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울며 아양 부리기 一
경성.
서가아의 전갈을 받은 영원은 한참 동안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강남으로, 내일 아침에 출발한다? 강남에 무슨 일이 생겼기에? 강남 어디로? 이가 고향은 호주인데? 강남이 가리키는 범위가 너무 넓은데. 아니면 강남동서로를 따로 가리키는 건가? 이가에 일이 생겼다면 문도를 보내지 않을 테지. 우선 큰 인재를 작은 일에 쓰는 것이고, 또 하나, 이가에 집안일을 처리하는 관사 하나 없을 리가 없지.
이가의 일이 아니라면…… 장공주?
거기에 생각이 미친 영원은 등이 꼿꼿해졌다. 장공주라면 말이 된다. 무얼 할 생각이지? 강남이라…….
영원의 머릿속에 강남의 대소 관리의 이름이 스쳐 지나갔다.
동민?
강남서로 포정사 동민? 장공주가 칼날을 대황자에게 겨눈 거지? 대황자가 어쩌다가 눈 밖에 나서? 그렇지, 호위들!
무지렁이 같으니라고! 다른 곳도 아니고 하필 벌집을 쑤시다니.
어쩌면 기회일지도……. 쥐도 고양이를 문다고, 이렇게 되면 일이 쉬워진다!
영원은 가슴이 울렁거려서 성큼성큼 큰 걸음으로 방 안에서 마당까지 달려갔다. 마당 중간에 서서 양손을 허리춤에 올리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크게 포효했다. 오랜 시간 막막했는데, 지금, 드디어, 갈피가 잡혔다!
“봉낭! 최신을 불러라. 바로! 유월!”
영원이 마당에 서서 고함치자, 위봉낭은 곧바로 돌아서서 나갔고, 유월은 다급히 마당으로 달려왔다.
하늘이 어슴푸레 밝아올 무렵, 밤새 잠을 자지 않은 문 이야는 목욕하고 구릿빛 명주 장삼을 입고 나왔다. 아침을 먹은 다음 빈 그릇을 쳐다보며 입맛을 다시면서,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적어도 반년은 못 먹게 생겼다고 생각했다.
문 이야는 위풍당당하게 활기찬 모습으로 밖으로 나갔다. 대문 밖에 공 대랑이 노련하고 용맹한 호위들을 거느리고 준비를 마친 채 서 있었고, 만 어멈과 손 어멈이 고른 종복은 여복을 선두로 마지막으로 각 마차에 실은 짐을 살펴보고 있었다.
이들뿐만 아니라, 장 태태가 고른 장방 두 명과, 경성과 태평부 노선을 담당하는 관사 둘도 문 이야와 함께 남으로 갈 준비를 마쳤다.
문 이야의 이번 여정은 단출하고 간단하게 떠나는 셈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단출하고 간단해도, 종복, 호위, 사환을 수십 명 데리고 가는 이상 챙길 건 다 챙겨야 했다. 옷가지를 비롯한 갖가지 잡동사니만 해도 마차 너덧 대는 되었고, 문 이야가 탈 마차, 환가아와 서가아가 탈 마차, 장방 둘, 관사 둘의 마차까지 해서 모두 서른 명, 마차 열 대, 말 스무 마리가 자등 산장을 떠나 남쪽으로 이동했다.
경성 역참을 지나서 마지막 십리장정 밖에 도착했을 때, 말 여남은 마리가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문 이야는 마차 안에서 서책을 쥐고 휘장을 높이 치켜들고는, 저 멀리 장정 밖에 우뚝 서 있는 말들을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봤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말 중에 한 마리가 뛰쳐나와서 문 이야의 마차 무리를 향해 곧장 달려왔다. 공 대랑은 샛눈을 뜨고 무리를 뚫고 달려 나오는 말과 말에 탄 사람을 바라보다가 분명 문 이야가 아는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에 다들 물러나라는 듯 조용히 손짓했다.
말은 곧장 문 이야 마차 앞에 도착했고, 말에 탄 사람이 고삐를 잡아당기며 문 이야를 향해 공수했다.
“이야께서 멀리 떠나신다고 우리 나리가 십리장정 앞에서 전별한다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문 이야는 마차에서 뛰어내려 서책을 쥐고 뒷짐 진 채 저벅저벅 장정 안으로 들어갔다. 영원은 말에서 내려 금빛 찬란하게 빛나는 채찍을 돌리며 문 이야를 위아래로 살폈다.
“옷차림이 괜찮군. 제법 부자 느낌이 나는걸.”
“과찬이십니다.”
문 이야가 웃는 얼굴로 눈을 가늘게 뜨고 영원을 살폈다.
“칠야, 안색이 좋으십니다. 눈빛이 맑은 것이 갈피를 잡으신 모양입니다, 칠야.”
“내 보기에 자네는 막료 생활을 그만두는 날, 대상국사 앞에 가서 판을 깔고 점을 봐줘도 좋겠네.”
“저도 그럴 생각입니다!”
문 이야가 눈썹을 치켜들며 어떻게 알았냐는 표정을 짓자, 영원은 헛웃음 치며 말머리를 돌려 본론에 돌입했다.
“이야, 어디로 가는 겐가?”
“태평부입니다. 동가 대신 장부를 살펴볼 일이 있어서요.”
“오.”
문 이야가 빙그레 웃으며 하는 말에 영원은 고개를 돌려 공 대랑과 여복 일행을 살폈다.
“호위들도 나쁘진 않군. 다만 지나치게 신중해서 살기가 부족하군. 사람을 지킬 수 있을지 몰라도 사람을 죽이진 못하겠어.”
“칠야의 사람과 비교할 수 없겠지요.”
문 이야가 유월 일행을 훑어봤다.
“사람을 죽일 건가?”
영원이 채찍을 흔들며 밥은 먹었는지 묻듯이 물었다. 문 이야는 영원의 말에 말문이 막혔지만, 진지하게 생각하고 대답했다.
“아마 필요 없을 겁니다.”
“이거 받게.”
영원이 품에서 서신과 작은 인장을 꺼내 문 이야에게 건넸다.
“자네가 강남으로 간다고 하기에 어젯밤에 일부러 계 대랑을 만나러 갔었지. 어쩌면 필요할 것 같아서.”
서신과 인장을 받아든 문 이야는 슬쩍 수신인을 훑어보고 품에 넣은 다음 영원을 향해 공수했다.
“영 칠야,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영원이 채찍을 돌리며 빙긋 웃어 보였다.
“자네 일이 바로 내 일이지. 됐네. 어서 떠나게. 참, 봉낭, 그 약을 이야의 마차에 실어라. 우리 영가의 비법 약일세. 너무 급하게 가다가 까지거나, 근골을 다쳤을 때 두껍게 발라주면 하룻밤 만에 낫거든.”
“감사합니다, 칠야! 그럼 이만!”
문 이야는 다시 장읍하며 감사 인사했다. 영원이 문 이야가 들고 있는 서책을 보고 웃으며 채찍으로 가리켰다.
“무슨 책이 그렇게 재미있길래 잠시도 손에서 놓지 않는 건가?”
“절묘한 글 몇 편입니다. 몇 번 반복해서 읽을 가치가 있습니다.”
문 이야가 대범하게 내밀자, 채찍으로 슬렁슬렁 넘기던 영원의 눈동자가 수축했다가 이내 미소 지었다.
“확실히 모두 절묘한 문장이군. 고맙네, 이야.”
문 이야가 장정을 나서는데, 영원이 갑자기 불렀다.
“잠깐! 작은 일이…… 하나 더 있네.”
영원이 몇 걸음 만에 계단에서 내려와 문 이야를 덥석 잡고 안기라도 하듯이 몇 걸음 끌고 가더니 귓가에 대고 뭐라고 속삭였다.
문 이야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영원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게…… 진짜입니까?”
“뭘 그리 따지나. 진짜가 되면 진짜인 거고, 진짜가 안 되면 가짜겠지. 이쪽은 마음 놓게. 저쪽은, 자네에게 달렸고.”
영원이 채찍으로 문 이야를 쿡쿡 찌르자, 문 이야의 몸이 앞뒤로 흔들리다가 눈썹이 휘날리도록 실실 웃었다.
“칠야 쪽이 진짜라면, 그쪽을, 제가 가짜가 되도록 둘 수 없지요. 아이고! 정말 감사드려야겠습니다. 이 일이 정말 이뤄지면…….”
“자네와 내가 각각 한쪽을 맡는데 안 될 리가 있나. 안 되면, 이 몸이 얼굴 들고 못 살지. 됐네. 어서 가게. 나중에 보세.”
영원은 공수하고는 성큼성큼 사라져 말에 올라서 되돌아갔다.
문 이야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는 영원 일행을 바라보다가 손에 서책을 말아쥐고 마차로 돌아왔다. 휘장을 내리고 손에 든 동민의 책자를 한쪽으로 던진 그는 품에서 서신과 인장을 꺼냈다. 우선 인장부터 유심히 살펴본 다음, 장 태태가 준 인장과 함께 매달아 놓고 서신을 들어 올렸다. 밀봉된 봉투를 열어서 서신을 꺼내서 읽은 문 이야는 한참 뒤에 한숨을 내쉬었다.
휴가를 낸 영원은 오늘 조정에서 일어난 떠들썩한 일을 보지 못했다.
어느 어사가 묵칠과 소자람, 그리고 묵 승상이 진하 부두 등 각처의 일꾼을 모두 독점해서 하도 공사를 시키는 바람에 각 부두에 화물을 내릴 사람이 없어서 객상의 손실이 심각하다고 세 사람을 강력하게 탄핵했다.
묵 승상은 이 일은 손자 묵칠과 소자람에게 물어봐야 한다고 했고, 임무를 직접 내린 황상은 매우 껄끄럽고 또 분노도 치밀었다.
이런 망할 놈들, 어쩌면 이리도 사고를 잘 치는 거냐!
불려온 묵칠과 소자람은 모두 어안이 벙벙한 모습이었다. 하도 공사는 모두 하청을 주었고, 진하 부두 일꾼 문제는…… 주유민을 찾아서 물어야 할 일이지!
다시 주육을 불렀는데, 주육은 어사가 격노해서 하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눈물을 뚝뚝 흘렸다. 눈물을 흘리면서 소매를 더듬거리다가 소매에서 신발 안까지 뒤적거린 끝에 결국 못 봐줄 정도로 꾸깃꾸깃한 종이 한 장을 꺼내 바닥에 놓고 평평하게 펼친 다음 양손으로 들어 올렸다.
“황상, 제가 진하 부두 일꾼을 모아간 다음에 진하 부두에 정박한 배와 화물의 명세가 다 여기 있습니다. 보십시오. 지체된 것이 없습니다. 황상, 황상께서 제게 주신 임무가 무엇입니까. 경성 안팎에 더위로 인해 죽거나 다치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임무였습니다. 한여름이라 화물선이 거의 없습니다. 일꾼들은 며칠 동안 일거리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진하 부두를 조사할 때 제가 직접 보았습니다. 그들이 굶어 죽으면, 그것도 더위로 인해 죽은 것 아닙니까? 그렇지요? 그래서 돌아와서 내내 고민했습니다. 일거리를 찾아줘야 한다고요. 마침 묵신의 하도 공사에 일손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묵신을 찾아가 제가 맡았습니다. 진하 부두의 일꾼에게 그 일을 맡기면 살길을 열어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주육의 손에 들린 그 신발 안에서 꺼낸 쭈글쭈글한 종이를 내시가 황상 앞에 바쳤다. 황상은 비뚤비뚤한 글자를 바라보다가 주육 신발의 구린내를 맡은 듯이 다급하게 손을 휘저었다.
“여 승상이 민정에 가장 정통하니, 여 승상에게 보여라.”
“황상!”
바닥에 엎드린 주육은 이미 눈물 콧물 다 흘리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습니다! 제가 요즘 임무를 맡아서 성장한 것이 거슬리는 사람이 있을 줄 알았습니다! 일부러 지켜보다가 절 해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걱정했습니다, 황상! 황상,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진하 부두 쪽을 매일매일 지켰습니다. 배가 들어오는데 화물을 내릴 사람이 없을까 봐 걱정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없으면 나라도 가서 짐을 내리자, 생각했습니다!”
주육 옆에 무릎 꿇은 묵칠은 웃음이 나올 것 같아서 얼른 바닥에 엎드렸다. 주육 이놈, 갈수록 칠야 느낌이 나는군.
소자람도 어이없는 와중에 웃음이 날 것 같아서 꾹 참고 있었다. 주육 이놈, 분명 확실한 자신이 있는 게지. 그도 그렇지. 사사건건 영 칠야의 지시를 듣고 움직이는데, 영 칠야가 어디 손해볼 사람인가.
음, 주육이 잘못한 게 없으면 나와 소칠도 잘못한 것이 없지!
“황상, 이것 좀 보십시오. 제가 성장하면 거북해할 사람이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렇다고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주육은 머리를 쾅쾅 금빛 바닥에 박았다. 우는소리를 할 때마다 손바닥으로 바닥을 탁탁 내리치는 모습에 수국공은 피를 뿜을 뻔했다. 몇 번은 참지 못하고 호통치고 싶었고 심지어 주육을 걷어차고 싶었지만, 움직일 수는 없었다. 주군 앞에서 추태를 보이면 죄가 더 커진다.
“황상, 오늘…… 아니지, 어제는…… 제 형수의 산초 배의 짐을 내릴 사람이 없다고 큰형님이 채찍으로 절 때렸습니다아아아!”
주육은 고개를 들고 그다지 붓지도 않은 이마를 가리켰다.
“황상, 엉엉엉. 너무 힘듭니다! 이러다가 곧 죽을지도 모릅니다! 황사아아앙!”
울며불며 읍소하던 주육은 정말로 서러워졌고, 머리를 쿵쿵 바닥에 찧으며 헐떡헐떡 울어댔다.
황상은 수국공, 그리고 눈 감고 귀를 닫은 듯이 시선도 돌리지 않는 추밀부사, 주가 넷째 주택헌을 번갈아 보다가 여 승상을 바라봤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황상, 주유민이 말한 대로입니다. 진하 부두에 왕래하는 선박의 화물을 싣고 내리는 일에 영향을 준 것은 없습니다. 지금은 한여름이라 각 부두 모두 화물선이 적습니다. 진하 부두에 창고가 가작 많고, 집집마다 창고에 들어갈 화물을 옮길 만한 인력은 있습니다. 모든 창고에 적어도 대여섯에서 많은 곳은 스물, 서른까지 일꾼이 있습니다. 배가 적으면 화물도 적고, 창고에서 할 일도 적어서 각 창고 관사들도 부두의 일거리를 기꺼이 반깁니다. 공인이 계속 노는 것보다 낫지요. 그래서 진하 부두, 그리고 다른 부두도 짐을 내릴 일꾼이 부족한 일은 없었습니다. 어사의 이 탄핵 상주서는 민정을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