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168화 (168/463)

168화: 곡가에 낭자 하나가 있어

스물 남짓한 여인이 둥글부채를 들고 안에서 나와 대나무 의자에 앉았다.

문 이야는 유심히 여인을 살폈다. 맑은 눈빛, 수려한 용모, 분위기는…… 청아한 편이고. 잘 꾸미면…… 괜찮겠군! 입은 옷이 너무 낡았고, 신발엔 구멍도 났지만…….

여인은 편안한 모습으로 부채를 흔들었다. 중년 아낙은 여인을 보자 불평하는 소리가 더 커졌다.

“밥도 못 먹고 사는데, 뭘 그리 까다롭게 구느냐고요! 소쇄, 얼른 채소 씻지 않고 무얼 해!”

“어머니!”

여인이 목소리 높여 고함치고는 소쇄에게 분부했다.

“왜 쑥을 피우지 않았니? 가서 쑥 피워. 이쪽으로 연기가 오지 않게 부채로 부치고 있고.”

소쇄에게 분부할 때, 방 안쪽에서 무기력한 목소리가 들렸다.

“왕 어멈, 그만하게. 영저아도 고생이 많아. 면 한 그릇 아닌가. 자네가 고생 좀 하게……. 콜록콜록…….”

“제가 고생해서 그러는 게 아닙니다! 오늘 면을 먹어 치우면, 내일은 뭘 먹습니까? 집에 돈이라곤 한 푼도 없는걸요! 태태도 벌써 한 달 넘게 약을 못 드셨어요!”

왕 어멈은 눈물을 훔치면서 안쪽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콜록콜록. 내일…… 내 비녀를 잡히고…….”

방 안에서 나는 소리가 더 작고 허약해졌다. 왕 어멈은 계속 눈물을 훔쳤다.

“그 비녀는…… 이제 그 비녀 하나 남았는데, 그걸 팔고 나면 또 뭘 먹고 살아요. 제 말대로 하자니까요. 바느질 일을 하면 되는데……. 낭자를 너무 오냐오냐하셔서…….”

왕 어멈의 불평하는 소리는 훌쩍이는 소리에 묻혀서 뒤로 갈수록 잘 들리지도 않았다.

의자에 앉은 영저아는 여전히 편안한 모습이었다. 귀가 들리지 않는 듯, 왕 어멈과 어머니의 대화를 아예 듣지 않았다. 왕 어멈이 눈물을 훔치는 것도 보지 못했고. 혹은 왕 어멈은 아예 안중에 없다고 해야 옳은지도 모른다.

문 이야는 공대를 향해 내려달라고 손짓하고는 살며시 한숨을 내쉬었다.

“이 집으로 하자. 여복은? 준비됐나?”

“됐답니다.”

공대는 탁자를 돌려놓고 문 이야 뒤를 따라 객잔으로 돌아갔다.

그 낡은 마당 안, 곡가 낭자 곡춘영(曲春英)은 부채를 흔들며 시원한 바람 속에서 면을 먹고 밤이 깊어서 시원해진 다음에야 방 안으로 들어가서 누웠다. 다음 날 아침엔 해가 중천에 떴을 때야 겨우 일어났다. 일어나서는 침상에 앉아서 소쇄가 따듯한 물을 들고 들어와서 수건을 건네자, 꼼꼼하게 얼굴을 닦고 손을 따듯한 물에 담갔다. 그러고는 손을 꺼내서 차가운 우물물에 다시 담갔다. 서책에서 본 방법으로, 이렇게 냉온수를 번갈아 가며 매일 담갔다 꺼내면 손이 하얗고 보들보들해진다나.

곡 대낭자는 서너 번 손을 담근 뒤 꼼꼼히 손을 닦고 구리거울을 비춰보면서 꼼꼼하게 분을 발랐다. 그러고는 거울에 비친 톡 치면 터질 듯이 탱탱한 얼굴, 그리고 가늘고 새하얀 손가락을 만족스러운 듯 바라봤다.

왕 어멈이 쉴 새 없이 불평하는 소리가 밖에서 들려와도 곡 대낭자는 들리지 않는 듯이 열심히 분을 발랐다. 드디어 꼼꼼하게 다 바른 후, 소쇄가 가지고 온 옷을 돌아보고는 눈살을 찌푸리려다가 얼른 손을 들어 미간을 꾹꾹 눌렀다. 어머니처럼 미간 사이에 깊은 내 천(川) 자를 새기고 싶지 않았다.

딱 봐도 팔자 사나울 상이잖아!

옷을 다 갈아입고 나니, 어느새 눈을 뜬 지 한 시진이 흘렀다.

“왕 어멈한테 난 달걀 하나만 부쳐 달라고 해. 그리고 쌀죽하고. 점심엔…….”

곡 대낭자가 잠시 고민하다가 말을 이었다.

“생선 한 마리 쪄주고.”

“집엔 쌀도 없는데요.”

“어머니가 비녀를 잡힌다고 하셨잖아. 어제 못 들었니?”

소쇄가 꿍얼거리자, 곡 대낭자가 소쇄를 흘겨봤다. 소쇄는 끽소리도 하지 않고 마당으로 나와 왕 어멈에게 대낭자의 말을 전했다.

“곡 태태 집에 계신가?”

담장 낮은 낡은 마당 문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왕 어멈이 ‘아이고!’ 하며 대답했다.

“정 어멈입니까? 태태! 매파가 왔습니다. 소쇄, 어서 태태를 모시고 나와라. 정 매파가 오셨다!”

왕 어멈은 큰 걸음으로 달려가 문을 열고 공손한 모습으로 정 매파를 안으로 모셨다. 정 매파가 찾아오다니, 낭자의 혼사 말고 무슨 이유가 있으랴. 이건 세상없는 좋은 일이었다.

마당 옆, 어제 그곳엔 나뭇가지가 더 촘촘해져 있었다. 문 이야는 나무 뒤에 숨어서 안으로 들어오는 정 매파와 아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친절한 왕 어멈, 그리고 휘장을 젖히고 밖을 내다보는 곡 대낭자를 지켜봤다.

정 매파가 마당에 서서 칭찬했다.

“어머나, 마당이 정말 편안하네. 시원하고 쾌적하고! 줄곧 실내에서 답답했었는데, 마당이 참 편안하네. 태태도 자주 바람 쐬러 나오셔야겠네. 마당에서 이야기합시다. 얼마나 좋아!”

“우리 낭자가 매일 물을 뿌리거든요. 정 어멈, 우리 낭자 좀 보세요. 참 예쁘지요? 우리 낭자는 정통 서생 가문의 대낭자랍니다! 우리 나리도 정식으로 급제한 거인이고요!”

왕 어멈은 뭐가 됐든 일단 자기네 낭자가 훌륭하다는 말만 늘어놓았다.

“그렇겠지. 태태를 모시고 나와요. 그리고 낭자도. 마당에서 이야기합시다.”

정 매파가 길게 말꼬리를 늘이더니, 아주 당당하게 곡가 태태 대신 장소를 정했다.

“그러지요, 그러지요. 그렇게 합시다.”

왕 어멈이야 안 될 게 하나도 없었다.

“소쇄, 태태를 모시고 나오너라. 혼담을 넣으러 오신 거니까, 낭자는 나오기가 좀 그래요. 우리는 서생 가문입니다. 궁핍해지긴 했어도 명문가인걸요.”

“하하, 그렇겠지요.”

정 매파는 알아서 낡은 대나무 의자를 끌고 와서 먼저 자리 잡고 앉았다. 앉자마자, 소쇄가 허약하고 마른 여인을 부축해서 나왔다. 나이 든 여인은 두 손으로 앞을 마구 더듬는데, 보아하니 눈이 먼 모양이었다.

왕 어멈이 서둘러 대나무 의자를 끌고 와서 정 매파 옆에 두었고, 소쇄가 곡 태태를 부축해서 앉혔다. 곡 태태는 마당 문을 향해 웃으며 인사했다.

“정 어멈이 왔군.”

“태태를 뵈러 왔지요. 그 김에 좋은 소식도 전하고요.”

곡 태태는 정 매파의 목소리를 듣고 몸을 돌리고는 그제야 정 매파를 마주했다.

정 매파는 왕 어멈이 건넨 시원한 차를 받아서 힐끔 보고는 다시 왕 어멈에게 건넸다.

“무슨 일이냐면요, 이 댁은 서생 집안, 명문가 아닙니까. 태태는 반드시 엇비슷한 집안에 사윗감은 반드시 서생에 재주 있고 인품이 좋아야 한다고 하셨지요. 어찌 됐든 다 좋아야 한다고. 낭자는 또 가난한 집과는 혼인하지 않겠다고 하시고. 솔직히 청양진뿐만 아니라, 온 태평부를 뒤져도…….”

정 매파가 헛웃음 치며 말을 이었다.

“인품 좋고 부자인 집이 없진 않지요. 있긴 합니다. 하지만 그쪽에서도 엇비슷한 가문을 원하니까요.”

“우리 나리는 정식으로 거인이 된 분이고, 우리 가문도 제대로 된 서생 집안, 명문가입니다. 비록 지금은 궁핍해졌지만, 전에는 매우 부유했어요. 이만하면 어울리지 않을 게 없지요!”

왕 어멈이 초조해하며 하는 말에 정 매파가 피식 소리를 내더니 웃었다.

“그럼 낭자의 혼수를 몇 대나 할 수 있어서? 혼수 없이 어떻게 혼인하나.”

왕 어멈은 정 매파의 말에 말문이 막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우리 낭자에게 부족한 거라곤 혼수뿐인데!

“그런데 마침 좋은 혼처가 있어요. 듣자마자 곧바로 이 댁 낭자 생각이 났지요. 그래서 가장 먼저 이 댁으로 달려온 거랍니다.”

정 매파는 단도직입적으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어느 댁 소야인가?”

곡 태태가 기대 섞인 기쁜 표정으로 물었고, 문간에 기대 있던 곡 대낭자는 아예 휘장을 걷어 올렸다.

“소야보다 좋은 상대입니다. 노야예요.”

정 매파는 두 마디하고는 시선을 곡 태태에게서 문에 기대선 곡 대낭자에게 옮기고 입을 다물었다. 곡 태태가 실망이 가득한 얼굴로 팔걸이를 더듬으며 일어나려고 하는데, 왕 어멈이 다가가 앉히며 정 매파를 향해 웃어 보였다.

“팔자가 좋은가 보네요. 스물 몇에 노야라니. 정 어멈, 어느 댁 말씀이신가요? 자세히 좀 말씀해 보세요.”

“스물 몇에 노야인 건 아니고요.”

정 매파는 손수건을 휘둘렀다. 상대가 곡가 낭자를 지목하지 않았다면 이 집 문턱을 넘고 싶지도 않았다. 집안에 똑똑한 사람이 하나도 없는데, 스물 몇에 노야면 팔자가 좋은 건가?

“산서에서 온 대상인 가문입니다. 올해 쉰여섯이에요. 1년에 반은 태평부에서 장사를 하는데, 참으로 공교롭지요.”

정 매파는 문틀을 잡고 집중해서 듣는 곡 대낭자를 힐끔 바라봤다.

“얼마 전에 우리 청양진에 왔을 때, 집을 이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우리 지역에서 제대로 좋은 혼처를 구해서, 태평부에 자리 잡을 생각이래요.”

“쉰여섯에 아직 집을 이루지 않았단 말이에요?”

왕 어멈이 놀라 고함치자, 정 매파가 그녀를 흘겨봤다.

“노야의 가산이 얼마인지 몰라요. 장사 한 건 하는데 움직이는 은자만 10만이랍니다. 한 달에 이런 장사를 몇 건이나 하고요. 정말 대단한 가업이에요. 혼인이야 진작 했지요. 큰 손자가 학당을 다니는걸요. 다만 원래 처는 산서 고향에 있고요, 그동안은 계속 산서 고향집에 있었는데, 지금은 노야가 항상 태평부에 머물면서 장사하니까, 태평부에서 따로 아내를 구하려는 게지요.”

곡 태태는 무슨 기운이 났는지 벌떡 일어섰다.

“정 어멈, 이만 돌아가게. 일개 상인 가문에 첩이라니. 정 어멈, 지금 중매서러 온 게 아니라 작정하고 우리 곡가 체면을 짓밟으러 온 거로군. 돌아가시게.”

“잠깐만!”

정 매파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곡 대낭자가 고함치면서 몇 걸음 만에 다가와 정 매파를 빤히 보며 물었다.

“다시 혼인한다니, 아내가 죽었나?”

“아닙니다. 고향 댁에 아내가 멀쩡히 살아 있어요. 우리 태평부에서 새로 아내를 구하는 것이죠.”

정 매파는 곡 태태를 건너뛰고 곡 대낭자의 말에 대답했다.

“영저아! 넌 들어가라! 이건…… 체통 없는 일이다! 상인 가문이다, 상인 가문! 너는 거인의 딸, 서생 가문 여식이다……. 상인 가문 첩이라니…….”

곡 태태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화가 나서인지, 슬퍼서인지 알 수 없었다.

“대낭자는 글공부한 사람이니 크게 장사하는 사람은 다 그렇다는 걸 아시겠지요. 이건 양두대(兩頭大: 고대 혼인 방식의 일종. 상인 가문에서 타지에 긴 시간 머물 때 두 곳에 아내를 두는 것)라는 것으로 양쪽에 아내가 있는 거지, 첩이 아닙니다. 이분과 혼인하면 삼매육빙을 거쳐 정식으로 혼서도 쓸 겁니다. 혼인하고 나면 태평부에 살면서 노비를 부리고 부귀하게 사는 거예요. 처입니다. 첩이 아니에요. 이 노야는 산서에 집이 하나 있고, 우리 태평부에 집이 하나 있는 겁니다. 두 집 모두 정실이에요. 아이를 낳아도 다 적출이고요.”

정 매파는 아예 곡 태태를 건너뛰고 곡 대낭자를 곁으로 끌어당겨서 그녀와 곧바로 이야기했다.

“그럼 재산은? 은자는?”

곡 대낭자는 관건부터 물었다.

정 매파가 손뼉을 짝 치며 웃음꽃을 피웠다.

“아이고, 대낭자! 드디어 말이 통하는 분이 생겼군요! 이 노야 말씀이, 낭자가 혼인하게 되면 저택, 종복 모두 새로 사고 들인답니다. 저택과 종복은 말할 것도 없고, 여기 태평부에 있는 재산은 낭자가 혼인하고 두어 해 지나서 아이를 낳으면 따로 논밭 장사도 하신답니다. 친혈육을 배곯고 살게 할 일은 절대로 없다고 하셨습니다.”

“배곯고 살게 하지 않겠다는 게 어떤 건데? 딸을 낳아도 아들과 똑같이 대우해준대? 아이가 없으면? 벌써 쉰여섯이라면서.”

곡 대낭자가 얼른 물었다. 정 매파가 눈빛을 빛내며 대답했다.

“아이고, 정말 똑똑한 분이시네요! 말끝마다 핵심을 찌르시네요! 이런 자세한 내용은 아직 이야기하지 않았어요. 어떻게 할까요? 낭자 생각에 이 혼담이 괜찮은 것 같으면, 이런 자세한 내용을 제가 가서 이야기해 볼까요? 제가 이 두 눈으로 봐 온 사람이 10만은 안 돼도 8만은 됩니다. 사람을 매우 정확하게 본다고요. 이 노야는 대범하고, 생김새도 좋고, 키고 크고 건장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분명 아이를 낳을 수 있답니다.”

정 매파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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