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132화 (132/463)

132화: 화가 나서 길길이 날뛰다

“대낭자, 이낭자. 이것 좀 보세요.”

상자를 뒤집어서 탈탈 털던 어멈이 팔찌, 비녀와 금보를 들고 다가왔다.

“이거 새언니 혼수야!”

강녕이 먼저 뺏어 들고 날카롭게 고함쳤다.

“언니, 이것 좀 봐! 이것 좀 보라고!”

강녕은 흥분해서 어쩔 줄 모르며 강완에게 장신구 뒤에 찍힌 선명한 표식을 보여줬다.

“그건 내 거야!”

제 물건을 다 뒤져서 들고나온 걸 본 고 이낭은 다급해져서 날카롭게 고함치며 달려들었다. 강완과 강녕이 분부하기 전에 두 어멈이 날렵하게 그녀를 잡았다. 아이를 가졌는데 무슨 일이 생기면 큰일이니까.

강녕이 고 이낭을 향해 혀를 찼다.

“퉤! 속곳도 나달나달할 정도로 가난한 년이, 이런 물건이 어디서 나서? 두 눈 똑똑히 뜨고 제대로 봐! 여기엔 표식이 있어! 두 눈으로 똑똑히 보라고! 여기!”

강녕은 꽃 표식을 정확히 집어 고 이낭에게 보여주었다.

“그건 세자야께서 이낭에게 주신 거예요. 세자야께서 주셨어요!”

묵란이 서둘러 해명했다.

“쯧!”

이번엔 강완이 묵란을 걷어찼다.

“감히 오라버니에게 구정물을 끼얹어? 오라버니가 새언니 혼수를 이 천것에게 줄 리가 있어? 지금 오라버니가 새언니의 혼수를 훔쳐서 이 천것에게 주었다는 거야? 감히 오라버니에게 구정물을 끼얹어?”

강완이 다시 묵란을 걷어찼고, 강녕도 달려와서 연달아 걷어 차댔다.

“감히 오라버니에게 오명을 씌우다니! 이런 개 같은 것! 염치도 없는 개 같은 것!”

강녕은 뱃속 가득한 울분을 몽땅 묵란에게 풀었다. 묵란은 어깨를 감싸고 잔뜩 웅크렸다. 고 이낭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는 입을 달싹일 뿐, 아무런 소리도 하지 않았다.

어멈들이 고 이낭의 거처를 홀딱 뒤집어서 표식이 있는 장신구 여남은 개를 찾아냈다. 완전히 새것인 은기구, 그리고 은표 2천 냥, 현은 4, 5백 냥. 능라 서너 상자, 의복 두 상자. 물건을 알아본 어멈은 이 모든 게 대내내가 혼인할 때 가지고 온 것이라고 말했다.

잔뜩 쌓인 금은, 비단에 강완은 매우 흡족해하며 손을 휘둘러 어멈을 데리고 물건을 챙겨서 거들먹거리며 돌아갔다.

강완과 강녕이 모든 재산을 가지고 가는 걸 본 고 이낭은 심장이 찢어지는 듯이 아팠다. 몇 달 동안 온갖 고심을 다 해서 겨우 모은 것들이었다. 이건 모두 그녀의 것, 그녀의 목숨줄이었다.

고 이낭은 탁자를 두드리며 목 놓아 울었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냥 죽을래. 이제 못 살아! 아하하하. 내 팔자야……. 나 못 살아…….”

묵란은 바스라질 듯이 아픈 몸을 끌고 억지로 일어났다. 눈물 콧물 다 흘리며 미친 여인처럼 우는 고 이낭을 바라보고 있으니 몸과 마음이 다 감각이 없어지는 듯했다.

영란이 슬금슬금 머리를 내밀자, 고 이낭이 바로 발견하고 삿대질하며 호통치고는 어서 사람을 보내 오라버니를 불러오라고 지시했다.

영란은 후다닥 달려나가서 이번에는 제대로 심부름하려 했다. 그러나 온통 돌아다녀도 다녀오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세자야가 밖에서 큰일 하는데 감히 집안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을 알린 사람은 가만히 두지 않겠다고 대낭자가 말했다나.

일을 제대로 마치지 못한 영란은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아서 아예 화원으로 갔다. 그리고 강환장이 평소에 돌아오는 시간까지 거기서 버티다가 겨우 다리를 질질 끌며 돌아갈 수 있었다.

고 이낭이 이제나저제나 기다려도 영란은 돌아오지 않았다. 물론 오라버니도 오지 않았다. 화도 나도 초조하기도 하고, 고 이낭은 욕하다가 울다가, 울다가 또 욕을 하다가,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고개를 숙인 채 기운 없이 구석에 쭈그린 묵란을 걷어찼다.

그러는 와중에 배가 아프다고 소리를 치며 난리를 부리다가, 배가 아프다고, 아이를 잃을 것 같다고 부인에게 전하라고 묵란을 걷어찼다.

묵란이 억지로 나가서 정원에 갔더니, 문지기 어멈이 안으로 들여보내지도 않았다.

“네 이낭의 아이는 없어지면 더 좋지. 대낭자가 부인과 말씀 나눈다고 아무도 들여보내지 말라고 하셨어. 그러니 포기해. 어디에서 품은 줄도 모를 잡종을, 그러고도 무슨 염치로 허구한 날 난리를 부리는 거냐.”

묵란은 덤덤하게 듣고는 느릿느릿 돌아가서 한 글자도 빼지 않고 그대로 고 이낭에게 전했다. 고 이낭은 고함을 꽥꽥 질러대며 묵란의 얼굴을 할퀴었다. 묵란의 한쪽 얼굴에 피가 줄줄 흘렀다.

밤의 장막이 내리고, 강환장이 돌아와 청월원 문으로 들어오기도 전에 한숨을 푹푹 내쉬며 울고 욕하는 고 이낭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청월원 전체에 등불 하나 켜진 곳 없이 온 마당이 어두컴컴했다.

강환장이 들어오는 걸 보고, 어디에서 튀어나왔는지 허드렛일 하는 어멈과 어린 시녀들이 허둥지둥 불을 켰다.

강환장이 휘장을 젖히고 안으로 들어갔더니, 방 안이 난장판이었다. 고 이낭은 엉망이 된 옷과 방석 사이에 앉아서 봉두난발하고 허벅지를 내리치며 울어댔다. 그러다가 강환장을 보고는 구세주라도 본 듯이 그를 향해 덥석 달려갔다.

“오라버니, 왜 이제야 와요. 이러다가 죽겠어요. 내가 죽을 것 같은데, 왜 이제야 와요. 오라버니, 나 못 살겠어요. 못 살겠어요! 내 팔자야.”

묵란은 핏자국이 얼룩덜룩한 얼굴로 침상 구석에 멍하니 서 있었다.

“무슨 일이냐?”

강환장은 무슨 기분인지 말도 나오지 않았다. 고 이낭이 울고불고 욕하는 소리, 그리고 아수라장이 된 거처. 강렬한 피로감이 몰려들었다. 얼마나 피로한지, 화낼 기운도 없었다.

“아완이에요! 그리고 아녕도!”

고 이낭은 강환장의 옷자락을 잡고 서러운 듯 눈물을 철철 흘렸다.

“사람들을 데리고 내 거처를 뒤졌어요. 내…… 물건을 싹 다 가지고 갔어요! 하나도 남김없이 다 가져갔어요! 오라버니, 나 못 살겠어요. 살아갈 수가 없어요!”

“울지마라. 묵란의 얼굴은 어찌 된 일이냐? 아완이 때리라고 한 것이냐?”

강환장은 보기에도 섬뜩한 묵란을 바라보자 화가 부글부글 치밀었다. 묵란은 아무런 말 없이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고 이낭은 아녕이 때렸다고 말을 하려다가 입가에 맴도는 그 말을 바로 삼켰다. 아녕은 오라버니의 친누이, 부인의 친딸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덮어씌워 봐야 좋을 게 없었다.

“저 아이 혼자…… 묵란이 넘어지다가 침상에 얼굴을 긁혔어요.”

핑계 대고 책임을 떠넘기는 일에 천부적 재능이 있는 고 이낭에게는 식은 죽 먹기였다. 강환장은 묵란을 빤히 바라보다가 고 이낭을 돌아봤다. 그의 옷자락을 붙들고 울면서 아녕이 가지고 간 물건을 읊으며 어서 가서 다시 가져다 달라고 채근하는 고 이낭을.

“아완이 무엇을 가지고 갔기에?”

“다 내 거예요! 어렵게 모아서 곁에 둔 내 물건이요!”

묵란은 고 이낭을 힐끔 보고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장신구는 열 한 개였어요. 세자야가 이낭에게 주신 금비녀 두 개, 팔찌 하나. 그리고 이낭이 가지고 있던 비녀, 보금, 귀걸이도요. 대낭자는 거기에 표식이 있다고, 대내내의 혼수라고 했어요. 그리고 이낭이 친정에서 가지고 온 금 장신구도 있었어요. 금 그릇 여섯 개, 은촛대 두 개. 이낭이 대내내의 혼수 중에 커다란 육각 적금 촛대를 녹여서 만든 거예요. 그리고 은 접시 한 타(打), 새로 만든 거고요. 그리고 사계절 의복 두 상자, 백여우 피견(披肩: 숄), 장화(妝花: 직조 기법의 총칭) 비단 세 필, 직금 비단 네 필, 하영사(霞影絲) 두 필, 초사 두 필. 모두 대내내의 혼수에 있던 물건이고요. 그리고 은표 2천 냥, 현은 467냥. 모두 대낭자가 가지고 가셨어요.”

강환장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네게 어찌 이런 물건이 있어? 모두 이씨 혼수란 말이냐? 그걸 네가 왜 가지고 있어? 언제 이씨의 혼수를 가지고 온 것이냐? 어째서…….”

“다 내 거예요! 나 내 거!”

고 이낭이 대뜸 강환장을 밀치고는 매서운 눈으로 강환장을 빤히 봤다. 광기가 느껴지는 눈빛이었다.

“내 거라고요! 내 거! 다 내 거예요! 가서 가지고 와요! 그건 내 거예요! 내가 곁에 둔 물건! 어서 가서 가지고 와요!”

고 이낭은 다시 달려들어 강환장을 붙들고는 미친 것처럼 힘껏 흔들었다.

물건을 돌려받지 못하면 나 죽을 거라고!

강환장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고 이낭을 빤히 봤다. 온몸에 감각이 없었다. 이게 누구야? 내 눈앞에 있는 이 사람, 누구야?

오황자를 하루 데리고 다닌 날 이후, 이동과 이야기 나누는 복안 장공주의 화제는 차츰 방대해지고 거리낌 없어졌다. 이동은 한참 동안 근심하고 골치 아파한 후로 오히려 담담해졌다.

어차피 장공주나 자신이나 모두 이 세상을 멀리하고 그 엄격한 제약을 넘으려고 하는 사람들이었다. 속세를 멀리한 두 사람이 이런저런 한담을 나누는 게 멀고 먼 옛날이야기를 하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대수로울 것도 없지.

이동이 금세 처음처럼 담담해지자, 장공주는 매우 기뻤다. 내심 사람을 보는 자기 안목이 예전과 변함없다는 것도 뿌듯했다.

“백 노부인의 옛일, 들어봤어?”

비 오는 날, 복안 장공주는 찻잔을 들고 또 이런저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동은 고개를 저었다. 전생에도 백 노부인의 옛일은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백 노부인의 나이가 너무 많아서, 그녀의 옛일을 알 정도의 사람은 진작 고인이 되었다.

“계가는 너도 알듯이 명문 서생 집안이야. 전 황조부터 누구나 칭송하는 명문대가였지. 현 황조에서는 승상이 별로 나오지 않았어. 둘뿐이었지. 그러나 전 황조엔 족히 다섯 승상이 나왔어. 심지어 부자간 승상, 형제간 승상도 있었지. 황가하고 비교해도 차이 나지 않는 집안이야.”

복안 장공주는 다리를 흔들며 말했다. 존경할 만한 일을 이야기하면서 얼굴은 담담했다.

“계 노승상이 한때 내 스승이셨어. 학문이며 인품이며, 모두 지극히 보기 드문 분이셨지. 계 노승상은 계씨 가주의 막내아들이었어. 여남은 살에 강남에 이름난 신동이었지. 계가 그 대에서 손꼽히는 우수한 자제였어. 계 노승상은 자기가 젊었을 때 눈이 높고 세속적인 걸 거들떠보지 않을 정도로 고고하고 천하도 안중에 없었다고 말했었어.”

이동은 계 노승상을 만난 적이 없었다. 그러나 계 노승상에 관한 일은 적잖게 들었었다. 천하를 안중에 두지 않는다는 말은 조금 거만하지만, 그 당시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다.

“계 노승상은 열아홉 살이 된 해에 하북 창주부로 견문을 넓히러 떠났어. 마침 창주부에서 회시(會試)를 볼 때라, 온 창주의 학자들이 창주성에 모인 때였지. 계 노승상은 재미로 참석했는데, 물론 모두를 압도하는 실력이었지. 창주부 같은 곳에 그의 재능에 백 분의 일이라도 미치는 문인이 있었겠어? 계 노승상은 거뜬하게 모두를 이기고 흥이 난 나머지 창주엔 인재가 없어서 실로 재미없다고 한탄했지. 그런데…….”

복안 장공주가 이동을 향해 눈을 찡긋했다.

“계 노승상이 부학(府学: 부에서 세운 학당) 문턱을 넘자마자 주먹을 맞은 거야. 맞고 또 맞고, 연달아 몇 대나 맞았어. 계 노승상은 출타 중이라 사람을 많이 데리고 가지 않았거든. 그렇게 얼굴이 팅팅 붓도록 두들겨 맞았어. 계 노승상을 때린 사람이 바로 백 노부인이었어.”

이동이 풉 하고 차를 내뿜었다. 장공주도 깔깔 웃었다.

“백 노부인은 실컷 때리고 나서, 창주부는 무예로 천하에 이름을 날린 곳이지 문으로 유명한 곳이 아니라고 했어. 창주에 도전하러 왔으면 무예를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창주 사람이 강남에 가면 문학을 알아야 하는 것처럼. 계 노승상은 두들겨 맞고, 손가락질당하면서 된통 혼난 거지. 계 노승상 말이, 백 노부인의 말이 너무나 일리 있어서 반박할 수 없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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