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171화 (171/463)

171화: 가장 뒤통수치기 쉬운 사람을 쳐라

양 구야는 연향루를 가리키며 쉴 새 없이 뭐라고 했지만, 주변이 너무 시끄럽고 진왕의 고함이 너무 커서 뭐라고 하는지 아무도 똑똑히 듣지 못했다. 혹은 아예 신경 쓰는 사람이 없다고 해야 옳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강환장이 말에서 내려 양 구야 곁으로 다가가서 물었다.

“아라가…….”

드디어 자기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나타나자, 양 구야는 들뜨고 감격했다.

“아라가 안으로 들여준다고 했다. 아라가 안으로 들여준다고 했다. 나는 괜찮다. 다들 돌아가라, 돌아가!”

강환장은 눈을 부릅뜨고 양 구야를 바라봤다.

“아라가 옷을 벗고 거리를 뛰어다니게 한 것입니까? 구야는 뛰었고요? 그냥 뛰었단 말입니까?”

“은자가 없으니까.”

양 구야는 매우 거북하고 부끄러웠다.

“하지만 아라에 대한 마음은 진심이다. 아라가 하라는 건 다 한다. 내 마음이 제일 진실하다.”

강환장은 기가 차서 뒤로 넘어갈 것 같아서 양 구야를 상대하지 않고 돌아서서 진왕의 말을 잡고 진왕에게 다가갔다. 강환장은 이번 일이 연향루 아라가 한 짓이라는 것을 빠르게 이야기했고, 고개를 살짝 숙이고 듣던 진왕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인간도 아닌 기녀가, 감히 자기 친외숙을 조롱하다니. 감히 이 지경까지 기어오르다니. 감히 이렇게 온 경성 사람이 보는 앞에서 체면을 짓밟다니.

아무리 그래도 나도 황손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받는 사람 중 하나이다. 아무리 초라하다고 해도 일개 기녀가 기어오를 사람은 아니다!

“가라! 가서…… 그 아라를 끌고 내려와라! 장을 쳐라! 나를…… 본왕을 그것이 만만하게 봐? 본왕의 외숙을! 그년을 끌고 내려와서 장을 쳐라! 쳐 죽여라!”

진왕은 눈이 다 시뻘게졌다.

진왕이 당도했을 때, 다다와 아라는 아직 실실 웃으며 구경하고 있었다. 행수기녀는 나름 똑똑한 사람이고, 시끌벅적해진 거리를 보고 아라가 장난한 것을 들었을 때 머리가 윙윙 울렸다. 멍청한 아라, 이번에 멸문지화를 쳤구나!

경험 많고 노련한 행수기녀는 다급하고 초조해졌지만, 정신이 나가진 않았다. 사람을 보내 묵 칠소야, 주 육소야, 그리고 영 칠야를 부르는 동시에 다급하게 연향루 사람에게 지시했다.

“얼른 달아나라. 다들 달아나! 숨어라. 절대로 잘 숨어야 한다! 아라! 다다! 넌 뭘 하는 게냐! 얼른 네 소저를 부축해라. 어서 가! 어딜 가긴…… 가서…… 일단 숨어라!”

다다가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지만, 어디로 가야 하는지 생각할 겨를이 어디 있나. 어디든 괜찮다. 어찌 됐든 연향루에 더는 머무르면 안 된다!

사환, 종복이 진왕의 명을 받고 연향루 문을 부쉈을 때, 연향루 사람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도망치고 없었다.

아라는 다급해서 목소리가 다 변한 행수기녀에게 등 떠밀려 밖으로 나오면서 그제야 자기가 큰 사고를 쳤음을 인식했다.

양 구야가 허구한 날 쭈그리고 있어도, 영 칠야도 어쩌지 못했는데 내가 어쩌다가…… 정말 미쳤었지!

진왕은 정통 황손이고, 몽둥이로 그 자리에서 자신을 때려죽여도 개미 한 마리 짓밟아 죽이는 것과 다름없는데!

정신을 차린 아라는 생각할수록 두려워졌다. 다다를 잡은 채 다리에 힘이 다 풀려 바들바들 떨었다. 다다는 아직도 아무런 자각 없이 아라를 부축하고 투덜투덜, 두리번거리면서 골목 안을 걸었다.

“행수 어르신도 참. 뭘 그리 호들갑이신지. 자기가 좋아서 달린 건데, 우리랑 무슨 상관이라고요. 뭐가 그리 대수라고. 정말이지. 언니, 우리 어디로 가요? 아후, 진짜 짜증 나 죽겠네. 언니, 힘들어요? 걷지도 못하는데 우리 마차 불러요. 아니면 돌아가요. 무슨 일이 있겠어요.”

아라가 힘껏 다다를 밀었다.

“어서 가! 더 늦으면 우린 다 죽어! 어서 가!”

“아? 무슨 일이에요. 무슨 일 났어요? 더 빨리는 못 가요. 언니, 걷지도 못하잖아요.”

“이 멍청한 것아! 걷지 못하는 게 아니라, 난…… 됐어. 어서 가!”

아라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알았어요. 알았어. 어디로 가요? 비연루로 갈까요? 돌아서 가면 되지. 류만 언니한테 가요.”

다다의 무신경에 한숨이 나올 것만 같았다.

“류만 언니까지 죽일 셈이야? 앞으로 가. 어서! 엉엉엉…….”

아라는 잘 걷지도 못하겠고, 어디로 가야 할지도, 방향도 몰랐다. 한참 걷다가 연향루가 다시 저 앞에 보였다. 다음 순간 다다와 함께 끌려가서 몽둥이에 맞아 죽을까 봐 걱정이었다.

“이쪽이다!”

저 앞 골목 쪽에서 위봉낭이 고개를 내밀고 불렀다.

“봉…….”

다다가 기뻐하며 고함치려는데, 갑자기 영리해진 아라가 덥석 입을 틀어막았다.

“입 다물어. 뛰어!”

아라는 그런 기운이 어디에서 났는지 자기도 모르게 치맛자락을 들고서 단숨에 골목 앞까지 달음박질쳤다. 다다가 동동거리며 달려도 도저히 따라잡지 못할 정도였다.

아라가 막 골목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위봉낭이 답삭 들어올려 옆에 있던 마차에 던져 넣었다. 아라가 일어나기도 전에 다다도 위봉낭에게 던져져서 안으로 들어왔다. 얼마나 세게 부딪쳤는지, 눈물이 나오는데도 끽소리도 내지 못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달리던 마차는 금세 멈춰 섰고, 위봉낭이 휘장을 젖히고 고개를 내밀었다. 아라를 위아래로 살펴보니, ‘하’ 소리부터 나왔다.

“제대로 하는 일은 하나도 없으면서, 사고 치는 능력은 대단하구나! 이제 무서운 걸 알았니? 내려!”

아라는 내리기는커녕 오히려 마차 깊숙이 들어갔다.

“언니! 내가 잘못했어요. 제발…….”

“알면 뭐 해! 내려!”

위봉낭은 마차 안에 웅크리고서 미친 듯이 고개를 젓는 아라, 그리고 왜 무서워하는지 모르지만 소저가 무서워하니까 같이 무서워하는 다다를 번갈아 보며 어이없어서 한숨을 내쉬었다.

“살려주려고 내리라는 거야. 마차에서 평생 숨어서 살 거니?”

아라는 고개를 젓는 걸 멈추고 위봉낭을 빤히 바라봤다. 위봉낭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잘 들어. 내려서 앞으로 가. 앞에 푹 파여서 숨을 곳이 있어. 거기에서 숨어서 기다려. 길어야 일각이면 주 육소야가 나타날 거야. 달려가. 그러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알려줄 필요 없겠지? 명심해. 며칠은 무슨 일이 있어도 육소야 곁에 달라붙어 있어. 육소야가 무슨 말을 하든, 어쨌든 한 발짝도 떨어지지 마. 떨어지면…….”

위봉낭이 말꼬리를 늘였다.

“어떻게 될지,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알리라 믿는다. 그렇지? 어떻게 하면 곁에 있을 수 있는지는 묻지 마! 알아서 하라고! 됐어. 얼른 내려. 늦는다.”

아라가 위봉낭의 말에 마음이 조금 놓여서 꼼지락하는데 위봉낭이 고개를 불쑥 내밀더니 덥석 끌고 나갔다. 다다는 위봉낭이 손을 쓰기도 전에 구르듯이 마차에서 내려서 아라 곁에 착 붙었다.

“봉낭 언니, 칠야…… 칠야……는 이제 절 상관하지 않는 건가요?”

아라가 덜덜 떨며 묻는 말에 위봉낭이 그녀를 흘겨봤다.

“내가 한가해서 널 구하러 온 건 줄 아니? 내 생각대로 할 거였으면 너 같은 건…….”

위봉낭은 싫어 죽겠다는 듯 입을 내밀고는 마차 앞으로 가서 고삐를 휘두르며 마차를 몰고 사라졌다.

아라는 입을 벌리고 손을 치켜들고 흔들면서 멀어져가는 마차를 바라보다가 한참 만에 겨우 한숨 돌렸다. 다다를 부축하고…… 정확히는 다다가 그녀 곁에 찰싹 붙은 채, 두 사람은 하나가 되어 위봉낭이 말한 숨을 곳으로 들어가서 주 육소야가 지나가길 기다렸다.

텅 빈 연향루의 모습에 화가 너무 치밀어서 이성을 살짝 잃은 진왕은 고함쳤다.

다 부숴라! 불태워라! 싹 다 부숴! 싹 다 불태워!

강환장은 잠시 가늠하다가, 부수는 건 말리지 않았지만 불을 붙이는 건 말렸다. 경성에서 손꼽히는 떠들썩한 거리라서 잇달아 붙어 있는데, 불이 났다간 연향루만 타는 게 아니라 경성 반이 불에 탈 것이다.

종복들이 연향루를 깨끗하게 부숴버렸고, 간이 크고 생각이 짧은, 감히 아직 남아서 구경하는 연향루 일꾼을 잡아 끌어내서 그 자리에서 두들겨 팼다. 그러고도 화가 다 풀리지 않아서, 강환장의 분부에 따라 경부 관아에 쳐넣었다.

아라가 다다에게 분부하길, 주 육소야가 아라에게 분부했다고 하라고 했고, 다다는 그냥 주 육소야가 분부했다고 말했다. 주 육소야가 그때 연향루에 있었는지 아닌지는 다다는 상관하지 았았고, 일꾼은 더더욱 상관하지 않았다. 이 일은 어쨌든 주 육소야가 분부한 것이 되었다.

주 육소야 주유민이 시킨 일이라는 들은 진왕은 아침에 대황자에게 맞은 뺨이 다시 화끈화끈 아파왔다.

큰형님과 넷째가 자신을 안중에 두지 않으니 주가에서도 감히 나를 이렇게 무시하는구나!

나는 황자다! 황손이라고! 가장 고귀한 혈맥! 주가, 어떻게 이렇게 경성이 다 보는 앞에서 내 체면을 짓밟을 수 있는가!

아라는 철이 없지만, 연향루 행수기녀는 능구렁이였다. 행수가 보낸 심부름꾼들은 모두 자주 거리를 오가는 다른 집 심부름꾼이라서 이 일의 내막을 잘 알지 못했다. 행수기녀는 그저 ‘양 구야에게 일이 생겼다.’고만 소식을 전하라고 했다.

양 구야가 아무리 꼴 같지 않아도 진왕의 친외숙, 정통 황가 외척이었다. 비천한 기녀와 비교하면 얼마나 고귀한 신분인지 모른다.

아라에게 일이 생겼다고 하면, 묵 칠소야, 주 육소야가 아무리 진심으로 그녀가 걱정된다고 해도 명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일개 기녀에게 불려 다닌다는 것을 집안 어르신이 알게 되면 사당에서 무릎 꿇을 일이다. 오고 싶어도 못 온다. 그러나 양 구야에게 일이 생겼다면, 말이 달라진다. 아무리 급하게 달려간대도 당연하고 지당한 일이었다.

양 구야에게 일이 생겼다고 들은 주 육소야는 순간 흥분해서 눈썹이 춤을 췄다. 구경하러 갈 생각으로 다급하게 밖으로 달려나갔다. 아라에게 일이 생겼으리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양 구야가 매일 연향루 앞에 쭈그리고 있는 건 알지만, 그쪽으로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원래 생각을 잘하는 편이 아니었다.

골치를 지끈지끈 앓으며 상주서를 쓰던 묵칠은 전언을 듣고 곧바로 아라에 대해 물었다.

“아라는? 아라는 별일 없지?”

“그런 것 같습니다.”

말을 전하러 온 심부름꾼은 잠깐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아라가 어떻게 됐는지 그가 알 게 뭔가. 구경하다가 연향루 행수기녀에게 붙들려 대수롭지 않게 심부름 온 것일 뿐인데.

“그럼 됐다. 알았다. 나가 봐라.”

아라가 괜찮다는 말에 묵칠은 순간 안심했다. 아라가 괜찮으면 됐다. 양 구야에게 무슨 일이 생기든 말든, 그는 지금 신경 쓸 겨를이 없다. 거의 두 시진 동안 상주서를 썼는데, 한 글자도 쓰지 못했는걸!

주 육소야가 다급하게 달려 나와서 관아가 있는 골목에서 그리 멀어지지도 않았을 때 아라와 다다가 함께 말 앞으로 달려들었다. 골목이 좁아서 속도를 내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게다가 요즘 영원을 따라다니느라 기마술이 꽤 늘어서 그 자리에서 아라와 다다를 밟아 죽일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너희 둘이었느냐? 여기서 무얼 해? 응? 너…… 왜 이런 꼴이냐? 울지 마라! 울긴 왜 울어. 무슨 일이 생겼느냐?”

아라는 초조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다. 너무나 두렵다 보니, 용기도 생기고 지혜도 생겼다. 그녀는 다다를 붙들고 주육을 올려다보며 눈물을 주룩주룩 흘렸다. 태생이 요염한 그녀가 그렇게 눈물을 철철 흘리자 매우 가련하고 어여뻤다.

“육소야, 저는…… 저는 이제 못살아요. 육소야, 저는…… 마지막으로 소야를 뵈러 왔어요. 작별 인사하려고요. 육소야, 앞으로…… 아라를 잊으세요.”

다다는 눈이 휘둥그레지고 입이 벌어져서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아라를 바라봤다. 그러다가 뚜두둑 소리를 내며 목을 비틀어서, 마찬가지로 눈이 휘둥그렇고 입을 벌린 주 육소야를 바라봤다.

소저, 왜 이래? 겁먹어서 어떻게 됐나? 미쳤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