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173화 (173/463)

173화: 큰 쪽으로 고르기

영원은 돌아서서 대영에게 분부했다.

“진왕부에 사람 하나 보내라. 아라가 상경 주단에 있단다.”

양 구야를 끌고 진왕부로 돌아가던 진왕은 가는 길에 분노로 인해서 치밀었던 용기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왕부 문 앞에서 말에서 내린 진왕은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강환장에게 나직이 말했다.

“전에 자네가 그랬지, 그 연향루에 묵 승상가 소칠, 정북후부 칠야, 그리고…….”

진왕은 가장 기피하는 수국공부 이야기는 얼버무렸다.

“아까…….”

진왕의 우물거리는 말투에는 후회가 가득했다.

아까는 너무 충동적이었어. 아무래도 큰 사고를 친 것 같은데.

“왕야, 마음 놓으십시오. 아무리 자주 간다고 해도 연향루는 일개 홍루입니다. 묵칠이 어리석다고 해도, 묵 승상은 아닙니다. 그리고 그 칠야는, 아무리 그래도 왕야에게 심하게는 못합니다. 왕야, 지나치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게다가 이 일은 연향루에서 지나친 일을 했습니다. 양 구야는 어쨌든 황친입니다. 감히 이렇게 조롱하다니요. 국법으로도 머리를 칠 죄입니다.”

강환장의 설득에 진왕은 마음이 조금 놓였다.

“생각해 보면…… 외숙의 혼사, 더는 미룰 수 없다. 혼인하면 이토록 황당한 짓은 안 하겠지. 하지만 상대가…….”

진왕은 고민으로 미간이 단단히 좁혀졌다. 세도가 낭자 중에 아내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양 구야가 사환과 함께 목욕하고 옷 갈아입으러 간 다음, 진왕과 강환장이 막 서재로 들어가서 차 반 잔 마시기도 전에 사환이 쪼르륵 들어와 고했다.

“왕야, 아까 문간방에서 기별이 왔습니다. 연향루의 아라 소저가 지금 상경 주단에 있다고 전한 사람이 여럿이랍니다.”

진왕은 멈칫하다가 강환장을 바라봤고, 강환장은 눈살을 찌푸렸다.

“왕야, 따지고 보면 양 구야의 잘못도 있습니다. 소생 생각으로는, 이 일은 크게 키울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상경 주단이 누구 것인지도 모릅니다. 괜히 일을 키울 것 없습니다. 제 말은 이대로 내버려 둘 순 없지만, 너무 소란을 떨어도 안 됩니다. 차라리 이 소식을 경부 관아에 전하고 그들이 잡아 오도록 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설령 무슨 일이 생긴대도 우리와 상관없으니까요.”

“일리 있는 말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여봐라, 관아에 가서 형 부윤에게 원흉 중 하나인 아라가 상경 주단으로 숨어들었다고 전하고, 사람을 보내 잡으라 해라.”

진왕이 사환에게 분부했다.

형 부윤은 지금 경부 관아에서 두 번째 임기를 보내고 있었다. 이 자리에 든든하게 앉아 있는 건 모두 두루두루 잘 보이고 머리 써서 처세했기 때문이었다.

진왕의 사환이 말을 전하러 오자, 사환이 보는 앞에서 즉시 아전 몇을 불러 모으고는 공손하게 사환도 함께 가자고 청했다. 잘못 찾을 일 없도록 길 안내 받으려는 목적 하나, 또 하나는 사환 앞에서 아라를 잡고, 사환이 직접 돌아가서 보고해야 이 임무가 원만하게 끝나기 때문이었다.

진왕부의 사환은 어리석진 않았지만, 이런 임무는 처음이었고 배운 적도 없었다. 진왕비 가문은 평범한 가문이었고, 진왕비의 두 오라비도 관료 사회에서 벌어지는 암투를 몰랐다. 하물며 종복은 어떻겠는가.

사환은 잠시 생각하다가 그럴싸하다고 생각하고는 싱글벙글 따라가서 정말로 상경 주단에서 아라와 다다를 끌어내는 걸 지켜봤다.

아전 우두머리는 첫째 분부를 듣고 온 것이고, 둘째 관아에서 몇십 년 동안 구르면서 능글맞아져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너무나 잘 알았다. 그는 그 자리에서 보고장을 썼고, 아라 소저가 상경 주단에 있다는 소식을 진왕부에서 와서 알렸고, 진왕부의 사환이 똑똑히 보는 자리에서 아라를 잡았다고 적었다. 그렇게 되면 진왕부에서 아라를 잡아 경부 관아에 들여보낸 것이 된다.

사환은 관아 아전 우두머리가 진왕부와 공을 다투지 않다니, 꽤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싱글벙글 지장을 찍고 보고하러 진왕부로 돌아갔다.

보고장을 받은 형 부윤은 아라와 다다를 옥 안의 독채에 보내고 제대로 모시라고 분부했다. 그러고는 보고장을 들고 서둘러 주 추밀에게 긴밀히 해명하고 사죄하려고 추밀원으로 달려갔다.

상경 주단은 주 소야의 모친, 주 추밀부사 부인 화(華)씨의 혼수 점포였다. 진왕은 모르겠지만, 형 부윤은 똑똑히 아는 일이었다. 그래서 서둘러야 했다. 적어도 상경 주단에서 보고하러 갈 때와 비슷하게라도 도착해서 제대로 해명하고 책임을 떠넘겨야 했다.

몇십 년 동안 관리 생활을 한 주 추밀은 온화하게 형 부윤을 배웅하고 바로 주육을 찾아오라고 사람을 보냈다.

이 고얀 아들놈이 또 사고를 쳤다고 생각하면서.

사황자는 주 귀비 궁에서 알랑거리며 이야기 중이었고, 주육은 선덕문 앞에서 주저하고 있었다. 궁 안으로 사황자를 찾으러 갈 용기는 없어서 선덕문 맞은편에 있는 다루에서 지키며 사황자가 나타나길 기다렸다.

사황자가 나타나기 전, 상경 주단에 남겨두었던 사환이 찾아왔다. 진왕부 사람이 아전을 데리고 상경 주단에 쳐들어와서 아라를 끌고 갔다는 말에 주육은 펄쩍 뛰며 사환의 뺨을 때렸다.

“쓸모없는 것! 사람 하나도 제대로 못 지켜! 진왕이 뭐라고! 관아가 뭐라고! 응? 잠깐, 칠야가 갔느냐?”

사환이 얼굴을 부여잡고 울먹거렸다.

“아닙니다. 그냥 아전이었습니다. 한 무리 아전이요.”

“다 아전인데 뭐가 두려워서 그랬어!”

주육의 침이 사환의 얼굴에 다 튀었다.

사왕야를 더 기다릴 때가 아니야. 얼른 영원 형님을 만나야겠다. 아라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얼굴을 어떻게 들고 다니나. 영원 형님을 찾아서, 일단 아라를 데리고 나오고 보자!

주육이 곧장 경부 관아로 달려갔지만, 영원은 관아에 없었고 주육은 다급해서 땀이 주룩 흘렀다. 곧바로 정북후부로 달려갔는데 그곳에도 없었고, 주육이 영원을 찾아내기 전에 주 추밀부사의 사환이 먼저 주육을 찾아내서 어서 부친을 만나러 가라는 명을 전했다.

주육은 안 갈 수가 없어서 말고삐를 쥐고 천천히 달려가면서 사환을 붙들고 아버지가 부르는 이유를 물었다. 형 부윤이 뭐라고 했는지, 아버지의 안색은 어떤지. 가는 내내 묻고 들었고, 추밀원 앞에 당도했을 때 대충 감이 잡혔다.

주육은 문에 딱 붙어서 아버지 주 추밀부사의 방으로 들어가서는 고분고분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곁에 서 있다가 관리들이 나간 후에 다가가서 예를 갖췄다.

“진왕의 외숙 일, 대체 어찌 된 것이냐?”

주 추밀부사의 말은 처음엔 그래도 괜찮았는데 뒤로 갈수록 매서워졌다.

“저랑은 눈곱만큼도 상관없는 일입니다!”

주육은 너무나 억울하고 억울했다. 정말로 억울한 상황이 맞고.

“아침 일찍부터 관아에서 바쁘게 일했습니다. 양 구야가 또 미친 짓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제야 나갔습니다. 도착했을 땐, 연향루는 이미 엉망이고, 맞을 사람도 다 맞고, 도망갈 사람은 다 도망가고 없었습니다. 그런데 저랑 무슨 상관입니까?”

“음.”

안 그래도 별로 매섭지 않던 주 추밀부사의 안색이 훨씬 누그러졌다. 이미 알아봤는데, 아들은 분명 관아에 줄곧 있었고, 연향루에서 난리가 난 후에야 관아에서 나갔다. 아들이 시킨 일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지!

“그럼 아라냐? 사고만 치는 천것이구나!”

주 추밀부사는 혐오스러운 표정이었다.

“아라도 아닙니다.”

주육이 조심스럽게 해명했다.

아라가 책임지게 할 수는 없지. 체면은 어쩌라고. 게다가 원래 아라 탓이 아니잖아.

“따지고 보면 제 잘못입니다.”

제 부친을 십여 년 겪어온 주육은 그를 노련하게 다룰 줄 알았다.

“음?”

주 추밀부사는 순간 눈살을 찌푸렸다. 주육은 억울해하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정말 저를 탓할 순 없는 일입니다. 양 구야에 관해서 한번 알아보십시오. 어떤 물건인지 금세 아실 겁니다. 홀딱 벗고 거리를 달린 것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예쁜 여인만 보면 벗고 달린답니다. 아버지도 아시겠지만, 대체 무슨 일인지 갑자기 옷을 벗더니 온 거리를 달리고는 연향루 앞에 서서 올라가서 아라를 만나겠다고 했답니다. 이 일은…… 휴.”

주육은 짙은 후회 가득한 표정이었다.

“다 아들 탓입니다! 아들이 화를 불렀습니다.”

“본론!”

주 추밀부사가 버럭 고함쳤다.

“예. 얼마 전 일입니다. 다 제가 오지랖을 부린 탓이지요. 양 구야가 마흔이 다 되도록 매일 미친 짓 하며 인간 같지 않게 굴길래 그런 것입니다. 양가의 독자 아닙니까. 도저히 두고 볼 수가 없어서 고모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양 구야는 진왕의 친외숙인데 어째서 외숙의 아내를 찾아줄 생각을 하지 않느냐고요. 아내가 있으면 매일 저러지는 않을 것 아니냐고요. 게다가 마흔인데, 얼른 혼인해야지, 대가 끊기지 않겠습니까. 저는 마음이 약해져서 오지랖 부리며 고모님께 한마디 드렸을 뿐입니다.”

주 추밀부사의 좁아진 미간이 풀어지고, 화난 기색도 사그라졌다. 그도 아는 일이었다. 소육이 오지랖을 부리긴 했지만, 다 양씨 가문을 위한 일이었거늘!

“고모님 성격을 아버지가 가장 잘 아시잖습니까. 원칙에 벗어나는 일을 가장 용납하지 못하는 분입니다. 예법을 가장 따지시고요. 그래서 고모님이…….”

“나도 아는 일이다. 그래서, 그 일로 삼왕야가 널 미워한단 말이냐? 삼왕야는 온화한 분이다. 그렇게까지 하겠느냐.”

주 추밀부사가 주육의 말을 잘랐다. 주육은 더 난처해지고 억울한 얼굴로 아비를 올려다봤다.

“아버지, 삼왕야가 무슨 배짱이 있어서 제게 구정물을 뿌리겠습니까? 아버지, 잊으셨습니까? 황상이 대왕야를 양 구야의 혼사를 감독할 사람으로 보냈습니다. 대왕야가…… 이런 사소한 일을 상관할 리가 있습니까. 그건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리고 그 불, 그전에 있던 거래…….”

주육의 목소리가 갈수록 작아졌다.

“아버지, 말씀드리지 못했지만, 근래 밤마다 악몽을 꿉니다. 대왕야가 칼을 들고 절 죽이는 꿈을요.”

“음.”

주 추밀부사는 주육을 토닥이며 옆으로 와서 앉으라고 눈짓했다. 그러고는 대견하고 기특한 듯 아들을 바라봤다.

“네가 드디어, 드디어 철이 들었구나. 생각도 트였고. 이번 일로 여기까지 내다보고, 이렇게까지 생각하다니. 잘했다! 아주 잘했어! 드디어 생각이 트였구나.”

“아버지도 참.”

주육은 아비의 애틋하기 짝이 없고 기특해하기 짝이 없는 눈빛에 머쓱해졌다. 다 영원 형님의 가르침 덕인데.

“말해 보아라. 이번 일을 어쩔 셈이냐?”

주 추밀부사는 대견한 마음으로 아들을 시험하기 시작했다.

“제 생각엔…….”

주육은 애써 열심히 고민하는 척을 하며 말을 끌었다.

“이 일은…… 아무래도 이게 끝이 아닐 듯합니다. 아버지도 아시다시피 저는 어리석습니다. 그래서 일단 사왕야를 찾아가 말씀드리고, 사왕야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알아볼 생각입니다. 그리고 제 생각엔 아라가…… 아라는 죽으면 안 됩니다.”

주 추밀부사는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 생각을 하다니, 훌륭하다! 일단 사왕야의 생각을 듣는다, 이 점이 아주 좋다. 명심해라.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기든 일단 사왕야의 생각을 짐작해야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사왕야의 뜻을 거역해선 안 돼.”

“예.”

주육이 얼른 대답했다. 아버지의 말에 지극히 찬성했다.

“두 번째, 아라는 죽으면 안 된다. 아라가 죽으면,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뒤집어씌우고 싶은 대로 뒤집어씌우면 그만이다. 이 일은 네가 신경 쓸 것 없다. 내가 이미 명령했다. 너는 기회를 봐서 이 일은 연향루와 아무런 상관없는 일이라고 끝까지 버티라고 전해라.”

주 추밀부사가 샛눈을 뜨고 하는 말에 주육은 매우 기뻐하며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건…….”

주 추밀부사는 한참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일단 사왕야를 찾아가라. 사왕야에게 보고하고, 사왕야의 생각이 어떤지 들어 보아라. 돌아오면 안채 서재로 찾아와라. 선생들의 의견을 들으며 일을 도모하자. 앞으로…… 너도 슬슬 배울 때가 되었다. 또 하나, 명심해라. 입조심해야 한다. 안채 서재에서 한 말은 단 한 글자도 밖으로 새선 안 된다. 아무에게도 안 된다. 사왕야도 안 된다. 알아들었느냐?”

“예.”

주육이 재빠르게 대답했다.

“그럼 전 관아부터 가보겠습니다. 영 칠야를 만나러 간다고 하면 됩니다. 관아에서 나와서 사왕야를 뵈러 가겠습니다. 사왕야가 고모님 궁에서 나올 때가 되었을 겁니다.”

“음. 가 보아라. 진중하게 움직이고! 너도 이제 어리지 않다.”

주 추밀부사는 갑자기 성장한 아들이 애틋하고 또 걱정되는 듯 한마디 했다. 주육은 대답하면서 밖으로 달려나갔다.

“알았습니다. 다 알았습니다.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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