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첫째와 넷째 一
“이야, 내가 갇힌 맹수라고 했는데, 이야에게 어떤 견해가 있을까?”
영원이 화제를 바꾸자, 문 이야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웃었다.
“칠야는 역시 영웅호걸이십니다. 감탄이 나옵니다.”
문 이야가 두 눈을 반짝이며 앞으로 몸을 내밀었다.
“우리 동가가 진심으로 칠야를 돕고 싶어 한다고 말씀드렸지요? 그럼 터놓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칠야, 난국에서 벗어나려면, 첫째, 영 황후와 오황자를 벗어나게 해야 합니다. 별궁이라는 새장에서 벗어나야 앞으로 계획을 세울 수 있습니다.”
영원은 아무런 말 없이 문 이야를 바라봤다. 그건 그도 생각한 일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그는 고슴도치를 물어야 하는 개처럼 도무지 속수무책이었다.
“영 황후와 오황자가 어떻게 벗어 나느냐? 이건 조정의 문제가 아니라, 궁 안의 문제입니다. 궁 안에서도 단 한 사람의 문제지요.”
영원은 술잔을 들고 문 이야를 빤히 바라보며 천천히 술을 홀짝였다.
“칠야, 그 단 한 사람이, 그 사람이 악랄하고 잔인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칠야, 그 단 한 사람이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영 황후처럼 어진 사람을 품지 못하고, 오황자처럼 영리하고 귀여운 어린애를 품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여기십니까?”
문 이야가 엄지를 흔들었다. 영원의 눈빛이 번쩍였다.
“그저 한 사람일 뿐입니다.”
문 이야가 새끼손가락을 들고 흔들어댔다.
“이 사람이 없어지면 만사 대길입니다.”
“그 사람이 없어지면, 이 사람이!”
영원이 젓가락을 들고 문 이야의 엄지를 툭 건드렸다.
“미쳐 날뛰지 않을까?”
“허허.”
문 이야는 영원을 바라보며 아무런 말 없이 허허 웃었다. 영원의 눈빛이 갈수록 깊어졌다. 잠시 후, 주전자를 들고 우선 문 이야의 잔을 반쯤 채워주고 자기 잔도 채운 다음 양손으로 잔을 들고 문 이야에게 예를 갖췄다.
“자네와 잠시 이야기 나눈 것이 십 년 글공부한 것보다 낫군. 내가, 가르침을 받았네.”
“가당치 않습니다. 가당치 않아요.”
문 이야는 눈이 안 보일 정도로 웃었다.
“앞으로 이런 이야기를 나눌 시간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칠야가 한 글공부는 소생이 따라잡을 수 없는 것들이겠지요.”
문 이야가 단숨에 술을 비우고 찻잔을 내려놓고 공수했다.
“그럼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잠깐.”
영원이 문 이야를 불러세웠다.
“며칠 뒤에 장공주를 다시 만나러 가야 하는데, 조언이 있는가?”
“없습니다. 장공주는 큰 뜻을 품고 세상을 내려다보는 분입니다. 소생이 앞으로 추측할 수 없습니다. 칠야, 조심하십시오.”
문 이야가 매우 단호하게 대답하고는 공수하고 돌아섰다. 부채를 펼치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어슬렁어슬렁 밖으로 나가는 뒷모습을, 영원은 어이없는 얼굴로 바라봤다.
진하 부두, 어슴푸레한 안개비 속에 큰 배 수십 척이 서서히 부두로 들어왔다. 하가 대장궤 주홍년(朱洪年)이 선창에서 나와 안개비 속에 서서 양손을 허리춤에 올린 채 길게 숨을 들이마셨다.
반년 가까이 고생하다가 드디어 경성으로 돌아왔구나!
배가 닻을 내리고 정박한 후, 주홍년이 가장 먼저 배에서 내려 부두에 서서 서성거리며 샛눈을 뜨고 부두를 둘러봤다.
“이 진하 부두, 왜 이렇게 조용한 거지? 마침 잘 됐군. 가서 일꾼들을 모두 불러서 어서 화물을 내려라. 천을 잘 쳐둬야 한다고 전해라. 너희들이 지켜보고. 화물이 젖으면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
관사에게 분부한 주홍년은 발을 동동 구르며 부두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산초를 창고에 들여보내고 나면, 경성으로 가서 대황자에게 보고하고 집으로 돌아가 뜨거운 밥 먹고 푹 자야겠다!
관사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노인 하나를 데리고 종종거리며 돌아오더니, 분노 가득한 얼굴로 노인을 가리키며 씩씩거렸다.
“이자는 우 영감입니다. 이 부두의 일꾼 우두머리가 이자의 아들 우대입니다. 자네가 우리 대장궤에게 이야기하게!”
“예, 예, 예.”
우 영감은 쉴 새 없이 허리를 구부리며 연달아 대답했다.
“나리, 어떻게 된 일이냐면 말입니다. 오늘 부두에 짐 내릴 일꾼이 없습니다. 내일도 없습니다. 모레도 없고요. 한 달 내내 없습니다.”
주 대장궤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무슨 일이냐?
“뭐라고? 무슨 일이 났느냐?”
“일이 난 건 아니고요. 그렇게 됐습니다.”
우 영감은 부두에서 한평생 구른 사람이라 본 것이 많아서 태도가 공손하고 겸허했지만, 두려운 건 별로 없었다.
“수국공부 육공자께서 우리 부두에 일꾼을 모으러 왔습니다. 하도 공사를 한다고, 인당 하루에 7백 푼을 주고 세끼 모두 만두와 고기를 준다고 하셨지요. 힘만 쓰면 된다고 하셨거든요. 요즘 부두에 일이 별로 없는 데다가, 설령 일이 많더라도 하루에 7백 푼을 벌 만한 일거리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물며 끼니마다 먹을 것도 있는걸요. 그래서 다들 하도 공사하러 갔습니다. 저도 가고 싶었는데, 늙었다고 필요 없답니다.”
주 대장궤는 수국공부에서 사람을 모두 불러갔다는 말에 일단 마음을 놓고 관사에게 분부했다.
“배를 지키고 있어라. 내가 가서 화물 내릴 사람을 불러오마.”
관사는 얼른 앞으로 달려가서 주 대장궤가 타고 갈 마차를 구해왔다. 주 대장궤는 마부에게 빨리 달리라고 분부하며 경성으로 직행했다.
수국공부 세자 주유해가 노기 가득한 얼굴로 저택으로 달려 들어왔다.
“여섯째는?”
문지기가 허둥지둥 나와 맞이했다.
“아침 일찍 나가셨습니다. 육소야가 요즘 매우 바쁘십니다. 요즘 매일 해가 완전히 저물어야 돌아오십니다.”
“어디에 갔는데?”
주유해는 더욱 화가 치밀었다.
“아룁니다, 세자. 어디로 가는지는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문지기는 속으로 꿍얼거렸다. 설사 육소야가 말을 남긴대도 어디 문간방에 남기고 갈 사람인가.
주유해는 어두운 얼굴로 잠시 서 있다가 돌아서서 밖으로 나갔다. 급한 일이라, 무슨 일이 있어도 여섯째를 만나야 했다.
사환이 쉰내가 가득하도록 온 관아를 찾아다녔다. 경부 관아에서 약방, 약방에서 변하 하도 공사지까지 발에 땀 나도록 뛰어다니다가 드디어 천막 아래 팔짱을 끼고 지휘하는 주육을 발견했다.
말을 타고 달려온 주유해는 열기를 뿜으며 일하는 건장한 사내들을 눈살을 찌푸리고 바라봤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소육을 불러와라!”
주유해가 채찍으로 주육을 가리키며 매섭게 분부하자, 사환 몇이 후다닥 달려갔다.
처음 하는 장사가 순조롭고, 공사장의 열기가 하늘을 찌르는 걸 의기양양하게 지켜보던 주 육소야는 큰형님이 찾는다는 말에 눈살을 찌푸리고는 채찍을 들고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사환을 따라갔다.
영원이 보석 박힌 금 채찍을 쓰는 걸 보고 주육도 비슷한 채찍을 구해서 들고 다니고 있었다. 부채보다 더 멋있고 소탈해 보이지 않은가.
“형님이 어쩐 일이십니까?”
주육은 큰형님 주유해와 열 발짝 정도 떨어진 곳에 서서 고개를 갸우뚱하고 물었다.
“무슨 허튼짓이냐? 얼른 사람들을 돌려보내라!”
주유해는 말에 탄 채 아래를 내려다보며 매섭게 호통쳤다.
“갈수록 말 같지 않은 짓을 하는구나. 진하 부두의 일꾼을 다 끌고 오다니, 진하 부두의 짐은 어쩌란 말이냐?”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이 많은 사람 앞에서……. 게다가 모두 자기가 부리는 일꾼 앞에서, 주유해가 이렇게 혼을 내자, 주육은 그 자리에서 발끈해서 화를 냈다. 이제 나는 예전의 주가 소육이 아니라고!
주유해는 놀라서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주육을 바라봤다.
“뭐라고? 어찌 감히 그런 식으로 말을 해!”
주육은 눈을 흘기며 싸늘하게 코웃음 치고 돌아섰다.
“흥! 난 바쁩니다. 할 말 있으면 집에 가서 하세요.”
“너!”
주유해는 화가 나서 얼굴이 다 시퍼레졌다. 그는 거칠게 고삐를 잡아당기며 튀어 오르더니, 채찍을 높이 치켜들고 주육을 향해 휘둘렀다. 사환이 날카롭게 비명을 지르며 달려가 주육을 감쌌지만, 다 감싸지 못해서 이마를 맞은 주육의 얼굴에 곧바로 혈흔이 생겼다.
“지금 날 때린 거야?”
손을 들어 얼굴을 만져 본 주육은 제 손에 피가 묻어나자 눈이 다 시뻘게졌다.
“네가 뭔데? 감히 날 때려?”
주육이 사환을 힘껏 밀치고 똑같이 채찍을 휘둘렀다. 주유해는 뒤로 몸을 젖히면서 채찍을 피했지만, 채찍이 말 목을 후려치고 말았다. 말이 비명을 지르며 앞발굽을 높이 치켜들었고, 아무런 방비도 하지 못한 주유해는 그대로 말에서 굴러떨어졌다.
수국공부, 조 노부인의 정원.
조 노부인은 상석에 앉아서, 이마가 잔뜩 붓고 피투성이가 된 여섯째, 그리고 넘어져서 흙투성이고 한쪽 얼굴이 까져서 피를 흘리는 첫째를 번갈아 봤다. 화도 나고, 마음도 아프고, 쉴 새 없이 의자 팔걸이를 내리치며 허둥지둥 일어서는 수국공과 막내아들, 주육의 부친 주택헌을 손가락질했다.
“이것 좀 봐라. 이 꼴 좀 보아라! 이게 무엇이냐. 형제 둘이 밖에서 싸움했다. 이게 무슨 꼴이냐. 둘 다 보아라, 다친 꼴을 보아라!”
사정을 다 들은 수국공이 아들 주유해를 가리켰다.
“네가 말해 보아라. 소육을 왜 때린 것이냐?”
“이 녀석이 정신이 나갔는지, 진하 부두의 일꾼들을 모두 경성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촉중에서 온 산초 배가 진하 부두에 정박했는데, 짐을 내릴 일꾼이 하나도 없지 뭡니까. 찾아가서 일꾼들을 돌려보내라고 했더니 고집을 부리면서 알 바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소자, 너무 화가 나서 그만…….”
주유해는 못난 동생 때문에 가슴 아픈 표정을 지었다.
“황상께서 백성들이 더위 먹거나 굶어 죽지 않도록 탕약과 죽을 나눠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은자는 제가 알아서 구하고요. 제가 은자 똥을 싸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하지 않습니까. 묵칠이 마침 하도 공사를 맡아서 하고 있으니, 제가 어렵게 변하 보수하는 일거리를 받아왔습니다. 각 큰 부두에 가서 일거리 없어서 배곯는 사람들을 구해서 일을 시켜야지, 아니면 제가 직접 하천을 팝니까? 네? 촉중의 산초요? 형수가 돈을 벌자고 하는 일 아닙니까? 두 부부가 쓸 돈을 몰래 벌려고 하는 것 아니냐고요. 두 사람이 먹고살 돈을 벌자고, 나는 목숨도 내놓고 양보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네?”
언짢아진 주육이 피투성이 된 얼굴을 빳빳하게 들고 주유해보다 더 쩌렁쩌렁하게 고함쳤다.
“넷째! 그 산초 장사가 누구 것인지 너도 잘 알지 않느냐!”
수국공이 도끼눈을 뜨고 주육의 아비, 자기 아우 주택헌을 노려보며 위협하듯 고함쳤다.
“흠, 정말 모릅니다만. 소육이 황명을 받았단 건 압니다. 이 일을 제대로 못 해내면 큰일 납니다. 산초 장사는 큰 며느리가 혼수로 가지고 온 사업 아닙니까?”
원래 큰형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주택헌은 샛눈을 뜨고 수국공을 바라보며 되물었다.
“어머님!”
수국공이 손들 부들부들 떨며 조 노부인을 돌아봤다. 이 장사의 속사정을 조 노부인은 똑똑히 알고 있었다.
“산초를 어서 내려야…….”
조 노부인이 입을 떼자마자, 주택헌이 뒤에서 주육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주육은 머릿속이 번뜩해져서 그 기세로 앞으로 달려나가 조 노부인의 다리를 부여잡고 우앙, 울음을 터트렸다.
“할머님, 전 죽습니다!”
“이 아이가…….”
“할머님, 저 죽어요! 이번 임무는 황상이 누르고, 사황자가 누르고, 정말 저는 어쩔 도리가 없어요. 변하의 일을 구했더니, 묵 승상까지 압박합니다. 할머님, 전 죽었어요!”
주육이 조 노부인의 다리를 부여잡고 눈물 콧물 다 흘리는 바람에 치마에 다 튀었다.
“다들 나를 변변찮고, 무능하다고 하고. 어렵게 임무를 맡아서 일 좀 하겠다는데, 이렇게 걸고넘어지다니……. 살아서 뭐 합니까? 죽으라는 거라고요. 우리 사방(四房) 모두 죽으라는 거라고요. 할머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