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139화 (139/463)

139화: 소가의 생각

“이런 허튼짓을…….”

“허튼짓인지 아닌지 어찌 아누.”

백 노부인이 느릿느릿 대답하며 계소영을 바라봤다.

“네가 무슨 생각하는지 할미는 안다. 휴. 하지만 너는 아직 너무 성실하다. 영원은, 너는 영원과 너무 다른 사람이라 자주 왕래하면 누가 봐도 이상하게 여길 것이다.”

계소영은 눈을 내리깔고 나지막이 대답했다.

“영가와 너무 가깝게 지낼 것 없다. 우리 가문도 영가와 가깝게 지내서 좋을 것 없어. 이신, 그 이신만 있으면 충분하다.”

계소영은 조금 놀랐다. 백 노부인은 애틋한 듯 손자의 어깨를 토닥였다.

“이가 낭자는 갈수록 장공주와 가깝게 지내는구나. 오늘 장공주와 이야기하는 동안 그 낭자도 줄곧 옆에 있었다. 내가 일부러 남이 들으면 안 될 일을 몇 가지 이야기했는데, 장공주는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전보다 더 친분이 깊어진 것이다.”

계소영은 살며시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백 노부인이 그 여인을 가리켜 강가 며느리가 아니라 이가 낭자라고 했다. 강가 며느리라는 말을 떠올린 계소영은 불쾌한 느낌이 가득 들었다. 그렇게 단아하고 세속적이지 않은 여인에게 강씨 성이 붙다니. 구슬에 먼지가 뒤덮인 그 느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강가는요? 그리고 진왕은요?”

계소영이 껄끄러운 마음을 꾹 참으며 나지막이 물었다.

“강가는 지금…….”

백 노부인이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그 저택 종복들의 말대로 오통신이 붙은 모습이니 그쪽을 신경 쓸 것 없다. 이가 낭자가 장공주와 가깝게 지내는 것도 아마도 장공주의 세력이 필요한 거겠지. 세력이 필요한 이유도 물론 강가를 대항하려는 것이고. 진왕은 아직 상대하면 안 된다. 아직 일러. 너와 네 아비가 나서도 좋은 때를 기다려야 한다. 진왕과 가깝게 지내도 될지 아닐지도 그때가 되어야 안다. 어쩌면, 그때가 되어도 알 수 없을 수도 있다.”

백 노부인의 말이 갈수록 느려졌다. 그녀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가 한참 만에 지극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 고모의 일은 다 내 잘못이다. 내가 욕심을 냈어. 장공주 말이 맞다. 네 고모는…… 황후 감이 아니었다. 상위자로서 악독한 마음이 그 아이에겐 없었다. 영리하기만 하면 무얼 하겠느냐. 악독해지지 못하면, 아무리 영리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계소영은 조모의 말에 묘하게 마음이 서늘해졌다.

뒷산에서 벌어진 일을 들은 묵 부인은 아들이 어떻게 됐는지 보려고 당장 날개라도 꽂고 날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전 노부인이 붙잡아서 결국 오후 법회가 끝날 때까지 있다가 허둥지둥 나와서 마차에 올랐다.

마차에 타고도 급하게 돌아가진 못했다. 마차에 전 노부인도 있어서 아무래도 속도를 올릴 수가 없었다. 묵 부인은 마차 안에서 안절부절못했고, 전 노부인은 타이르지도 않고 벽에 비스듬히 기대더니 금세 잠이 들었다.

어렵게 안원후부도 돌아온 묵 부인은 마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다급하게 물었다.

“세자는 어찌 됐느냐? 소식은 있고? 후야는?”

행랑 관사가 재빨리 앞으로 나와 대답했다.

“아룁니다, 부인. 세자는 아직 자극전 앞에 무릎 꿇고 있다고 합니다. 후야께서 소식을 듣자마자 묵부에 가셨는데……. 후야! 오셨습니까?”

묵 부인은 후야가 돌아왔다는 말에 허둥지둥 다가가 맞이했다.

“어떻게 됐습니까? 당신…….”

묵 부인은 소 후야의 싱글벙글한 얼굴에 순간 마음이 놓였다. 다리에 힘이 풀려 비틀거리자, 소 후야가 얼른 부축했다.

“안심하시오, 들어가서 이야기합시다.”

상방으로 들어가자, 소 후야가 웃으며 말을 꺼냈다.

“막 소식을 듣고 나도 매우 놀랐소. 자람이 사리 분별이 밝은 아이인데, 어쩌다가 갑자기 이렇게 큰 사고를 쳤나 싶었지. 우선 상공 대인을 만나러 중서성에 갔는데, 만나주지 않고 일단 상공부로 가서 기다리라는 말만 전하길래, 큰일이 아닐지 모른다고 생각했소.”

묵 부인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당신은 모르겠지만, 장공주가 화가 나서 곧바로 별원으로 돌아가셨어요. 법회도 다 내팽개치고요. 이런 일은 처음이었어요. 걱정되어서 어쩔 줄 모르겠는데, 어머니는 괜찮다고 진정하라고 하시잖아요. 소칠 그 고얀 놈도 같이 있다는 생각이 아니었다면 정말로 진정하지 못했을 거예요! 계속 말씀해 보세요. 자람은 아직 안 돌아왔어요. 자극전 앞에 꿇고 있답니다. 그냥 잠깐이면 몰라요. 날도 춥지 않으니 하룻밤 정도는 꿇을 수 있어요. 하지만…….”

“괜찮소, 괜찮아. 상공 대인을 만나고 돌아왔소. 상공 대인 말씀이, 장공주께서 그 네 사람과 그들이 훔친 꿩까지 함께 황상에게 보냈다고 하오. 처음엔 황상도 화가 제법 났는데, 네 사람을 보고는 오히려 즐거워하셨다고 하오. 꿩을 앞에 두고 자극전 앞에 반성하라고 무릎을 꿇렸다고. 다들 한가해서 이런 일이 생긴 거라고 하시면서 모두에게 임무를 주셨다고 하오.”

“예?”

묵 부인은 어리둥절해졌다. 언제부터 임무 받는 게 벌이 되었담? 바라마지 않는 일인데?

“지난번에 영원이 조회에서 백관이 정무에 소홀하고 기녀 싸움이나 한다고 고했을 때, 황상께선 그때 바로 임무를 주고 싶어 하셨다고 하오. 그래야 남이 정무에 소홀하다는 말을 못 한다고. 그런데 영원이 억지를 부리며 받지 않으니, 황상께서 매섭게 압박하셨지. 그랬더니 황상의 다리를 붙들고 아직 글자도 모른다고 울었다지. 상공 대인 말씀이, 황상이 보시기에 다른 사람은 임무를 매우 중시하지만, 영원에게는 벌이라고, 벌을 내리려면 모두에게 내려야 한다고. 영원에게만 벌을 내리면 또 다리를 붙들고 눈물 콧물 흘릴 테니, 네 사람 모두에게 각각 임무를 내리신 것 같다고 하셨소.”

묵 부인은 울어야 좋을지 웃어야 좋을지 몰랐다.

“그 영 칠야, 겉모습은 얼마나 멀쩡합니까. 신선 같은 인물이, 어떻게……. 이게 무슨 일이랍니까.”

“황상 앞에서는 그런다고 하오. 상공 대인이 또 말씀하시길, 황상께서 지금 영원을 매우 아낀다고 하오. 이번 임무도, 첫째, 경성에서 그리 멀지 않소. 경성에서 멀어지면 누가 영원을 상관할 수 있겠소. 둘째, 그렇게 힘든 일은 아니오. 어려운 일도 아니고. 상공 대인이 소식이 들어오면 바로 사람을 보내신다고 걱정하지 말고 있으라고 하셨소.”

소 후야는 싱글벙글한 얼굴로 차를 마셨고 묵 부인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쩐지, 어머니가 하나도 긴장하지 않으시더라니. 나도 참, 자람 일이 되니 완전히 당황했지 뭐예요. 자람이랑 소칠 다 관여한 일인데, 어머니도 가만히 계시는데 내가 뭐하러 긴장했담. 아버지가 그렇게 말씀하신 걸 보면, 나쁜 일이 아니라 좋은 일이겠네요?”

“당연하지! 우리 집안은…….”

소 후야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말을 이었다.

“예전에 그 일로 하마터면 멸문당할 뻔했고. 나중에 누님이 또…….”

소 후야는 목이 메어 한참 말을 못 하다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가문에서 임무를 받고 싶어도, 황상께서 직접 이야기하시지 않는 이상 누가 도와줄 수 있겠소. 이제 잘 되었지. 얽히고설켜서, 이번 일로 황상께서 친히 자람에게 임무를 주셨으니, 앞으로…… 다 잘 될 거요.”

“그러게요.”

막 혼인했을 때 겪은 멸문에 가까웠던 참사를 떠올린 묵 부인은 가슴이 서늘해졌다.

부친의 말이 맞다. 황위라는 건, 그 자리에 오르기 전까지는 설사 태자로 봉해졌다고 해도 확실한 건 아니다. 그 당시 선황은 오황자에게 태자 마차까지 다 준비했었는데, 붕어하기 전에 내려온 성지는 지금 황상일 줄 누가 알았을까. 시아버지의 잘못된 한 걸음 때문에, 부친과 여씨 가문이 손을 잡고 도와주지 않았다면 이 안원후부는 예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것이다.

나중에 소 현비가 무릎 꿇다가 죽어버린 일도 생기고.

휴. 다 내려놓았었는데. 나와 후야, 그리고 자람 대 모두 목숨만 부지하고, 손자 대에나 다시 도모하자 싶었는데, 얽히고설키더니 이런 일이 생기다니. 오늘 일은 화일까, 복일까. 적어도 지금까진 복이지.

길게 보기 힘드니까 자꾸 멀리 볼 것 없이, 현재가 좋으면 좋은 거라고, 어머니가 그러셨었지.

묵 부인이 마음을 진정하고 소 후야에게 식사는 했는지 묻고 상을 차리라고 막 분부하는데, 관사 어멈이 종복 하나를 거느리고 종종걸음으로 들어왔다.

종복이 예를 갖춘 후 공손하게 보고했다.

“후야, 부인. 상공 대인이 전하시랍니다. 임무가 내려왔습니다. 소 세자와 묵 칠소야는 경성 안팎의 모든 하도를 순시, 소통, 수선하는 임무를 받았습니다. 기한은 두 달입니다. 상공 대인께서, 세자가 돌아오시면 오늘은 푹 쉬시고 내일 칠소야를 만나서 우선 공부부터 들르고, 이부에 들러서 절차를 마치고 하천 지도를 받은 다음 상공부로 오시랍니다. 상공 대인께서 두 분 공자를 도와줄 분을 이미 준비해두셨답니다.”

묵 부인은 저절로 ‘아미타불’을 읊었고, 종복은 계속해서 고했다.

“이번 임무는 징벌이니 과하게 열정을 보일 것 없고, 세자는 그저 칠소야만 따라다니면 된다고도 하셨습니다.”

“알아들었다고 상공 대인께 전해라.”

소 후야가 진지하게 대답하자, 종복이 공손하게 물러갔다.

“아버지 말씀은, 내키지 않는 듯이 이 일을 하란 뜻이신가요?”

묵 부인이 헛웃음을 짓자 소 후야도 따라 웃었다.

“바로 그런 말씀이지. 이번 일은…… 영 칠야와 관련된 일이니, 순리대로 생각해선 안 되오.”

영원, 주육 무리가 임무를 받고, 계소영이 이번 추시와 내년 춘시에 참가하게 된 일이 경성에 퍼졌다. 물론 계소영과 주육의 작은 내기도 덩달아 모두에게 알려졌다.

주육이 갑자기 적극적으로 일하자, 다들 너무나 신기해하며 아마도 계소영과 기 싸움을 하려고 주육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변한 것이라고 여겼다.

아무래도 학문을 통해 진정으로 과거를 본다면 주육은 승산이 전혀 없으니까. 그러나 지금처럼 먼저 벼슬길에 올라 일을 시작하면, 주씨 일가에 작위는 이미 떼놓은 당상이니 앞으로 작위도 있고 임무도 받게 되면, 계소영이 과거 급제하여 진사가 된다고 해도 주육을 앞설 생각은 하지도 말아야 한다.

그리고 계소영도 자극을 받았는지, 법회에서 돌아온 다음 날, 주육이 새로운 임무를 받았다는 말을 듣고는 계가의 두 학자와 함께 여염, 이신 등 문장 실력이 비슷하고 평소에 가깝게 지내는 학자들과 함께 두 달 동안 폐관하고 열심히 과거 준비를 한다고 성 밖의 계가 별장으로 들어갔다.

나날은 다시 평소의 고요하고 파란 없는 때로 돌아간 듯했다.

여름이라 해가 긴 날, 이동은 평소보다 더 일찍 일어나 아침을 먹고 보림암으로 향했다.

마당으로 들어갔더니, 웬걸 복안 장공주가 벌써 도착해서 회랑에서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폭풍우가 내리기 전처럼 어둡게 가라앉은 얼굴이었다.

이동은 장공주 앞에 서서 잠시 바라보다가 그녀를 지나쳐서 회랑 안으로 들어가서 차를 불에 굽기 시작했다. 이동이 차를 준비하고 빻을 준비를 했을 때, 장공주가 그제야 돌아서서 맞은편에 앉았다. 이동이 차를 빻고 차를 다 내리자, 잔을 들어 서서히 한 모금 마시고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얼굴도 조금 누그러졌다.

“어젯밤에, 황상이 내 별원에 시위 60여 명을 보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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