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화: 싸움이 나다
사황자는 주 귀비 궁에서 알랑거리고 있었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주 귀비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웃고 있는데 대황자가 대뜸 뛰쳐 들어갔다.
안 그래도 화가 난 데다가, 아무리 찾아도 찾지 못해서 차오른 초조함과 분노까지 더해져서, 대황자는 곧 터질 것 같은 불덩이 같은 상태였다. 얼굴 가득 웃음 짓는 사황자의 미소가 대황자의 눈엔 뿌듯함과 조롱이 가득찬 것으로 보였다.
“그 불, 네가 낸 것이냐?”
대황자는 사황자 앞으로 달려가서 삿대질하며 이를 갈았다. 저놈을 양손으로 갈가리 찢어 놓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다.
사황자가 조롱 가득한 눈빛으로 형님을 바라봤다. 바로 어젯밤에 난 큰불로 이렇게 이상할 정도로 기분이 좋은 것이었다.
“불이라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형님,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몰라? 네가 낸 불인데, 모른다? 이 짐승 같은 놈! 방화 같은 짓도 다 하다니! 그러고도 네가 인간이냐? 제대로 해명하지 못하면 죽여 버릴 테다!”
대황자는 사황자의 득의양양한 모습에 더 화가 나서 두 눈이 새빨개지고 부득부득 소리를 내며 이를 갈았다.
“말을 그렇게 하면 안 되지. 내가 짐승이면, 형님은 또 무엇입니까? 모비와 부황은요? 그 말은 불효에 불경, 대역무도한 말입니다!”
사황자는 형님이 크게 노한 모습을 감상하며 기분이 더 좋아져서 경박한 말투로 대황자의 실수를 지적했다.
“이런 망할 놈!”
대황자는 더는 참지 못하고 손을 휘둘렀다. 사황자가 탑상에서 바닥으로 굴러떨어졌고, 사황자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대황자가 이미 펄쩍 달려들어 사황자를 걷어차기 시작했다. 주변의 궁인들은 비명을 지르고 난리가 났다. 넋이 나간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지극히 빨리 정신을 차리고 우르르 달려들어서는 대황자를 당기기도 하고 사황자를 막고 대신 맞기도 했다.
주 귀비가 날카롭게 고함치며 탑상에서 뛰어 내려왔다.
주변의 궁인들이 앞뒤 가릴 것도 없이 달려들었다. 주 귀비를 끌어당기는 사람도 있었고, 대부분은 덥석 달려들어 주 귀비가 넘어지지 않도록 몸으로 막아섰다.
주 귀비가 달려들어 대황자를 붙잡았다.
“멈춰라! 할 말 있으면 말로 해라!”
대황자는 이미 이성을 잃을 정도로 화가 나서 기운이 세도 너무 셌다. 우어, 하고 고함치더니 자기를 끌어당기는 궁인을 뿌리쳤고, 그 탓에 주 귀비도 벌렁 넘어졌다. 막아서는 사람이 없자 대황자가 단걸음에 다가가 사황자를 끌어안은 사람들을 사정없이 걷어찼다.
사황자는 아파도 소리도 내지 못하고 걷어차이는 궁인들에게 둘러싸여서 죽는다고 고함쳤다.
“어서 떼어내라! 이 쓸모없는 것들! 어서!”
주 귀비가 궁인들 몸 위로 넘어졌다가 비틀비틀 일어섰다. 맹수처럼 분노하는 대황자와 곧 죽을 듯이 고함치는 사황자를 번갈아 보면서 초조하고 두려워서 자기를 부축하고 있는 궁인의 뺨을 철썩 때렸다.
다행히 주 귀비의 궁엔 사람도 많고 기운도 세서 일제히 몰려들어서 겨우 대황자를 끌어당겼고, 동시에 대황자에게 걷어차여서 얼굴이 부어오른 채 죽어라 울어대는 사황자, 그리고 두렵고 걱정되고 또 상심해서 목 놓아 우는 주 귀비를 일으켰다.
궁인들은 세 무리로 나뉘어서, 한 무리는 아직도 욕설을 해대는 대황자를 잡아끌고, 한 무리는 모비, 부황을 찾으며 훌쩍이며 죽겠다고 고함치는 사황자를 부둥켜안았고, 또 한 무리는 울고불고 당장에라도 혼절할 것 같은 주 귀비를 에워싸고 부채를 휘두르며 약을 발랐다.
황상이 허둥지둥 주 귀비 궁에 당도했을 때, 눈 앞에 펼쳐진 상황이었다.
“입 좀 다물어라!”
황상이 기가 차서 버럭 고함쳤다. 대황자와 사황자는 동시에 입을 다물었는데 주 귀비는 아직도 목을 놓아 울면서 궁인을 지나쳐 황상에게 덥석 안겼다.
“왜 이제야 오십니까! 제가…… 제가…….”
주 귀비는 황상의 품에 파고들어서 그를 붙들고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괜찮다. 괜찮다. 아이들끼리 다투는 것이다. 마음 쓰지 말아라.”
황상은 주 귀비부터 다정하게 위로하고는 아직도 노기등등한 대황자와 수시로 훌쩍이는 사황자를 노려봤다.
“무릎 꿇어라! 갈수록 고얀 짓을 하는구나! 감히 모비 앞에서까지 성질을 부려? 싸움까지? 이제 다 컸다는 것이냐?”
“전 아닙니다. 형님입니다. 맞아 죽을 뻔했습니다. 모비! 모비가 다 보셨습니다!”
사황자가 털썩 무릎을 꿇었다. 얼마나 억울해 보이는지, 온 세상 억울함을 다 짊어진 표정이었다.
“사가아 탓이 아닙니다.”
자신이 지극히 공평무사한 어미라고 여기는 주 귀비가 얼른 사황자 편을 들었다.
“대가아가 미쳤습니다! 대뜸 들어오더니 주먹을 휘두르지 뭡니까. 할 말 있으면 제대로 하면 될 것을. 굳이 때리다뇨? 그것도 이렇게 모질게!”
황상의 품에서 몸을 일으킨 주 귀비는 사황자의 부은 얼굴에 가슴이 후벼 파듯이 아파왔다.
“너도 좀 보아라! 사가아를 이 지경으로 때리다니. 네 친아우다! 어떻게 이렇게 모질 수가 있느냐? 정말 미쳤구나!”
주 귀비가 달려가 사황자의 얼굴을 쓰다듬다가 괴로운 듯이 울음을 터트렸다.
“이 쓸모없는 것들! 뭐 하는 것이냐? 태의는? 어서 태의를 불러오지 못할까? 사가아, 괜찮으냐? 내 아들!”
“머리가 아파요. 어지럽습니다.”
사황자가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리가 있나. 주 귀비 품에 안겨 비틀거렸다.
“말해라! 어찌 된 일이냐? 무슨 일이길래 이리 모질게 굴어!”
황상이 대황자를 가리키며 호통쳤다. 화도 나고 마음도 아팠다.
“어젯밤에 무창 상행에 불이 나서 창고 하나를 다 태웠습니다. 진주, 보석이 싹 다 탔습니다. 이 녀석이 불을 낸 겁니다.”
대황자는 여전히 불같이 화가 났지만, 황상 앞에서는 그래도 자제했다.
“무창 상행?”
황상이 눈살을 찌푸렸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설마 첫째의 상행이냐? 감히 상행을 열어서 백성들의 이익을 가로챈 것이야?
사황자가 억울한 얼굴로 대답했다.
“수국공 세자 주유해 부인 하씨의 혼수 점포입니다. 어젯밤에 불이 났단 소식은 저도 아침에 들었습니다. 수국공부와 관련된 일이라, 안 그래도 관아에 전갈을 넣어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영원에게 제대로 조사하라고 명했습니다.
하씨의 혼수 점포이고, 주유해도 가만히 있는데, 형님이 왜 이렇게 화를 내고 조바심내는 것입니까?”
황상은 사황자의 말을 알아들었으나, 주 귀비는 다른 쪽으로 알아들었다.
“너랑 하씨가? 하씨는 신하의 처인데…….”
주 귀비가 대황자에게 하는 말에, 황상이 다급하게 헛기침했다. 정말로 목이 막혔다.
“그런 게 아니다. 아무리 대가아가 변변치 않아도 그럴 정도는……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이냐.”
“그럼 네가 직접 말해 보아라!”
주 귀비는 할 일도 없고, 매일 이런 황당하고 추잡한 이야기만 듣는 데다가 상상력이 지극히 풍부해서 그 잠깐 사이에 머릿속에 수많은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그려냈다.
“하씨의 혼수인데 네가 왜 이리 다급해하는 것이냐? 어떻게 하씨와…… 하씨가 예쁜 것도 아니고…….”
사황자는 주 귀비의 말에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대황자를 힐끔 바라봤다. 상황이 허락한다면 정말로 큰 소리로 웃고 싶었다.
형님과 하씨라……. 음, 써먹을 수 있겠군!
황상의 얼굴도 시퍼레졌다.
분명히 밝히지 않으면 안 되겠군. 이러다가 주 귀비가 대황자와 하씨가 그렇고 그런 사이라고 여길 것인데!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이냐. 하씨의 점포, 네 것이냐?”
“예.”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대황자도 이를 악물고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씨와 사통한 것으로 되는 것보단 나았다.
“아.”
안도하던 주 귀비는 금세 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돈이 없으면 이야기를 할 것이지! 너는 황자다. 황자가 무슨 장사를 하느냐. 그건 천박한 일이다. 창피하지도 않으냐? 어떻게 그런…….”
황상이 주 귀비를 일으키며 말을 막았다.
“그건 짐이 이야기하마. 이건 사적인 일이 아니니, 네가 관여할 것 없다. 태의가 왔으니 태의에게 잘 보이고 사가아를 잘 돌보아라.”
“예.”
주 귀비는 아까보다 얼굴이 더 부은 것 같은 사황자를 돌아보고는 또 눈물을 뚝뚝 흘리며 태의가 진맥하는 것을 지켜보러 갔다.
“말해 보아라. 어떻게 된 일이냐. 무슨 일이기에 정신 나간 것처럼 아우를 원수처럼 때린 것이냐? 무슨 일이기에 네 어미 속을 이렇게 상하게 한 것이야?”
황상은 말투가 매우 좋지 않았다. 확실히 진짜로 화가 나긴 했다.
대황자는 심호흡하며 가슴 가득 차오른 울분을 억눌렀다.
“다음 달에 모비 생신이십니다. 모비가 진주를 좋아하시니, 곳곳을 찾아다녔습니다. 어렵게 진주 한 상자를 구했고, 공인을 구해 진주 휘장을 만들어 모비께 올릴 생각이었습니다.”
황상의 얼굴이 조금 누그러졌다. 효성 지극한 마음이로군.
“그런데 넷째가 며칠 전에 진주 주렴을 손에 넣었답니다. 제가 모비를 위해 진주 휘장을 만든다는 말을 듣고 불을 내서 몽땅 태워버렸습니다. 그게 어제 일입니다.”
대황자는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너무 화가 났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모비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제게 선수를 빼앗기고 싶지 않으면, 제게 와서 한마디 하면 되지 않습니까. 양보했을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나오면……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황상은 골치가 지끈지끈 아팠다.
“사가아가 불을 낸 거라는 걸 어찌 안 것이냐? 아랫사람이 실수로 불을 낸 것일 수도 있지 않으냐. 자주 있는 일이다.”
“주가 소육이 연화지에 사람을 불러 모아 축하하고 있습니다. 이 일을 축하하는 거라고요. 제가 모비께 드릴 진주 휘장이 불탄 일이 축하할 일이라고요! 순녕왕부 아홉째도 그 자리에 있었고, 직접 들었습니다. 사가아가 불을 낸 것이라고 소육이 말했답니다!”
“소육이?”
대황자가 진상을 낱낱이 들추어내자, 황상은 낯빛이 변해서 잠시 침묵했다.
“일단 사가아는 접어두고, 네 이야기만 하자. 첫째, 하씨의 명분으로 장사하는 걸 계속 속일 수 있을 줄 알았느냐? 황자가 장사하며 백성과 이익을 다투는 건, 네 어미 말대로 천박한 짓이다. 황자가, 어떻게 이토록 제 살을 깎을 수 있느냐? 은자가 그리 좋더냐? 쓸 은자가 그렇게 부족하더냐? 은자가 필요하면 네 어미가 주지 않은 적이 있느냐?”
황자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은자가 부족해도 모비에게 달라고 할 수가 없지 않습니까!
“두 번째, 설령 네 말이 다 맞다고 치자. 그렇다고 어떻게 그렇게 모질게 사가아를 때릴 수 있느냐? 네 친아우다! 어떻게 그렇게 모질어! 사가아의 얼굴을 보아라! 이 일은 사가아의 잘못보다 네 잘못이 더 크다!”
억지로 고개를 숙이고 있던 대황자는 이가 갈렸다.
분명 넷째의 잘못인데! 모비가 편애하니, 부황도 같이 편애하는 거지!
황상이 이어서 훈계했다.
“너는 형이다. 형은 아버지와 같다는데, 네게 형다운 모습이 조금이라도 있느냐? 사가아가 너를 배우면, 형제끼리 매일 싸움할 셈이냐? 황가는 말할 것도 없고, 보통 가문에 이런 일이 어디 있더냐? 대체 형 노릇을 어찌 하는 것이야.”
황상은 말할수록 가슴이 아팠고, 대황자는 들을수록 울분이 맺혔다. 갈수록 편애하시는군요!
“세 번째. 네 어미는 연약한 사람이다. 모르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어미가 보는 앞에서 이런 짓을 할 수 있느냐? 효심은? 앞으로 짐이 눈을 감은 뒤엔 더더욱 어미를 안중에 두지 않겠구나. 그 점이 짐은 가장 화가 난다. 또 가장 슬프고. 네 어미 앞에서 어떻게 그런 짓을 해!”
대황자의 마음엔 분노와 원망뿐이었다. 귓가가 윙윙 울리고, 황상의 말은, 일부는 돌멩이처럼 가슴을 짓눌렀고, 일부는 귓가를 맴돌다가 바람처럼 사라졌다.
어머님은 사가아를 편애하고, 아버님은 어머님밖에 모르고. 두 분 다 사가아를 편애하고, 사가아만 싸고돌지!
“가라. 대전 문 앞에 무릎 꿇어라. 네 어미의 화가 풀리면 일어나라!”
황상의 말에 대황자는 머리를 몇 번 조아리고 일어서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전 앞으로 가서 털썩 무릎을 꿇더니 무표정한 얼굴로 꼿꼿이 앉아 있었다.
황상은 화가 나서 한참을 대황자를 향해 손가락질해대다가 한숨을 내쉰 후 사황자가 다친 곳은 어떤지 보러 돌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