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화: 화근 네 마리
영원 일행은 그리 멀리 가지 않고도 서늘하고 쾌적한 기분이 들면서 아까와는 완전 다른 별천지에 온 것처럼 느껴졌다.
“꿩들이 참 복도 많구나!”
영원은 걸음을 멈추고 양팔을 활짝 펼쳐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감탄했다.
“형님, 저것 봐. 꿩이다!”
주육은 허리를 숙인 채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저 앞을 가리켰다. 고개를 쳐들고 걷는 투실한 꿩을 손가락을 흔들어대며 가리키는 주육은 긴장해서 목소리가 다 떨렸다.
“세견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한 마리면 충분한데.”
묵칠도 휘파람을 불었다. 너무나 유혹적인 꿩이었다. 두 사람 사이로 머리를 내민 소자람은 꿩을 바라보며 환호했다.
“저게 다가 아니야. 다들 저기 보라고. 참 실하군. 구워 먹으면…….”
“세견이 뭐가 필요해!”
영원이 부채를 묵칠에게 쥐여주고는 허리를 숙여 돌멩이 몇 개를 주워서 가늠해 보더니 가장 손에 익는 걸 골랐다.
“주육, 비켜라. 잘 보고.”
영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손에 든 돌멩이가 쏜살처럼 날아가서 장군처럼 목을 치켜든 꿩을 정확히 맞췄다. 꿩은 꽥 소리를 내며 돌멩이와 함께 뒤쪽으로 날아갔다.
“힘이 좀 셌군.”
영원은 조금 유감인 듯 말했고, 주육은 환호하며 뛰쳐나가 꿩을 덜렁 들고 다시 뛰어왔다.
“형님! 형님! 정말 대단하다! 이 꿩은…….”
“얼른 피를 빼야 해. 늦으면 피가 굳어서 고기가 투명하지 않다.”
주육은 더할 나위 없이 들떠서 꿩을 흔들어대는데 소자람도 흥분해서 부채를 마구 흔들어댔다.
영원은 주육 손에서 꿩을 가지고 와서 주변을 둘러보다가 묵칠의 머리에 꽂힌 옥잠을 뽑았다. 그리고 옥잠으로 꿩의 목을 찔러서 비틀더니 곧 깔끔하게 피를 뺐다.
묵칠은 피가 묻은 옥잠을 난처한 얼굴로 한참 들여다보다가 이 악물고 다시 머리에 꽂았다. 주육은 가는 넝쿨을 뽑아서 피를 다 뺀 꿩 목에 걸고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웃으며 걸을 때마다 들어 올려서 쳐다봤다.
“저쪽에도 있다! 몇 마리 더 잡자. 몸집이 작아서 한 마리로는 부족하다.”
소자람도 흥분했다. 꿩을 너무 쉽게 얻잖아!
“맞아, 맞아. 칠 형, 몇 마리 더 잡자. 이따 다들 법회 들으러 돌아가고, 나는 꿩을 복음각에 가지고 가서 당두에게 잘 손질해서 얼음을 채워달라고 하지. 성으로 가지고 돌아가서 먹자!”
들떠서 손을 비벼대는 묵칠은 옥잠 일은 벌써 까맣게 잊었다.
이 네 사람 중, 생각도 없고 단순한 둘 중 하나는 이미 넋이 나갔고 또 하나는 속셈을 굴리며 온 뒷산을 뛰어다니며 꿩을 찾아서 잡고 피를 빼서 덜렁 들었다.
뒷산엔 꿩이 제법 많아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 주육 손에 세 마리, 묵칠이 두 마리, 소자람도 한 마리 들고 있었다.
“이제 두 마리만 더 있으면 되겠군!”
묵칠은 웃느라 일직선이 된 눈으로 쉴 새 없이 꿩을 바라봤다.
“저기, 저기!”
주육이 두 눈을 빛내며 앞을 가리키자, 네 사람은 고양이처럼 등을 웅크리고 앞으로 달려갔다. 꿩이 꽥꽥 소리 지르며 정자로 뛰쳐 들어가서 탁자 위로 날아올랐다. 찻잔, 찻주전자를 넘어뜨린 꿩은 그 김에 탁자 위에 오줌을 갈겼다.
영원을 선두로 정자 앞에 달려온 네 사람의 눈에, 이를 가는 복안 장공주가 보였다.
복안 장공주 맞은편에 앉아서 차를 갈던 이동의 시선이 꿩 오줌에서 영원 일행으로 향했다. 눈이 휘둥그레지고 입이 떡 벌어졌다.
네 사람은 뛰어다녀서인지, 아니면 나뭇가지에 걸린 건지, 머리카락은 흐트러지고 옷엔 나뭇가지가 걸려 있고 수상하기 짝이 없는 더러운 것으로 얼룩덜룩했다. 영원은 양손에 돌멩이를 쥐고 있었고, 그 옆에 딱 붙어 선 주육은 양손에 피가 뚝뚝 떨어지는 꿩을 들고 있었다. 다른 쪽에서 양손으로 꿩을 들고 서 있는 묵칠은 머리카락이 더 엉망이었다. 옥잠이 없으니까.
옷자락을 허리에 끼고 조금 떨어져서 오던 소자람은 꿩을 들고 있다가 무심결에 뒤로 감췄다. 영원의 반응이 제일 빨랐다.
돌아서서 냅다 달리기!
“돌아와!”
복안 장공주가 버럭 고함치자, 영원은 혈을 짚인 듯이 멈칫하다가 서서히 돌아섰다.
“장공주…… 어떻게…… 여기에…….”
“내가 물을 말이다!”
영원이 털썩 무릎을 꿇자, 주육, 묵칠과 소자람도 얼른 무릎을 꿇었다.
“너희들 손에 들고 있는 게 뭐지? 내 뒷산의 법도, 모르는 것이냐?”
복안 장공주는 아직도 피가 뚝뚝 떨어지는 꿩을 하나씩 바라보며 노기 탱천해서 물었다.
“넌 입 다물고, 네가 말해라!”
복안 장공주는 입을 뻐끔하는 영원의 말을 자르면서 주육을 가리켰다. 주육은 기겁해서 목을 움츠렸다.
“들고 있는 이것은…… 이것은…… 그, 뭐냐. 죽은 꿩, 예, 이 꿩이…… 꿩이…….”
“꿩이 알아서 네 손에 부딪히고 목을 베고 죽었겠지?”
복안 장공주가 쌀쌀맞게 하는 말에 이동은 웃음을 참으며 돌아서서 정자 저 멀리 바라봤다.
“사리 밝은 아이라고 생각했더니. 네 모친과 외조모가 항상 당부했을 텐데? 어떻게 너까지 같이 허튼짓을 하는 거지?”
복안 장공주는 묵칠을 건너뛰고 매섭게 소자람을 나무랐다. 소자람이 바닥에 닿을 듯이 고개를 조아렸다.
휴, 창피해라.
“그리고 너! 안 그래도 네 조모가 네 이야기를 했다. 갈수록 고약해지는구나!”
복안 장공주는 이어서 묵칠을 호통치고는 다시 영원을 가리켰다.
“네가 앞장선 것이지? 변명할 생각은 하지 말아라! 네가 아니라면 이 셋이 어떻게 꿩을 잡아! 너는 네 영씨 가문의 실력을 꿩 도둑질하는 데 쓰는구나. 그렇지?”
네 사람은 고개도 들지 못하고 복안 장공주에게 혼이 났다.
“다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어서 이게 무슨 짓이냐? 거울 좀 비춰보아라! 허구한 날 허튼짓이나 하고! 감히 내 뒷산에 와서 난동을 부려? 꿩까지 다 손대다니! 체면은? 다들 무릎 꿇고 있어라! 꿩이 살아날 때까지 꿇고 있다가 그때 일어나라! 가자.”
“장공주, 잘못했습니다. 한 번만 용서해주십시오!”
꿩이 살아날 때까지 꿇고 있으라는 말에 주육은 넋이 나가서 서둘러 고개를 조아리고 용서를 구했다. 묵칠도 쉴 새 없이 고개를 조아렸다.
“장공주, 저도 잘못했습니다. 할머님 얼굴을 봐서, 이번만 용서해주십시오.”
복안 장공주는 콧방귀를 뀌고는 밖으로 나가려고 일어섰다.
“누님! 소칠을 이번만 봐주십시오!”
영원이 불쌍한 목소리로 ‘누님’이라고 부르자, 밖으로 나가려던 복안 장공주가 휘청거렸다.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이동이 서둘러 장공주를 부축하고는 도저히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영원이 힘껏 꼬집자, 주육도 금세 정신을 차리고는 서둘러 따라서 외쳤다.
“누님…….”
“이 멍청아. 네가 누님이라고 부르면 어쩌냐! 고모라고 불러야지!”
영원이 주육의 뒤통수를 때리자, 주육이 다급하게 고쳐 불렀다.
“고모! 소육을 한 번만 용서하세요!”
묵칠은 더할 나위 없이 영리해져서 주육이 고개를 숙이기도 전에 입을 뻐끔하다가 별안간 고개를 돌리고 영원에게 물었다.
“나는 뭐라고 불러? 누님이야, 고모야?”
“고모지!”
소자람이 뒤에서 묵칠을 쿡 찔렀다.
이동은 복안 장공주를 놓고 돌아서서는 웃음을 참느라 눈물을 흘렸다. 녹운과 다른 사람들도 참지 못해서는 웃음소리를 내지 못할 뿐 고개를 돌리고 어깨를 들썩였다.
“너 참 낯짝이…….”
복안 장공주는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는 얼굴로 영원을 손가락질했다.
“누님, 잘못했습니다. 제발 한 번만 용서하세요.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겁니다! 누님!”
영원이 고개를 들고 가련한 얼굴로 복안 장공주를 바라봤다.
“너, 황상 앞에서도 이런 생떼를 쓰는 거냐?”
복안 장공주는 너무 예쁘장해서, 애처롭게 여기기 시작하면 너무나 애처롭게 보이는 영원의 얼굴을 도끼눈을 하고 노려봤다.
“가당치 않습니다! 어찌 감히. 누님, 정말로 잘못했습니다.”
영원은 지극히 착하게 굴었다.
복안 장공주가 영원을 손가락질했다.
“너! 그래, 황상이 계시지. 좋아. 난 안 되겠으니, 황상께 알아서 하시라고 해야겠다. 여봐라! 이 꿩, 그리고 이 네 녀석, 죄다 황상께 보내라!”
복안 장공주가 일어서서 정자 밖으로 나가자, 이동도 서둘러 뒤를 따랐다. 영원 옆을 지나가면서 고개를 숙이고 그를 바라보다가 또 웃음이 터질 것 같아서 서둘러 시선을 돌려 치맛자락을 들고 장공주를 따라갔다.
영원의 시선이 이동의 얼굴에서 치맛자락으로 향했다. 치맛자락의 난초 사이로 드러난 녹색 비단 수혜(繡鞋)를 신은 앙증맞은 발을 보다가 두 발이 돌멩이를 밟는 걸 보고 무심결에 눈살을 찌푸렸다. 제 발이 다 아파왔다.
복안 장공주가 멀어지자, 영원과 세 사람은 일어서서 어멈을 따라 산 아래로 내려갔다. 주육이 영원을 쿡쿡 찔렀다.
“형님, 아까 누님이라는 건…….”
주육이 목을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낯짝 두꺼운 걸 따지면, 형님이 천하제일일 거요.”
“꺼져라!”
영원이 주육의 엉덩이를 걷어찼고, 주육이 엉덩이를 문지르며 큭큭 웃어댔다.
“영원 형님, 나 오늘 한 수 배웠소.”
묵칠은 존경하는 얼굴로 영원을 바라봤다.
“칠 형, 이런 것이야말로 능굴능신(能屈能伸: 지혜롭게 굽히고 펼 줄 안다.)이라고 하는 겁니다! 이것이야말로 대장부인 거죠!”
소자람이 풉 하고 뿜고 말았다.
오후가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자극전 앞에 주르륵 꿇어앉은 네 사람 앞에 죽은 꿩이 쪼르르 놓여 있었다.
명을 받고 입궁한 상공, 대신들은 들락거릴 때마다 다들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들을 힐끔 바라봤다. 머리는 봉두난발, 매무새는 흐트러진 채 새똥 묻은 옷차림의 네 분 중 영원은 매우 담담했다. 이런 일엔 진작 익숙해졌다. 주육, 묵칠도 견딜 만했다. 자극전 앞에서 꿇어 본 적은 없지만, 집에서 종종 꿇었으니까.
다만 언제나 사리에 밝고 예법을 안다고 칭송받던 소자람은 가련하게도 이렇게 자극전에 꿇어앉아 꿩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쥐구멍이라도 파고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수치스러웠다.
하늘이 완전히 어두워졌을 때, 황상과 함께 식사를 마친 사황자가 전 밖으로 나왔다. 사황자는 빙긋이 웃는 얼굴로 네 사람을 하나씩 뜯어보며 싹 둘러보고는 느릿느릿 황상의 뜻을 전했다.
“황상의 말씀을 전한다. 넷 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어서 얼마나 한가하면 이렇게 창피한 짓을 하느냐. 내일부터, 영원은 어전위 당직 외에 임무를 하나 더 맡아라. 경부 관아에 일손이 부족하다고 한다. 형 부윤(府尹)에게 가서 일거리를 받아라. 명심해라. 하라는 대로 해야 한다. 고를 생각하지 말아라. 태만해서도 안 된다. 그랬다가 짐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예!”
영원이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소육도 일거리가 한가한 모양이구나. 전에 귀비가 날씨가 너무 무더워서 성 안팎에 사는 빈곤한 노인이 혹서를 넘기기 괴로울까 걱정하더군. 네가 가보아라. 적당한 곳을 찾아 시설과 더위를 식힐 탕약을 지을 약방을 몇 곳 지어라. 한가할 때마다 사람들을 거느리고 곳곳을 둘러보아라. 명심해라, 은자 들 곳이 있으면 알아서 하고, 짐을 귀찮게 하지 말아라!”
“예! 황은이 망극합니다.”
주육은 울상을 지으며 고개를 조아리고 감사 인사를 올렸다.
소자람은 살짝 넋이 나갔다.
영원은 벌을 이런 식으로 받는다고? 이게 벌이야, 은혜야? 나도 임무를 받고 싶은데. 얼마나 오랫동안 바라고 또 바랐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