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136화 (136/463)

136화: 공양 한 끼

정실 서쪽 별채에 둥근 탁자가 놓여 있는데, 백릉 웃옷, 푸른 치마를 입은 시녀가 공손히 서 있는 것 말고는 다른 사람은 없었다. 복안 장공주와 백 노부인 일행도 어디에서 점심을 먹는지 이곳에 없었다.

영원은 이 작은 마당을 티 나지 않게 살펴봤다. 푸른빛이 도는 벽돌, 푸른 기와지붕, 문과 창 모두 느릅나무와 오동나무에 투명 칠을 해 본연의 색을 띠었고, 재질은 모두 지극히 평범한 것인데 희한할 정도로 깨끗했다. 영원은 발치를 내려다보며 은밀히 내공을 운용해서 꾹 밟아 보았다. 벽돌을 깔지 않은 흙바닥인데 매우 견고했다. 영원은 몇 번 더 밟아봤다.

음, 지극히 익숙한 촉감이군.

저택 뒤에 있는 연무장을 밟는 느낌과 똑같았다. 그 연무장의 황토 바닥은 저택에서 돈을 가장 많이 쓴 곳이라고 복백이 그랬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만든 건진 그도 모르고, 쌀뜨물을 조금씩 붓고 달구질하길 반복해야 한다는 것만 알았다.

이런 바닥은 열흘, 보름 내내 비가 내린 후에도 말을 달려도 진흙이 생기지 않는다. 먼지는 더더욱 날리지 않고.

영원은 바닥을 밟으면서 위를 올려다봤다. 천붕이 쳐져 있는데 햇살 때문에 그물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작은 마당이라 중간에 기둥도 없었다.

이게 무슨 면사였더라?

복백이 얼마 전에 영원이 고른 천붕 그물이 좋긴 한데 너무 비싸다고 불평한 적 있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종류는 복백이 비싸다고 불평한 것과 큰 차이가 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면사로 천붕을 치면 비를 두 번만 맞아도 천을 바꿔야 한다. 하지만 장공주는 이 마당에 한 달에 한두 번 올까 말까고, 와도 반나절, 하루 머무르는 게 다일 것이다.

“형님, 뭘 보는 거요?”

주육이 바짝 다가와서 자기도 위를 올려다봤다.

“참 작기도 하지! 보림사 주지도 참 재미있네. 어떻게 이렇게 작은 마당을 장공주께 드릴 수 있지? 보림사 면적이 얼마나 넓어. 온 산을 차지해놓고, 손바닥만 한 마당을 장공주께 드리다니. 돌아가서 황상께 말씀드려야겠어!”

영원은 목이 막힐 것 같아서 다급히 주육을 회랑 안으로 밀어서 들여보냈다.

“그리고 집채도 그래. 세 칸짜리 작은 집이잖아. 방장도 이렇게 작은 곳에 살까? 그럴 리가 있나!”

주육은 아직도 툴툴거렸다.

“정원도 좀 보라고. 꼴 같은 화초도 없어. 죄다…… 이건 무슨 풀이야? 뭐 이리 볼품없어?”

계소영은 부채를 흔들며 싱글벙글 말했다.

“저네, 사찰의 주지를 왜 방장이라고 부르는지 아는가?”

“응?”

주육은 멈칫했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문제였다. 소자람도 따라 웃으며 주육을 끌어앉히며 설명했다.

“불조가 정하신 법도대로 스님의 거처, 정실은 모두 한 장 너비, 한 장 길이여야 하거든. 방장(方丈) 크기가 되는 거지. 주지도 예외가 아니야. 그래서 방장이라는 말로 주지를 부르게 되었지.”

“하지만 지금의 방장은 예전과 달라. 아직도 방장 크기는 지키고 있지만, 방 하나만 있는 건 아니거든. 객청, 내실, 다실, 의발실 등등 다양하게 있지.”

계소영이 따라 설명해주면서 장공주의 마당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길 보라고. 동쪽 별채 다실의 중간이 객청인 셈이야. 그것도 다 사방이 한 장일세. 다만 칸막이가 없지만 안팎으로 모두 여섯 칸이야. 따지고 보면 방장 크기는 맞지. 사찰의 법도가 그런 것이니, 보림사 주지를 탓할 일은 아니네.”

“장공주가 스님인가!”

주육이 목을 빳빳이 세우고 변명하듯 한마디했다.

“다들 먹을 텐가 말 텐가. 음식 좀 봐. 맛이 제법 좋을 것 같은데?”

묵칠은 어느새 탁자에 놓인 몇 가지 냉채를 훑어보고는 앉아서 젓가락을 들고 모두를 불렀다. 사람들이 자리에 앉자, 시녀와 어멈 몇이 뜨거운 차를 내오고 쌀밥을 퍼왔다. 묵칠은 가장 먼저 두부를 먹어 보고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군! 다들 먹어 보라고. 아주 신선해! 고기 맛도 나는걸?”

“공양 음식에 고기 맛이 날 리가 있나!”

주육이 얼른 따라서 한 입 먹었다.

“제법이군, 제법이야. 정말로 고기 맛이 나! 음? 고기 맛은 아닌가. 알게 뭐람! 이것도 괜찮군!”

공양 밥을 먹은 모두는 아쉬움이 남았다.

식사를 마친 뒤, 묵칠이 차를 올리는 시녀에게 참지 못하고 물었다.

“정말로 다 채소냐? 닭탕이나 고기탕은 없고?”

“예. 다 채소예요. 고기가 없을뿐더러 파나 부추류도 없습니다.”

시녀가 공손하게 대답했다.

“다음에도 공양 밥 먹으러 오자!”

주육이 선포하는 말에 소자람이 끌끌 혀를 차면서 말을 받았다.

“장공주께서 널 불러줘야 오는 거지. 분명 장공주 별원 주방에서 준비한 걸 거다. 보림사 공양 밥은…… 넌 안 먹어 봤겠지만, 나와 묵칠은 다 먹어봤잖으냐. 그리고 계 대랑도. 그 공양 밥은 멀건 물에 소금 좀 넣고 끓인 것들뿐이다. 어떤 때는 소금도 없다.”

사람들이 이야기 나누는 사이, 이동이 수련을 데리고 서쪽 별채 보병문을 통해 들어왔다. 사람들은 서둘러 입을 다물고 이동을 바라봤다. 영원은 자리에서 일어났고, 계소영도 따라 일어났다.

회랑으로 들어온 이동은 두 걸음 만에 걸음을 멈추고 수련에게 쟁반을 받았다.

“장공주 말씀이 사황자부에 새 식구가 늘었다는 기쁜 소식을 이제 막 듣게 되어서 축하 선물을 준비할 겨를이 없으셨답니다. 손수 옮겨적은 경문이 있으니, 주 육소야, 사황자께 전해드리세요.”

수련이 다가가 쟁반을 다시 받아서 주육 앞에 가지고 갔다. 주육은 재빨리 받고서 공손한 모습으로 장공주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또 말씀하시길, 며칠 뒤에 사황자의 자손이 평온하고 번성하길 바라는 법사를 따로 열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동이 말을 마친 후 살짝 무릎을 구부리고 돌아서는데 영원이 갑자기 그녀를 불렀다.

“낭자!”

이동이 돌아보자, 영원이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주 육공자와 여기 오기 전에 황상께서 장공주의 일상 기거가 어떠한지 보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지나치게 검소하여 힘들게 지내시는 건 아닌지 걱정하셨습니다. 낭자, 장공주의 일상 기거는 어떻습니까?”

주육도 일어서서 고개를 끄덕였다. 하마터면 잊을 뻔했다. 오기 전에 황상이 분명 당부했었다. 장공주가 지나치게 검소하게 사는 건 아닌지, 일상생활을 그나마 괜찮게 하는지 보고 오라고.

“잘 지내세요.”

이동은 눈을 내리깔고 딱 다섯 글자로 대답하고는 살짝 무릎을 구부려 인사한 후 영원이 더 묻기도 전에 돌아서서 자리를 떴다.

“음! 저게 누구지? 장공주를 모시는 시녀야? 장공주 곁엔 녹운이라는 아이가 있지 않나? 처음 보는 것 같은데. 태도가 왜 저래? 형님, 할 말이 아직 끝나지도 않았잖아!”

“말조심하게. 저분은…….”

주육이 펄쩍 뛰는데 계소영이 쥘부채로 주육의 어깨를 툭 치더니, 말을 잠시 멈췄다가 이내 다시 이었다.

“이 대랑의 누이일세.”

“이 대랑이라니? 누구?”

주육이 어안이 벙벙한 듯 물었다.

“아, 생각났다. 네 장원에 사냥하러 갔을 때, 계 대랑, 그리고 여 대랑과 함께 온 그 이 대랑 말이다. 네가 사람이 겸손하고 예를 안다고 해놓고. 그리고 네가 그 집 찻잎을 잔뜩 가지고 가지 않았냐. 할머님과 고모님께도 드리겠다고 말이야.”

묵칠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도 찻잎을 꽤 가지고 갔었다. 조모, 백모, 숙모 모두 좋아하셔서 며칠 전에 다시 이 대랑에게 사람을 보내 많이 얻어오기도 했고.

주육이 손뼉을 짝 쳤다.

“아하! 어쩐지 낯이 익더라니. 이 대랑보다……. 그런데 왜 장공주와 함께 있는 거지?”

영원은 가차 없이 주육의 말을 막았다.

“그건 장공주께 여쭤야지. 여기 앉아만 있는 건 재미없군. 덥기만 하고. 난 밖에 나가 둘러보련다.”

“나도! 너희들은?”

주육은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가다가 생각 난 듯 묵칠과 사람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나도 간다!”

묵칠도 얼른 따라갔다. 저녁 일을 영원과 조금 더 상의하고 싶었다. 설사 저녁 일이 아니라고 해도 영원 옆에 있고 싶었다.

“가자!”

묵칠이 소자람의 옆구리를 찔렀다. 소자람이 계소영을 바라보자, 계소영은 하품했다.

“자네들은 다녀오게. 난 정실에서 좀 쉬겠네. 아침에 너무 일찍 일어났어.”

밖으로 나간 네 사람은 후측문 밖으로 나갔고, 계소영은 정당 쪽으로 가서 그들이 나가는 걸 지켜보고 잠시 더 서 있다가 안으로 들어갔다.

사환이 머리를 풀어주자, 계소영은 침상에 누워 눈을 감고 오늘 일을 곰곰이 정리했다.

영원이 장공주를 만나러 온 건 탐색하러 온 걸까, 아니면 다른 속셈이 있을까.

지난번에 오황자를 밖으로 내보낸 건 또 무슨 속셈일까. 그 일로 부친과 둘이 몇 번이나 분석했었다. 부친은 장공주가 나날이 커가는 오황자를 안쓰러워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연민이 오황자를 죽일 수도 있는데, 장공주가 그 점을 생각하지 못할 리가 없다. 영원이 종일 뒤를 따라다녔다. 영원과 만나게 해주려고 밖으로 내보낸 걸까?

아니면……. 영원이 장공주 신경을 거스른 무슨 일을 한 걸까. 오황자의 안위로 영원을 경고하려고?

그런 건 아니야!

계소영은 곧바로 자기 생각을 부인했다. 그건 너무 잔인한 일이었다. 오황자는 어린애일 뿐이고, 장공주도 그렇게 악랄하고 무정한 사람이 아니다. 장공주가 그런 일을 할 리가 없다. 어째서 그런 생각을 했을까.

그렇다면 오황자와 영원을 한 번 만나게 해줄 생각이었을까?

그게 맞다면, 장공주 본인의 생각일까, 아니면 영 황후가 부탁했을까.

장공주와 영 황후의 사이는, 장공주와 고모처럼 서로 애틋이 아끼는 사이까지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사이가 나쁜 건 아닐 거라고 할머님이 말씀하셨다.

계소영은 미간을 문질렀다. 내년 춘시 시험관을 고서강으로 낙점하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얼마 전에 들었다. 걱정할 일이 너무 많았다.

할머님은 그와 부친에게 고모 일을 지나치게 상관하지 말라고 하신다. 고모는 할머님의 딸이니, 모든 건 할머님이 알아서 하신다고. 하지만…….

계소영은 번쩍 눈을 떴다.

할머님은 그와 부친은 너무 올곧고 무해한 성격이라 신경을 쓴들 어찌할 여력이 없다고도 하셨다.

그랬다. 그는 확실히 악랄한 수단을 쓰지 못한다. 다른 사람이 얼마나 악랄해질 수 있는지 상상할 수도 없고.

보림사 밖. 주육과 묵칠은 영원 양쪽에서 누가 더 말을 많이 하는지 겨루듯 주절거렸고 소자람은 부채를 흔들며 뒤를 따랐다. 그는 중간에 있는 영원과 양쪽에 있는 주육, 묵칠을 바라보며 쉴 새 없이 고개를 저었다.

저, 경성 삼대 사고뭉치들 같으니!

영원은 걸어가면서 사방을 훑어봤다. 보림사 밖이 어떤 곳인지 잘 모른다. 보림사, 보림암 일대는 복안 장공주가 거하는 곳이라서 사람을 보내 조사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번에도 사환 넷만 데리고 왔고.

보림사를 둘러 천천히 돌던 영원은 울창한 뒷산을 가리켰다.

“꿩이 있다는 뒷산이 저기냐?”

“맞아. 바로 저기지. 어때? 경치 좋지? 저쪽으로 가면, 한쪽은 다 절벽이고 폭포가 하나 있어. 아래는 동굴과 이어진 샘이 있고. 물이 어찌나 맑은지, 다만 물이 너무 차. 여름에도 얼음장처럼 차갑지. 커다란 세린어가 있는데, 맛이 매우 좋아. 전엔 산에 별장이 많이 있었어. 우리 집안 별장도 하나 있었고. 나중에 장공주가 이쪽으로 옮긴 후, 황상께서 사방 십여 리를 봉쇄하라고 명하셔서 별장을 모두 허물었어. 구경하러 갈까?”

별장을 허문 이야기가 나오자 주육은 매우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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