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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149화 (149/463)

149화: 울며 아양 부리기 二

여 승상이 보고할 때부터 주육의 울음소리가 줄어들더니, 여 승상의 보고가 끝났을 때는 울음소리가 더 확 줄어들었다.

황상은 살며시 고개를 들었다. 여 승상의 말에 조금 뿌듯해졌다.

다들 이들을 경성에서 가장 못난 사고뭉치라고 하는데, 보아라! 내가 가르치니 주육이 임무를 얼마나 잘 처리하느냐!

“됐다. 짐은 네가 억울한 걸 알았다. 이번 임무를 참 잘해주었다. 짐은 매우 만족한다. 묵신, 소자람, 너희 둘도 잘했다. 이토록 마음을 쓰다니, 짐의 마음이 위안받는구나.”

황상의 위로에, 주육의 울음소리가 더 작아졌다.

“괜한 서러움을 겪게 해선 안 되지. 주유민, 묵신, 소자람에게 배금어대(佩金魚袋: 관리의 품계에 따라 지급하는 일종의 신분 증명. 5품 이상은 은어대, 3품 이상은 금어대를 단다.)를 하사하고 실질 7품 직함을 내린다. 주유민은 민정에 지극한 재능을 보이니, 호부로 가서 임무를 받아라. 묵신, 소자람은 공부로 들어가라. 앞으로 경성 안팎 하도에 관한 일은 너희 둘이 맡아라. 세부 사항은 계 천관이 알아서 하라.”

대전에 무릎 꿇은 세 사람은 저마다 고개를 조아리며 황은을 읊었고, 계 천관도 서둘러 허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황상은 얼굴이 새파래진 어사를 바라보며 싸늘한 얼굴로 명했다.

“어사인 자가 민정을 이토록 모르다니. 지현으로 내려가 민생 경제를 제대로 배우고 와라!”

문무백관 맨 앞에 선 대황자는 얼굴이 퍼레져서 맞은편에 있는 사황자를 흉악한 눈빛으로 노려봤다. 사황자도 도발하듯 턱을 치켜들었다.

이번 판은 사황자의 완승이었다.

조회가 끝난 후, 수국공과 주가 넷째 추밀부사는 황상에게 불려가고, 사황자는 효도하러 후궁으로 달려가 모친 주 귀비에게 갔다. 대황자는 한참 멍하니 있다가 뒤따라 귀비전으로 향했다.

묵칠, 소자람과 선덕문을 나선 주육은 금어대를 번쩍 들고 하하 웃다가 입을 쪽 맞췄다.

“우리 집 첫째가 멍청이지! 이 몸에게 물리기나 하고! 난 단번에 금어대를 얻었지! 이제 어쩔 테냐. 네놈에게 있는 금어대가 이제 내게도 있다! 게다가 내 건 황상께서 특별히 하사하신 거라고!”

묵칠도 금어대를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소육, 이 금어대, 우리 아버지도 아직 없는 거다. 이게 다 네 덕분이다. 참 잘 울더구나. 칠 형에게 받은 것답다!”

마침 금어대를 들고 눈도 떼지 못하던 소자람도 피식 웃었다.

“그러게. 칠 형이 전수한 재주가 정말 잘 먹히더구나!”

“가자, 가! 어디 가서 제대로 축하해야지! 응? 칠 형님은? 아까 칠 형님 봤냐?”

묵칠은 그제야 아까 대전에 영원이 보이지 않던 걸 떠올렸다. 항상 눈에 가장 잘 띄는 자리에 있었는데?

“오늘 휴가다. 어젯밤에 너무 즐겼다던데? 가자, 뭘 어떻게 즐겼는지, 형님에게 가보자!”

주육은 금어대를 다시 달았고, 세 사람은 신이 나서 정북후부로 달려갔다.

무창 상행 안, 아담한 안채에서 두꺼운 장부를 들여다보는 하종수 하 대당가(大當家)의 얼굴이 갈수록 흐려졌다.

“작년보다 적어도 3할은 많을 거라더니? 어째서 겨우 이것뿐인가?”

하종수는 장부를 덮고 주 대장궤를 바라보며 매섭게 물었다.

“올해 한원부의 작황은 좋았습니다만, 우리가 너무 급하게 수확했고, 너무 서 둘러서 산초를 바짝 말리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필 배에 실은 후 비가 계속 내렸고, 뱃사람은…… 나리도 알다시피…….”

주 대장궤가 다급히 입을 다물었다. 돈을 아끼려고 항상 관아를 통해서 조운의 배를 조달했다. 주인이 상금도 주지 않고 먹는 것에 돈을 쓰지도 않으니 뱃사람들도 게으르고 열심히 하지 않았다. 그러니 대장궤로서도 달리 방법이 없었다. 자기 돈을 쓸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전에 몇 번 이야기했다가, 대황자가 홧김에 서신을 강남로에 보내 뱃사람들을 장을 친 적이 있었다. 휴, 때리면 때릴수록 말을 듣지 않는걸!

“뱃사람들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부두에 도착해서는 짐을 순조롭게 내리지도 못했으니…….”

부두라는 말에 하종수의 얼굴이 더 어두워졌다. 진하 부두 일로 대황자가 어사 하나를 잃었다.

“산초 품질이 떨어지면 도저히 제값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산초 장사가 다 그렇습니다. 날씨로 밥 벌어 먹고사는 겁니다.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곳도 올해는 별로입니다. 비가 너무 많이 왔어요.”

주 대장궤는 애써 선을 긋고 다른 사람 이야기도 끌고 왔다. 다 같이 돈을 못 번 거라면 자기 잘못이 아닌 게 된다. 날씨가 안 좋은데, 무슨 방법이 있으랴.

“그렇지.”

하종수가 한참 만에 대꾸했다.

산초 장사만 할 순 없지. 대황자의 씀씀이가 갈수록 커지는데. 한원부에서 나는 산초 양도 정해져 있고. 설령 금천부도 손에 넣는다고 해도, 어림잡아 봤는데 내년엔 대황자의 씀씀이에 맞출 수 있어도 내후년엔 분명 부족해지지.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해, 산초 장사 하나만 할 수 없어.

“명주 쪽은 요즘 어떠한가?”

하종수의 물음에 주 대장궤는 순간 긴장이 풀렸다. 이번 일이 드디어 넘어간 셈이다. 진작 해산물 사업을 생각했어야지!

주 대장궤가 혀를 내둘렸다.

“아주 부러울 정도입니다. 번루 탕가에 대해 분명 아시겠지요? 작년부터 남양 보석 장사를 시작했답니다. 자본이 큰 집안이니 화물 한 번 받으면 배 한 척이랍니다. 작년엔 진주를 한 배 싣고 왔답니다. 크건 작건, 좋은 거든 나쁜 거든, 근으로 재서 가지고 와서 등급을 나눠 검수해서 하품은 갈아서 진주분으로 팔았답니다. 나리도 아시겠지만, 진주분이 얼마입니까? 진주 한 건으로 족히…….”

주 대장궤가 손바닥을 이리저리 흔들어댔다.

“족히 30만을 벌었답니다! 왕복 고작 두어 달에요. 하지만 본전이 그만큼 큰 게지요. 진주 한 척이 보통이 아니니까요.”

하종수의 눈이 번뜩였다.

“가서 자세히 알아보게. 나도 남양 보석과 향료가 좋은 사업이라고 생각하네. 해마다 궁에서 쓰는 것만 해도 보통이 아니지. 물건만 있다면 다른 곳은 궁에서 돈 벌 생각을 말아야지. 진주분은 태의원에서 해마다 적잖게 쓰고 있으니 거기에 팔면 되고. 진주뿐만 아닐세. 남양의 홍보석, 금강석, 묘안석, 모두 좋은 물건일세. 다 알아보게. 올해 한번 시도해 보자고.”

“남양 보석, 향료라면 소인이 아는 장궤가 하나 있습니다. 믿을 만하고 분수를 아는 사람입니다. 몇십 년 동안 이 일을 했고요. 명주와 천주의 해상들이 죄다 그자에게 화물을 맡깁니다. 만나 보시겠습니까?”

“좋네! 자네가 준비하게! 빠를수록 좋아.”

하종수는 몹시 흡족해 보였다.

복안 장공주에게 임무를 받은 후부터는 이동은 매일 보림암에 가진 않았다. 물론 복안 장공주도 더는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매일 보림암에 수련하러 가지 않았다. 날씨가 좋으면 황상이 보내준 호위 60명을 데리고 활간(滑杆: 산간 지역 고유의 전통 교통수단. 튼튼한 장대 두 개를 엮어서 들것을 만들고 가운데에는 깔판을 엮어 사람이 안거나 반쯤 누운 채 이동할 수 있게 하는 수단. 가마꾼이 앞뒤로 어깨로 들어올린다.)을 들게 해서 보림사와 보림암 뒷산을 돌아다녔다. 한 번 나가면 종일 돌아다녔다.

오랫동안 수련한 복안 장공주는 공력이 높아서 종일 물과 탕만 마시고 음식을 먹지 않았고 멈추지도 않았다. 잠시도 멈추지 않고 활간에 앉아 종일 탕만 마시면서 속을 비우는 셈 쳤다. 가련한 호위 수십 명은 날이 밝기도 전에 일어나서, 아침 먹을 새도 없이 줄곧 산에 올랐다가 내려갔다, 내려갔다고 올라갔다가, 해가 완전히 어두워진 후에야 겨우 황가 별원으로 돌아왔다. 다들 배가 등가죽에 붙을 정도로 배를 곯아서 온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이 바들바들 떨었다.

그렇게 몇 번 하다 보니, 맑은 날은 물론이고 비 오는 날에도 저 멀리 장공주가 보이면 다들 몸을 숨겼다. 괜히 눈에 띄었다가 별안간 흥이 생겨 뒷산에 올라가자고 할까 두려웠다.

보슬비가 내리는 가운데 보림암 밖에서 마차에서 내린 이동은 우산도 쓰지 않고 빗속을 걸어 전원을 통과해 복안 장공주의 마당으로 들어섰다.

보슬비를 맞아 촉촉해진 장미는 초록빛으로 영롱하게 빛났고, 새로 자란 연한 가지가 빗속에 자유롭게 기지개를 켜는 것이 유난히 맑고 아름답게 보였다.

이동은 빗속에 서서 잠시 장미를 바라보다가 회랑 안으로 들어갔다.

복안 장공주는 회랑에 매우 편안한 모습으로 다리를 흔들고 있었다. 이동은 일단 앉아서 손을 말린 다음 차침으로 차를 건드리기 시작했다.

“장미가 갈수록 잘 자라네요.”

이동은 차를 불에 그을리며 생기 가득한 장미를 저도 모르게 다시 바라봤다.

“화초는 주인의 기분과 운세에 감응한대요.”

이동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말라죽은 자등 산장의 자등을 떠올렸다.

“그럼, 내가 기분이 좋은 걸까, 아니면 운세가 좋은 걸까?”

복안 장공주도 고개를 돌려 정원의 장미를 바라봤다.

“기분이 좋아야 운이 좋아지고, 운이 좋아야 기분이 좋아지는 거 아닌가요?”

이동이 되묻자, 장공주가 웃었다.

“맞네. 네 일은 어떻게 되어가니?”

“음. 그쪽에서 발을 들였으니, 이제 열흘 정도 기다리면 될 거예요.”

이동의 홀가분해 보이는 모습에 장공주는 고개를 갸웃하고 빤히 보다가 별안간 한숨을 내쉬었다.

“너 같은 사람이 어쩌다가 강환장 같은 어리석은 물건과 혼인했을까.”

이동은 멈칫하다가 잠시 침묵했다.

“강환장이 지나치게 성실해서 그래요.”

“응?”

복안 장공주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이동을 바라봤다. 이동의 눈빛이 아련해졌다.

“그 사람이 평범한 지아비처럼 아내를 대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정이 깊은 외사촌 누이, 어릴 때부터 곁을 따랐던 시녀, 그리고 다른 미인들을 모두 1년 뒤에 집으로 들였다면요? 1년 후에 아이를 낳아 집안에 식구를 늘였다면요? 그래도 잘못된 혼인이라고 생각하셨겠어요?”

복안 장공주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다음에 서서히 제 곁의 모든 시녀와 어멈을 제거하겠죠. 어쩌면 직접 나설 것도 없이, 후원 사람 중에 그렇게 할 사람은 얼마든지 있어요. 그냥 지켜보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면 되겠죠. 그리고 서서히 날개가 자라고 탄탄해지면, 제 유일한 뒷배를 서서히 꺾어 버리는 거예요.”

이동은 고개를 숙였다. 계속할 수가 없었다. 예전에 바로 그런 인생을 살았으니까. 복안 장공주의 얼굴이 창백해지다가 퍼레졌다. 이동이 한 말, 그녀는 이미 겪은 일이었다.

“어쨌든 어리석은 물건인 건 변함 없지!”

복안 장공주는 한참 만에 싸늘하게 내뱉었다.

“그건 네 복이고.”

그러고 또 한참 말이 없다가 유유히 말을 이었다.

“넌 나보다 나아. 대부분 거의 모든 여인이 그런 상황을 겪으면, 그 불여우들을 미워하는 것 말고 방법이 없어. 온갖 수단을 써서 그 불여우들을 없애고, 불여우들끼리 싸우게 만들고, 새 불여우를 들여서 더 싸우게 만들고, 아이를 못 낳게 방해하고……. 안 그런 집안도 있어?”

“맞아요.”

이동은 고분고분 대답했다. 전에는 그녀도 그랬다. 어머니도 안 그런 집안이 있느냐고 했었다.

복안 장공주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불여우들이 잘못한 게 아니라 혼인을 잘못한 거지. 그 점을 깨닫는 사람은, 내가 만난 사람 중에 네가 처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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