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141화 (141/463)

141화: 차이

“바로 그 말 때문에 소 노부인이 평생 질투했지. 네 외조모가 여 승상 이야기를 꺼내지 않은 것도 아마 그런 이유에서겠지. 확실히…….”

복안 장공주가 까르르 웃었다.

“예전에 난 일부러 네 외조모를 만나러 간 적이 있었어. 확실히 소 노부인보다 인품이 좋더라.”

이동은 혼란스러워서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어머니는 이 일을 알까?

이동은 자등 산장으로 돌아온 후에도 마음이 정리되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회랑에 앉아 차를 마시며 한참 마음을 달랜 후에야 겨우 조금 진정되어서 옷을 갈아입고 문 이야를 찾아갔다.

오라버니와 계소영, 여염……. 오라버니가 여염을 우연히 만난 일도 여 승상이 마련한 일이겠지.

그만 생각하자. 일단 잠시 내버려 두자.

이동은 무심결에 고개를 저으며 생각을 접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장공주가 분부한 일을 제대로 하는 것이었다. 일을 성사하고 후환도 남기지 않아야 했다. 적어도 너무 큰 후환은 남기지 않기를.

이신과 여염, 계소영이 폐관한 후, 한가해진 문 이야는 상반신을 벗고 그늘진 정원에 앉아 큰 부들부채를 흔들면서 입을 삐쭉대며 여행기를 읽고 있었다. 온통 허튼소리뿐이라고 투덜대면서.

이동이 찾는다는 말에, 문 이야는 허둥지둥 일어나서 옷을 걸친 다음 부채를 들고 정원에서 나갔다.

이동은 의논할 때 자주 쓰는 전원에 있는 화청에 있다가 문 이야가 들어오자 일어서서 예를 갖췄다.

“수련, 녹매, 나가서 아무도 가까이 오지 못하게 지켜.”

수련과 녹매는 바로 나갔고, 문 이야는 부채를 내려놓고 상반신을 꼿꼿이 세우고 엄숙한 얼굴로 이동을 바라보며 입을 열길 기다렸다.

이동은 꿩 이야기, 그리고 대황자와 호위 문제로 복안 장공주가 불같이 화를 낸 일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장공주는 대황자에게 경고하고 싶은 것 같아요. 반년 동안 꼼짝 못 할 정도로 손실을 입히길 원해요. 두 가지 일을 한 번에 하겠다는 말도 했어요.”

“두 가지 일이요?”

문 이야가 불을 뿜을 정도로 두 눈을 빛냈다. 그 모습에 이동은 말문이 막혀 눈을 내리깔고 있다가 한참 만에 겨우 입을 열었다.

“이야에게 말씀드릴 일은 아닌데, 다만 내가 너무 아둔해서요. 이야기하지 않으면 큰일을 망칠까 걱정이었어요. 이야라면 경중을 잘 아실 테니까요.”

“이해합니다. 안심하세요, 낭자.”

“장공주는 저한테 참 잘해주세요. 오라버니가 이번 과거 때 급제하는 게 좋대요. 며칠 전에 장공주께서 남북 과거 이야기를 하다가 내년 시험관은 아마도 고서강이 될 것 같다는 말을 했어요.”

문 이야의 눈이 휘둥그레지고 안색이 순간 창백해졌다.

“그렇다면…….”

“음, 조금 늦어지는 것뿐이에요.”

“그런 게 아닙니다!”

문 이야는 다급해 보였다.

“이건 조금 늦는 문제가 아닙니다. 강남의 재자들이 계속 나오는 것도 아니고, 문인들이 얼마나 허송세월하게 될지 모르는 일입니다. 어쩌다가 이런 일이!”

“장공주 말로는 오라버니가 내년에 급제하는 편이 좋다고 했어요. 그것만 이야기했을 뿐, 다른 이야기는 안 했어요. 장공주가 뭘 하려는 건지도 모르고요. 이번에 두 가지 일을 한 번에 하자고 했으니…….”

문 이야는 눈살을 찌푸린 채 한참 동안 멍하니 있다가 일어서서 무거운 걸음으로 서성거렸다. 그러다가 한참 만에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장공주는 선황 품에서 국본처럼 자란 분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잘나도 신하, 백성입니다. 장공주의 생각을 감히 추측할 수 없어요. 추측해내지도 못할 거고요. 두 가지 일을 한 번에 하겠다고 말씀했다면, 아마도 대황자부터 해결하려는 것 같습니다. 일단 장공주께서 시킨 일부터 제대로 해결하시지요.”

“이야, 장공주는 어디까지 가려는 걸까요? 그리고 이야와 여 승상의 일, 장공주께서 다 알고 있었어요. 나한테도 말해줬고요.”

여 승상과 문 이야의 인연을 알았고, 여 승상과 외할머니의 인연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예전부터 문 이야의 인품, 성정은 잘 알고 있었으니, 그녀는 이제 문 이야를 더욱 믿었고 모든 일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아실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제가 아는 것보다 더 많이 알겠지요.”

문 이야가 중얼거리는 말에 이동은 가만히 고개만 끄덕였다. 여 승상이 밀서를 고한 일을 문 이야는 분명 모르리라.

“제가 보기에, 장공주는 다음 대를 선택하려는 겁니다.”

한참 만에 문 이야가 매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황자를 내던져서 영원이 마각을 드러내게 했습니다. 뒷산에서 영원과 주육 무리를 만난 일로 궁을 흔들었지요. 대황자도 바로 그것 때문에 호위 같은 멍청한 생각을 한 겁니다. 장공주 마음엔, 대황자는 아마도 이미 판 언저리로 밀려났을 겁니다. 이런 식으로 위세를 부려선 안 됐어요. 장공주는 강하게 대해선 안 될 사람이에요.”

이동은 문 이야의 분석을 유심히 들었다.

“첫걸음으로, 장공주는 아마 대야의 과거 문제를 도울 생각인 것 같습니다. 다만 그건 그저 시작일 뿐이겠지요. 혹은 돌멩이 하나로 새 여럿을 잡을 작전일지도요.”

문 이야는 눈을 감고 한참 생각에 잠겼다.

“지금 당장은 모르겠습니다. 다만 하나, 낭자, 장공주를 깊이 믿으시는지요? 저는 믿습니다. 이왕 믿는다면 만사 일단 잘하는 게 좋습니다. 윗전은 우리와 서 있는 위치가 다릅니다. 장공주께 보이는 것, 우리는 못 봅니다. 적어도 지금은 장공주의 생각이 읽히지 않습니다. 제대로 관찰할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그럼 일단 눈앞에 벌어진 일부터 이야기해요. 어디부터 착수할까요?”

“일단 대황자가 무슨 장사를 하는지부터 파악해야 합니다. 이건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다만 낭자, 장사는 제가 잘 모릅니다. 앞으로 낭자와 태태가 합심하여 이끌어주셔야 합니다. 낭자가 직접 이끄는 게 가장 좋고요.”

이동이 멈칫하자, 문 이야가 허허 웃었다.

“장공주 같은 사람은, 자기를 따라올 수 있는 사람을 원합니다. 낭자에게 이런 일을 시킨 건, 아마도 낭자의 수완과 능력을 보려는 의중이겠지요. 그러니 보여주어야지요.”

“하지만 나는…….”

이동은 울상을 지었다. 이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낭자는 할 수 있습니다. 하가가 어디 장사꾼 축에 들기나 합니까? 훈귀 공신이라는 이름하에 대황자의 세를 믿고 장사하는 것뿐입니다. 겉모습에 연연하고, 분별없이 거들먹거리고 오만합니다. 태태가 나서는 건, 소 잡는 칼로 닭 잡는 겁니다.”

이동이 문 이야를 흘깃 바라봤다. 태태는 소 잡는 칼이고, 나는 닭밖에 못 잡는다?

경성, 경부 관아에서 나온 위봉낭은 뙤약볕 아래 서서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영 칠야가 이 관아에 배정받은 후, 그녀와 대영들은 식견이 넓어진 느낌이었다.

황상의 지시로 영원이 관아에 배정된 후, 형 부운은 얼굴을 보자마자 시원스럽게 바닥을 드러냈다. 영원의 임무는 황상이 직접 말을 전해 배정한 것으로, 민정도 겸임해서 처리하라고 했다나. 까놓고 말하면 관아에 고발된 작은 사안들을 모두 영원이 처리하라는 것이었다. 사흘마다 한 번씩 보고하고 형 부윤이 확인하고 여 승상에 올리면 황상도 확인하겠다고 직접 말했다고 한다.

영원은 며칠 만에 짜증을 내며 더는 못하겠다고 하더니, 사건을 맡으면 여 식솔이 없는 사안은 대영과 사환에게 넘겼고, 여 식솔이 있는 사안은 모두 위봉낭의 몫이 되었다.

하마터면 여러 목숨이 날아갈 뻔한 오늘 송사가 어떤 것이었냐면, 올케가 고기를 한 조각 더 많이 먹었다고 시누이가 난리를 부렸고, 올케는 많이 먹지 않았다고 난리를 부렸다. 그러다가 하나는 목을 매달겠다고, 하나는 우물에 몸을 던지겠다고 난리가 났단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이냐!

사건 파악은 쉬운 사안이었지만, 판결을 어찌 내리랴. 대체 올케가 고기를 한 점 더 먹었는지 아닌지도 모르는걸! 에고.

칠야를 모신 지 몇 년 동안 이런 일은 또 처음이었다. 보고를 올린 위봉낭은 자기가 우물에 몸을 던지고 싶을 지경이었다.

다행히 오늘의 사안은 모두 해결되었다.

위봉낭이 의기소침해서 돌아가는데, 몇 걸음 만에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봉낭 언니!”

다다가 손수건을 흔들면서 날카롭게 소리치며 그녀를 향해 달려왔다. 위봉낭은 걸음을 멈추고 다다를 꼼꼼히 살폈다. 며칠 사이에 홀쭉해진 것이, 포동포동해서 몹시 귀엽던 얼굴이 아주 초췌했다.

“너희 소저가 아직 몸이 좋지 않은 거냐?”

위봉낭이 눈살을 찌푸린 채 물었다. 칠야 무리가 임무를 받기 전날 일어난 일을 그녀도 모두 알고 있었다. 다음 날 아라가 병이 났다고 했고, 칠야가 의원을 불러주기까지 했다.

다다가 울상으로 대답했다.

“좋아지긴 했는데요. 묵 칠소야를 만나고 싶어 하세요. 얼굴 한 번 보고 몇 가지만 묻고 싶으시대요. 그런데…….”

다다가 눈물을 훔쳤다.

“나흘이나 찾아갔는데, 칠소야를 한 번도 만나지 못했어요. 칠소야가 예전에…… 예전엔 우리 소저한테 어떻게 하셨어요. 그런데 지금은…… 지금은…….”

“들어가서 이야기하자.”

다다가 길거리에서 펑펑 울 것 같은 모습이자, 위봉낭은 그녀를 덥석 붙들고 옆에 있는 다루로 들어갔다.

“칠소야는 하도를 순시하러 가셨어. 요즘 줄곧 밖에서 지내시느라 며칠 동안 경성에 돌아오지 않으셨어. 몰랐니? 어디로 찾으러 갔는데? 묵 칠소야는 지금 매우 바쁘시다고.”

관아에 고발된 사건으로 며칠 동안 시달린 위봉낭은 요즘 말도 안 되게 인내심이 좋아졌다.

“그럼 어떻게 해요? 소저가 칠소야를 만나서 몇 마디 물어보면 마음을 내려놓을 거래요. 소저는…… 소저가 살이 다 빠졌어요. 홀쭉해져서 곧 사라질 것 같아요. 매일 멍하니, 얼마나 불쌍한지 몰라요.”

다다가 콧물까지 흘리며 말했다.

“내 생각엔, 류만 소저를 부르는 게 좋겠다. 너희 소저랑 가깝게 지내잖니. 분별 있는 사람이니까, 너희 소저를 잘 타일러 주겠지.”

“모셨어요. 그날 아침에, 행수 어르신이 바로 사람을 보내 류만 언니를 불렀어요. 류만 소저는 요즘 시간만 나면 우리 소저를 찾아와서 같이 있어 줘요. 우리 소저는 계속 그냥 칠소야를 만나서 말 몇 마디만 하면 된다고 하고요.”

“뭘 물어보겠다는 건데?”

위봉낭이 일꾼을 불러 적신 수건을 받아서 다다에게 건넸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대요. 저도 그렇고요.”

위봉낭은 한숨을 내쉬고 다다의 어깨를 한참 토닥여주었다.

“그런 거라면 묵 칠소야를 만나도 소용없어. 묵 칠소야 같은 사람은, 우리 영 칠야의 말을 빌려보면, 절대로 법도를 어긋날 사람이 아니야. 너희 소저는 삼교구류(三敎九流: 3교인 유교, 법교, 불교와 9류 유가, 도가, 음양가, 법가, 묵가, 명가, 종횡가, 잡가, 농가를 아우르는 말) 중에서 가장 바닥이야. 묵 칠소야나 우리 영 칠야는 가장 위 부류고. 네 소저가 오를 수 있는 나무가 아니야.”

“하지만 묵 칠소야는 우리 소저한테…….”

“그래서 네가 어리석은 거다. 너희 소저는 더 어리석고.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말이 뭔지 모르겠니? 아무리 너희 소저와 즐겁게 지내고, 오냐오냐 떠받들어도, 너희 소저를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는 뜻이야. 더더욱 묵부로 들이진 않을 거고. 너희 소저를 떠받들고 어화둥둥 아끼는 것도 다 즐기는 방법의 하나야. 그러니까…….”

말재주가 그렇게 뛰어나지 않은 위봉낭은 손을 한참 휘젓다가 겨우 말을 이었다.

“나리들이 새나 화초를 기르는 것이나 마찬가지야. 하나를 기르고 또 하나를 기르고. 잔뜩 기르는 거지. 그게 다 과정이고, 즐거움이야. 알아듣겠니?”

다다는 망연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됐다. 나도 뭐라고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돌아가. 가서 내가 말한 대로 너희 소저에게 전해. 알아들으면 알아듣는 거고, 알아듣지 못하면……. 묵 칠소야가 돌아오려면 며칠 걸려. 만나는 건 어렵지도 않고. 너희 소저가 부르면 분명 오실 거야. 네 소저를 만나면 분명 다정하고 부드럽게 대해주시겠지. 사실 묵 칠소야는 류만 소저에게도 똑같이 부드럽고 다정해. 됐다. 난 볼 일이 있다. 사나흘 뒤에 다시 칠소야를 찾아가면 만날 거야.”

위봉낭이 손을 휘휘 저으며 돌아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