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솔직한 양 구야 二
“이리 와라!”
영원이 다가가서 덥석 양 구야를 잡고 탁자 곁으로 끌어와서 앉혔다.
“내 소개를 하지. 난 영가, 영원, 영 칠야다. 네 생질의 진짜 외숙이지.”
그 말에 주육이 하하 웃었다.
“잘 들었지? 이분이야말로 진짜 외숙이다. 네놈은 외숙이라고 하기엔……. 음!”
주육은 양 구야가 입은 참록빛 장삼을 치켜들었다.
“그야말로 하하하!”
양 구야는 반은 알아듣고 반은 알아듣지 못한 채 눈만 깜빡였다. 눈앞에 있는 것이 경성에서 가장 유명한 영 칠야라는 건 알아들었다.
“여긴 묵부 칠소야, 진왕과 친분이 깊지. 여기는 안원후부 세자. 여긴 수국공부 주가 육소야.”
영원이 한 바퀴 소개하자, 양 구야는 고개를 쉴 새 없이 끄덕이면서 눈은 탁자 가득한 산해진미에 향해 있었다.
아직 밥도 먹지 못했는데! 아침부터 지금까지 쫄쫄 굶었는데!
양 구야가 탁자 가득한 음식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걸, 영원부터 류만까지, 방에 있는 모두가 흥미진진하게 바라봤다.
양 구야가 돌연 침을 꼴깍 삼키더니 두 손으로 탁자 가장자리를 짚고는 손가락을 마구 움직여댔다. 주육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양 구야 앞에 손을 흔들었지만, 양 구야는 서둘러 고개를 틀어 주육의 손을 피해서는 음식을 노려보기만 할 뿐이었다.
영원이 눈짓하자, 대영이 양 구야 손에 젓가락을 쥐여주었다.
“드십시오.”
“그럼…….”
양 구야는 말을 끝내기도 전에 젓가락을 바람처럼 놀리며 꾹 찍어 내리더니 대뜸 화퇴를 들어 올려 입을 크게 벌리고서 한입 물었다.
주육이 아이고, 하면서 뒤로 물러났다. 빨라서 다행이지, 양 구야 입에서 튄 육즙이 얼굴에 묻을 뻔했다.
양 구야는 탁자 가득한 새우니 게 같은 건 거들떠보지도 않고, 꿀을 넣은 화퇴부터 먹고 게살두부를 먹었다. 탁자엔 영원, 묵칠이 자주 먹는 음식이 가득했고, 음식은 모두 정교하고 양이 적었다. 몇 입 만에 게살두부를 싹 비운 양 구야가 다른 걸 쳐다보며 막 손을 대려는데 대영이 비켜달라고 고함치면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돼지머리 고기를 들고 올라왔다.
양 구야는 순간 두 눈을 빛내며 얼굴이 벌겋게 물들어서는 돼지머리 고기 쪽으로 달려가서 덥석 물고는 기분 좋은 듯 흥얼거렸다.
방 안 가득한 사람 모두 양 구야를 에워싸고 재미있는 연극 보듯이 바라봤다. 사실 연극보다 더 재미있었다.
단숨에 돼지머리 고기 반을 해치운 양 구야가 꺼억 하고 트림을 했다. 트림을 하자마자 또 트림하고, 연달아 쩌렁쩌렁하게 트림해대자, 속이 뒤집힐 것 같아 주육이 혐오스럽다는 표정으로 뒷걸음질 쳤다.
“창문을 다 열어라. 냄새 좀 빠지게.”
영원이 접시를 치우라고 대영에게 눈짓하고는 직접 다가가 젓가락을 빼앗았다.
“양 구야, 먹고 싶으면 돼지고기는 얼마든지 있다. 내일도 있다.”
“꺼억!”
양 구야가 또 쩌렁쩌렁하게 트림하고는 돼지고기 접시를 향해 달려들었다.
“내일은 내일이고. 저녁에…… 꺼억!”
대영이 그를 상대할 리가 있나. 대영이 손목을 붙잡자 양 구야의 손이 저릿했다. 그 사이에 대영이 접시를 치웠다.
“양 구야에게 보이차를 드려. 기름기 가시게 진하게 우려드려라.”
영원이 지시하기 전에 류만이 시녀에게 분부했다. 돼지고기를 치운 다음, 양 구야는 쉴 새 없이 트림한 끝에 드디어 조금 정상이 되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의자에 앉아서 어깨를 굽히고 고개를 숙인 채 눈알만 굴려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보고 다시 굴리면서 주변을 살폈다.
“아라, 양 구야 배 좀 만져드려라. 체하겠다.”
영원은 싫다는 듯 얼굴을 구기고 있는 아라를 곁눈으로 바라보며 유유히 분부했다. 아라는 멈칫하더니 입술을 깨물고는 다가가 양 구야 앞에 웅크리고 앉아 그의 허리띠를 풀고 배를 만져 주었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양 구야는 온몸에 힘을 꽉 주고서 코앞에 있는 아라의 새하얀 목덜미와 반쯤 드러난 가슴을 침을 흘리며 주시하고 있었다.
주육은 매우 즐거워하며 구경했고, 묵칠도 웃느라 의자에서 일어나지도 못했다. 소자람은 눈을 찌푸린 채 양 구야, 아라, 그리고 영원을 번갈아 봤다.
아라가 정말 영원의 말을 잘 듣는군. 영원이 언제부터 이런 웃음거리 구경하는 걸 좋아했지?
홍루 기녀들의 안마법은 전문 사부에게 배우는 것으로 그리 오래 문지르지 않아도 양 구야는 배 속이 편안해져서 오로지 아라만 빤히 바라봤다.
주육이 아라 뒤에서 고개를 내밀고 쥘부채로 양 구야를 두드리자, 영원이 주육을 확 잡아채고는 류만을 바라봤다.
“행수는? 사람 몇 불러 양 구야를 제대로 모시라고 해라.”
양 구야는 아라에게 눈을 떼지 못한 채, 행수가 불러온 두 기녀에게 끌려가듯이 안겨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소자람이 쉴 새 없이 고개를 저었다.
“진왕에게 어떻게 이런 외숙이. 이것 참……. 황가의 존엄이 크게 손상되는군.”
주육이 혀를 찼다.
“외숙은 무슨! 삼황자는 무지렁이다. 마음대로 외숙을 인정하다니. 아무도 따지지 않아서 그렇지, 정식으로 따지고 들자면 주군을 기만한 큰 죄인걸!”
“그냥 재미있자고 하는 일인데, 뭘 그렇게까지 해. 누가 누구와 숙질로 지내든 우리가 무슨 상관이냐?”
영원이 나른하게 하는 말에 소자람도 얼른 분위기를 풀었다.
“그러니까. 우리랑 상관없는 일이지.”
“구야라고 부르는 건, 다 아랫것들이 그냥 부르는 소리지. 양빈 집안에 양와우 하나뿐이고, 진왕이 이미 왕부를 열었으니 할 수 있는 한 돌봐야 하는 건 맞지. 어쨌든 생모잖냐.”
진왕과 몇 번 왕래한 묵칠이 나서서 편을 들자, 주육은 입을 비죽일 뿐 더 말하지 않았다.
영원이 하품하며 입을 열었다.
“난 그냥 심심해서 즐길 거리를 찾는 것일 뿐이다. 이런 얼뜨기, 얼마나 재미있냐. 어디서 이런 물건을 찾아? 안 그러냐?”
영원이 류만을 비롯한 기녀를 바라보며 묻자, 류만이 냉큼 대답했다.
“맞아요! 저 양 구야, 여기서 가까운 곳에 살아요. 참 재미있는 사람이죠. 저 사람이 나타나면 한가한 사람은 모두 가서 구경하는걸요.”
“예전에 진왕야가 왕부로 나오시기 전에, 언젠가 다른 사람 집에 가서 닭 구이를 훔치다가 된통 걸려서 거리 이쪽부터 저쪽까지 끌려다녔는걸요. 손에 닭 다리를 들고 버리지도 못하더라고요.”
다른 기녀도 재빨리 말을 받았다.
“어쩜 저렇게 걸신들린 듯 먹지.”
소자람이 감탄했다.
“돼지가 그렇지.”
“이따 오면 제대로 물어봐야겠다. 여인과 돼지머리 중에 뭐가 더 맛있는지. 하하하.”
영원은 재미있어 했고, 주육은 더 재미있어 했다.
운수가 한 곡조 연주를 마쳤을 때, 양 구야가 발그레한 얼굴로 행수를 따라 올라왔다. 영원은 앉으라고 손짓했고, 주육이 바짝 다가가서 물었다.
“어때? 통쾌했나?”
양 구야는 꿈이라도 꾸는 얼굴로 쉴 새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생질이 진왕인데, 어찌 은자도 안 주는 건지. 봐라, 이렇게까지 굶주려서야 원. 양씨 가문의 독자인데, 생질이 아내도 구해주지 않은 거냐?”
영원이 두 다리를 높이 치켜들고 물었다.
“그렇네! 생질이 잘 보살펴 준다더니?”
주육도 얼른 따라 물었다.
양 구야는 여전히 쭈뼛댔지만, 아까보다는 훨씬 나아진 모양새였다.
“왕야 말이…… 돈이 없다고. 은자는 다 어머니에게 주었지. 어머니가 모아서 색시를 주해 준다고 했다. 왕야와 누님 모두 제대로 된 가문을 골라야 한다고 했거든.”
주육이 풉 하고 내뿜으며 쉴 새 없이 손가락질했다.
“그 주제에? 세도가를 골라? 세도가를?”
영원이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웃었다.
“그건 그렇지. 궁에서 귀비를 제외하면 네 누님이 가장 존귀하니까. 당연히 세도가 여식을 골라야지. 지나친 것은 아니다.”
주육이 혀를 찼다.
“쯧! 일개 빈…….”
“소육!”
영원이 고함치며 주육의 말을 막았고, 소자람은 주육을 잡아끌었다.
“칠 형님의 말이 맞다. 궁에서 귀비를 제외하면 양빈이 가장 존귀하지 않으냐.”
주육도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고, 파리를 삼킨 듯이 속이 거북하기만 했다.
“이 거리에 있는 홍루, 어디가 가장 좋으냐?”
영원이 화제를 바꿨다.
“다 좋지.”
양 구야는 순간 분홍빛 꿈을 꾸는 듯이 아라를 바라보다가 멍하니 굳었다. 아라는 영원을 힐끔 보고는 옆으로 한 발짝 숨고 또 숨었다.
“어느 집을 자주 가는데?”
“들어온 건 처음이다. 보통 동성근으로 가지.”
양 구야의 솔직한 대답에 주육이 피식 웃었다.
“동성근? 거긴…….”
동성근는 경성에서 가장 낡고 싸구려 사창이 바글바글한 곳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진왕의 친외숙인데, 동성근을 가다니. 진왕의 체면은 어쩌란 말이냐. 앞으로 여인 생각 나면 나를 찾아와라. 묵칠을 찾아가도 되고.”
영원이 가리키자, 묵칠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아라는 겁에 질려 얼굴이 창백해졌고, 류만은 이상하고 의아한 듯이 아라를 힐끔 봤다.
“나이가 적은 것도 아닌데 슬슬 혼인해야지. 아내가 있으면…….”
영원이 길게 말꼬리를 늘였을 뿐인데, 주육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발을 구르며 웃었다.
“양가엔 자식이 하나뿐이니, 대를 잇는 건 매우 큰 일이지.”
“키야!”
주육이 배를 움켜쥐고 의자에 털썩 앉아서 한쪽 다리를 계속 동동 굴렀다.
“영원 형, 나는 형님이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게 제일 좋다니까. 대를 잇는 건 매우 큰 일이지!”
주육이 영원의 진지한 말투를 흉내내더니 말을 이었다.
“이 바보가 알아듣겠어? 자자, 내가 대신 말해주지. 양 구야, 잘 들어요. 얼른 아내를 맞으라고. 아내를 맞으면 하고 싶으면 그냥 끌고 가서 하면 돼. 하고 싶을 땐 그냥 하면 된다니까. 돈 한 푼도 안 들어!”
양 구야가 울상을 지었다.
“나야 그러고 싶지. 왕야에게 말도 했고. 왕야가 사람 구하기 쉽지 않다잖아. 내 누님이 세도가 집안으로 구해야 한다고 해서 찾기 쉽지 않다고.”
“세도가? 동성근 세도가?”
주육은 말을 끝내기도 전에, 궁에 제 고모를 제외하면 양빈이 가장 존귀하다는 영원의 말을 떠올리고는 또 파리가 목구멍에 걸린 기분이었다. 고모를 제외하면 양빈밖에 없다는 건, 대황자, 사황자를 빼면 이놈 생질밖에 없는 것 아닌가?
그 생각에 주육은 배 속 가득 파리가 쌓인 듯이 역겹고 괴로웠다.
“말조심 좀 해라.”
진왕과 면식이 있는 묵칠은 주육이 말을 너무 거북하게 하는 걸 듣고 참지 못하고 말을 꺼냈다.
“너희 가문이 황자의 외가라면, 이 집도 황자 외가다. 따지고 보면 너희 가문과 이 집이 무슨 차이가 있냐?”
“야!”
주육이 벌떡 일어서서 분노한 눈빛으로 묵칠을 노려봤고, 소자람이 얼른 두 사람 앞을 가로막으면서 소리쳤다.
“농이다, 농. 이자 때문에 우리끼리 언짢아질 것 없다.”
“앉아라!”
영원이 대뜸 주육을 걷어차자 주육이 의자에 앉긴 했지만 여전히 화가 가득했다.
“얘 말하는 것 좀 들어보라고!”
“내 말이 틀렸나?”
묵칠도 한 치도 양보하지 않았다. 물러서 본 적이 없는 그였다.
영원이 다시 튀어 일어나려는 주육을 쥘부채로 눌러 앉히며 느긋하게 말했다.
“소육, 묵칠 말이 틀린 게 아니다. 너희 주가도 황자 외가고, 양가도 황자 외가라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지.”
주육은 영원의 말에 목이 막힐 뻔했다. 그래도 영원의 말을 끊지는 않았다.
“여기는 구야고 너는 외사촌 아니냐. 세 황자 입장에서 따지면, 너도 여기를 외숙이라고 불러야 하는걸.”
묵칠이 웃음을 터트리며 뒤로 넘어갔다. 양 구야를 가리키며 웃느라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외숙이란다. 네 외숙!”
소자람이 영원을 흘겨봤다. 일부러 일을 일으키는 게 아니고 무어야!
주육은 화가 나서 핏줄이 솟구치는데, 하필이면 영원이 하는 말이라 어쩔 도리가 없었다. 주육은 입을 헤 벌리고 넋이 나간 양 구야를 바라보다가 벌떡 일어서서 손바닥을 쫙 펼치더니 양 구야의 뺨을 몇 번이고 후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