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165화 (165/463)

165화: 형제의 불화

드디어 황상이 입을 열 때까지 견뎌낸 두 사람은, 영원은 내시의 부축을 받고 천천히 일어나서 다리를 쉬엄쉬엄 움직였고, 주육은 도저히 일어나지 못해서 두 내시가 들어서 일으켰다. 주육이 두 다리를 여전히 무릎 꿇은 듯이 뻣뻣하니 움직이지 못하자, 내시 둘이 할 수 없이 그대로 들고 계단 아래로 가서 앉히고는 다리를 하나씩 주물러줬다.

아직 자극전 앞이라, 주육은 콧물 거품이 둥그렇게 커질 정도로 아파도 이를 악물고 참을 수밖에 없었다. 고함은 물론이고 앓는 소리를 낼 엄두도 나지 않았다. 황상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이야말로 주육이 가장 잘 아는 사실이었다.

영원은 다리를 움직여주고는 주육 곁에 웅크리고 앉아서 등을 두드리며 위로했다.

“너 이 녀석 봐라. 네 꼴을 보니 집에서도 자주 벌을 받았겠구나.”

황상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리자, 영원은 놀라서 엉덩방아를 찧고는 연거푸 아이고를 외쳐댔다. 몹시 아파하던 주육은 고개를 틀고 황상을 바라보더니 진짜로 놀라서는 콧물 거품이 커다랗게 부풀어 올랐다.

“황…… 황상, 황…….”

“꼬락서니 좀 보아라! 그리고 너! 얼른 닦아주지 않고 뭘 하느냐!”

주육의 콧물 거품에 속이 역겨워진 황상이 버럭 고함치자, 내시들이 재빨리 다가가 깨끗한 물과 수건을 들고 주육의 얼굴을 말끔하게 닦았다. 주육은 억울하고도 감동했다.

“화…… 황상, 저는……. 엉엉…….”

“됐다!”

황상은 골치 아픈 듯 한숨을 내쉬고는 고분고분한 모습으로 옆에 서 있는 영원을 돌아봤다. 영리한 영원은 황상이 주육의 모습에 역겨워할 때 살그머니 계단 아래로 물러나 있었다. 지금 황상은 계단 위에 서서 기세 가득한 모습으로 영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집에서 자주 벌을 받은 모양이지?”

황상이 아까 하던 말을 계속해 묻자, 영원이 쓴웃음 지으며 대답했다.

“아룁니다, 황상. 그건…… 그게 뭐냐. 자주는 아닙니다. 사흘돌이……랄까.”

“음, 역시 자주 꿇어서 이골이 났군.”

“황상! 저는 무술 수련해서 그런 겁니다! 꿇어서 그런 게 아닙니다.”

영원이 기운 없이 변명했지만, 황상은 코웃음을 쳤다.

“황상, 영원 형님의 무술 실력은 정말 대단합니다. 어디다 대고 쳐라, 하면 가리키는 곳을 정확히 때립니다. 정말로 정확합니다!”

주육이 저도 모르게 칭찬했지만 황상은 상대도 하지 않고 영원을 빤히 보며 계속 물었다.

“네 형 둘은 너처럼 이렇지 않다.”

“형님들은…… 하이고.”

영원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네 형들이 왜? 네 둘째 형의 승전보가 또 들어왔다. 너는 네 형 둘과 전혀 비교할 수가 없다.”

“둘째 형님은 큰형님과 기싸움 하는 겁니다. 어릴 때부터 그 둘은 그랬어요. 누가 먼저 때리면 반드시 갚아주려 했죠. 저는 다릅니다. 맞아도 그만이었습니다. 형님이잖습니까. 그렇지요?”

영원은 무뢰배 같은 표정을 지으며 속으로는 바람개비 돌아가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황상, 왜 이러는 거지? 대황자와 사황자가 싸워서?

“네가 싸워서 이길 수는 있고?”

황상이 느릿느릿 묻자, 영원이 떠듬떠듬 대답했다.

“그건…… 조금……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어떤 사람인지 황상께서 제일 잘 아시지 않습니까. 성격 좋고, 형님들을 존경합니다. 싸워서 이길 수 있느냐 없느냐 문제가 아닙니다. 형님들과 싸우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는 매우 효심이 깊습니다. 황상, 생각해 보십시오. 아버지와 어머니는 두 형님이 쌈닭처럼 만나기만 하면 싸워대서 이미 큰 골치를 앓고 있습니다. 거기에 저까지 끼어들면, 얼마나 마음 아프시겠습니까. 황상, 그렇지요? 저는 효도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황상은 기가 차고 우스웠다.

“쯧. 자화자찬 한 번 정말 잘하는구나. 효심이 지극한 놈이, 사흘돌이로 무릎 꿇을 잘못을 하겠느냐? 네 아비가 경성까지 널 보내서 짐이 널 가르치게 하겠느냔 말이다. 어쩌면 그리 뻔뻔해!”

“황상, 황상. 제가 뻔뻔한 것도 다 아셨습니까?”

영원이 목을 움츠리며 웅얼거렸다.

“네 큰형과 둘째 형은 무엇 때문에 매일 쌈닭처럼 싸우는 거냐?”

“그건…….”

영원은 그제야 실수로 말을 흘린 걸 깨달은 듯이 입을 막았다.

“황상, 모르는 척해주십시오. 그건…… 뭐냐, 아버지가 창피해하십니다. 사실…… 그렇지요, 황상? 별일도 아닙니다. 저도 무엇 때문인지 모르고요. 어쨌든 어릴 때부터 그랬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때부터 두 사람은 매일 싸웠습니다. 처음엔 몰래 싸우더니 나중엔 대놓고 싸웠습니다. 황상도 아시다시피 두 형님 모두 무예 실력이 뛰어나서 한 번 싸우면 볼만합니다. 전 두 사람이 싸우는 걸 구경하는 게 좋고요. 하루는 두 사람이 각자 수하를 데리고 성 밖에서 불이 붙었는데, 아이고, 볼만했습니다! 그런데 싸움이 일어나자마자 아버지도 오셨지요. 그때 두 형님 모두 맞았습니다. 사실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 그냥 서로 마음에 안 드는 거겠지요.”

영원은 할 말 못 할 말 못 가리는 모습이었다.

“그럼 너는? 누구와 사이가 좋으냐? 둘째? 첫째?”

황상은 마음이 훨씬 편안해진 듯했다.

“큰형님은 절 싫어합니다. 어릴 때부터 그랬습니다. 둘째 형님은 그나마 괜찮습니다. 사실 저는 둘째 형님도 좋진 않습니다. 하지만 둘째 형님이 큰형님보다 제게 잘해주니까, 둘 중 나은 걸 고르는 거지요.”

영원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고, 황상은 소리 내어 헛웃음 쳤다.

“네 아비가 머리가 다 하얗게 셌다더니, 이러니 그렇지. 다 불효자들 때문이었구나.”

“아닙니다!”

영원은 절대로 인정할 수 없는 표정이었다.

“조부도 마흔 되기 전에 머리카락이 셌습니다. 그럼 그건 누구 때문입니까? 아버지요? 아님 숙부요? 증조부도 마흔 되기 전에 셌다던데요. 그럼 조부도 불효자였을까요?”

“고얀 놈! 무슨 말을 그렇게 해!”

황상이 머리를 내리치자, 영원은 목을 움츠리고 입을 닫았다. 그 모습에 주육은 낄낄 웃었고, 황상이 주육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이 고얀 놈들! 짐이 단단히 단속해서 그렇지, 아니었으면 얼마나 더 고얀 짓을 하고 다녔겠지! 짐은 정말 너희 둘 때문에 속 터져 죽을 것 같다!”

주육은 얼른 영원을 따라 머리부터 목까지 쏙 집어넣고 불쌍한 얼굴로 황상을 바라보며 쉴 새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불쌍한 척하는 건 어느새 꽤 익숙해져서 노련하게 흉내 낼 수 있었다.

“됐다. 돌아가라. 둘 다 잘 들어라. 앞으로 다시는 몰려다니면서 건방 떨고 허튼짓하면 안 된다. 그리고!”

황상이 주육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그 입조심하고! 그리고 너!”

황상의 손가락이 영원 쪽으로 돌아갔다.

“생각 좀 하고 살아라. 같이 어울리는 사람도 좀 가리고! 이러다가 언젠가 팔려 가서도 널 판 돈을 세고 살 것이다!”

“예, 예!”

영원은 주육과 함께 매우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너무 시원스러운 그 대답에, 황상은 못 말린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이 두 놈, 두 아들놈과 마찬가지로 골치가 너무 아팠다.

“꺼져라!”

황상이 고민스러운 얼굴로 소매를 휘두르자, 영원은 주육을 끌고 자극전에서 줄행랑쳤다.

선덕문을 나선 영원은 말에 오르고 주육은 씁씁 대며 마차를 찾았다.

“마차를 구해 줘. 내 다리, 내 무릎!”

“마차는 무슨. 말에 올라라!”

영원이 허리를 구부려 주육을 들어 올려 말 위로 던졌다. 주육은 앓는 소리를 내며 말에 올라앉더니 부러워 죽겠다는 듯 영원을 바라봤다.

“형님, 무릎 잘 꿇는 비결이라도 있소? 가르쳐 줘라.”

“비결? 하나 있긴 하지.”

영원이 삐딱하게 바라보며 느릿느릿 말했다.

“자주 꿇으면 된다. 그건 됐고, 황상께서 하신 말씀, 알아들었냐?”

“알아들었지. 재미있게 지내지 말라는 거잖아. 휴! 진짜 참견 많으시네!”

주육은 걱정 많은 표정인데, 영원이 채찍으로 주육의 머리를 내리쳤다.

“난 내가 어리석은 줄 알았더니, 널 보고 진짜 어리석은 게 뭔지 깨달았다! 황상께서 너에게 입조심하라고 하신 게 무슨 뜻이겠냐. 오늘 우리가 왜 무릎을 꿇은 건지 생각 좀 해라. 천자 앞에서 예의에 어긋나서? 나는 그랬다고 치자, 그럼 너는 무슨 잘못인데? 일부러 널 부르셔서 그 자리에서 벌을 주셨다. 네가 무슨 잘못을 해서?”

“어. 맞네! 형님, 그게 무슨 말일까? 내가 무슨 말을 했다고? 난 아무것도 안 했는데?”

“그리고 내게도, 생각 좀 하고 아무하고 어울리지 말라고 하셨지. 팔려 가서 돈 세어줘도 모를 거라고.”

“그럴 리가 있나! 누가 우리를 속여? 감히?”

주육이 단번에 부정했다.

삐딱하게 주육을 바라보는 영원의 마음에 광풍이 윙윙 불었다. 이렇게까지 어리석다니. 정말 견문이 넓어지는군!

“생각 좀 해라, 제발. 응? 너는 입을 함부로 놀렸고, 우리가 아무하고 어울려서 허튼짓했고, 그러다가 우리 둘이 팔려 간 거다. 넌 벌써 한 번 팔려 갔다고! 아니, 한 번이 아니지!”

영원이 쉴 새 없이 채찍으로 주육을 찔러댔다.

너 때문에 나까지 머리카락 한 올 남지 않고 다 팔릴 뻔했지 않으냐!

“맞네!”

주육이 드디어 생각이라는 걸 했다.

“제기랄! 누구지? 누가 감히 우리 뒤통수를 친 거야? 내가 무슨 말실수를 했다고……. 아!”

주육은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깨달음을 얻었다.

“사왕야 일? 불? 어제 그 일 때문에? 제기랄! 내가 진짜 뒤통수 맞은 거야? 누가 감히 이런 고얀 짓을? 감히 나를 건드려?”

주육은 이를 갈며 소매를 걷어붙였고, 영원은 더 말하기도 싫다는 듯 그를 흘겨봤다.

“그걸 어찌 알아. 황상은 아시지만 우리는 모르는걸. 황상께 여쭤볼 테냐?”

“어떻게 그래. 다만…….”

주육이 실실 웃었다.

“황상께 여쭤볼 순 없어도 사왕야를 떠볼 수는 있지. 사왕야를 만나볼게. 만나고 바로 형님에게 갈게. 관아로 갈 거요, 아니면 운수에게 가서 노래를 들을 거요? 끝나면 바로 찾아갈게!”

“황상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관아로 가야지.”

영원이 길게 하품하며 말을 이었다.

“며칠 조용히 지내고 보자. 나한테 올 것 없다. 관아에 가서 둘러보고 바로 저택으로 돌아갈 거다. 반나절 동안 무릎 꿇고 있었더니 다리가 쑤신다. 이야기는 내일 하자.”

“그래도 되고!”

주육은 말을 돌려 사황자를 만나러 갔다.

관아를 둘러보고 정북후부로 돌아간 영원은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사환에게 몸을 맡기고 머리카락을 감았다. 황상의 표정, 그리고 했던 말을 곱씹을수록 가슴이 서늘해졌다.

황상이 막 나왔을 땐 안색이 지극히 좋지 않았다. 아무래도 대황자와 사황자가 싸운 일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두 사람이 다툰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고, 이것보다 더 심하게 싸운 적도 많을 테니까.

황상은 떠보듯이 영가의 상황을 물었다. 모두 큰형님과 둘째 형님 일이었고. 두 형님이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하니, 황상의 안색이 차차 좋아졌다. 다른 집 형제들도 똑같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기분이 좋아진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영가의 불화 때문에 기분이 좋아졌을지도 모를 일이고.

영원은 갈수록 무거워지는 마음으로 목욕을 끝내고 나와서 머리를 다 말리기도 전에 모두를 물리고 직접 먹을 갈아 서신을 썼다. 다 쓴 다음 복백을 불러 나직이 당부했다.

“적당한 사람을 골라서 서신을 아버지에게 보내고 말도 전해. 큰형님과 둘째 형님이 싸우고 형제 사이에 정이 하나도 없는 일로 너무 근심하지 말고 내려놓으시라고.”

잠시 말을 멈춘 영원은 눈을 내리깔고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속삭였다.

“또 하나. 원 대장군이 죽었지만 살아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복백의 눈이 순간 휘둥그레졌다.

“황상이 또요? 영가가 또 불안하게 했답니까?”

“미리 방어하자는 것일 뿐이야.”

영원의 목소리가 매우 낮았다. 저 멀리 변경에 있는 영가는 조정의 방패이자, 동시에 조정의 근심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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