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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153화 (153/463)

153화: 이것도 다 장사

경성을 떠난 문 이야는 사흘째부터 길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날마다 새벽에 출발해서 저녁에 잠시 쉬고 석양이 떨어지기 전에 객잔에 묵었다.

이날 저녁, 객잔으로 들어가 밥을 먹고 여복을 불러 분부했다.

“내가 이따 공대에게 두 사람 골라주라고 할 테니, 너희 셋이 먼저 말을 타고 출발해서 태평부로 가라. 빠를수록 좋다. 도착한 다음에 태평부에서 황 장궤를 찾아가 두 가지 일을 해라. 하나는 황 장궤의 도움을 받아서 최근 20년 동안 태평부에서 나온 거인이 몇인지 조사해라. 많지 않을 테니, 단자로 정리해라. 이름이 무엇인지, 나이는 몇인지, 가족은 어떻게 되는지, 지금은 무얼 하는지 다 적어라. 나중에 쓸 일이 있다.”

어려운 심부름은 아닌지라 여복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째, 거인을 정리한 다음엔, 진사에 급제한 사람은 신경 쓸 것 없고, 떨어진 사람 중에 산 사람도 내버려 두고 죽은 자가 몇인지 조사해라. 어떻게 죽었는지, 집안에 남은 사람이 있는지 상세히 조사해라. 내가 도착하면 바로 쓸 것이다.”

여복은 쓸데없는 말은 하나 없이 바로 물었다.

“내일 반 시진 더 일찍 출발할까요?”

“그러면 좋지.”

문 이야가 여복의 어깨를 토닥였다.

“신경 써서 해라. 잘 해내면, 너희 태태와 낭자가 큰 상을 줄 것이다.”

여복이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야. 소인은 가노라서 법도를 잘 압니다. 태태와 낭자는 상을 내릴 때 후하고, 벌도 무섭게 하십니다. 소인, 허투루 일하지 못합니다.”

문 이야는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여복이 물러간 후, 문 이야는 창가로 가서 창밖에 보이는 등불을 바라보며 한참 넋을 놓았다.

그가 하려는 일은 쉽지만, 경성의 영 칠야가 해야 할 일은 매우 어려웠다. 영 칠야가 하려는 일은 그로서도 착수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주육은 이틀 동안 영원을 찾지 못하다가 사흘 만에 겨우 찾아내고는 딱 붙들고 늘어졌다.

“영원 형님, 이틀 동안 어딜 간 거요. 내가 얼마나 찾아다녔는데. 온 경성을 뒤집고 다녔다고. 조회엔 매일 나갔다는 말을 들어서 망정이지, 무슨 일이 난 줄 알았다고. 뭘 하고 다닌 거야?”

“하암, 물건 보러 다녀왔다.”

“물건이라니? 또 장삿거리가 있어?”

주육이 들뜬 얼굴로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하도 공사하고 어림잡아 봤는데, 한 달 만에 은자 5, 6천을 얻었다.

“별거 아니다.”

영원이 다시 하품했다.

“뭔데? 형님, 저기, 나도 데리고 가면 안 되나? 형님 따라 제대로 배우게.”

주육은 열심히 알랑거렸다. 영원 형님은 한 달에 5, 6천 버는 장사는 거들떠보지도 않잖아. 그런 형님의 눈에 든 장사라면…… 반드시 함께 가야 해!

“그게 뭐가 어렵다고!”

“형님! 정말 멋지다고! 형님, 무슨 장사인데?”

영원이 대번에 승낙하자, 주육은 영원 곁을 빙빙 맴돌았다. 흥분해서 도저히 앉을 수가 없었다. 영원이 새하얀 은자로 보일 지경이었다.

영원이 쥘부채로 주육의 머리를 톡 내리쳤다.

“정말 멍청하구나, 너! 보름 뒤가 무슨 날이냐?”

“무슨 날?”

주육의 어리둥절한 표정에 영원이 뒤로 기대며 대답했다.

“네 고모 생신인데, 그것도 잊었냐? 해마다 생신 선물 준비하지 않아?”

“생신 선물을 내가 왜 준비해. 돈도 없는걸. 해마다 고모 앞에서 고분고분 절하면, 고모님이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오히려 선물해주시는걸. 생신 선물 중에 마음대로 고르라고 하실 때도 있어.”

주육이 하하 웃으며 하는 말에, 영원은 어이없다는 듯 그를 바라보다가 머리를 쓰다듬었다.

“머리를 괜히 달고 다니는구나. 정말 아깝다.”

“하하, 나도 그렇게 생각해. 형님, 얼른 말해 보라고. 무슨 장사인데?”

“네 고모 생신인데, 온 경성에서 거의 다 선물을 보내지 않겠냐?”

“그야 물론이지!”

주육이 가슴을 활짝 폈다. 입꼬리는 뿌듯하고 거만하게 위로 치솟았다.

우리 고모님 생신인데, 받들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럼 다들 귀한 선물을 하려고 고심하지 않겠냐? 귀하고, 다른 사람과 다른 선물을 하려고 말이다. 고모님을 기쁘게 하진 못한대도, 적어도 눈길은 받아야 할 것 아니냐.”

“그야 물론이지. 형님, 우리가 그 방법을 대신 생각해 주잔 말이야? 하지만 난 방법이 없는데? 고모님이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는걸? 고모님이 부족한 게 뭐가 있어서? 아무것도 거들떠보시지 않는걸!”

주육도 그제야 무슨 말인지 조금 감이 온 모양이었다.

하지만 영원이 피식 웃고는 쥘부채로 쉴 새 없이 주육의 머리통을 두드렸다. 말도 안 나오는군!

“내가 졌다, 졌어. 방법을 생각하긴 뭘 해! 그딴 거로 돈이 몇 푼이나 된다고. 내가 며칠 동안 무얼 했는지 아느냐? 물건을 봤다고 했잖냐! 이따 또 갈 거다. 내 눈에 드는 것, 비범해 보이는 것, 모두 내가 거둘 거다. 그런 다음에 나중에 선물해야 하는 사람에게 파는 거다. 이게 장사지! 이 멍청아!”

“밑천이 많이 들잖아.”

주육이 놀라 고함쳤다. 영원은 삐딱하게 그를 바라보며 상대하지 않고 부채를 촤르륵 펼쳤다.

“형님, 도대체 돈이 얼마나 많은 거야? 다 형님이 번 거야? 형님, 앞으로 장사할 때 꼭 나를 데리고 가줘. 이 아우, 형님을 모시면서…….”

“방해하려고?”

영원이 말을 잇자, 주육이 빙긋 웃었다.

“말하는 것 좀 보게. 아무리 그래도 방해할까! 형님, 우리 이 장사에 내가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다고! 이렇게 하자. 우리 쪽에서 산 선물은, 내가 보증하는 거야. 고모님이 한 번은 보게 할 거라고. 적어도 힐끔 보기라도 하게 하면 되잖아. 형님, 어때? 그럼 적어도 5백, 천은 더 비싸게 팔지 않겠어?”

“네 입에서 나오는 거라고는 하나같이 쓸데없는 생각뿐이구나. 갈수록 구려! 너처럼 장사하다가는, 며칠 내에 율법을 거슬러서 돈도 못 벌뿐더러 황상에게 불려가 대전 앞에 무릎 꿇고 있어야 할 거다!”

“꿇으면 좋지. 봐봐, 금어대도 얻었는걸?”

주육이 바보처럼 웃었다. 꿇으면 꿇는 거지. 뭐 대수라고.

“잘 들어라. 우리 이 장사는 조용히 해야 하는 거다. 왜? 네가 말해 봐라, 우리 장사, 매우 쉽지? 본전만 좀 들이면, 많이도 볼 것 없다. 한 사람당 5, 6만 은자는 손에 넣을 거다.”

“얼마? 5, 6…… 만? 아이고, 형님!”

주육은 침까지 흘릴 지경이었다.

“입 좀 다물어라!”

영원이 부채로 주육의 입술을 톡 때렸다.

“예, 예. 말씀하시지요. 소인, 어깨를 주물러 드리겠습니다.”

주육은 바짝 엎드려서 아부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없어서 그렇지,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일이다. 다른 사람이 알면 절대로 안 된다. 예를 들어 네 형님…….”

영원이 말꼬리를 길게 늘였다.

“네 생각에 네 형님이 끼어들겠냐, 안 끼어들겠냐? 이렇게 쉽게 돈 버는 일인데?”

주육은 바로 깨달았다.

“맞네! 형님은 문제도 아니지. 대황자는……는 좋은 것만 보면 무는걸. 그리고 사황자도. 사황자도 돈이 심하게 궁하다고. 전에 우리 아버지에게 은자를 빌려 갔는걸. 우리한테 이런 장사가 있다는 걸 알게 되면…… 한 번에 10만 냥을 버는 장사가 있는 걸 알게 되면…….”

주육이 부르르 떨었다.

“형님, 우리 입 꾹 닫아야 한다.”

밤새 큰비가 내리더니, 아침이 되자 햇빛이 찬란하게 빛나고 하늘이 맑게 갰다.

진하 부두, 이가 창고 2층 구석에 반 층 정도 더 높은 망루가 있었다. 이동과 영 대장궤가 망루에 서서 바삐 움직이는 장해 창고를 바라보고 있었다.

장해 창고는 이동 외할머니 명의 사업이었고, 지금은 장 태태 명의로 있었다. 장해 창고에 무창 상행의 산초가 잔뜩 쌓여 있었다.

이동은 눈을 가늘게 뜨고 장해 창고 마당에 긴 의자를 놓고 멍석을 까는 걸 지켜봤다. 산초를 말리려는 것이다.

영 대장궤가 한숨을 내쉬었다.

“한원부의 산초 장사, 무창 상행 손에 완전히 망했군요.”

“그래.”

이동은 들릴 듯이 말 듯이 대답하고는 한참 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하종수가 장사를 꽤 한다고 하지 않았나?”

영 대장궤가 허허 웃었다.

“그거야 누가 말하느냐에 따라 달라지지요. 문 이야가 떠나기 전에 함께 그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수국공부와 혼인한 하 부인이 하 대야의 친누이입니다. 문 이야 말이, 하가가 이런 식으로 일하는 게 한두 대의 문제가 아니랍니다. 심복들이 황금알을 가로챌까 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랍니다. 하가 장방에서 고깃덩이를 남의 손에 넘길 리가 있나요. 분명 단단히 틀어쥐고 있을 거라고요.”

영 대장궤가 문 이야를 거론하자, 이동은 잠시 걱정이 되었다. 어제 들어온 소식으로, 문 이야가 이미 강남서로 경계에 도착했다고 했다. 이번 일은 매우 공들여야 하는 임무인 만큼, 길을 너무 서두르느라 몸이 버틸까 걱정이었다.

“하가 장방에 누가 있겠습니까. 하 대야가 나설 수밖에요. 하 대야의 장자는 어릴 때부터 적장자로 키워졌습니다. 장사 쪽으로는 그래도 영리한 편입니다. 적어도 배운 대로 따라는 하니까요. 그뿐이지만 말입니다. 장사가 어려울 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에요. 무창 상행에서 산초 사업을 막 시작했을 때, 허 장궤를 모셨는데 1년 만에 접었지요. 아까운 일입니다.”

“그 허 장궤는 지금 어떻게 됐어?”

“나이가 많아서, 점포를 닫은 뒤엔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꽤 잘 살아요. 우리 촉중의 장궤들과 친분이 깊어서 왕래하고 있습니다.”

“그래.”

“사실 하 대야가 말하지 않았더라도, 허 장궤도 무창 상행과 일할 생각이 없었답니다. 무창 상행엔 주 대장궤부터 하나같이 다 연줄로 이어진 사람이라서요. 주 대장궤는 하가 가노이고, 누이 하나가 하 대야 대시녀로 있다가 나중에 이낭이 되었는데 아이를 낳다가 죽었답니다. 그리고 그 아래 장궤들도 줄줄이 연줄이 있고, 그 밑에도 마찬가지랍니다. 저택에 연줄이 있거나, 아니면 주 대장궤와 그 밑에 장궤와 줄이 있거나. 일꾼도 다 연줄이 있어야 들어간답니다. 아니면 들어가도 허드렛일이나 하는 3, 4등 일꾼이 되고요. 아이고, 죄다 친척이라서 건드릴 수가 없는데, 이래서 무슨 장사를 제대로 하겠습니다.”

“귀인들이 직접 하는 장사가 대부분 그렇지.”

이동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예전에 그녀가 모진 수단을 썼을 때도 이런 병폐를 단절하지 못했었다. 수녕왕부의 경성 점포에 강가의 가난한 친척들, 이낭들의 친척, 그리고 저택 관사들의 친척이 가득 있었다.

아래층의 일꾼들이 벌써 산초를 꺼내와서 멍석 위에 늘어놓았다. 영 대장궤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한원부의 산초는 촉중 산초 중에 최고로 꼽히는 것인데, 근래엔……. 휴. 말도 못 합니다. 작년부터 금천부의 산초 값이 올랐어요. 하지만 금천부 산초는 한원부 산초와 맛이 다릅니다. 전에 반루에 갔을 땐, 우리 당주가 산초 문제로 불평하는 것을 들었는걸요.”

아마도 금천부의 산초가 갈수록 값이 오르고 한원부 산초는 해가 갈수록 떨어져서 무창 상행에서 금천 산초를 눈독 들이는 것이리라.

장해 창고 대문 앞, 오만해 보이는 종복을 앞세우고 주 대장궤가 허리를 굽실거리며 하종수를 모시고 안으로 들어왔다.

영 대장궤가 입을 다물고 이동과 함께 아래를 내려다봤다.

아래층 창고 안, 줄곧 욕을 해대던 일꾼은 하종수를 보자마자 손에 든 산초를 모두 멍석에 내려놓고 빙 돌아서 하종수 앞으로 다가갔다.

“동가, 소인이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말씀드리지 않고는 도저히 못 견디겠습니다.”

“음, 해보아라.”

일꾼이 화가 난 얼굴로 공수하며 하는 말에 하종수가 위엄 넘치는 얼굴로 뒷짐 지며 대꾸했다.

“동가, 지금 우리가 뭘 하는지 보셨지요? 산초를 말리고 있습니다. 지금 산초를 말리고 있다고요!”

일꾼은 마당 반을 차지한 산초를 마구 가리켰다. 주 대장궤의 얼굴이 흐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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