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152화 (152/463)

152화: 함정을 파다

청풍루 2층 독채.

투실투실한 몸에 꽤 기세가 있어 보이는 중년 사내가 엄숙한 얼굴로 주 대장궤 뒤를 따라 독채 안으로 들어갔다.

하종수가 일어서서 중년 사내를 미소로 훑어보자 주 대장궤가 서둘러 소개했다.

“이분이 바로 우리 대당가요. 나리, 이자가 바로 전 장궤입니다. 우리와 만나려고 전 장궤가 약속 몇 건을 다 거절했답니다.”

“고생했네, 전 장궤.”

하종수가 매우 체면을 세워주며 인사를 건네기는 했지만, 전 장궤가 약속 몇 건을 거절했다고 해서 대단하게 생각하진 않았다. 자신이 일개 상인을 만나겠다는데, 당연히 와야 하는 것 아닌가. 무창 상행이 손잡아 주겠다는데, 얼마나 더 체면을 세워주라고?

“가당치 않습니다!”

전 장궤가 지극히 예의 바르고 공손하게 깊이 장읍하고는 살짝 허리를 숙이고 소매에서 작은 상자 하나를 꺼냈다. 그러고 뚜껑을 열어서 양손으로 하종수 앞에 내밀었다.

“소인의 작은 성의입니다. 나리, 댁의 아이에게 주십시오.”

상자 안엔 연자(蓮子: 연꽃 열매)만 한 크기의 홍보석과 남보석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남보석은 보람석, 홍보석은 합혈석으로, 검은 융단 위에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뭘 이런 걸 다.”

하종수는 의외라고 생각하면서 심지어 조금 당황했다. 상견 선물치고 조금 과했다.

“별것 아닙니다. 해산물 장사를 하는 사람이라, 다른 건 없고 이런 것만 있습니다.”

전 장궤는 우직한 표정으로 말은 더 성의있게 하면서 상자 뚜껑을 닫아서 하종수 앞으로 밀어주었다. 하종수는 사양하는 척하며 선물을 받았다. 얼굴은 봄바람이 부는 듯이 온화해져서 아까보다 좀더 친절해졌다.

물건 때문이 아니라, 전 장궤의 성의 때문이었다. 그것이야말로 그가 중시하는 점이었다.

“앉게, 앉아.”

하종수가 상석에 앉자, 전 장궤가 다시 장읍하며 주 대장궤에게 앉으라고 권하고는 그 아래 앉았다.

“우리 무창 상행이 해산물 사업을 좀 하고 싶은데, 전 장궤, 가르침 줄 만한 것이 있을까?”

하종수가 대뜸 본론을 꺼냈다.

“대당가, 어떻게 하실 계획이십니까?”

“다른 집은 다 어찌하는가?”

주 대장궤가 얼른 말을 받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니까 묻는 것 아닌가!

“막 시작할 때는 보통 전매(轉賣)를 많이 해서 화물을 받아다 되팝니다. 그런 다음에 배를 빌리거나, 아니면 배를 사들이지요. 어떻게든 다 됩니다.”

전 장궤가 매우 모호하게 대답하자, 하종수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탕가는 어찌 하는데?”

“거긴 본전이 두둑하니까, 처음부터 배 한 척을 전부 받았습니다. 제 손을 거쳤지요. 두 번째엔 그쪽에서 아예 장궤를 보내서 비단 한 척을 싣고 돌아갔습니다. 갈 때 그렇게 순조롭지 않았습니다. 위험한 상황을 마주쳐서 비단이 바닷물에 반이나 젖었습니다. 남양에 도착했을 때도 진주가 나는 시기를 못 맞췄고요. 그런데 향료를 많이 사 오긴 했습니다.”

“그래서? 밑졌나?”

주 대장궤가 매우 놀라서 묻는 말에 전 장궤가 웃음 지었다.

“그럴 리가요. 많이 못 벌어서 그렇지요. 그때는…… 제 손을 거친 게 아니라서 저도 들은 이야긴데, 고작 110만 냥밖에 못 벌었다고 들었습니다.”

“110만 냥?”

주 대장궤가 놀라서 고함쳤고, 하종수도 저도 모르게 눈이 커졌다.

“해산물 장사가 다 그렇습니다. 살아서 돌아오기만 하면 큰돈을 벌지요. 다만 바다엔 위험이 너무 많아서 가서 돌아오지 못하는 때도 많습니다. 목숨 걸고 하는 장사인데, 이윤이 두둑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습니까?”

“그건 그렇군.”

하종수가 대충 대답하고 다시 물었다.

“그럼 올해 좋은 물건이 뭐가 있나?”

하종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문 쪽에서 기별하는 소리가 들렸다.

“전 나리, 계십니까? 중요하게 고할 일이 있습니다.”

전 장궤가 미안한 얼굴로 일어났다.

“소인의 관사입니다. 두 분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잠시만요.”

밖으로 나간 전 장궤가 바로 문 앞에 서서 관사와 속닥속닥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하종수는 저도 모르게 귀를 쫑긋 세웠고, 주 대장궤는 살금살금 문 쪽으로 다가가 귀를 기울였다.

목소리는 크게 들렸다가 작게 들렸다가, 잘 들리지 않았고 전 장궤가 놀란 듯이 ‘진주 주렴’이라고 외치는 말만 두 사람 귀에 똑똑히 들렸다.

전 장궤가 들어오자, 하종수가 떠보는 듯 물었다.

“장사 이야기인가? 장삿거리가 있나?”

“예! 진주 장사입니다.”

“한번 말해 보게.”

전 장궤가 매우 솔직하게 말하자, 하종수가 거침없이 말했다.

전 장궤가 난처한 듯이 대답했다.

“이미 이야기가 끝난 건입니다. 진주 주렴인데, 천주의 작은 해상이 올해 배 한 척을 잃었습니다. 배 두 척밖에 없어서 큰 상단과 함께 다니다가, 사람과 화물이 모두……. 휴, 그래서 결국 남은 화물만 가지고 돌아와서 저더러 팔아달라고 했습니다. 다른 건 괜찮은데, 진주 주렴 하나는 꽤 귀중한 물건이라, 조금 전에 산다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이따 물건을 보여 주러 가야 합니다.”

“가지고 와 보라고 하게.”

하종수는 진주 주렴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은 있어도 본 적이 없었다. 전 장궤는 주저하다가 나가서 지시했고,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종복이 네모난 상자를 안고 들어왔다. 종복이 뚜껑을 열자, 전 장궤가 다가가 양쪽에서 끝을 잡고 주렴을 들어 올려서 창문 앞에 가져다 댔다.

하종수의 두 눈이 저절로 휘둥그레졌다. 햇살을 받은 진주알이 부드럽고 영롱하게 빛나는 것이, 순식간에 찬란한 빛이 흘렀다. 그런데 전혀 눈에 거슬리지 않고 한없이 부드럽기만 했다.

하종수는 참지 못하고 다가가 촘촘하게 박힌 둥글둥글 아름다운 진주를 쓰다듬었다.

“알이 크진 않군.”

하종수가 터져 나오려던 감탄을 억누르고 그렇게 말했다.

“알이 크면 아깝지요.”

전 장궤가 종복에게 주렴을 걷으라고 눈짓하며 말을 이었다.

“이 정도 크기의 진주는 사실 값어치가 크진 않습니다. 하지만 이 많은 진주가 색과 크기가 모두 같은 것이 귀하지요. 동글동글, 반짝반짝, 이렇게 한데 엮으면 귀한 것이 됩니다.”

“이 주렴, 얼마인가? 본전은 얼마지?”

하종수는 상자 안에 담긴 귀티 나는 진주에서 두 눈을 떼지 못했다. 이런 광택이 흐르는 진주라니, 실로 너무나 탐이 났다.

“작은 주렴이라 얼마 안 합니다. 기껏해야 10만 냥인데, 본전은 딱 잡아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

전 장궤가 얼버무리자, 하종수가 가차 없이 물었다.

“어째서 곤란하다는 게야? 이야기나 해보게.”

전 장궤가 할 수 없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일단 진주의 내력이 무엇인지 봐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이 집은 평생 해산물 업을 해왔고, 남양에서 작은 진주를 얼마나 많이 들여왔는지 모릅니다. 작은 밑천으로 경영하는 집인데, 이 진주는 모두 집에서 고른 다음에 파는 겁니다. 이렇게 작지만 둥근 구슬은 하나씩 팔면 가치가 없어서 그냥 모아둡니다. 몇 년 동안 수량이 꽤 모이면 솜씨 좋은 장인을 불러 구멍을 뚫고 실을 꿰서 이렇게 주렴을 만듭니다. 즉 수공비만 드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렇게 팔면 가치가 대단해집니다.”

하종수는 실망해서 주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쓰다듬으며 물었다.

“그럼 이 주렴을 누가 샀는가?”

“그건…….”

전 장궤가 깊이 장읍했다.

“그건 정말로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음.”

하종수는 순간 언짢아졌지만, 별말 없이 뚜껑을 탁 닫고 가져가라고 눈짓했다.

“그럼 지금 자네 손에 무슨 좋은 물건이 있는지 이야기해 보게.”

하종수가 다시 자리에 앉아서 묻자, 전 장궤가 열정적으로 대답했다.

“다 있습니다. 나리께서 어떤 장사를 하고 싶으신지에 달렸지요.”

하종수는 눈살을 찌푸렸다. 돈을 제일 많이 벌고 이득을 많이 남기는 장사를 하고 싶을 뿐이었다. 하종수의 의중을 아는 주 대장궤가 웃으며 말을 받았다.

“우리 무창 상행이야 하고 싶은 장사는 뭐든 할 수 있네. 우리 나리의 말씀은, 자네 손에 돈 될 만한 좋은 게 있냐고 물으시는 걸세.”

주 대장궤가 손을 문지르며 하는 말에 전 장궤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지요. 그렇지요. 그래야 장사할 재미가 있지요. 다만 그런 황금알은 기회를 잘 잡아야 합니다. 나리, 걱정 붙들어 매십시오. 그런 기회가 생기기만 하면 소인이 반드시 나리를 찾아뵙겠습니다.”

하종수는 조금 실망했다. 산초로 번 은자는 한 달 있으면 모두 내놓아야 한다. 그 돈을 내놓으면, 해산물 장사를 하고 싶어도 그럴 밑천이 없게 된다. 기회를 기다려? 기다릴 수가 있어야 말이지!

“일단 최고로 좋은 진주와 보석을 가지고 내일 무창 상행으로 오게.”

정 안 되면 작은 장사부터 해야 했다. 진주, 보석 좀 사서 궁에 팔면 적게나마 돈을 벌 것이고, 적어도 이번 산초로 본 손실을 만회할 것이다.

전 장궤는 대답하고 일어서서 물러가겠다고 고했고, 주 대장궤가 그를 문 앞까지 배웅했다.

하종수가 주 대장궤를 거느리고 청풍루에서 나간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아, 멱리를 쓴 이동도 청풍루에서 나와 마차에 올라 성 밖 자등 산장으로 돌아갔다.

정북후부.

영원이 뒷짐 진 채 서재 창가에 서서 유월의 보고를 집중해서 듣고 있었다.

“하종수가 장궤 주홍년을 대동하고 경성에서 해상(海商)의 화물을 판매 대리하는 전 장궤를 만났습니다. 반 시진 정도였습니다. 알아봤더니, 하종수가 해산물 장사를 할 생각이 있다고 합니다. 전 장궤에게 좋은 사업이 없는지 물었고, 중간에 진주 주렴을 봤는데, 그 주렴은 이미 팔렸답니다. 누구에게 판 건지, 최신이 아직 수소문 중입니다.”

영원이 피식 웃었다.

“해산물 장사? 첫째가 돈이 많이 궁한 모양이군. 하가 같은 무지렁이들이 무슨 해산물 장사를 한다고. 경성에서 가까스로 버티는 것 아닌가?”

“또 하나 있습니다.”

유월은 영원의 혼잣말을 상대하지 않고 고개를 들고 주저하며 말을 이었다.

“하종수가 청풍루에 도착하기 이각 전에 자등 산장 이 낭자가 청풍루로 들어갔습니다. 하종수가 떠나고 일각 후에 이 낭자도 나갔고요.”

영원은 멈칫해다가 획 돌아서며 물었다.

“혼자? 청풍루엔 왜? 누굴 만났는데?”

“시녀 둘, 어멈 하나를 데리고 하종수의 독채 옆 방에 있었습니다. 아무도 만나지 않았고요. 청풍루에서 나와서는 바로 마차를 타고 성 밖으로 나갔습니다.”

유월이 매우 상세하게 대답했다.

영원은 뒷걸음질 쳐서 팔걸이의자에 앉더니 눈살을 단단히 찌푸렸다.

강가에서 나간 이래 처음으로 성으로 들어온 것이지? 지금 상황으로는 불가피한 일이 아니면 들어오지 않았을 텐데? 청풍루에 반 시진 동안 혼자 앉아 있으려고 성에 들어왔다? 말도 안 되지!

하종수 때문에?

영원의 눈빛이 번쩍였다.

그렇다면 말이 되지! 장공주의 의중이다! 강남은 첫걸음이고, 경성에서도 한 걸음! 이동을 내세우다니, 하종수를 통해서 첫째의 돈줄을 끊어놓으려고?

“최신에게 전 장궤를 단단히 지켜보라고 해라. 누구를 만나는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어떤 장사가 오가는지, 자세할수록 좋다.”

“예.”

유월은 밖으로 나가 명령을 전하고는 문 앞에 공손히 서서 다음 명령을 기다렸다.

영원은 일어서서 다시 창가로 다가가서 한참 동안 넋을 놓고 생각에 잠겼다. 기회를 봐서 그 이 낭자를 만나봐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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