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가리키는 대로 때리기 二
이동이 들어갔을 때, 복안 장공주는 작은 가위로 난초 잎을 정리하고 있었다. 이동은 복안 장공주 곁에 서서 잠시 바라보다가 돌아서서 탁자 앞에 앉아 차를 그을리기 시작했다.
장공주는 화분 몇 개를 더 손질하고 가위를 내려놓고 손을 닦고 다가와서 앉았다. 찻잔을 받아 빙긋이 웃으며 말을 걸었다.
“들었지? 역시 불이 났네.”
“진주 주렴이 사황자 손에 있었던 건가요?”
“모르지. 하지만 불이 난 걸 봐서 그렇겠지. 영원, 쓸만하네. 속셈도 있고 담도 있어. 당장 손 쓰는 것 봐.”
장공주는 기분이 매우 좋은 듯했다.
“어제 아침에 무창 상행 주 대장궤가 우리 경성의 장궤를 찾아왔었어요. 40만으로 그 진주, 보석을 우리에게 팔겠다고요.”
복안 장공주는 무슨 표정인지 모를 얼굴로 가만히 있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가, 아니 하가가 아니라 대황자, 어쩌면 그렇게 어리석지? 대체 생각이라는 게 있어? 가공이 쉽지 않다는 걸 알았으면, 함정에 빠진 걸 알아야지. 그럼 조사해야지. 어떻게…….”
장공주는 연달아 한숨을 내쉬다가 찻잔을 내려놓고 가슴을 양손으로 쓸어내렸다.
“며느리 하나를 잘 들이면 삼대 자손이 복 받는다더니, 주씨가 어리석으니 무지렁이 천지야. 예전에 아버지는 황상이 어리석다고 타박하셨는데, 황상은 이렇게까지 어리석진 않았어. 대황자가 조사하지도 않았다니…… 정말 속 터져 죽겠네.”
“하가에서 대황자에게 아예 고하지 않은 걸지도 몰라요. 하종수가 자기가 속은 걸 알았다고 해도, 자랑할 일도 아니고 속일 수 있으면 속이려고 들었겠죠. 물건만 되넘기면 만사 대길이고 10만 냥을 벌 수 있으니까요.”
복안 장공주의 얼굴에 온통 경멸의 표정이었다.
“흥! 무창 상행이 돈주머니인데, 유일한 돈주머니인데, 몰래 지켜볼 생각도 하지 않다니. 그만큼 어리석은 거라고!”
이동은 할 말이 없었다. 장공주의 말이 맞았다. 장사하는 사람이라면 중요한 사업을 비밀리 지켜보는 사람이 있어야 했다.
“첫째뿐만 아니야. 넷째도 똑같아. 그 주렴, 분명 넷째 손에 있을 거야. 그런데 내력을 조사할 생각도 하지 않아? 가만히 앉아서 영원에게 뒤집어쓰게 생겼잖아!”
복안 장공주가 화가 나서 팔걸이를 탁탁 내리쳤다.
문 이야는 문묘를 구경하고, 이틀 정도 경치 구경을 더한 다음 어슬렁어슬렁 능운루에 나타났다. 시야가 탁 트인 구석을 골라 음식과 술을 시키고 공대에게 앉으라고 지시한 다음 다리를 꼬고 느긋한 얼굴로 차와 술을 홀짝였다.
음식이 막 나왔을 때, 경성에서 출발했을 때보다 마르고 새카매진 여복이 능운루 안으로 들어와 두리번거리는 걸 보고 공대가 일어서서 손짓했다.
“여기다!”
여복은 성큼성큼 다가와 허리 숙여 예를 갖췄다. 문 이야는 여복의 변한 모습에 다소 놀라서는 앉으라고 손짓했다.
“얼른 앉아라. 밥은 먹었고? 좀 먹어라.”
“내내 건량만 먹었습니다. 이야, 그럼 소인 사양하지 않고 먹겠습니다.”
여복은 탕부터 한 그릇 담아서 뜨겁지도 않은지 한 번 후 불고는 곧바로 마시고 또 한 그릇 담았다. 공대가 먹으라고 시켜준 유병을 탕에 찢어 넣어서 연달아 두 그릇 비우고는 후련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탕을 마시니까 속이 정말 후련합니다.”
“이제 막 집에 온 거냐?”
문 이야가 공대에게 차를 내려서 여복에게 주라고 지시하고 묻는 말에 여복이 고개를 끄덕였다.
“막 도착했습니다. 이야께서 능운루에 왔다는 말을 듣고 집에서 기다릴 수 없어서 곧바로 왔습니다.”
“어떻게 되었냐?”
“다 조사해냈습니다.”
여복이 싱글벙글 웃음 지었다.
“저녁에 도착해서, 하룻밤 쉬고 다음 날 오시 정각이 되기 전에 황 대장이 책자를 베껴서 주었습니다. 이야께서 말씀하신 것들이 다 적혀 있다고요. 하지만, 틀리지 않았다고 장담은 못한다고 하더라고요. 혹시나 틀린 것이 있어서 이야의 큰일에 지장 줄까 봐 걱정인데, 뾰족한 수는 없고 어쩔 수 없이 싹 다시 확인했습니다. 다행히 사람이 별로 없었습니다.”
공대가 너무 놀라서 툭 물었다.
“그걸 전부 다 확인했다고? 그러려면…….”
“별거 아니었다. 별거 아니야. 행여 이야 일에 지장 줄까 봐, 밤낮없이 돌아다녔는데, 이렇게 일찍 오실 줄 몰랐습니다.”
여복이 불안한 듯 바라보자, 문 이야가 다급히 말했다.
“괜찮다. 전혀 지체되지 않았어. 참으로 잘했다. 자세한 일은 돌아가서 다시 이야기하자. 일단 좀 쉬고, 여기에서 좋은 구경하고 가자.”
“휴.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세 사람이 이야기를 길게 나누기 전에, 나이가 다른 서생들이 삼삼오오 능운루로 들어왔다. 문 이야가 서생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다들 추시를 보러 온 재자들이지. 닷새, 열닷새, 스무닷새마다 능운루에서 문회를 연다는군. 우리 강남로의 동 사사도 미복 차림으로 몇 번 왔었다는군. 이건 우리 강남에서 가장 손꼽히는 문회다. 너희들도 알듯이 내가 이런 부용풍아(附庸風雅: 겉치레를 위해 고상한 척 명사를 사귀며 문화 활동에 참가하는 것)를 제일 좋아하거든.”
여복과 공대가 함께 큰 소리로 웃었다.
“이야가 부용풍아는 아니죠. 이야의 학문이 저들보다 더 뛰어날 겁니다.”
공대의 말에 문 이야가 다리를 떨면서 대꾸했다.
“저들에야 못 미치지. 저들이 배운 건, 난 정말 모른다. 저 사람들을 좀 봐라. 군계일학인 몇몇 사람들이 다 계가 자손이다. 쯧쯧.”
문 이야가 무슨 의미인지 모를 끌끌 소리를 냈다.
“계가 자제까지 온 건가. 휴. 계가가 확실히…….”
이러니 계 천관과 그 계 공자가 일심전력으로 변화를 꾀하는 게지. 계가가 십 년 동안 조용히 숨죽이고 살았으니, 이젠 계 천관과 계 공자가 참을 수 있더라도 일족 중에 참지 못하는 사람들이 나오겠지.
“경성의 그분만 못합니다. 훨씬 떨어집니다.”
공대가 문 이야가 말한 계가 자제들을 살펴보고는 솔직히 평가했다.
“저쪽 무리는, 우리 집안처럼 이게 많다.”
문 이야가 손가락을 비비며 하는 말에, 여복은 할 말이 없는 듯 문 이야를 바라보았고 공대는 웃음을 터트렸다.
“이야, 하지만 우리 가문은…… 저들과 비교할 수 없을 것 같은데요.”
“그야 물론이지. 은자를 쓸 줄 아는 것만 봐도 저들은 우리와 비교할 수 없다. 어리석은 것들이야. 그리고 또 저쪽…….”
문 이야가 말을 별안간 멈추더니 무심결에 손을 들어 올리고 거의 속삭이듯이 말했다.
“시험관이 왔구나.”
“예?”
공대가 알아듣지 못하자, 여복이 얼른 그를 잡아당기며 쉿 소리를 냈다.
“목소리 낮춰. 포정사야.”
공대도 금세 알아차리고 문 이야의 시선을 따라 바라봤다. 대청 구석에 키가 그리 크지 않고 투실투실한 몸집으로 뒷짐 진 채 고개를 치켜든, 오만해 보이는 중년 사내가 서 있었다.
아마도 저자가 강남서로 포정사 동민, 동 사사이리라.
동 사사 곁에는 얼굴에 미소를 잔뜩 띤, 기품이 훌륭한 마흔에서 쉰 남짓 보이는 사내가 서 있었다. 두 사람 뒤엔 영리해 보이는 건장한 종복들이 몇몇 서 있었다.
“저건…… 누굽니까?”
공대가 마흔 후반 쉰 초반으로 보이는 사내를 가리키며 물었다.
“심복 막료, 좌 선생이다.”
문 이야의 신경은 온통 좌 선생에게 쏠려있었다.
능운루에 있는 서생들은 아마도 측문으로 조용히 들어온 기개가 평범하지 않은 중년 사내가 누군지 아는 듯했다. 다들 아무런 일 없는 듯 아무것도 못 본 척하려 애썼지만, 시선이 수시로 두 사람을 힐끔거렸다.
무수한 열열한 시선 가운데, 문 이야와 두 사람의 시선은 티도 나지 않았다.
동 사사와 좌 선생은 대청 안을 느긋하게 걸으며 걸려 있는 시사(詩詞)에서 파제(破題: 팔고문의 첫머리에 시험 제목의 뜻을 풀이한 것)까지 하나씩 뜯어보았다. 때때로 걸음을 멈추고 둘이서 웃으며 나지막이 평을 하기도 했다.
온갖 서생들은 삼삼오오 무리 지어 못 본 척, 혹은 이 안에 두 사람이 아예 없는 척하며 더할 나위 없이 집중한 척, 머리를 쥐어짜며 시를 짓거나 똑똑함을 티 내려고 목소리 높여 토론했다.
이각 정도 지켜보던 문 이야가 일어섰다.
“가자.”
문 이야가 능운루에서 나가면서 팔을 힘껏 휘두르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하나같이 광대들이군.”
공대도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요. 다들 연기하기는. 게다가 제대로 하지도 못했습니다.”
“아이고!”
문 이야의 탄식에 서글픔이 가득했다.
“서생의 기개가, 대체 기개는 다 어디로 간 거냐. 가자. 내가 다리를 절어서 다행이지.”
공대가 크게 헛기침하자, 여복은 그런 그를 흘겨보고 얼른 문 이야를 따라갔다. 세 사람은 모퉁이 몇 개를 돌아서 마차를 타고 남성 죽각(竹閣: 대나무로 지은 누각)으로 건너갔다.
이동이 평소보다 보림암에서 조금 늦게 출발해서 자등 산장에 거의 다다랐을 때였다. 대교가 갑자기 고삐를 잡더니 다급하게 마차 문을 두드렸다.
“낭자, 또 그 영 칠야입니다.”
수련이 놀라서 낮게 소리를 지르자, 이동도 어리둥절하긴 했지만 수련에게 진정하라고 눈짓하고 휘장을 젖혔다. 마차 옆에, 짙푸른 장삼을 입은 영원이 길섶에 서 있었다. 손에 채찍을 들고 빙빙 돌리다가, 이동과 눈이 마주치자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교, 잠시 멈춰 봐.”
이동이 나직하게 분부하자, 대교가 마차를 완전히 세우고 받침대를 놓아주었다. 이동은 수련에게 내릴 것 없다고 눈짓하고 스스로 내려갔다. 영원이 그리 멀리 서 있지 않아서, 이동은 몇 걸음 만에 그의 앞으로 다가가서 예를 갖췄다.
“영 칠야.”
“평소보다 반 각 정도 늦었는데, 장공주에게 무슨 일이 있습니까?”
영원의 말에 이동은 곧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까지 지켜보고 있었어? 그것도 이렇게 거리낌 없고 당당하게? 참 대단하네.
“별일 아니에요. 장공주에게 무슨 일이 생겼으면, 칠야도 바로 아셨겠지요?”
이동이 되묻는 말에 뼈가 느껴졌다.
“모릅니다. 보림암 3리 내에 접근도 못 하는걸요. 감히 장공주를 언짢게 할 수 없지요.”
영원이 고개를 저으며 하는 말에 이동이 실소했다. 참으로 솔직하지. 장공주는 건드리지 못하면서, 나는 아무렇지 않게 거슬러도 된다는 거지.
뭐, 사실 그렇긴 하지.
“영 칠야, 무슨 일이신가요?”
이동이 대놓고 물었다. 찾아온 이상, 분명 중요한 일이 있을 테니까.
영원은 대답 없이 채찍으로 귀밑머리를 긁적이다가 한참 만에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혹시 내가 장공주의 심기를 거스른 게 있는지 물어보려고 왔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낭자가 오가아를 데리고 나간 날부터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이동이 되묻는 말에 영원이 채찍을 돌리며 말했다.
“아, 네.”
이동은 무미건조하게 대답하고는 영원이 쥔 보석 채찍을 바라보며 입을 다물었다.
“내가 장공주의 심기를 거슬렀습니까?”
영원이 방식을 바꿔서 묻자, 이동은 살짝 고개를 들고 그를 빤히 바라봤다. 잠시 후, 살며시 미소 지을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잘못했다면, 만회할 여지가 있겠습니까?”
영원은 매우 걱정스러운 듯 다시 채찍으로 머리를 긁적이면서 물었다. 이동은 시선을 돌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는 호위를 바라봤다. 역시 대답은 하지 않았다. 한참 만에 영원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장공주 쪽은, 만회할 여지가 있겠습니까?”
“장공주는 오가아를 꽤 좋아하세요. 아니면 해마다 별장에 찾아오는 걸 그냥 두지 않으셨겠죠.”
이동은 조금 동문서답하듯 대답했고, 영원은 고개를 숙이고 채찍을 땅에 닿도록 늘어뜨렸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영원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아마 한둘이 아니겠지요. 어찌 됐든 장공주는 임씨고…….”
“장공주는 오랜 세월 수행하셔서 많이 내려놓으셨어요.”
이동이 결국 살짝 귀띔해주었다. 영원이 눈빛을 빛내며 공수하며 장읍했다.
“고맙습니다, 낭자.”
이동이 살짝 물러나 무릎을 구부리고 답례했다.
“볼일 없으면 전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