공주의 목소리가 비웃음으로 바뀌었다.
“영원 그 파리가, 강환장이 이 일을 깔끔하게 끝내도록 할 테니까. 고얀 놈! 지난번에 불을 냈을 때 가만히 뒀더니 갈수록 간이 커지네. 이번에도 내가 벌인 일에 앉아서 제 볼일을 보려고 하다니! 흥!”
이동은 얼떨떨해졌다.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못 알아듣겠지?”
복안 장공주는 찻잔을 들어 천천히 홀짝이다가 망연한 이동을 향해 물었다. 이동이 고개를 끄덕였다. 중간에 이동이 모르는 일이 굽이굽이 있어서, 알아듣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문도가 영원을 만났지? 이가와 영가가 결탁했니?”
복안 장공주의 화제가 확 바뀌자, 이동은 가슴이 철렁했다.
“문 이야가 영 칠야를 만나긴 했을 거예요. 하지만 이가는 영가와 결탁하지 않았어요.”
“결탁하지 않아? 흥. 넌 결탁이 무슨 의례를 치르고 피를 주고받는 건 줄 아니? 길이 같고 뜻이 맞고, 너와 나 모두 원하면 그게 결탁이야. 이가는 영가와 이익이 일치해. 문도가 영원을 만난 건, 아마도 너와 네 어머니, 그리고 이신 모르게 간 거겠지. 다녀온 다음엔…….”
복안 장공주가 이동을 삐딱하게 바라봤다.
“진작 알고 있었지?”
이동의 표정이 굳었다. 너무 직접적인 말이었다. 그녀가 대답하기 전에 장공주가 계속 말했다.
“너희 이가, 항상 내 예상을 벗어나는구나. 수시로 대단하게 여기게 해.”
“그 일은…….”
이동이 머쓱해서 해명하려고 하는데, 복안 장공주가 말할 필요 없다고 손을 저었다.
“네가 하는 일, 네 어머니가 하는 일, 장담하는데, 이신은 정말로 모르고 있을 거야. 아무래도 양자니까. 물론, 겉으로는 과거 준비해야 하니까 방해하지 말자는 명분이겠지.”
이동의 머쓱함이 얼굴에 드러났다. 장공주도 참, 어쩌면 이렇게 말을 가차 없이 대놓고 하지. 조금 완곡하게 하면 안 되나.
“이번 일에서 이가는 세도가의 기상이 느껴지네. 위험을 무릅쓰는 일을 이토록 태연하고 담담하게 하다니.”
복안 장공주가 감탄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주택헌이 강환장을 추천한 일 하나로, 이렇게 많은 걸 생각해 내신 거예요?”
이동은 정말로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가해서 심심해서 그런가, 생각을 너무 잘하는 거 아닌가.
복안 장공주가 까르르 웃었다.
“그건 문도가 강남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네가 몰라서 하는 소리야. 그걸 알면, 너도 나처럼 생각할 거야. 그런데 넌 모르지만, 영원은 알지. 문도, 이놈!”
복안 장공주는 무슨 기분인지 모를 얼굴이었다.
“아버지가 계실 때, 문가를 뿌리 뽑으려고 생각하셨었는데 문가에 식솔이 너무 단출해서 손을 대지 않으셨어. 그것 봐. 문도까지 내려오니, 문가에 혼자 남아서도 이렇잖아. 황상이 눈이 삐었었지”
복안 장공주는 비아냥거리는 표정이었다.
“문가가 왜요?”
이동은 가슴이 철렁했다.
“문가는 꽤 재미있어. 문도의 증조부터 문도까지, 문가 사람은 다 똑같아. 큰일을 하려는 일념뿐이지. 돈, 명예, 이익, 자손이 아니라, 큰일을 하려고 몸이 부서지는 것도 마다하지 않아. 그들은 큰일을 해내는 그 과정을 갈망해. 일이 끝나면 툭툭 털고 사라져. 툭툭 털고 죽는대도 개의치 않지.”
이동은 너무 놀라서 무심결에 찻잔으로 입을 가리며 감정을 감췄다.
“일은 원래 클수록 좋지. 예를 들면 반역 같은 거.”
이동은 조금 전에 머금은 차를 온 치맛자락에 내뿜었다. 복안 장공주가 배를 잡고 그녀를 바라봤다.
“오늘 왜 그러니? 다른 날보다 잘 못 버틴다?”
“장공주! 지금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손수건으로 치맛자락을 닦는 이동의 손이 다 떨렸다. 문도는 이가의 막료, 이가의 사람이었다.
반역이라니?
복안 장공주가 다리를 흔들었다.
“사실이야.
문도가 날 만나러 온 날, 그 두 눈빛, 밤에 늑대를 보는 것 같았어. 문가의 마지막 후손이 선조와 닮은 걸 알았지. 다 똑같은 물건이야! 그래서 영원을 만나서 이가 대신 결탁할 걸 알았지.”
이동은 치마를 깨끗이 닦고 다시 차를 내렸다.
“보아하니, 영원이 일단 너희 이가에 이득을 주려는 모양이야. 강환장을 끌어올려 주는 건 강남 쪽 때문이겠지. 내가 사람이 부족해서 경성밖에 신경 쓰지 못하지만 않았다면…….”
장공주의 목소리에 유감이 가득했다.
“문도가 강남에서 뭘 하고 있는지 알았을 텐데. 그럼 다 쉬워졌을 거야. 하지만 영원과 문도가 뭘 계획하는지, 무슨 수를 쓰려는 건지 몰라도, 강남 일이 끝나고 나면 이가와 강가는 철저히 틀어져서 원수가 될 거야.”
“문 이야가 장공주의 명을 받고 강남에 간 거라서, 어머니는 남쪽의 모든 돈과 사람을 문 이야에게 넘겼어요. 마음대로 조달할 수 있도록요. 게다가 수행하는 호위, 관사들에게 모든 걸 문 이야의 분부를 따르라고 지시했어요.”
이동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문 이야가 떠나기 전에, 중간에 소식을 하나도 전하지 않을 거라고 어머니께 말하고 갔어요.”
복안 장공주가 빙그레 웃으며 이동을 바라봤다.
“나한테 해명할 것 없어. 강남 일은, 문도가 네 어머니에게 말하지 않을 거고, 너에게는 더더욱 말하지 않을 거야. 가기 전에 말하지 않았으니, 중간에도 말하지 않겠지. 내가 시킨 일은, 너와 네 어머니는 모르는 게 좋아. 그 점을 문도도 잘 알고 있고.”
“네.”
이동이 안도하는 마음을 전혀 감추지 않자, 장공주가 웃음을 터트렸다.
“왜 날 무서워해. 난 여기에 갇혀서 한가롭게 지내는 쓸모없는 사람인데. 내가 너를 뭘 어쩔 수 있겠니.”
“어쩔까 봐 무서운 게 아니라, 장공주가 다칠까 봐 두려워서 그래요.”
복안 장공주의 얼굴이 굳더니 금세 화제를 돌렸다.
“영원이 큰 도움을 준 거지만, 고마워할 것 없어.”
“네?”
이동이 의아한 듯 쳐다보자, 장공주가 이동을 노려봤다.
“생각을 좀 해! 너랑 강환장, 신혼부부가 잠깐 틀어진 일은 큰일도 아니야. 적어도 세상 사람 눈엔 그래. 다들 잘 지내라고 타이르는 법은 있어도 헤어지라고 타이르진 않아. 남의 혼사를 망치는 건 부모 죽인 원수와 같다는데, 영원은 세상 이치를 거스르려 하고 있어. 굳이 너의 혼사를 망치려고 하는데, 그를 지기로 생각하진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