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158화 (158/463)

158화: 다들 흉계를 꾸미다

주육은 기분이 상당히 좋았다. 요즘 나날이 너무나 좋고 즐거워서 기분이 좋지 않을 수가 없었다.

관아에서 나온 주육은 먼저 저택으로 돌아가 할머님 앞에서 어리광 좀 부리고 다시 나올까, 아니면 바로 영원 형님을 찾아갈까 망설였다. 영원 형님은 지금 또 어디에서 무슨 재미를 보고 있으려나.

멍하니 주저하고 있는데, 사환이 살며시 그를 잡아당기며 맞은편을 가리켰다. 후다닥 돌아봤더니, 맞은편에 사황자가 말에 탄 채 손짓했다. 주육은 말고삐를 당기며 얼른 달려가 허리 숙여 공수했다.

“사왕야, 왜 여기에 계십니까.”

“셋째를 한 방 먹였다며? 셋째가 무슨 일을 해서 네 비위를 거슬렀기에? 양빈이 제 아우에게 세도가 여식을 들여준다고 했다는 말, 누구에게 들은 것이냐?”

사황자가 대놓고 주육에게 묻자, 주육은 놀랍기도 두렵기도 했다.

“형님, 지금 막 고모님에게서 나온 건데, 벌써 아셨습니까?”

사황자는 은근히 뿌듯해 보였다.

“쓸데없는 소리! 셋째가 대전 앞에 무릎까지 꿇었는데 내가 모를까. 어떻게 된 일인지나 말해보아라.”

주육은 냉큼 그날 양와우를 만났던 일을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했다.

“……그렇게 된 겁니다. 딱 보니까, 양 구야가 그 나이 먹도록 혼자고, 꼴도 말이 아닌 것 같아서 마음이 약해졌지요. 얼른 혼처를 마련해 줘야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양빈이 한 말은 양 구야 본인이 했습니다. 자기 누님이, 인품 뛰어나고 가문 좋은 처를 들여야 한다고요. 오늘 고모님을 뵈러 갔다가 그 일이 떠오르지 뭡니까. 그래서 생각난 김에 이야기했지요. 그렇게 된 겁니다. 다른 건 없습니다. 정말로 없어요.”

“제 발 저린 꼴 좀 보게. 여기에 3백 냥 묻지 않았소, 하고 푯말을 내걸지 그러냐? 솔직히 말해라! 양 구야가 무슨 일로 네 눈 밖에 난 것이냐? 능글거릴 생각하지 말아라. 솔직히 말하지 않았다가 내가 알아내면 좋을 일 없다!”

(※어느 못난 사내가 돈을 숨기려고 땅에 파묻고 ‘여기에 3백 냥 없음’ 하고 푯말을 세웠다는 고사. 뻔한 거짓말, 눈 가리고 아옹의 의미이다.)

사황자가 정색하고 채찍으로 삿대질하자, 주육은 울상을 지었다.

“형님, 정말 아닙니다……. 예, 예. 말하지요. 형님, 별일은 아니고, 그저…… 그 뭐냐, 그 머저리, 정말 쉰내가 나서 못 살겠습니다. 매일 연향루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간절하게 위층을 바라봅니다. 두꺼비 같은 놈에게 아내라도 있으면 매일 연향루 앞에 쭈그리고 있진 않을 거 아닙니까.”

“그게 다냐?”

사황자는 울어야 좋을지 웃어야 할지 모를 기분이었다. 주육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 어르신들이 네가 기녀에게 홀렸다고 말하더니, 정말인가 보구나.”

“홀린 건 아니고요. 형님, 절 모르십니까? 저 같은 사내는 꽃밭을 지나가도 잎 하나 붙이지 않습니다. 제가 누구에게 홀릴 사람입니까. 그냥 아라에게 갈 때마다 보이는데 역겨워서 그런 겁니다. 제가 역겨워서요.”

주육은 얼른 해명했다. 형님이 할머님 앞에서 한마디라도 했다간, 할머님에게 잔뜩 훈계받을 것이다. 잘못하면 아라를 쫓아낼지도 모르고.

“아라? 묵칠이 반했다는 그 아라? 어찌, 이제 너도 반한 것이냐? 그 아라가 그리도 뛰어나냐?”

사황자도 진작 아라의 명성을 들은 터였다. 주육이 허허 웃음 지었다.

“무슨요. 다들 헛소리하며 놀리는 것뿐입니다. 묵칠……이 저처럼 소탈하진 못해도 비슷합니다. 그냥 한때 흥이 나서 아라를 떠받든 겁니다. 한가하니까요. 다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형님?”

사황자가 주육을 위아래로 살펴보았다.

“그나저나, 요즘 철이 들었더구나. 셋째의 외숙 일에 관심 가진 것, 잘했다. 앞으로 이런 일에 많이 유의하여라.”

“예, 예, 마음 푹 놓으십시오, 형님.”

사황자에게 칭찬받은 주육은 순간 신이 나서 활짝 웃었다.

“형님, 형님도 매일 일만 하면 안 됩니다. 긴장했으면 풀어줄 때도 있어야지요. 형님, 아라를 본 적 있습니까? 형님, 아라는 정말로 보기 드문 요물입니다. 형님도 알다시피, 제가 겪어본 여인을 손꼽을 수 없다는 말은 과장이라도 어쨌든 적잖게 겪었잖습니까? 그런데 아라를 품어 본 이후로, 여인을 왜 물처럼 부드럽다고 하는지 진정으로 깨달았습니다. 정말이지……. 아이고!”

주육이 눈썹을 휘날리며 말을 이었다.

“그 뭐더라, 무산의 구름을 보면 다른 산의 구름은 구름 같지 않다고 하지 않습니까! 형님, 혹시…….”

“됐다!”

사황자가 주육을 흘겨보며 말을 잘랐다.

“내가 그럴 겨를이 어디 있느냐. 난 바쁘다. 맞다. 셋째의 외숙일, 내가 다시 어머님께 말씀 드렸다. 신경 좀 쓰라고 큰형님에게 한마디 하시라고 말이다. 그러니 너는 이제 상관하지 말아라. 간다. 얼른 저택에 돌아가라. 어르신들 걱정하신다.”

“바로 돌아가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주육은 얼른 대답하고 사황자를 눈으로 배웅한 다음에 말을 돌렸다.

말에 올라타 흔들흔들 수국공부로 돌아가면서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양와우 일을 왜 대황자에게 맡긴다는 거지. 나에게 맡기면 얼마나 좋아! ‘좋은 색시’를 제대로 골라줄 텐데!

경부 관아에서 나온 영원은 아무 데도 가지 않고 곧장 정북후부로 돌아갔다.

영원은 후원에서 권법 수련하며 땀을 흠뻑 흘리고서야 기분이 조금씩 편안해졌다. 목욕하고 나와서 짧은 소매, 짧은 바지만 입고 얼음 대야를 가득 놓은 커다란 서재에 앉아서 길게 숨을 내뱉으며 위봉낭에게 들어오라고 분부했다. 위봉낭은 휘장을 열고 들어와 공손히 보고했다.

“태평부에서 서신이 왔습니다. 문도가 도착했습니다. 성을 축씨로 바꾸고, 하남 말씨가 섞인 관어(官語: 경성 말)를 쓴답니다. 제법 토박이처럼 말한답니다.”

위봉낭이 영원을 힐끔 살폈다.

“음, 그자가 예전에 숙부와 하독 관아에 있었지.”

하독 관아의 주둔지가 하남이었다. 위봉낭은 순간 깨닫고 고개를 숙이고 말을 이었다.

“문도가 포정사 관아와 두 거리 떨어진 문성항에 삼진 저택을 샀습니다. 태평부에 당도한 첫날, 문묘(文廟: 공자를 모시는 사당)에서 점쟁이들과 종일 이야기를 나눴고요.”

영원이 피식 웃었다. 문도의 겉모습이야말로 점쟁이보다 더 점쟁이 같지.

“하남 축씨 중에 큰 가문이 있나?”

영원이 스스로 차를 따르며 물었다.

“없습니다. 다만 산서 탕가의 윗대가 축씨입니다.”

위봉낭이 빠르게 대답하자, 영원의 눈썹이 까딱 올라갔다.

“이야기해 봐!”

“예. 탕가의 윗대는 강남이 본적이고, 축가, 탕가의 조상 쪽이 지금은 세 방계로 갈라졌습니다. 하나는 산서, 하나는 경성, 또 하나는 강남에 있습니다. 탕가 윗대는 산서 계파와 자주 왕래하고 경성, 강남 두 파와는 소원하답니다. 특히 강남은요.”

영원이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음. 강남에 소식을 전해. 문도를 지켜보지만 말고 안전을 확보해야 한다고. 문도가 머리털 하나라도 다치면…….”

영원이 위봉낭을 힐끔 바라봤다.

“다들 잘 알잖아.”

“예!”

위봉낭이 얼른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나가보고, 유월, 들어오라고 해라.”

위봉낭이 나가고 안으로 들어온 유월은 은근히 미소 지으며 공수했다.

“칠야, 무창 상행 그 거래, 오늘 갈피가 잡혔습니다.”

“말해라!”

영원이 허리를 세우며 찻잔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오늘 오후, 무창 상행 주 장궤가 복양 은루에 갔습니다. 진주와 보석을 가지고 가서, 구멍을 뚫고 꿰어달라고 했는데, 그 진주를 다 구멍 뚫으려면 은루의 모든 일거리를 내려놓고 그것만 해도 꼬박 1년은 걸린다고 했답니다. 다른 일도 하면서 하려면 6, 7년은 걸리고요.”

영원이 소리 내어 웃었다.

“그럼 보석은?”

“남보석 구멍 뚫는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고 했답니다. 너무 작은 건 뚫을 수가 없고, 큰 건, 아까워서 뚫는 사람이 없다고요.”

유월이 빙긋 미소 지었다.

“이렇게 간단한 일이었군.”

영원이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살며시 한숨을 내쉬었다.

“분야가 다르면 산이 가로막힌 것처럼 이해할 수 없다더니, 그런 짝이었어. 나는 장사를 안 하니 몰랐고, 하가는…… 하가도 장사꾼이 아니긴 해도…… 어쨌든 하종수를 꿰뚫고 보고 이 정도면 무너뜨릴 수 있다는 걸 깨달은 거지. 대단한 안목이다. 그 안목에, 식견에, 어쩌다가 강환장과 혼인했을까.”

“사람은 누구나 어리석은 짓을 할 때가 있지요.”

유월의 대답에 영원이 손가락으로 팔걸이를 두드렸다.

“너무 심한 것이 이상할 정도야. 어쩌면…….”

영원이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최신에게 강환장을 더 바짝 지켜보라고 전해라.”

이 낭자의 인품이나 식견으로 강환장과 혼인하다니, 말이 안 될 정도로 어리석은 짓이지. 강환장에게 뭔가 남다른 점이 있나…….

“예. 이 낭자는 요 며칠 다시 예전처럼 매일 보림암에 가서 오시에 돌아옵니다.”

“그래.”

보림암이라는 말에 복안 장공주를 떠올린 영원의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장공주, 이 낭자의 손을 빌려 대황자의 뒤통수를 쳐서 30만 은자를 잃게 하다니. 무얼 하려고.

호위 일로? 이번 일이 호위 때문이었다면, 지난번엔? 오가아를 밖으로 꺼낸 일로 추태를 보일 정도로 자신을 정신없이 만들었었다. 그건 무슨 이유로? 무엇이 거슬렸기에?

영원은 이마를 두드렸다. 이렇게 자기도 모르는 새에 거스르면 안 될 사람을 거스르는 게 제일 두려웠다.

이 낭자를 만나서 물어보면 안 될까?

그 생각이 떠오르는 순간, 영원은 넋이 나갔다. 왜 그런 생각을. 이동을 찾아갈 생각을 왜 한 거야. 왜 그녀에게 물어봐도 될 거라는 생각을 한 거지? 복안 장공주 사람인데…….

지난번에 그녀를 만나서 그녀에게 말했을 때……. 그랬다. 그땐 그녀와 복안 장공주의 관계를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녀에게 한 말, 모두가 장공주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말이었다. 그리고 문도의 일도. 복안 장공주는 모르고 있을 것인데.

영원은 멍하니 그날 그녀와 나눴던 대화를 곱씹었다. 심지어 그녀의 행동거지, 표정, 그녀 손에 들린 청자 잔과 옥처럼 가늘고 흰 손가락…….

지금도 그때 그런 말을 한 걸 전혀 걱정하거나 후회하지 않았다. 어째서 그녀와 나눈 이야기를 복안 장공주에게 알리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드는 거지?

어째서, 그녀와 이야기해 된다고, 믿어도 된다는 생각이 드는 거지?

영원은 생각하느라 넋을 잃었다.

“칠야?”

한참 기다리던 유월은 영원이 여전히 멍하니 있자, 저도 모르게 살며시 그를 불렀다. 영원이 못 들은 것 같자, 유월은 할 수 없이 목소리를 높여 다시 한번 불렀다.

“칠야!”

“아!”

영원은 화들짝 정신을 차리고 뒤로 확 기댔다.

이 낭자 일은 다시 생각하자. 다시 곰곰이 생각하자.

“또 무슨 일이 남았지? 계속해라.”

“예. 궁에 소식이 있습니다. 오후에 진왕이 주 귀비 궁문 앞에 한 시진 넘게 무릎 꿇고 있었답니다. 황상께서 각박하고 무정하다고 벌을 내리셨답니다. 그리고 양와우의 혼사, 진왕에게 떨어졌답니다. 주 귀비가 대황자를 보내 감독하게 했고요.”

“하! 대황자? 재미있네. 주육은? 또 아라에게 갔나?”

“일단 저택으로 돌아갔다가, 금세 다시 나와서 연향루로 갔습니다.”

“옷 갈아입게 사람을 들여라. 나도 연향루에 가 봐야겠다.”

영원이 일어서며 분부하자, 유월이 대영과 대웅을 불러들였다. 옷을 갈아입은 영원은 곧장 연향루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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