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대황자의 장사
문 이야는 직접 성으로 들어가서 하루 넘게 머무르다가 다음 날 저녁에야 자등 산장으로 돌아왔다.
이동이 만 어멈과 영 대장궤를 데리고 화청에 도착했을 때, 이미 기다리고 있던 문 이야의 시선이 이동 뒤에 있는 만 어멈과 땅딸막하고 토실토실한 영 대장궤에게 향했다.
이동이 소개부터 했다.
“이번 일은 만 어멈이 안에서 총괄할 거예요. 그리고 이분이 영 대장궤고요, 영 대장궤가 밖에서 총괄할 거예요. 영 대장궤는 줄곧 남쪽 몇 곳의 장사를 관리했어요. 며칠 전에 마침 장부 확인하려고 경성에 올라왔는데, 어머니가 당분간 남아있다가 이 일을 끝내고 돌아가라고 하셨어요.”
“영? 영해?”
영씨라는 말에 문 이야는 바로 영해를 떠올렸고, 영 대장궤가 웃으며 예를 갖췄다.
“영해는 제 조카입니다. 저는 고아로, 강보에 있을 때 부친이 거둬주셨습니다. 그래서 영해와 닮은 구석이 없습니다.”
문 이야가 묻기 전에 영 대장궤가 먼저 설명했다. 문 이야는 의외라고 생각하면서도 알 것도 같았다.
영 대장궤 역시 지극히 영명한 인물로 보였다. 하긴, 장 태태가 이런 큰일을 맡길 정도면 분명 영명하고 믿음직한 사람이리라.
사람들이 모두 자리에 앉은 다음, 문 이야가 단숨에 차를 비우자 만 어멈이 서둘러 일어나 차를 내렸다.
“일단 대황자의 장사부터 이야기합시다. 몇 년 되지 않았습니다. 열일곱이 되던 해부터 임무를 맡았고, 이부 서리(署理) 자리를 골랐습니다.”
문 이야가 비아냥거리는 얼굴로 수염을 쓰다듬었다.
“마음이 너무 급해서, 두어 달 만에 측근 수십 명을 각부와 각 지방에 관리로 심었지요. 하필 그중에 능력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요. 다들 재물을 불릴 생각으로 몰려들었습니다. 반년도 되지 않아서 원성이 자자해졌고, 황상은 할 수 없이 이부에서 내보냈습니다. 그렇게 한참 동안 할 일 없이 지내다가 예부로 보냈습니다. 예부로 가 있을 때, 주 귀비가 대황자의 처를 고르기 시작했습니다. 그해에 대황자가 왕(汪)씨라는 미인을 알게 되었고, 밖에 저택을 마련해 주려고 예부의 거가사(車駕司)에 손을 댔습니다.
탐욕을 너무 부려서 그해 교외에 제를 올리러 가던 거가사의 마차가 여러 대나 고장 났습니다. 처음 있는 일이었지요. 하지만 황상은 그 일을 덮었습니다. 대황자는 여전히 예부를 총괄하고요. 죄를 물을 순 있어도 처분을 내리진 못했습니다. 지금까지도 이런 상황입니다.”
만 어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못나도 이렇게까지 못났을 줄이야!
“4년 전, 대황자가 성혼하고 왕부를 세웠습니다. 돈 들어갈 곳이 더 많아졌지요. 하지만 드디어 그나마 정상적인 방법을 생각해 내서 장사를 시작했지요. 처음엔 수국공 세자 주유해가 나서서 문하에 있던 조배성을 천거해서 한원 지부로 보내 산초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올해까지 3년 차입니다. 이부 사람 이야기를 들어보니, 수국공 세자가 문하 사람을 금주부 관리로 천거한 것이 5년이나 되었답니다. 산초 장사로 돈을 적잖게 버는 모양입니다.”
“음. 이제 영 대장궤가 이야기해 봐.”
이동이 영 대장궤에게 눈짓했다. 영 대장궤는 이동과 문 이야를 향해 허리 숙여 예부터 갖추고 입을 열었다.
“예. 한원부 산초 장사는 원래 촉중의 몇몇 큰 상인 가문에서 7할은 독점했습니다. 나머지 작은 곳에서 3할을 나눠 가졌고요. 우리 배는 일단 들어가면 두어 대는 산초를 싣고 돌아왔습니다. 확실히 3년 전부터 한원부의 산초 사업은 무창 상행이 독점했습니다. 무창 상행은 처음부터 수국공부를 내세웠습니다. 조금만 소식이 빠른 사람은 대황자의 사업이라는 걸 알 수 있었고, 아무도 손대지 못했습니다.”
문 이야는 눈썹을 까닥이다가 곧 웃음 지었다. 그랬다. 장사와 관련된 일이니, 장사꾼이 당연히 가장 잘 알 수밖에.
“산초 장사는 원래 밑천이 적게 들고 이익이 큽니다. 한원부는 지극히 궁핍한 곳으로 은자 한두 냥이면 일고여덟 식구가 배불리 먹고 따듯하게 1년을 보냅니다. 많은 집에서 산초나무를 심었고, 수확한 산초가 수백 근에 이르렀습니다. 팔고 한두 냥만 받아도 다들 기뻐서 어쩔 줄 몰라합니다.”
영 대장궤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한원부에서, 1년에 산초 5백 근을 무창 상행에 파는 집은 1년 노역을 감해준다는 통고를 걸었답니다. 1백 근을 파는 집은 대문에 붉은 천을 걸어주고요. 그래서 무창 상행이 예전보다 돈을 더 적게 주어도 순조롭게 산초를 사들일 수 있었답니다. 다만.”
영 대장궤가 쓴웃음을 지었다.
“지금 한원부에서 산초를 사들일 수 있는 건 무창 상행밖에 없다고 합니다. 한원부에서 수로, 육로 모두 차단해서 산초를 밖으로 내보내는 걸 엄금하고 있답니다.”
“한원부 산초를 농단하는 건 지부 하나면 충분하지.”
문 이야가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
“작년 가을에 한원부 산초가 풍년이었고, 산초를 실은 무창 상행의 배가 요 며칠이면 진하 부두에 들어올 겁니다. 진하 부두에 창고 네 곳을 이미 비우고 무창 상행의 산초를 기다린답니다.”
문 이야가 눈살을 찌푸리며 이동을 바라보는데, 이동은 계속 이야기하라며 영 대장궤를 바라봤다.
영 대장궤가 문 이야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예, 무창 상행 총괄이 하 대야입니다. 수국공 세자 부인의 오라비랍니다.”
“음, 하종수. 그나마 영리한 자입니다. 잔재주도 있는 편이고.”
“작년부터 하 대야가 장삿거리를 찾았는데, 남양(南洋: 강소江蘇, 절강浙江, 복건福建, 광동廣東 등의 연해沿海 지역을 일컫던 말) 물건에 눈독 들이고 있답니다. 올해 봄에 하 대야가 직접 양주부에 가서 해산물 장사를 전문으로 하는 큰 상인을 만났답니다.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이미 사람을 보내 수소문하고 있습니다.”
“산초 장사에 손을 대는 건 너무 어렵겠네. 우리는 그저 큰 손실을 입혀야 할 뿐이야. 내 말은, 이 해산물 장사에 우리가 기회가 있는지 보자는 말이에요.”
이동이 바라보며 하는 말에 문 이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산초 배는요?”
문 이야가 손을 흔들며 하는 말에 이동이 고개를 저었다.
“장사꾼답게 움직일 거예요. 이야의 그 방법은 강도잖아요. 그건 안 돼요.”
문 이야가 허허 웃었다.
“그건 그렇습니다. 지극히 옳은 말이에요. 그럼 이가도 해산물 사업을 합니까?”
이동이 가만히 그렇다고 대답하자 영 대장궤가 웃으며 말했다.
“지금은 상급 진주, 남보석, 홍보석, 금강석, 묘안석 같은 보석, 그리고 향료도 해산물 사업에 속합니다. 전문적으로 하진 않았지만, 약방, 성의방, 수방에서도 매해 적잖게 쓰고 있었습니다.”
“남양으로 다니는 작은 배도 있고요.”
이동이 담담하게 하는 말에 문 이야는 얼떨떨해졌다.
“태태, 정말 대단하십니다. 감탄합니다.”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그렇지, 외할머니 때부터 있었어요.”
이동은 조금 멍해졌다. 그 선박은 나중에 그녀 손에 두 대가 되고 세 대가 되었다. 그녀는 끝까지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처음엔 강가를 위한 후수로 남겨둔 것이었고, 나중엔 아무것도 이야기하기 싫어서였다.
“이건 후수예요. 알고만 계세요.”
이동이 돌아보자, 문 이야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영 대장궤, 수고스럽지만 신경 써서 수소문 좀 해줘. 그리고 어머니와 상의했는데, 내년 강남 양로로 들어오는 한원 산초는 가격을 올려서 받아. 지금부터 현은으로 반을 내고 모두 우리가 사들여.”
“예.”
영 대장궤는 눈을 반짝이며 곧바로 대답했다. 문 이야는 얼떨떨해하다가 금세 깨달았다. 뒷일을 위해 선수를 두는 것이로구나!
영 대장궤가 물러간 다음, 만 어멈도 화청 입구로 물러났다. 이동이 문 이야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머니가, 앞으로 소식을 알아볼 일이 갈수록 많아질 거라고, 이야께서 신경 써주실 수 없는지 물으세요. 소식을 알아 올 길이 여러 곳 있으면 더 좋고요.”
“문제없습니다. 다만 영해가 좀 도와주어야 합니다.”
문 이야가 금세 대답했다.
“네. 어머니가 이미 장방에 분부 내렸어요. 앞으로 돈이 필요하시면 장방에 분부만 하세요. 어머니나 저, 혹은 오라버니에게 보고할 필요 없어요.”
문 이야가 웃으며 공수했다.
“낭자, 태태 안심하세요. 이가에서 저를 국사로 대접해주시니, 저도 반드시 국사가 된 심정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이동이 다급히 일어나 답례하자, 문 이야는 장읍하고 물러났다. 화청에서 나온 문 이야는 치맛자락을 들고 계단으로 내려오는 이동을 돌아보며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강가야, 정말 보는 눈이 없어도 너무 없구나!
주 육소야는 나는 듯이 말을 몰아 경부 관아로 직행했다.
요즘 영원은 조회에서 물러나면 바로 경부 관아로 가서 난잡한 사건들을 처리했다. 사건이 없으면 관역을 데리고 거리를 마구 돌아다녔다. 황상이 직접 결정해준 영원의 일과였다.
영원이 매일 경부 관아에 얼굴을 내민 후로, 주육도 경부 관아의 단골이 되었다. 영원은 매일매일 들르고, 주육 역시 거의 매일 들렀다.
처음 며칠은 관아 사람 모두 몹시 긴장했다. 경성에서 유명한 이 사고뭉치를 거스를까, 혹은 이 사고뭉치에게 연루될까 걱정했지만, 며칠 만에 관아 사람 모두 이 영 칠야가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일단, 통이 컸다. 대놓고 은자를 상으로 주는 건 물론이고, 점심때 그가 있는 한 경성 각 큰 주루에서 돌아가며 주안상을 보내왔다. 마음 놓고 술을 마시진 못해도, 얼큰하게 취하는 정도는 형 부윤도 모르는 척 눈 감아 주었다.
관아에서, 적어도 관역들은 모두 매일매일 바쁜 건 아니었다. 한가해지면 영 칠야가 바로 판을 깔고 주사위를 던지며 돈내기를 했다. 영 칠야의 노름 운은 정말 별로였고, 대부분 잃고 가끔 땄다. 돈을 따면 껄껄 웃으면서 은자를 모두에게 나눠주었다.
영 칠야가 관아에 들어온 이래, 관역부터 소리, 사야까지 모두 좋은 걸 먹었고, 상금도 버는 데다가 노름으로 돈도 벌었다. 그야말로 술과 고기, 재미에 은자까지 가득한 나날이었다.
대당으로 들어간 주육은 쭈그리고 앉아 실신할 정도로 우는 노파 앞에 앉아서 심리 중인 위봉낭을 보고 배를 잡고 웃어대다가 인사하고 대당을 지나쳐 영원을 찾으러 갔다.
영원은 그 뒤에 첨압방(簽押房: 사건을 수결하는 사무실)에서 한 발은 바닥을 디디고, 다른 발은 화항에 걸친 채, 입으로 산신이시어, 지신이시어 읊어댄 다음 손바닥에 입김을 훅 불고 주사위를 접시 위로 휙 내던졌다.
주육이 후다닥 뛰어가서 영원의 어깨에 걸치고 접시 안을 바라봤다. 주사위가 멈추자,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다.
“칠야, 또 졌습니다!”
“이런 제기랄!”
영원이 은표 몇 장을 탁자 위로 내던졌고, 주육이 주사위를 집어 들었다.
“형님, 노름만 하면 지면서 또 하는 거요? 괜히 이놈들 좋은 일 할 거 없다니까?”
“이런 구질구질한 곳에서 노름이라도 하고 놀아야지, 아니면 심심해서 어쩌라고. 난 놀이패도 부르고 싶다. 자, 한 판 더 하자! 내가 끝까지 너희들을 못 이길까 봐!”
영원이 재도전을 준비하며 양손을 비비는데, 주육이 영원을 끌어당겼다.
“형님, 나 상의할 일 있소.”
“이 판 끝나고. 기다려라!”
영원이 주사위를 움켜쥐자, 주육이 후다닥 뺏어왔다.
“중요한 일이라고! 너희들, 일단 물러가라. 형님과 중요한 일 이야기해야 한다.”
사람들이 모두 바라보자, 영원이 손을 휘저었다.
“멀리 가진 마라. 이따 다시 하자.”
사람들이 방에서 나간 다음, 영원은 휙 돌아서서 벌렁 눕더니 탁자에 놓인 그릇을 끌고 와서 먹으면서 물었다.
“중요한 일이라니, 뭔데? 말해 봐라.”
“어제 내가 연향루에서 밤을 보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