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157화 (157/463)

157화: 깨달음

30만 은자를 손에 넣은 이동은 기분이 홀가분해졌다. 이번 거래는 예상보다 순조로웠다.

이른 아침 보림암은 고요하고 평온했다. 이동은 문 앞에서 마차에서 내려 천천히 걸어서 암자를 가로질렀다. 안정적인 걸음, 평온한 얼굴로 오가는 비구니들을 살폈다. 이 암자는 도생 사태로 바뀐 후로, 분위기가 많이 바뀌어서 불문(佛門)의 청정한 느낌이 물씬 났다.

뜰에 먼저 도착해 있던 복안 장공주가 이동을 보고 웃으며 맞이했다.

“며칠 더 걸릴 줄 알았더니.”

이동은 대답 없이 웃는 얼굴로 복안 장공주 맞은편에 앉아서 차를 불에 그을리기 시작했다.

“하가는 장사꾼도 아닌걸요. 위세를 믿고 강매할 뿐이에요.”

“이야기해 봐.”

장공주는 흥미 가득한 모습이었다. 이동은 무창 상행이 산초를 내리는 걸 봤던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생각지도 못했어요. 장궤들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요. 누가 그렇게 어리석게 장사하겠어요. 그 일로 생각했죠, 무창 상행은 장사를 못한다고요. 그 생각이 들길래, 그때부터 유심히 지켜봤어요.”

복안 장공주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물었다.

“음, 하종수가 장사를 몰라서, 산초 건을 해결하지 못했다고 해도, 무창 상행에도 장궤가 있잖아. 장궤들도 똑같이 모른다고 치자. 뱃사람들은 분명 알 텐데, 어째서 아무도 입도 뻥끗하지 않은 거지?”

이동이 미소 지었다. 장공주의 예리함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니까요. 이가도 진하 부두에 창고를 몇 곳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일꾼을 무창 상행이 물건을 맡긴 창고에 보냈죠. 며칠 전에 밤새 비가 온 날, 아침엔 갰어요. 이른 아침에 무창 상행 관사가 산초를 꺼내 말리라고 지시했대요.”

이동은 느긋하게 그날 일을 장공주에게 말했다.

“그날부로 알게 됐죠. 무창 상행과의 거래가 매우 쉬울 거라는 걸요.”

복안 장공주는 아무 말도 못 하겠다는 표정으로 한참 만에 ‘하’ 소리를 냈다.

“하가가 그렇다면, 대황자는? 똑같아? 조정에서 어사를 때려죽이는 것과 뭐가 달라? 위에 있는 사람이 이렇게 아랫사람이 말하는 걸 차단하고, 자기 살길을 끊는다고?”

“그 일이 있기 전엔, 한원부 산초 거래를 어떻게 이런 식으로 해왔는지 이해할 수 없었죠. 그런데 이제는 알겠더라고요. 관사는 장사를 모르고, 장사를 아는 관사는 말을 못 하거나 말을 하기 싫은 거예요. 산초를 제대로 채집하지 못하고, 제대로 보관을 못 했어요. 모든 과정에서 아는 사람은 그냥 모르는 사람이 헛소리하며 나대는 걸 입 꾹 닫고 보고만 있었던 거죠. 그러니 무창 상행이 산초를 넘겨받은 이래 품질이 줄곧 떨어진 거예요. 경성에 도착했을 땐 곰팡내만 나는 거죠.”

이동은 아까운 표정이었다.

복안 장공주가 시원스럽게 평가했다.

“어리석은 것들이지!”

“그런 상황이길래, 집안에 오래 가지고 있던 쓸모없는 작은 진주와 홍남 보석을 하종수에게 팔았죠. 30만 은자에 팔았어요. 장궤와 계산해 봤는데, 무창 상행의 이번 산초 거래, 본전과 이문까지 해서 손에 들어오는 게 고작 그 정도더라고요. 거기에 무창 상행이 내년 산초를 예약하고 은자 절반을 미리 냈어요. 그러니까 수중에 현은 30만 냥이 있었을 거예요. 그걸 다 거둬왔죠.”

장공주가 눈살을 찌푸리자, 이동은 빙그레 미소 지으며 그녀를 바라봤다.

“장공주께서도 짐작 못 하는 걸 보면 안심해도 되겠네요.”

“말해봐.”

“네. 일단 진주 주렴을 팔고, 다시 되샀어요. 그런데…….”

이동은 잠시 말을 멈췄다.

“마지막엔 영원이 사 갔어요. 5만 냥을 주고 사 가자마자 바로 팔아버렸더라고요. 10만 냥에요.”

장공주가 찻잔을 깨물었다.

“영원? 손 안 대는 곳이 없네! 주렴이 네 것인 걸 알았대?”

“아마 모를 거예요. 하지만 제가 하종수를 지켜보고, 전 장궤에게 부탁해서 진주와 보석을 판 건 알 거예요.”

이동은 영원과 만난 일, 그리고 문도가 자기를 찾아온 걸 아느냐고 영원이 물었던 일은 건너뛰었다.

“역시 영가에 쓸모없는 인간이 나올 리가 없지.”

복안 장공주는 두서없이 말하고는 계속하라고 했다.

“전 장궤를 통해서, 그 물건을 우리 어머니도 눈독 들이고 있다고 하종수에게 말했죠. 사서 진주 주렴, 홍보석 주렴, 남보석 하피를 만들 생각이라고요.”

“음. 아버지가 진주 주렴을 주신 적 있어. 확실히 귀한 물건이었지. 10만 은자도 비싼 게 아니야.”

복안 장공주는 조금 허전한 표정이었다.

“주렴도 그렇고, 하피도 그렇고, 진주와 보석에 구멍을 뚫어야 해요. 진주는 그나마 괜찮고, 보석도 노련한 사람이 천천히 뚫으면 손실이 크진 않아요. 하지만 수천 개 구슬을 뚫으려면 경성의 모든 세공사를 불러 모아야 할 거예요. 그래도 한 달은 걸릴 거고요. 그런데 온 경성의 세공사를 불러 모으려면…….”

이동이 장공주를 바라보자 장공주는 깨달은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황자가 보위에 오른 후라면 모를까.”

“네. 설령 모두 불러 모은다고 해도, 공임이 만만치 않아요. 게다가 녹두보다 더 작은 보석에 구멍 뚫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에요. 자칫하면 보석이 깨질 거예요. 노련한 사람들도 성공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요. 진주 주렴은 일단 세공 기술이 있어야 진주가 귀해지는 거고요. 하종수가 장사할 줄 모르는 걸 믿고 골탕 먹인 거예요.”

복안 장공주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인간은 주제를 알아야 하는 거야. 남이 골탕 먹인 게 아니라, 제가 알아서 골탕 먹은 거지. 영원은 그 주렴으로 뭘 할 생각일까?”

장공주가 갑자기 말머리를 돌리자, 이동은 어리둥절해졌다.

“뭘 하면 제일 좋을까.”

복안 장공주가 다시 말을 이었다.

“나라면…….”

그러고 손가락으로 찻잔을 톡톡 쳤다.

“넷째에게 선물하겠지. 조금 더 독하게 나오려면, 하가에 들어간 진주를 다 망쳐버리거나.”

그 말에 이동은 넋이 나갔다.

경성에서 가장 큰 복양 은루(銀樓: 금은방)에서 나온 주 대장궤는 햇살이 비치자 머리가 어질어질한 것이 기절할 것만 같았다.

‘대장궤, 농담도 참. 이런 크기의 진주를, 이렇게나 많이, 일일이 구멍을 뚫는다니요. 우리 은루의 다른 일거리는 모두 내려놓고 이 일만 한대도 최소, 최소 1년은 꼬박 걸립니다. 그럼 우리 은루는 문 닫아야 하게요? 문 닫지 않고 하려면 최소한 6, 7년은 걸립니다. 더 걸릴 수도 있고요. 대장궤, 어쩌다가 이런 일거리를 맡으셨습니까. 진주 주렴은 재룟값 3할, 공임이 7할입니다. 남쪽에 진주 구멍 뚫는 장인이 있다던데, 남쪽에 알아보시지 그러세요.

이 홍보석, 남보석은 다 괜찮군요. 뭐라고요? 이것도 구멍을 뚫는다고요? 대장궤, 정말로 농담도 잘하십니다. 이런 크기 홍, 남보석을 구멍 뚫는다는 이야기는 또 처음입니다. 이런 보석은 진주랑 다릅니다. 매우 단단합니다. 예? 더 큰 거요? 그 아까운 걸 누가 구멍을 뚫는답니까? 이가요? 아, 그럼 또 모를 일이지요. 남쪽엔 각종 구멍을 꿇는 장인이 있다고 들었으니 아마도 홍보석, 남보석도 뚫겠지요. 게다가 저마다 비법이 있으니, 다른 집에선 우리가 못하는 걸 할 수도 있으니까요…….’

주 대장궤는 사환의 손을 잡고 몇 걸음 옮긴 후에야 정신이 퍼뜩 들었다.

그래, 수지맞은 장사라 했는데, 함정이구나!

그 생각이 들자, 주 대장궤는 목이 타고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전 장궤와 거의 10년 친분이 있는데, 감히 자신을 속이다니. 감히 하가를 함정에 빠뜨려? 감히 대야를 함정에 빠뜨려? 간이 얼마나 부어야 가능할까.

아니, 전가는 그럴 사람이 아니다. 그럴 간도 없어!

누군가 있다. 누군가가 전가까지 속인 걸까?

“힐수방으로 가자!”

주 대장궤가 이를 악물고 분부했다.

힐수방, 관사 정(程) 어멈은 예의 바르고 조심스럽게 주 대장궤를 맞이했다.

주 대장궤, 안색이 너무 안 좋은 게 트집 잡으러 온 얼굴인데?

“대장궤, 무얼 보여드릴까요? 얼마 전에 댁의 태태와 대낭자가 치마 몇 벌 지으러 오셨었습니다. 대낭자가 참으로 갈수록 우아하고 단정해지더라고요. 그림 같았습니다.”

정 어멈이 티 나지 않게 우선 비위부터 맞췄다.

“남색 옷감을 많이 들였다면서? 일단 좀 가지고 와 보게.”

주 대장궤가 빤히 보며 하는 말에 정 어멈은 얼떨떨해졌다.

“남색 옷감이요? 대장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손님 접대만 하지, 물건 구매는 따로 관사가 있습니다.”

“가서 물어보게! 새로 들인 게 있으면 견본을 좀 보여 주고.”

주 대장궤는 오만하게 정 어멈의 말을 잘랐다. 정 어멈은 웃음 지어 보이고는 그의 안색을 살피며 잠시 주저하다가 긴말 없이 장궤를 찾으러 들어갔다.

무창 상행은 언제나 저런 꼬락서니지. 대체 자기가 뭐라고 힐수방에 와서 무슨 물건을 들였는지 따지는지 모를 노릇이네. 온 경성 사람이 힐수방이 무슨 물건을 들였는지 알아야 해? 장사를 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정 어멈의 말을 들은 요 장궤는 한참 만에 한숨을 내쉬며 서랍을 열어서 종이봉투를 꺼내 품에 넣었다.

“가세. 내가 나가 보겠네.”

“장궤! 우리가 무슨 물건을 들일 건지 왜 외부인에게 알려야 합니까. 우리 힐수방의 법도가…….”

요 장궤가 견본을 주 대장궤에게 보여 주려는 듯하자, 정 어멈은 다급해졌다.

요 장궤가 정 어멈의 말을 잘랐다.

“나도 아네. 다 생각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아. 게다가 아무 일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그럼 됐습니다.”

요 장궤의 말에 정 어멈은 마음을 놓았다. 요 장궤 밑에서 몇십 년 있은 만큼, 요 장궤가 괜찮다면 분명 아무 일 없을 것이다.

요 장궤는 정 어멈을 뒤세우고 들어와서 장읍하며 예를 갖췄다. 기분이 언짢은 주 대장궤는 그녀를 힐끔 보고는 앉아서 일어나지 않고 그저 공수만 했다.

“자넨 가서 일 보게. 내가 대장궤와 말씀 나누겠네.”

요 장궤가 부드럽게 말하자, 정 어멈이 무릎을 구부리고 물러갔다.

“견본은? 가지고 왔나? 한번 보세.”

인사치레할 심정이 아닌 주 대장궤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가지고 왔습니다. 다만…….”

요 장궤가 매우 난처한 듯 품을 쓰다듬었다.

“장사하는 법도를 대장궤도 잘 아시겠지요. 새롭고 특별한 걸 내놓는 거 아닙니까. 우리 힐수방은…….”

“내가 지금 힐수방이 어떤 새 물건을 예약했는지 알아보러 온 건 줄 아는가? 따라서 사들이기라도 할까 봐? 잡생각이 많기도 하지!”

기분이 구겨질 대로 구겨진 주 대장궤는 말이 가차 없었다.

“주제를 좀 알게! 우리 무창 상행이 힐수방을 따라 할 필요가 있는가? 다 자네들 좋으라고 보러 온 걸세!”

요 장궤가 웃음 띠며 맞장구쳤다.

“예, 예. 그렇겠지요. 힐수방 같은 작은 점포가 무창 상행 눈에 들 리가 있겠습니까. 소인 말은, 보신 다음에 밖에서 이야기하지 말아달라, 잘 부탁드린다는 말씀이지요.”

“당연한 소릴!”

주 대장궤는 짜증 나는 듯 쥘부채로 탁자를 내리쳤다.

“예, 예, 예.”

요 장궤는 계속해서 웃음을 지으며 품에서 작은 봉투를 꺼냈다. 안에서 천 조각 한 다발을 꺼내주자, 대충 훑어보니 옅고 짙은 푸른빛 옷감이 대부분인 걸 본 주 대장궤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천 다발을 요 장궤에게 던져주고는 일어서서 돌아갔다.

요 장궤는 견본 천을 봉투에 다시 넣고 주 대장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장차 행여 대황자가 보위에 오르면, 하가의 주 대장궤가 얼마나 만횡을 떨까. 경성 장사 중에 눈독 들이는 게 있으면 양손으로 떠받쳐야 하지 않나.

주 대장궤는 지금 요 장궤보다 훨씬 고민이 많았다. 조금 전에 자리에 앉아서, 전 장궤와 한 거래를 앞뒤 좌우로 곰곰이 곱씹어 보았다. 전 장궤는 그를 속이지도, 대야를 속이지도 않았다. 전 장궤의 말엔 거짓이 하나도 없었다. 진주와 홍보석, 남보석 세공이 쉽지 않다는 말도 한두 번 한 게 아니었다.

그러니 이번 거래에 함정이 무엇인지 알아낼 수가 있어야지! 하 대야가 장사를 너무 몰라서 일어난 일인 것을!

이젠 어쩐다. 대야에게 어떻게 이야기하나. 너무 큰 일이라 자기는 감당할 수 없었다. 누구에게 뒤집어씌우면 제일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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