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172화 (172/463)

172화: 영리해진 아라

아라는 십여 년 동안 배워온, 울면서도 요염해 보이는 자태를 모두 동원했다. 그렇게 훌쩍훌쩍 울면서, 돌아서라고 다다를 붙잡았다.

“육소야,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번 뵈었으니…… 아라는…… 이미 충분해요. 육소야, 잘 지내세요. 다음 생이 있으면 아라가 다시……. 다다, 가자.”

아라는 가자고 하면서 걸음을 떼지 못했다. 눈이 떨어지지 않은 듯 미련 많고 정이 뚝뚝 떨어지는 모습으로 주 육소야를 바라봤다.

주육은 그녀의 우는 모습, 그녀의 말에 가슴이 산산조각이 나는 듯했다. 후다닥 말에서 내려 다가가 아라를 품에 안았다.

“우리 아라, 대체 무슨 일이냐. 무슨 말이야. 죽느니 사느니, 무슨 소리냐. 왜 여기에 온 것이야? 무슨 일이야?”

아라는 주육의 품에 안겨서 애간장이 끊어질 듯 훌쩍이느라 말도 못 했다. 주 육소야는 아라를 안고 어르고 달래다가 할 수 없이 다다를 돌아보며 무슨 일인지 물었다.

아무리 그래도 다다도 어릴 때부터 환락가에서 배운 몸, 자기네 소저가 무슨 생각인지는 몰라도, 소저가 노래를 부른 이상 자신도 징도 치고 북도 쳐야 했다. 그렇게 해서 틀린 적이 한 번도 없었고. 다다도 덩달아 눈물을 그렁그렁, 가련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 아침부터 양 구야가 또 왔어요. 소저가 너무나 질려서, 저더러 쫓아내라고 하셨어요. 그런다고 쫓아낼 수 있겠어요? 말로 해선 안 되니까, 홀딱 벗고 거리를 뛰어다니면 소저가 차를 대접한다고 했죠. 농담이잖아요. 육소야, 말씀 좀 해보세요. 누가 차 한 잔 때문에 벌거벗고 거리를 뛰겠어요. 그런데 웬걸…….”

“정말로 벗었어? 뛰었어?”

주 육소야는 순간 흥분해서 두 눈을 둥그렇게 떴다. 아이고, 이렇게 재미있는 일을 놓치다니!

다다가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네! 소저가 기겁해서 기절했어요. 저도 너무 놀랐고요. 행수 어른도 놀라고요. 양 구야가 미쳤다고요. 그런데 나중에 진왕야가 오셨어요. 사람이 잔뜩 왔고요. 저희를 죽인다고…….”

다다는 아라를 힐끔 보며 덩달아 엉엉 울기 시작했다.

“너희와 개뿔 무슨 상관이라고? 양 구야 그 진창 같은 놈이 미친 짓을 한 게 너희와 무슨 상관이라고?”

주 육소야는 진왕을 안중에 둔 적이 없었다. 게다가 아라와 상관없는 일이 맞지 않나. 양와우가 아라의 미색에 혹해서 매일 들러붙는 바람에 자기도 못 견디겠는데. 오늘 옷을 벗고 거리를 뛰어다니는 난리를 일으킨 것이 아라와 무슨 상관이라고. 진왕이 아라가 기녀라고 괴롭히는 것이지!

쯧. 아라 같은 천민이나 괴롭힐 줄 알지!

“우리는 개나 고양이 같은 존재예요. 붙들려 간대도 뭘 어쩔 수 있겠어요.”

아라는 주육 품에서 일어나 그렁그렁 가련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불평도 없어요. 그냥 죽기 전에 소야 한번 뵙고 싶었어요. 육소야가 저에게 이렇게 잘해주셨는데, 아라는 다음 생에서나…….”

아라는 우느라 말을 잇지 못했다.

“주 육소야와 작별했으니 이제 죽으러 갈 거예요. 아라를 잊으세요. 슬퍼하시지도 말고요. 절대로 절 위해 나서지도 마세요. 상대는 진왕이에요. 황손이에요. 아무리 육소야라고 해도…… 뭘 어쩔 수 있겠어요. 한 사람은 주군, 한 사람은 신하인 걸요. 다 아라의 잘못이에요.”

아라는 작별이라고 말하면서 주육의 손을 꼭 붙들고 놓지 않고서 훌쩍훌쩍 울면서 가슴에 얼굴을 비볐다.

“울지마라, 울지 마. 이건 네 잘못이 아니다. 죽긴 왜 죽어. 진왕이 무슨 주군이냐. 개소리! 겁먹을 것 없다, 없어. 일단 돌아가라. 진왕은? 아직 연향루에 있느냐?”

주육이 다다를 돌아보자, 다다가 고개를 저었다.

“몰라요. 우린 도망쳐 나왔거든요. 너무 놀랐어요.”

“가보고 오너라.”

주육이 사환에게 명령하고 아라를 안고서 몇 걸음 떼다가 다시 사환에게 마차를 불러오라고 명했다. 사환이 마차를 불러오자, 다다가 아라를 부축해서 마차에 올라탔다. 얼마 가지 않아서, 알아보러 간 사환이 돌아왔다.

“육소야, 진왕이 막 떠났습니다. 연향루는 때려 부숴서 엉망이 되었습니다. 진왕이 사람들을 잡아갔답니다. 그리고 관아에서 연향루 모두를 체포하라고 명을 내렸답니다. 때려죽인다고요.”

주육의 사환은 주육과 마찬가지로 조정 율법 같은 건 잘 알지 못했다.

“뭐라고?”

연향루가 엉망이 되었다는 말을 들은 주육은 펄쩍 뛰었다. 진왕, 미친 거 아닌가?

마차 안에서 아라의 요염하고 구슬픈 울음소리가 울렸다.

“육소야, 소야의 발목을 잡으면 안 돼요. 얼른 저를 보내주세요. 죽으러 갈게요. 무슨 일이 있어도 소야를 연루할 순 없어요. 육소야가 어떻게 진왕의 상대가 되겠어요. 상대는 용자봉손(龍子鳳孫)이에요. 육소야, 제가 죽으러 갈게요.

육소야, 아니면 묵 칠소야에게 데리고 가주세요. 칠소야는 분명…….”

다다가 머리를 내밀었다. 정신을 차린 그녀는 속으로 계속 위봉낭을 타박했다. 왜 우리 소저를 육소야에게 데리고 온 거야. 칠소야를 찾아가야지. 칠소야가 우리 소저한테 더 잘해주시는데.

“허튼소리!”

주육이 다다의 말에 자극받지 않을 수가 있나.

무슨 뜻이냐. 칠소야는 지켜줄 수 있고, 나는 안 된다는 말이냐? 어째서 하나같이 나를 무시하는 것이야. 내가 묵칠보다 잘났는데! 할머님이 세상을 떠나면 나도 후작가 세자이거늘……. 하나같이 안목이 없기는!

“안심해라. 그자가 무슨 용자…… 그가 뭐라고! 이 몸은 한 번도 그를 안중에 둔 적이 없다. 네 나리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직접 지킨다! 어쩔 수 있는지 두고 보자!”

주육이 목을 빳빳하게 세웠다. 솔직한 말이었다. 정말로 진왕을 안중에 둔 적이 없었다.

아라는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드디어 첫 고비를 무사히 지나갈 수 있게 되었다.

관아에서 주사위 놀이를 하다가 아라가 사고 쳤다는 소식을 들은 영원은 잠시 생각하다가 위봉낭에게 지켜보기만 하라고 분부했다.

진왕이 죽어가는 심부름꾼들을 관아에 보냈을 때, 영원은 그제야 그런 일이 터졌다는 걸 알게 된 척하며 툴툴 주사위를 거두고는 아역(衙役)들과 반두, 서판(書辦) 등을 불렀다.

“나는 도와주러 온 거지 주재하러 온 것이 아니다. 너희들은 주재할 사람에게 가라.”

영원에게 신세를 잔뜩 진 반두와 서판인지라 영원에게 법이 그렇지 않다고 말하기도 어렵고, 영원의 말에 그가 이 일에 얽히고 싶어 하지 않는 걸 바로 알아챘다. 좋은 일도 아니고, 얽히기 싫은 것도 당연하긴 했다.

영원이 경부 관아 측문으로 빠져나가자, 위봉낭이 맞이하며 고했다.

“주 육소야가 아라를 상경 주단 상행으로 보냈습니다.”

영원이 한숨을 내쉬며 위봉낭에게 명했다.

“네가 가 보아라. 휴.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어리석을 수가 있는지.”

아라를 상경 주단 상행에 모셔다 둔 주육은 연향루로 직행했다. 아라 대신 연향루가 무슨 꼴이 되었는지 똑똑히 봐야 했다.

연향루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영원과 마주친 주육은 순간 기댈 곳을 만난 기분이었다.

“형님, 안 그래도 만나러 가려고 했소.”

“나도 널 찾고 있었다.”

영원이 말에서 내렸다.

“연향루 일, 들었느냐? 진왕이 심부름꾼 몇을 관아로 보냈다. 아라는 보이지 않는다.”

“아라가 날 찾아왔소!”

주육은 무심결에 가슴을 활짝 폈다.

아라가 겁에 질려서 가장 먼저 나를 찾아온 건 자랑할 일이 맞지!

“음? 아라는 괜찮지? 지금 연향루에서 오는 길인데, 연향루가…… 아이고 엉망이 되었더구나! 대체 무슨 일이냐? 관아에 끌려온 사람들 말이, 네가 양 구야를 홀딱 벗기고 또 거리에서 뛰어다니라고 분부했다고 하던데, 무슨 소리냐. 듣자마자 누가 뒤집어씌우려고 하는구나 했지. 네가 이런 일을 할 리가 없지. 너, 무슨 일로 진왕을 거스른 것이냐.”

영원의 걱정하는 얼굴에 주육이 펄쩍 뛰었다.

“허튼소리! 나와는 조금도 상관없는 일인데! 내가 진왕을 거스르다니? 상대한 적도 없는걸!”

“이 일로 다급하게 널 찾은 것이다. 그 심부름꾼들, 진왕에게 맞아서 거의 죽기 직전이다. 어쩌면 진술만 남기고 그대로 죽을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죽으면, 그 진술은 다시 뒤집을 수가 없다. 그럼 이 일은 네가 양 구야를 벗기고 거리를 뛰어다니게 했다고 끝나는 것이야.”

영원이 고개를 저으며 골치가 아프다는 듯 말을 이었다.

“양 구야는 아무리 그래도 황친이다. 그리고 웃어른이고. 이 일은, 정말 보통 일이 아니다. 내 생각엔, 내가 아무리 궁리해도 방법이 전혀 없다!”

“진왕, 이 망할 놈! 내가 무슨 상관이라고! 내가 뭘 했다고? 관아에 가야겠어. 가서 똑똑히 말해야겠어!”

주육이 아무리 멍청해도 경중은 알았다. 까닭도 없이 양 구야를 벗겨서 거리에서 달리게 했다니, 이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관아에 가서 무얼 하게? 죽어가는 사람과 입씨름이라고 하게? 무슨 소용이 있어서. 진왕을 찾아가서 따져야 한다……. 아니, 그것도 아니지!”

영원은 매우 골치 아픈 모습이었다.

“진왕이 네게 뒤집어씌우기로 작정했는데, 찾아간다고 해도 말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이 일을 어쩌지? 진왕은 황자다! 아니면 황상을 찾아가 보겠느냐? 아니면 고모님? 이 일은…….”

“사왕야를 만나야겠어!”

주육은 이미 방법을 찾았다.

“이 망할 놈! 내가 뭘 잘못했다고? 미쳤나?”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건드린 건 맞지 않냐.”

영원이 느릿느릿 상기시켰다.

“양 구야의 혼사, 네가 고자질한 것 아니냐. 진왕이 이 혼사 때문에 여기저기 퇴짜 맞고 있다고 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황자인데, 까닭도 없이 이렇게 체면이 깎였다. 따지고 보면 다 네가 한 말 때문이지.”

주육은 다급해졌다.

“그게 왜 내 탓인데? 양와우 그놈이 개똥처럼 구린내를 풍기면서 매일 연향루 맞은편에 쭈그리고 있었는데, 형님은 역겹지 않아? 게다가 외숙이 거의 마흔이 되어가는데 아직 혼인하지 않았어. 내가 한마디 한 게 뭐가 어때서? 진왕은 창피하지 않을지 몰라도, 고모님은 창피한걸. 이게 내 탓인가?”

“네 탓이 아니면 누굴 탓하겠냐? 귀비 마마? 사왕야? 대왕야? 지금 보아라, 상대는 널 물었을 뿐만 아니라 연향루도 그 김에 부쉈다. 양 구야가 아라에게 반한 것 때문 아니고 무엇이겠어? 내 말대로 해라. 그냥 고개 한 번 숙이고, 아라를 속량해서 양 구야에게 보내고 제대로 사과하면 어쩌면…….”

영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주육은 화가 나서 힘줄이 불거졌다.

“진왕이 뭐라고! 똑같이 구린내 나는 개똥 같은 것들! 내가 무서워할까? 퉤!”

“쉿!”

영원이 주육의 입을 틀어막고 옆으로 끌어당겼다. 조심스러운 모습으로 주변을 둘러보고는 주육의 입을 막은 손을 뗐다.

“고함은 왜 치는 것이야! 왜 이리 어리석어! 머리를 쓰고 생각 좀 하면 안 되냐?”

“생각할 게 뭐가 있어서! 구린 개똥이다!”

주육의 얼굴과 목이 시뻘게졌다.

영원이 주육의 머리를 내리쳤다.

“이 어리석은 것! 말해 봐라. 진왕의 평소 성질이 어떠하냐? 강하냐?”

“강하긴 개뿔! 성질? 성질을 부릴 수는 있고? 쯧!”

“그래, 평소에 성질을 부리지도 못하지. 그런데 오늘은 별안간 왜 이럴까? 거리에서 사람을 때려죽일 뻔하기까지 했다. 우리 형제가 사흘돌이로 연향루에 들르는 걸 알면서도 이렇게 다 때려 부쉈다. 이 시궁창을 그대로 네 얼굴에 쏟아부었는데, 무슨 용기로 그런 짓을 했겠냐?”

영원이 묻자, 주육은 망연한 표정이었다.

“그렇지. 맞아. 무슨 용기로 그런 짓을 했을까? 형님, 진왕이 무슨 용기로 그런 짓을 했을까?”

영원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고! 생각 좀 해라! 소육! 지금 진왕 뒤에 누가 있는지 왜 생각하지 않는 거냐. 지금 진왕 외숙의 혼사를…….”

주육이 손뼉을 짝 쳤다.

“그래, 맞아! 나도 생각했어! 어쩐지! 이건 강해진 게 아니라…… 이건…… 나 사왕야에게 가야겠어. 지금 진왕은 보복하는 것이지! 그 불 때문에! 나와 무슨 상관이라고. 왜 나한테 보복하는 건데? 제가 뭐라고! 사왕야에게 가야겠어!”

영원은 주육을 놓고 그가 말에 올라타는 걸 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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