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156화 (156/463)

156화: 적나라하게 일을 키우다

전 장궤가 밖으로 나가서 분부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종복이 상자를 들고 들어왔다. 내려놓고 뚜껑을 열었더니 안에 큰 상자 하나, 작은 상자 두 개가 들어 있었다. 전 장궤가 직접 종복과 함께 상자를 꺼내서 뚜껑을 열었다.

상자 하나엔 녹두보다 조금 작은 진주가 가득했다. 과연 알알이 둥글고 빛이 났다. 크기와 색이 거의 똑같은 것이 상자 가득 진주 광채가 부드럽고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하종수는 상자에 손을 넣고 뒤적뒤적, 또 뒤적뒤적했다. 진주가 손가락을 스치고 흐르는 느낌이 매우 좋았다.

“나리, 마음 푹 놓으십시오. 다 똑같습니다!”

하종수는 다시 다른 두 상자를 바라봤다. 홍보석은 과연 전 장궤가 말한 것처럼 모두 합혈홍인데, 녹두 반만 한 크기에 한 움큼 집어서 빛 아래 들여다봤더니 알알이 빛이 찬란하게 흘렀다. 확실히 세공을 매우 잘한 듯했다.

남보석은 홍보석보다 조금 못해 보이는데, 전 장궤가 서둘러 짙은 남빛 사융(絲絨: 벨벳)을 남보석 밑에 댔다.

“나리, 이렇게 해서 보십시오. 남보석이 조금 작고 따로 보면 대단해 보이지 않긴 하지만, 이 남색 융과 받쳐서 보면, 어떻습니까? 장 태태가 하피를 만든다고 할 만하지요?”

과연 그랬다. 짙은 남빛 사융과 함께 보니, 남보석이 융단에 흐르는 푸른 물방울처럼 영롱하고 부귀해 보였다.

하종수가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 물건, 내가 하겠네.”

“나리, 축하드립니다! 역시 나리의 안목이 대단하십니다!”

이렇게 팔기 힘든 물건을 팔아치운 전 장궤는 너무나 기뻐서 얼른 종이와 붓을 가지고 오고, 상자를 봉하라고 종복에게 명령했다.

“조달할 다른 화물도 있어서, 이 물건은 선수금으로 5만 먼저 내겠네. 나머지 25만은 다음 달에 주지.”

하종수의 말에 전 장궤는 얼떨떨해하다가 금세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실로 죄송합니다. 나리도 아시다시피 제가 밑천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번 물건을 이가가 안 받겠다고 한 것도 아닙니다. 저도, 사실 이번 거래는…… 제가…… 그 뭐냐, 나리, 혹시 마음에 썩 드는 게 아니라면 이번 거래는 내려놓고 다음에 다시 거래하셔도 됩니다. 좋은 거래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 알이 작은 진주나 사소한 보석이야 이가가 원한다니 이가에 주어도…….”

“그게 무슨 말인가? 내가 은자를 떼어먹겠나?”

하종수가 언짢아져서 싸늘하게 물었다.

“그럴 리가요. 그 정도 은자를 어디 안중에나 두시겠습니까. 다만 소인이 작은 밑천으로 장사하는지라, 물건이 팔리면 은자도 곧바로 나가야 합니다. 제가 미리 낼 형편이 도저히 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그러는 법도 없고요.”

전 장궤의 태도는 매우 공손했지만, 말은 매우 단호했다.

하가와 무창 상행이 어떤 위인인지, 평소에 어떤 모습으로 장사하는지, 장사하는 사람이면 다 알지. 하 대야는 지금 5만으로 물건을 꿀꺽할 속셈인 게야!

하종수의 안색이 새카매지자, 주 대장궤가 은근히 협박했다.

“전 장궤, 우리 대야가 어떤 사람인지 아직 모르는가? 우리 대야의 말을 못 믿겠다는 건가, 아니면 뭔가? 경성에서 장사할 생각이 없는 것인가?”

전 장궤가 연신 읍을 했다.

“주 대장궤! 하 대야가 누구십니까? 제가 어찌 하 대야를 못 믿겠습니까. 다만 제가 어찌 장사하는지 아시잖습니까. 본전이랄 게 있습니까? 물건은 나갔는데 현은으로 내지 못하면, 저는 장사 접어야 합니다. 이 정도 거래도 성사 못 해서 돈을 받지 못하면 당장 물건을 돌려받으려고 할 겁니다. 아니면 관아에 곧바로 고발하겠지요. 주 대장궤, 하 대야, 실로 죄송합니다. 제가 미리 낼 수 있으면 두말하지 않았을 겁니다. 실로 하릴없습니다. 두 분 나리, 절 좀 봐주십시오.”

전 장궤는 절대로 허락하지 않았다. 정말 허락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이고, 앞으로 하가는 멀리 피하고 보자.

하종수가 탁자를 내리치자, 전 장궤가 울상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하 대야, 아시잖습니까. 지금 영 칠야가 매일 관아에 앉아 있습니다. 황상께서 친히 명하셨다고요. 영 칠야의 명성……이야 분명 소인보다 더 잘들 아시겠지요. 소인이 은자를 내지 못했다가, 상대가 고발해서 영 칠야에 손에 떨어지면, 대야, 소인 살아갈 길이 있겠습니까? 하 대야도 굳이 그럴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하종수가 싸늘하게 그를 노려봤다.

“지금 날 협박하는 겐가?”

“아이고, 대야! 소인이 간이 배 밖으로 나왔대도 그런 짓은 못합니다. 실로 하릴없어 그럽니다. 대야, 사실 이번 거래는 그리 좋은 거래도 아닙니다. 진주 주렴은 가공하기도 힘들고, 남보석, 홍보석은 단단하고 작아서 구멍 뚫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무창 상행이 보석 장사를 해본 적도 없고, 세공할 사람을 찾기도 어려우니 이 거래가 쉽지 않을 겁니다. 이번 거래는 치웁시다. 다음 달에 천주항에 적어도 배 두 대가 들어올 거고, 좋은 물건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거래를 안 하면 안 했지, 돈을 잃을 순 없지!

전 장궤를 흘겨보던 하종수가 별안간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농 한 번 한 거다. 꼴 좀 보게. 갈수록 이상한 말을 하는군. 이렇게 장사하는 것이 성실한 건가?”

“아이고, 대야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소인은 사실 그대로 말씀드리는 겁니다. 거짓은 하나도 고하지 않았고요. 진주, 보석은 가공이 실로 어렵습니다. 세공사를 찾기 어렵다는 말도 사실이고요. 이 거래는…….”

하종수가 손을 휘둘러 전 장궤의 말을 막았다.

“됐네! 주 장궤, 이자를 데리고 은호에 가서 은자를 지급하게. 물건은 우리 상행에 가져다 놓고.”

“감사합니다, 나리!”

전 장궤는 연신 장읍하며 감사 인사를 하고는 무심결에 식은땀을 닦았다. 하가 같은 귀인하고 거래하는 건 날강도와 거래하는 것과 비슷했다.

주 육소야는 요즘 기분이 좋았다가 나빴다가를 반복했다.

영원 형님이 두 사람이 전에 같이 봤던 물건을 팔았다고 은자 만 냥을 나눠줘서 기분이 좋았지만, 기분이 나쁜 건 매일 연향루 맞은편에 쭈그리고 앉은 양와우 때문이었다. 큰 파리가 목구멍에 걸려서 삼키지도 뱉지도 못하는 기분이었다.

당장 양와우의 두 눈을 파내고 두 다리를 부러뜨리고 싶었다. 하지만 주 육소야가 조금 성미가 고약하고, 생각이 부족하긴 해도, 어찌 됐든 생각이란 게 조금은 있었다.

양와우가 진왕의 친외숙인데, 아무리 양와우가 변변치 못한 인간이라고 해도 치울 수는 없었다. 정말로 손을 댔다간, 황상이 모르면 모를까, 진왕이 고자질하기 전에 황상이 중벌을 내릴 것이다. 대전 앞에 무릎 꿇고 있다가 금어대 하나 더 주면서 끝날 일이 아니었다. 어찌 됐든 황가 존엄과 관련된 문제니까.

황상은 분명 알게 될 것이다. 진왕은 고자질하지 못하겠지만, 큰형님이 있으니. 어쩌면 대황자도 나설 것이고. 게다가 주가가 된통 당하길 간절하게 기다리는 사람도 많았다.

아이고!

주 육소야는 울화가 치밀었다. 목구멍에 파리가 걸린 울화를 풀 곳이 없어서 생각하고 생각하던 그는 결국 영원을 찾아가기로 했다. 영원 형님에겐 분명 좋은 수가 있을 테니까.

주육의 이야기가 끝나자, 영원은 얼음에 담가뒀던 포도를 우물거리면서 그를 삐딱하게 바라봤다.

“이런 하찮은 일로 날 찾아온 거냐? 내가 그럴 겨를이 어디 있어.”

“영원 형님, 방법만 생각해 주시오. 다른 건 상관할 것 없어. 내가 할게! 형님은 방법만 내주면 돼!”

주육이 잔뜩 알랑거리는 얼굴로 바짝 다가가 쭈그리고 앉았다.

“없다!”

“형님!”

영원이 단칼에 거절하자, 주육이 다시 비벼댔다.

“아라가 짜증 나서 죽으려고 해요. 형님…….”

“묵칠이 초래한 일인데, 짜증 나면 묵칠을 찾아가라고 해라. 묵칠은 분명 좋은 수가 있을 거다.”

영원이 포도를 입에 넣으며 나른하게 하는 말에 주육은 울상을 지었다.

“형님, 그랬다가 묵칠이 정말 그 달팽이 놈을 해결하면, 아라 앞에서 내 체면은 뭐가 되나. 아라가, 그 달팽이 놈에게 여인을 찾아주라고 하던데. 아니면 혼인할 사람을 찾아주라고. 형님, 내가 무슨 수로 그 인간 아내를 찾아주겠냐고. 세도가 여인이라야 한다고, 양빈이 그랬다면서. 세도가는 됐고, 배경 없는 집안에서도 누가 혼인하려 하겠어. 진흙탕 같은 인간이. 게다가, 그 혼사에 내가 무슨 수로 간섭하냐고.”

“그럼 가서 진왕을 재촉하면 되는 거 아니냐.”

영원은 지극히 무책임하게 한마디 했고, 주육은 눈을 깜빡이며 손뼉을 쳤다.

“맞네! 나는 간섭할 수 없어도, 고모가 계시지! 고모를 만나서 이야기해야겠어! 양빈의 친아우, 양가 외동이 서른 넘어 곧 마흔이 되는데 아직 혼인하지 못했는데 진왕이 외숙을 신경 쓰지도 않는다고. 하하하.”

주육이 허벅지를 내리치며 크게 웃었다.

“진왕까지 함께 고해바쳐야겠어! 어떻게든 고모가 톡톡히 혼내주게 해야지! 황상까지 훈계하면 더 좋고. 그러면 나도 이 화를 풀 수 있겠지! 지금 바로 가야지! 영원 형님, 형님은 정말 신선이야, 신선! 돌을 금으로 만들잖아!”

주육은 벌떡 일어나서 날 듯이 밖으로 나갔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영원은 한참 뒤에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이 저렇게까지 어리석을 수 있다니, 천지의 조화라는 게 대체 어디 있는 건지.

유월이 평범한 종복 차림을 하고 문 앞에서 나지막이 기별하고는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영원에게 바짝 다가가 속삭였다.

“칠야, 하종수가 해산물 화물 거래를 한 건 했습니다. 바로 조금 전입니다. 무창 상행 대장궤가 전 장궤를 복륭 전장에 데리고 가서 은자 30만을 내주었습니다. 작은 진주 큰 상자, 홍보석과, 남보석 작은 상자를 샀답니다.”

“어디 물건인데?”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원래 이가 태태가 점찍은 거라고만 알아냈습니다. 이가 태태가 요즘 마음이 불편해서 거래를 성사하지 않은 사이에 전 장궤가 하종수에게 팔았답니다.”

영원은 곧바로 무슨 일인지 알아들었다. 이가 낭자가 짠 판임이 틀림없군. 그러면 이 판의 중점은?

“물건에 문제가 있나? 그건 알아냈고?”

“아룁니다, 알아냈습니다. 전 장궤 밑에 있는 물건 보는 관사에게 특별히 물었는데, 30만이면 싼 편이랍니다. 진주가 녹두보다 좀 작아도, 색과 크기가 균일한 점이 귀하답니다. 게다가 알알이 둥글고, 보석도 크기는 작아도 세공을 잘하고 색이 선명하답니다. 작긴 작아도 수량이 되면 귀해집니다. 그래서 30만이라도 비싸지 않답니다.”

유월은 매우 상세히 설명했고, 영원은 눈살을 찌푸렸다. 수지맞는 거래라…….

“녹두보다 작으면 꿰서 머리 장식 만드는 것 말고 뭘 할 수 있어서? 그런 걸 사서 무얼 한대?”

“진주는 주렴으로 만든답니다. 이만한 거로요.”

유월이 손을 들어 크기를 가늠해 보였다.

“네댓 개는 나온답니다. 홍보석도 주렴으로 만들 거고요. 하나 나올 양이랍니다. 남보석은 하피를 만들 작정이랍니다. 몇 개나 나올지는, 어떤 모양으로 만드냐에 달렸답니다. 아무리 못해도 서너 개는 나온답니다.”

“진주 주렴이라…….”

영원이 미간을 찌푸렸다. 정말로 네댓 개를 만들면, 하가의 수완과 뻔뻔함이라면 개당 10만은 받을 것이다. 대놓고 돈 버는 장사였다.

이렇게 대놓고 돈 버는 장사라니. 그럴 리가.

왜 이런 짓을? 무얼 위해?

“얼른 지켜봐라!”

영원은 입안에 포도를 짓씹었다. 얼굴이 매서워졌다. 이번 거래, 혹시 이 낭자가 실수한 거라면 불태워 없애 버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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