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159화 (159/463)

159화: 의심

자등 산장

이동은 장 태태와 함께 식사하고 같이 앉아 한담 중이었다. 요즘 이신은 계가 장원에 갇혀서 열심히 글공부 중이었고, 문 이야는 강남에 가서 자등 산장엔 이동과 장 태태뿐이었다. 장 태태는 이동을 걱정하고, 이동은 멀리 강남에 있는 문 이야를 걱정했다.

만 어멈이 빠른 걸음으로 들어와서, 주 대장궤가 복양 은루에 갔다가 힐수방에 들른 일을 고했다.

“의심이 생긴 게로구나.”

장 태태는 주 대장궤가 힐수방에 가서 새 옷감 견본을 봤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툭 내뱉었다. 이동은 만 어멈의 이야기를 다 듣고 주변을 물렸다.

“공임이 더 드는 걸 알게 되면 의심할 거라고 하셨잖아요. 어머니가 사전에 저에게 귀띔하셔놓고.”

“내가 좀 초조해졌구나.”

장 태태는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딸이 얽힌 일이라 쉽게 마음이 급해지고 추태를 보이게 된다.

“예상하긴 했다만, 하가에서 대신 덮어씌울 사람을 찾아 벗어나려고 할까 걱정이지.”

“하가처럼 장사하는 사람은 온 경성에 하가뿐일 거예요.”

“탕가는? 나라면, 하가가 찾아오면 고작 30만 냥이니 분명 받을 것이다. 빚 한 번 지우면서.”

장 태태는 진정하고 딸을 위해 분석했다.

“어머니, 더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정말로 그러실 거예요?”

이동이 고개를 돌려 장 태태를 바라보며 물었다. 장 태태는 미간을 찌푸리고 생각에 잠겼다가 웃어 보였다.

“너도 참. 철이 들었다고 하기엔…….”

장 태태가 뒷말을 흐렸다.

“다만, 첫째, 탕가는 우리와 다르다. 우리 가문은 믿을 곳이 하나도 없지만, 탕가는 온 산서방을 총괄하고 뒤에 고 사사 같은 사돈도 있다. 하가에서 욕심부리고 그들 재산을 삼킬까 걱정할 일도 없지. 둘째, 하가는 장사도 모르고 주제도 모른다. 하지만 하가에서 막다른 골목에 몰려서 다시 그들의 물건을 받으려고 하면?”

“내일 장공주와 이 일을 이야기해 볼게요.”

이동은 잠시 침묵하다가 나지막이 말했다. 어머니 말이 지극히 일리 있었다. 탕가라면 기꺼이 30만 은자를 쓰고 대황자와 인연을 맺으려 할 것이다. 하지만 탕가가 그러지 못하게 자신이 나설 수는 없었다. 괜히 나서면 이가가 노출될 것이고, 이가는 멸문지화의 위기에 놓이게 된다.

장 태태가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가문은 살얼음판을 걷는구나. 나는 괜찮다. 이 나이가 되었는데 두려울 게 무어냐. 너와 네 오라비가 걱정인 것이다.”

장 태태의 목소리가 더 낮아졌다.

“특히 네 오라비, 정말로 무슨 일이 생긴다면, 우리 모녀가 네 오라비 발목을 잡은 것 아니냐.”

이동이 어머니에게 바짝 다가갔다.

“어머니, 오라버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거예요. 설사 양자로 들이지 않았더라도, 어머니에게 무슨 일이 생겼으면, 혹은 내게 무슨 일이 생겼으면, 오라버니는 마찬가지로 수수방관하지 않을 사람이에요. 오라버니 성격은 양자가 되었든 아니든, 해야 할 일은 할 사람이에요.”

장 태태는 혼란스럽고 마음 아픈 듯이 이동을 바라봤다. 이동이 혼인하기 전엔 이 사촌 오라비를 그다지 관심 두지 않았었다. 신가아가 이번에 경성에 들어오기 전에 그녀와 단 한 번 만났을 뿐이었다. 그때 동동은 겨우 세 살이었고.

어째서 동동이 이토록 신가아를 믿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동동이 믿는다면 그녀도 기꺼이 믿었다. 동동을 믿고, 신가아를 믿었다.

그녀 자신이 사고무친인지라, 딸을 믿지 않으면 누굴 믿고 의지할까.

이동은 장 태태와 반 시진 정도 더 이야기하고 자기 거처로 돌아갔다. 의자를 내오라고 해서 회랑에 앉아 둥글부채를 쥐고 어머니가 말한 탕가 문제를 곰곰이 생각했다. 어머니는, 자기가 탕가 처지라면 30만 냥을 쓰고 이 크지도 적지도 않은 인정을 베풀 것이라고 했다. 예전에 탕가의 복륭 전장 지분을 자신이 인수했던 것처럼.

일단 이가의 안위를 고민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어떻게 하면 탕가가 나서지 않게 할 수 있을까? 장공주는 어떻게 나올까?

이동은 가끔씩 둥글부채를 흔들면서 생각에 잠겼다.

다음 날, 이동의 이야기를 들은 복안 장공주는 웃는 듯 마는 듯 그녀를 바라봤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고?”

“제 생각엔…….”

이동은 확신이 없는 듯 말을 이었다.

“영원이 저와 하가 거래를 주목한 이상, 끝까지 지켜보지 않을까요?”

“당연하지. 상대의 목적을 알면 상대를 쉽게 짐작할 수 있어. 영원 혹은 영가, 이번에 경성에 들어온 목적이 뭘 것 같아?”

복안 장공주가 단정적으로 대꾸하고는 물었다. 이동이 빤히 바라보며 대답하지 않자, 복안 장공주가 빙긋이 웃었다.

“우리 사이에 거리낄 게 무어야. 영가의 목적이란 뻔하지. 오가아 손에 그 의자를 넘겨주려는 거지.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몰라도.”

이동은 웃기만 하고 대답하지 않았다.

“이왕 그럴 생각을 했다면, 경성에 있는 세 사람은 하나같이 걷어차 내야 하는 걸림돌이겠지. 영원이 우리 거래를 주목한 이유는, 너 때문도, 나 때문도 아니야. 상대가 대가아의 사람이기 때문이야. 영원이 경성에 들어오기 전부터 세 황자를 주목하고 있었겠지. 네가 대황자를 곤경에 빠뜨렸으니, 영원이야 당연히 잘 되길 바라겠지. 그런데 누군가 대황자를 도와주려 한다……?”

장공주가 말꼬리를 길게 늘이면서 싱긋 웃었다.

“좋은 구경하게 되겠지.”

“정말로 걱정되지 않으세요?”

이동이 참지 못하고 물었지만, 복안 장공주는 삐딱하게 바라보기만 했다.

“무슨 걱정? 언제는 안 그랬어? 어느 황조나 다 똑같았어. 국본 쟁탈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재산 분쟁 송사와 같은 거야. 누구 손에 떨어지든, 다 같은 임가 자손인데 걱정할 게 뭐가 있어?”

이동은 잠자코 있었다. 확실히 그렇긴 했다.

다음 날, 이동이 자등 산장에 돌아오자마자, 이가의 경성 대장궤가 산장에 도착했다. 장 태태를 만난 대장궤는 쓴웃음 지으며 말을 꺼냈다.

“태태, 오늘 아침 일찍 무창 상행에서 찾아왔습니다. 진주와 홍보석을 우리에게 전매하겠다고요. 진주는 꽤 둥글고 광택도 좋았습니다. 그런데 녹두보다 작더라고요. 홍보석은 더 작고요. 세 상자 있답니다. 40만 냥이고요.”

장 태태가 이동을 바라봤다. 이동은 얼떨떨해하다가 이내 헛웃음 쳤다. 그랬다. 어머니가 눈독 들인다는 소문을 그녀가 퍼트렸으니 팔려고 온 것이다. 단번에 10만 냥을 붙이다니, 정말이지 악랄하고 속이 시커멓기는.

“우리가 그런 게 부족한가.”

장 태태의 대답에 심 대장궤의 쓴웃음이 더 짙어졌다.

“알지요. 그럴뿐더러 그 진주, 보석, 모두 계륵입니다. 40만은 물론이고 4만이라도 손댈 생각이 없습니다. 다만…….”

“무창 상행은 위세를 믿고 장사하니까.”

이동이 말을 받자, 심 대장궤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물건을 살지 말지 여쭤보려고 온 게 아닙니다. 보고 드려야겠기에 온 것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좋을지 여쭤보려고요.”

“네 생각은 어떠하냐.”

장 태태가 이동을 향해 묻자, 심 대장궤가 놀란 기색으로 서둘러 이동을 바라봤다.

“좀 미룰 수 있겠나?”

이동이 묻자, 심 대장궤가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간단합니다.”

“그럼 일단 이틀 정도 미뤄. 이틀만 미루면 되네.”

심 대장궤가 바라보자, 장 태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심 대장궤가 물러간 후, 장 태태는 생각에 잠긴 이동을 착잡한 마음으로 바라봤다. 예전엔 아동이 이렇게 스스로 돌보고, 외할머니 때부터 조금씩 일궈온 가업을 잘 다스릴 날을 바랐었다. 그런데 그런 날이 눈앞에 와 있는데, 기쁨보다 씁쓸한 마음이 훨씬 더 많았다.

생각에서 깨어난 이동은 어머니를 바라보며 조금 두서없이 말했다.

“일단 반나절 정도 기다려 봐요……. 기별이 오면 좋고요. 혹시 없으면, 내일 장공주에게 이야기하고 성으로 들어가 볼게요.”

“무슨 기별? 장공주라니?”

장 태태가 참지 못하고 묻자 이동이 시선을 내렸다.

“경성에서 일어난 일, 장공주도 다 알고 계세요. 예상도 했고요. 괜찮아요.”

“슬슬 문 이야도 강남에 도착했겠구나. 이야가 떠날 때…….”

장 태태의 말이 멎었다. 작별을 고할 때 이상할 정도로 들떴던 문 이야의 얼굴을 떠올리고 살이 떨렸다.

“문 이야의 이번 임무, 쉬운 일이 아니에요. 하지만 어머니, 걱정할 것 없어요. 이야는 능력 있는 사람이에요. 쉬운 일이 아니긴 해도, 문 이야를 어렵게 하진 못해요.”

이동은 장 태태의 물음을 교묘하게 피했다. 장공주와 나눈 이야기 중 어머니에게 이야기해도 되는 게 갈수록 줄어들고 있었다.

한번 물어본 장 태태는 곧바로 물러났다.

“그럼 됐다. 너도 마음 놓아라. 내 보기에 장공주는 계획이 다 있다. 게다가 만족할 줄도 아는 것 같고.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큰 사고를 초래하지 않아.”

이동을 위로하려고 하는 장 태태의 말은 어쩐지 자신을 위로하는 것 같기도 했다.

조회를 마치고 나온 영원은 무창 상행 주 대장궤가 이가 심 대장궤를 만났다는 소식을 바로 들었다. 주 대장궤가 돌아간 후, 심 대장궤가 곧바로 성에서 나와 자등 산장으로 갔다는 소식도.

무창 상행과 이가는 전혀 왕래가 없는데 주홍년이 심 대장궤를 찾아간 이유는 오로지 진주와 보석을 이가에 떠넘기려는 것밖에 없겠지.

영원은 말에 올랐다. 나른한 표정이지만, 속으로는 재빨리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그 진주는 이 낭자가 짠 판인데, 무창 상행이 다시 이가에 팔게 되면 그야말로 우스운 일 아닌가. 이가는 분명 사지 않으려 하겠지. 하지만 사지 않으면 무창 상행을 거스르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수국공부, 심지어 대황자 눈 밖에 나는 것인데…….

대황자가 호위 60명을 보낸 걸 보면, 오랜 시간 수행한 장공주는 안중에 없는 것이고.

게다가 이가에서 사지 않더라도 다른 상인이야 많지. 50만 냥을 내고서라도 기꺼이 대황자에게 잘 보일 상인은 널렸으니까. 심지어 세도가 중에도 그렇고.

이 일을 그냥 방관만 하기는……, 너무 아깝지!

“육소야에게 가라. 물건이 있는데 같이 보러 가자고 해라.”

주육은 마침 묵칠, 소자람과 하도 공사 비용을 계산하고 있었다. 한참을 시달린 묵칠이 머리에 불을 내뿜고 있었다.

“소육! 아무리 그래도 넌 공후 가문 출신인데, 어쩌면 이리 쩨쩨하냐? 장부 좀 봐라. 동냥자루를 찢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냐!”

주육은 능글맞은 표정이었다.

“공후 가문이면 뭐? 원래 장사는 시시콜콜 따져야 한다. 얼렁뚱땅해서 돈을 어찌 벌어? 이건 영원 형님이 한 말이다! 돈도 많은 상공부 공자가, 너야말로 쩨쩨하게 굴지 말아라. 장부대로 은자를 내놓아!”

“육소야, 이건 공공 장부다. 이런 식으로 단자를 내면, 공부와 탁지(度支: 호부戶部 등에서 징세를 담당하는 부서, 관리) 쪽에서 절대로 허락해주지 않을걸? 다 같이 통과하지 못한다고.”

소자람은 너무나 골치가 아팠다.

주육이 다시 입을 열려는데, 사환이 쪼르르 들어와서 영원의 말을 전했다. 주육은 순간 두 눈을 빛내며 장부를 소자람 품으로 던졌다.

“됐다. 됐어. 이 몸은 중요한 일이 있으니, 둘이 알아서 계산해. 너무 적게 계산하기만 해. 가만두지 않는다! 간다!”

주육이 돌아서서 달려가려고 하자, 묵칠이 덥석 잡았다.

“잠깐, 나도 옷 갈아입고 같이 가자. 칠 형님이 어떤 좋은 물건을 찍었는지 나도 좀 보고 식견을 넓혀야겠다.”

“영원 형님과 중요한 볼일 보러 가는데, 네가 왜 끼어들어! 너도 할 일 있지 않아!”

주육은 묵칠을 떼놓고 싶은데, 묵칠이 찰싹 달라붙었다.

“중요한 볼일은 무슨. 할 일이 있어도 내겐 자람 형님이 있다. 기다려라, 안 그러면…….”

“알았다, 알았어. 성가시기는!”

승낙할 수밖에 없게 된 주육은 초조한 얼굴로 기다렸다. 다행히 묵칠이 재빠르게 옷을 갈아입고 나왔고, 소자람도 그러든가 말든가였다. 두 사람이 가버리면 오히려 장부 계산도 빨라지게 되고.

묵칠은 주육을 따라 바람같이 말을 몰고 영원을 만나러 마행가로 직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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