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돈이 필요한 주육
“응? 아라가 아프다더니? 다 나았느냐?”
“나았지. 며칠 전에 이미 나았어. 그저께부터 가서 밤을 보냈는데, 어젯밤엔…….”
주육이 헤헤 웃으며 말을 이었다.
“형님, 역시 안목이 대단해. 아라는 정말이지……. 어제 정말 통쾌했다니까. 묵칠 그 녀석이 전에 솜 위에 눕는 기분이라고 하길래, 솜 위에 눕는 게 무슨 재미인가 했더니, 제길. 솜 위에 눕는다는 것도 어떻게 눕느냐에 따라 다르다는 걸 어젯밤에야 알게 됐네. 정말 통쾌하더라고…….”
“그 이야기하려고 찾아온 거냐?”
주육이 혀를 내두르며 하는 말에, 영원은 ‘할 일이 그렇게도 없냐’는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야.”
주육은 혀가 꼬인 듯이 시원스럽게 말을 내뱉지 못했다.
“말문을 튼 거지. 아라 말이야, 정말 좋더라고. 어젯밤 하루로는 충분하지 않아. 오늘 아침에, 아라가 남보석 머리 장식을 갖고 싶다고 하더라고. 가지고 있는 홍보석 머리 장식보다 더 좋은 걸로. 그 홍보석 머리 장식은 묵칠이 선물한 거거든. 묵칠 그 어리석은 놈이, 너무 올곧아서 최고로 좋은 홍보석으로 만들었지 뭐요. 그러니까 남보석 머리 장식은, 형님, 내가 아라의 말대로 꼭 하려는 게 아니라, 적어도 묵칠 그놈보다 나은 걸 해줘야 하지 않겠어? 그렇지 않소?”
“돈이 필요해? 그게 무슨 문제라고. 대영에게 분부하면 될 일을.”
영원은 화항에 널브러져서 다리를 흔들어대며 나른하게 말했다.
“아니야! 형님, 계속 형님 은자를 쓸 순 없잖아.”
주육은 더 겸연쩍어 보였다.
“어허, 말하는 것 좀 보게. 우리 사이에 너, 나를 왜 나눠?”
“형님이라고 은자가 공짜로 생기는 게 아니잖소. 앉아서 돈을 까먹기만 할 수도 없고. 형님…….”
영원의 가늘게 뜬 눈에 웃음기가 스쳤다. 그는 계속해서 다리를 흔들며 나른하게 말했다.
“다 까먹으면 그때 생각하면 되지.”
“형님, 나, 돈 벌 길을 찾았어.”
주육은 잔뜩 들뜬 얼굴로 영원에게 바짝 다가갔다. 영원도 기운이 번쩍 났다.
“어떤?”
“해서탕(解暑湯: 녹두 삶은 물. 더울 때 콩가루를 타서 마시면 갈증을 막을 수 있다.)을 만들라는 임무를 받았잖아. 그날 돌아가서 선생들과 대충 어림잡아 봤는데, 제대로 하려면 은자가 꽤 들겠더라고. 할머님에게 돈을 달라고 할 생각이었지. 고모님은 상관하지 않겠지만, 할머님까지 상관하지 않고 그냥 두고 보기만 하겠어? 그런데 아버지가 이런 일은 다 선례가 있으니 할머니께 가지 않아도 된다고 하더라고. 다음 날 경성 약방 몇 곳에 가봤는데, 다 정해진 것이 있더라고. 해마다 은자를 많이 남긴대. 내가 가면 다들 내 체면을 생각해 주거든. 전보다 이문을 더 쳐주겠다고 하더라고. 형님, 봐봐. 성 밖에 탕약을 나눠주는 약방, 멋지지?”
“중점만 말할 수 없겠냐? 이게 무슨 돈 벌 길이라는 거냐?”
영원은 짜증스럽고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내 말은, 여기서 나오는 돈을 얼마나 쉽게 버냐는 말이야. 내가 생각해 봤는데, 우리 차라리 경성 각 점포 장궤들을 다 불러서, 빈곤한 백성들을 구제해야 하니까 돈을 좀 내라고 하자고. 그중에 우리가 반을 남기고, 반은…….”
영원이 풉 하고 내뿜었다.
“소육, 네 계획, 진부한 건 둘째치고 이게 다 음덕을 까먹는 일이다. 아냐? 너 정말, 어떻게 이런 방법을 다 생각한 거냐?”
주육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형님, 무슨 말을 그렇게. 나는…… 그 뭐냐…… 너무 궁핍해서 그런 거지…….”
주육은 마지막 말을 작고 빠르게 내뱉었다. 너무나 겸연쩍었다.
영원이 주육을 흘겨봤다.
“진작 말을 하지! 돈 벌 길이라면 사실 하나 있긴 하지. 많이도 못 벌고 힘들기만 해서 그만두려고 했던 거다. 돈은 쉽게 많이 버는 게 최고니까.”
“어떤 건데? 얼른 이야기해 봐! 돈만 벌면 돼! 힘들고 안 힘들고는 일단 됐고, 연습 삼아 하는 셈 치지, 뭐. 형님 눈에 안 차면 내가 할게! 어떤 건데?”
주육은 순간 두 눈을 밝게 빛냈다.
“소칠이 하도 순시하고 보수하는 일을 맡잖았냐. 거기에 돈 벌 길이 있지.”
영원이 비딱하게 바라보며 하는 말에 주육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걸로 무슨 돈을 벌어? 그냥 순시하는 거지, 돈을 걷을 수도 없는걸?”
영원은 말문이 막혀서 목이 튀어나올 뻔한 바람에 주육의 머리통을 내리쳤다.
“대체 아는 게 뭐가 있냐? 안 보이냐? 하도 보수가 바로 돈 벌 길이다. 하도 보수하려면 돈이 들지? 돈을 안 들이고 알아서 보수된다더냐?”
“그렇지! 그런데 하도 보수하는 데 돈을 얼마나 벌겠어. 게다가 우리가 하도 보수할 줄 아는 것도 아니고.”
주육은 허벅지를 내리쳤지만, 여전히 못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영원이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자고로 어디에 돈이 제일 많이 드냐? 바로 하도 공사다! 예전에 황하 하나를 보수하는 데 국고 3분의 1을 소비했다. 황하였다면, 이 몸이 무슨 일이 있어도 맡았겠지. 큰돈을 벌 수 있으니까. 경성 하도는, 황하와 비교할 순 없지만, 다른 장사보다 오가는 돈이 매우 많단다.”
주육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 그럼 묵칠 그놈, 또 횡재를 얻은 거네? 아이고! 이럴 줄 알았으면 그 임무를 내가 맡는 건데! 형님, 왜 이야기하지 않았어?”
“이야기해도 소용없지. 묵칠은 실무 관리 아니냐, 실무 관리는 하도 공사 공정을 맡을 수 없어. 묵칠이 관리하고, 네가 공정을 맡는 건 되지. 묵칠이 관리하면서 자기가 공정을 맡는 건 규정 위반이다.”
주육이 제 머리를 내리쳤다.
“아이고, 그걸 잊었네! 끝났다, 끝났어. 소칠이 하도 순시 나간 지 며칠이나 지났는데, 단물은 벌써 다른 사람이 다 가로채 갔겠네. 형님, 진작 이야기했어야지…….”
영원이 주육을 걷어찼다.
“이런 변변찮은 꼴 좀 보게! 늦긴! 아직 일러! 잘 들어, 다른 곳은 상관하지 말고, 묵칠이 맡은 변하 쪽만 맡아라.”
“형님, 우리가 경성 안팎 모든 공정을 다 맡자고. 누가 감히 이 몸과 다투는지 두고 보자!”
주육은 늦지 않았다는 말에 순간 들떠서 싸움이라도 할 기세로 소매를 걷어 올렸다.
“전부 맡아? 사람은 있고?”
주육은 말문이 막혔다.
“사람…… 거간하는 곳에 많잖아?”
“아이고, 장사라는 걸 하나도 모르는 얼뜨기와 이야기하자니, 정말로 힘들다.”
영원이 고개를 저었다.
“형님, 나 좀 살려달라고. 내가 돈을 벌면 양주 수마(瘦馬: 말 그대로는 양주의 비쩍 마른 말이라는 의미지만, 교방에서 전문적으로 교육을 받은 작고 마른 미녀를 이른다.)를 사서 형님께 바칠게. 상품 수마로!”
주육은 장읍하고 소원을 빌고 난리였다.
“잘 들어라. 하도 공사는 인력이다. 다른 밑천은 없어. 하지만 하도 공사는 고된 일이라 보통 사람은 못 해. 네가 말한 경성 거간항에 있는 사람, 시중드는 건 잘해도 하도 공사? 하려고 하지도 않을뿐더러, 설사 할 뜻이 있어도 못 해. 하도 공사는 보통 겨울, 농한기에 하고, 농촌에서 장정들을 뽑아서 쓴다. 하지만 지금은 농사일이 한창 바쁠 때라, 농촌 장정들은 쓸 수가 없어. 농사는 한 번 지체하면 1년을 망치니까.”
“그건 나도 알지. 그럼, 사람을 어디서 구해야 하는데? 우리 가문의 종복은…….”
“너희 부의 종복이니 호위니 다 안 돼! 내가 방법을 마련해 줄 테니 잘 들어, 진하 부두, 들어본 적 있지?”
“물론이지. 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에 있어.”
주육은 잔뜩 아부하는 얼굴로 대답했다.
“부두는 지금 한여름이라 일거리가 가장 없다. 진하 부두에 힘든 일 해본 사람이 많다고 들었다. 다 몸 쓰는 일 해본 사람이고, 지금 일도 없으니 분명 한가한 사람이 많을 거다. 미리 말해두는데, 돈 아낄 생각하지 말아라. 돈도 충분히 주고, 하루 세끼, 만두, 고기를 실컷 먹이면 일꾼이 부족할 일은 없을 거다.”
“그러고도 벌 돈이 나와?”
주육은 걱정스러운 듯했다. 하루 세끼, 만두, 고기를 먹이는 건 몰라도 돈까지 충분히 주려면…….
영원이 주육을 흘겨봤다.
“이 멍충아! 하도 보수, 누가 관리하는 것이냐? 묵 승상의 손자다! 묵 승상은 능구렁이 같은 사람이다. 한여름에 하도 보수하는 어려움을 우리보다 모를 리가 있냐? 잘 아는 이상, 일꾼을 쓰는 데 돈이 든다는 것도 잘 알 것이다. 네가 하루에 5백 푼을 준다고 치자, 위엔 8백, 천이라고 올릴걸? 돈을 충분히 주고, 끼니마다 고기도 먹이고, 네가 고르는 대로 사람을 쓸 수 있을 거다. 건장하고 힘센 사람들로 골라서 줄을 서면, 얼마나 멋지냐. 네가 공임을 다른 집보다 더 준다고 해도, 비싼 값을 할 것이다. 잘 들어라, 묵칠의 이번 임무에서 중요한 건, 잘 해내는 것이다. 은자는…….”
영원이 손가락을 흔들었다.
“은자는 중요하지 않아.”
주육이 허벅지를 내리쳤다.
“그렇지! 소칠의 이 임무는 내가 맡은 임무랑 같네. 돈을 얼마나 쓰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중요한 건 깔끔하고 멋지게 끝내는 거지! 알아들었어. 형님, 정말 돌멩이도 금으로 만들어 내는구나! 형님, 나 바로 소칠 만나러 간다! 변하는 내가 맡아야 해!”
“맡게 되면 얼른 진하 부두부터 가라. 우리가 생각했으니, 다른 사람도 충분히 생각할 것이다. 괜히 빼앗기지 말고.”
“걱정하지 마, 걱정하지 마! 맡게 되면 바로 진하 부두로 달려갈게. 사람을 골라서 바로 경성으로 데리고 올 거다. 변하 근처에 적당한 마당을 빌려서 거기에 묵게 하고 만두, 고기부터 먹이겠어!”
영원이 상기하는 말에 주육은 신이 나서 손발을 흔들며 곧바로 묵칠을 찾아갔다.
영원은 주육이 중문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빙그레 웃는 얼굴로 다리를 흔들었다. 이제 한 달 남았다. 계산해본바, 한 달 안에 변하를 보수하려면 주육은 온 진하 부두의 일꾼을 싹 다 불러 모아야 한다. 진하 부두의 일꾼이 모두 주육에게 불려와 하루 세끼 먹으며 하도를 보수하게 되면, 무창 상행의 산초가 도착할 즈음엔…….
영원은 입꼬리를 끌어 올리고 냉랭하게 웃었다. 주육은 정말로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하겠지만, 하가, 그리고 수국공부의 그 세자, 심지어 대황자 그분은 분명 생각했을 것이다.
수국공부가 양쪽으로 갈릴 수도 있겠군. 대황자는 성격이 포악한 사람이니까…….
영원은 멀리 생각할수록 울적해졌다. 경성에 온 지 벌써 몇 달이나 지났는데, 이룬 일이 하나도 없고 고작 이런 작은 수완이나 부리고 있다니.
이 일에 관건은 어디에 있을까? 어느 곳, 누가 중추일까.
복안 장공주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황자의 아이를 위한 법회를 연다고 하니, 그 법회에 참석해야만 했다. 어쩌면 모든 관건이 그 비구니 암자, 그 작은 마당에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영원은 저녁에 관아에서 나왔다. 경부 관아는 정북후부와 그리 멀지 않았고, 마음이 번잡한 영원은 말을 타지 않고 쥘부채를 흔들며 떠들썩한 거리를 지나쳐 부로 걸어갔다.
골목으로 돌아 들어가자, 웃는 얼굴인 사환 하나가 골목 옆의 청석에서 폴짝 내려와 영원을 향해 공손히 예를 갖췄다.
“영 칠야, 저희 이야가 뵙고 싶어 하십니다. 저 맞은편 다루에 계십니다.”
“네 이야가 무슨 물건인데?”
영원은 말이 안 통하는 망종 같은 모습으로 사환을 위아래로 살폈다.
“분명 그렇게 물으실 거라고 했습니다. 저희 이야 말씀이, 이야는 물건이 아니랍니다. 나리도 아니시고요. 만나면 알게 될 거라고 했습니다.”
사환이 샐샐 웃으며 하는 말에 영원은 말문이 막혔다. 이야는 물건이 아니고, 나도 아니라니. 말하는 것 좀 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