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131화 (131/463)

131화: 전리품의 흐름

강완은 제가 들고 있는 적금 함이 왜 이리 보면 볼수록 볼품이 없냐고 생각했다. 이씨가 혼수로 가지고 온 물건은 하나같이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예뻤던 걸 똑똑히 기억했다.

어멈이 몇 개를 더 가지고 나왔다. 그것들은 강완이 들고 있는 함보다 더 못해서, 적금 비녀는 아예 금빛이 사라지고 거무죽죽한 것이 잠깐 만졌을 뿐인데 손에 무언가가 퍼렇게 묻어났다.

“이게 뭐야?”

강완도 이 물건이 적금이 아니라는 걸 드디어 알아챘다.

“혼수로 가지고 온 물건 모두 적금이라고 하지 않았어? 이게 무슨 적금이야? 이가, 감히 이런 가짜로 우리 강가를 속인 거야? 이런 염치없는 것들!”

“대낭자.”

어멈의 입가며 눈가며, 무시하는 기색이 가득했다.

“대내내의 혼수가 들어올 때, 두 낭자가 건건이 다 보신 걸로 기억합니다만, 대낭자, 잊으셨나요? 그때 그 물건이 이렇던가요?”

“내가 기억해!”

강녕이 자기 기억력을 자랑하려고 냉큼 말을 가로챘다.

“하나하나 우리가 다 살펴봤었잖아. 어떤 건 몇 번씩 봤었어. 얼마나 예뻤는데! 하나같이 예쁜 것들이었어! 이 조두함도 기억해! 모두 열두 개였어. 십이지였잖아. 언니, 기억하지? 그 원숭이, 진짜 같이 생생했어. 작은 원숭이가 조두를 들고 있었잖아. 이런 게 아니었어. 대체 이게 뭐야?”

“이낭자, 기억력이 정말 좋으세요!”

어멈이 얼른 추켜세웠다. 강완은 그제야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깨달았다.

“맞아. 그때 우리가 일일이 다 봤었지. 가짜가 있었으면 우리 눈을 속일 수 있었겠어? 수공이 얼마나 훌륭한 것들이었는데! 맞아, 이가의 혼수엔 다 표식이 있다고 만 어멈이 그랬었어! 석류꽃 같은 표식이었어!”

강완은 손에 든 볼품없는 물건들을 뒤적였다. 표식 같은 건 전혀 없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강완이 날카롭게 고함치며 발을 동동 굴렀다.

“서둘러. 다 꺼내 와! 있는 건 싹 다 꺼내 와! 어쩐지, 이씨가 혼수를 우리에게 넘기더라니. 물건을 다 바꿔치기한 거였어!”

강완은 직감만 믿고 단정했다.

어멈들이 재빠르게 꺼낸 물건들이 높이 쌓였다. 햇볕 아래 잔뜩 쌓인 물건을 서너 명이 함께 민첩하게 구분하기 시작했다. 높이 쌓인 물건 중에 진짜는 열 개도 되지 않았다. 그 일고여덟 물건은 강완과 강녕이 본 적 있는 것들이었다.

가련할 정도로 몇 개밖에 없는 진짜 물건을 본 강완은 넋을 잃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어떻게 바꿔치기한 거지? 어떻게 이런 일이 있어?”

“대낭자, 말씀 함부로 하시면 안 됩니다. 이게 무슨 일인지, 보고도 모르시겠어요? 이건 대내내 탓을 할 일이 아닙니다.”

어멈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고는 무슨 일인지 뻔하다는 듯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낭자, 잘 생각해 보세요. 대내내가 집에서 나가기 전엔 이 물건들, 다 멀쩡했습니다. 우리 집안에 보는 눈이 얼마나 많은가요. 대내내가 나가신 후로 이 집안을 누가 관리했습니까? 대낭자, 모르시겠어요? 듣자 하니, 그 집안, 일가가 아주 부자가 됐답니다. 온 뜨락에 기름이 좔좔 흐를 정도로 부자가 됐대요!”

“고가 천것? 그 인간이 감히?”

강녕이 매섭게 고함쳤다. 어멈은 흘겨보기도 귀찮은 모습이었다.

“감히라고요? 지금 이렇게 밝혀졌잖습니까. 물건이 다 여기 있어요. 꼴을 좀 보세요. 대내내가 저택에 왔을 때 줄줄이 실어 온 것들은 모두 최상급 적금 장신구였습니다. 대낭자, 이낭자뿐만 아니라, 온 저택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똑똑히 보지 않았습니까. 나중에 고가에서 우리 저택을 털어갔지요? 그 전에 대내내의 물건은 다 멀쩡히 여기 있었습니다. 그것도 모두가 똑똑히 봤지요. 자네들, 안 그런가?”

어멈이 모두를 향해 묻자, 어멈들은 매우 동의한다는 듯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지, 암!

“여기 이것들도, 그 당시에 우리가 목숨을 걸고 지켜낸 것들입니다. 고가 사람들에게서 어렵게 되찾아서 곳간에 넣었을 때만 해도 다 멀쩡했어요. 우리 다 같이 봤지? 안 그런가? 그런데 지금 보세요. 고 이낭이 몇 달 안살림을 맡더니, 이 지경이 되었습니다. 이런 물건으로 둔갑했다고요. 대낭자, 이낭자, 말씀 좀 해 보세요. 이게 무슨 일이겠습니까? 무슨 일이긴 무슨 일이겠냐고요. 대머리에게 이가 생기면 어떻겠어요? 바로 보이지요? 딱 봐도 자명한 일 아닙니까?”

“허튼소리 하지 마! 어머니가 열쇠를 줄곧 가지고 계셨는데, 어떻게 바꿔치기한단 말이야?”

“열쇠요?”

강완이 입술을 꾹 다물고 있다가 하는 말에 어멈이 코웃음 쳤다.

“우리 저택의 열쇠뿐만 아니라 어느 댁이든, 열쇠로 군자는 막을 수 있어도 도둑은 못 막는다고 했습니다. 황상의 금고도 아니고, 대낭자, 정말로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언니, 분명 그 천것이 가지고 간 거야! 어쩐지, 갑자기 안살림을 맡지 않겠다고 내던지더라니! 물건을 다 훔쳐냈으니, 당연히 상관하기 싫겠지!”

강녕은 화가 나서 씩씩거렸다. 또 그 고가 천것이 내 걸 다 훔쳐 갔어! 내가 얼마나 잘해줬었는데! 고가 계집, 정말 사람도 아니야!

강완은 입술을 꾹 깨물고 진지하게 생각에 잠겼다.

맞는 말이야. 고 이낭이 아니고 누가 이렇게 몰래 가지고 갈 수 있겠어. 어쩐지, 주머니 사정이 여유로워 보이더라니! 어쩐지, 고가가 그렇게 떵떵거리더라니! 우리 집안을 싹 털어서 제 주머니, 그리고 고가 주머니에 넣었어! 그러니 여유로울 수밖에!

이런 낯짝 두꺼운 년!

“언니, 우리 그 인간한테 가보자!”

“진정해!”

강녕이 당장 달려가자고 잡아끌자, 강완이 끌어당겼다.

“일단 계획부터 세우고 움직여야지! 큰일을 하려면 충동적이면 안 돼! 금기라고! 생각 좀 하게 기다려 봐.”

“지금 바로 가면 뭐라도 건질 게 있겠지만, 생각을 다 하고 갔을 땐 아무것도 없을지도 모릅니다.”

어멈은 알 바 아니라는 듯 비아냥거렸다.

“고 이낭이 몇 달 안살림을 맡은 동안 저택에 들어온 새 사람은 모두 고 이낭이 직접 골랐습니다. 세자야가 얼마나 고 이낭을 총애하나요. 게다가…….”

어멈이 말꼬리를 길게 늘였다.

“아이까지 가졌습니다. 얼마나 더 존귀해질지 몰라요. 고 이낭에게 잘 보이려는 사람이 이 집안에 어디 한둘이겠어요? 대낭자가 잠깐 생각하는 사이, 고 이낭은 모든 일을 다 알게 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아무것도 못 건집니다.”

“언니, 어서 가자!”

강녕은 순간 다급해져서 강완을 붙잡고 냅다 달렸다. 강완은 휘청거리는 와중에 어멈의 말이 너무나 일리 있다고 생각하고는 강녕을 따라 달리면서 지시했다.

“싹 다 뒤집어야 하니까, 사람을 더 불러와!”

고 이낭 거처엔 상방 곳곳에 얼음 대야가 놓여서 방 안 가득 서늘한 바람이 불어 매우 쾌적했다. 고 이낭은 탑상에 늘어져서 기운 없는 얼굴로 포도를 먹으면서 묵란과 함께 강완, 강녕이 무엇을 잘못 했네, 생각이 깊지 못했네, 이야기하고 있었다. 고 이낭은 트집 잡는 덴 조목조목 이치와 근거가 있는 사람이었다.

묵란은 고개를 숙인 채 어쩐지 정신이 딴 데 팔린 듯이 아기 옷을 만들고 있었다.

“에효, 힘들게 버젓한 모습으로 다스려놨더니, 걔들이 관리한 지 며칠이나 됐어? 금세 이렇게 되다니……. 됐다, 됐어. 나는 상관하지 않을래. 아이를 가졌는데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어디 있어? 어젯밤에도 평소보다 한 번 더 깬 걸로 오라버니가 얼마나 걱정하던지…….”

고 이낭은 빙그레 웃으며 아직은 납작한 아랫배를 쓰다듬었다.

“사내아이는 어미를 못살게 군다고 다들 그러던데, 이 녀석을 가진 후로 얼마나 힘든지…….”

밖에서 들리는 혼잡하고 다급한 발걸음 소리에 고 이낭의 자기 연민과 기쁨의 시간은 끝나고 말았다. 묵란은 서둘러 바늘을 내려놓고 호통치면서 밖으로 뛰쳐나갔다.

“누구야? 죽고 싶어? 이낭이 아이를 가져서 지금…….”

휘장을 젖히자마자 어멈 한 무리를 거느리고 씩씩대며 달려오는 강완과 강녕의 모습이 보였다. 묵란의 다음 말은 그대로 멈추고 말았다.

“이 애하고 왈가왈부할 거 없어. 어서 뒤져!”

맨 앞에 있던 강녕이 묵란을 대뜸 끌어내고 매섭게 고함쳤다. 뒤따라온 어멈들은 몇 달 동안 꾹 참고 있던 것을 조금이나마 발산할 곳이 생긴 터라 하나같이 짐승처럼 사납게 방마다 뛰어 들어가서 온통 헤집어놓았다.

“뭐 하는 것이냐! 어딜 감히……. 묵란! 영란! 어서 가서 오라버니를 모셔와라! 어서! 아이고, 배야…….”

놀라고 화나고 또 다급하고 두려워진 고 이낭은 정말로 배가 조금 아파왔다.

“퉤!”

강녕은 양손을 허리춤에 올리고 고 이낭을 향해 힘껏 혀를 찼다.

“그 배 이야기할 것 없어! 누구 집 잡종일지도 모르는데! 우리 집안사람이 된 지 두 달인데 회임한 지 석 달이라니. 우리 강가, 우리 오라버니가 이렇게 쉽게 오입질 사람인 줄 알아?”

“아녕!”

강완이 다급하게 강녕의 입을 틀어막았다. 이런 뒷공론은 절대로 입에 올리지 말라고 오라버니가 무섭게 경고하며 단속했었다.

“말리지 마! 이러다가 속 터져 죽을 것 같아! 꼴만 봐도 역겨워! 낯짝 두꺼운 것! 오라버니? 누가 오라버니야? 네가 뭔데? 일개 천한 노비가, 개, 고양이 같은 것이 어딜 감히 우리 오라버니를 오라버니라고 불러? 누가 오라버니인데? 주제 파악 좀 해! 네가 뭔데?”

강녕은 고 이낭만 보면 은자 몇만 냥 혼수가 떠올랐다. 내 적금 장신구, 내 적금 조두함. 내 은자. 그것만 있어도 온 세상이 부러워할 사치와 부귀를 누릴 수 있었는데!

그 원망이 황하보다 더 거세고 사납게 몰려왔다.

“이낭자, 이낭은 분명 세자야의 아이를 가졌어요. 이렇게…….”

영란은 어디로 숨었는지 꽁무니도 보이지 않았고, 묵란은 강녕 앞에 꿇어앉아 가로막았다. 강녕이 묵란의 가슴을 대뜸 걷어찼다.

“꺼져! 개 같은 것! 너희 고가는 하나같이 천것에 하나같이 도둑이야! 낯짝 두꺼운 천한 도둑들!”

고 이낭은 얼굴이 다 뒤틀린 강녕을 두려운 듯 바라보며 묵란을 붙들고 날카롭게 고함쳤다.

“어서 가! 가서 오라버니를 모셔와! 나 죽는다고 해! 이낭자가 날 때려죽이려고 한다고 해!”

“낯짝 두꺼운 년!”

강녕이 날카롭게 고함치며 고 이낭을 향해 손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내가 언제 때렸어? 내가 언제 때려죽인댔어? 내가 빤히 보고 있는데도 거짓말을 해?

“무릎 꿇고 움직이지 마!”

강완은 벌떡 일어서서 밖으로 달려가려는 묵란을 매섭게 노려보며 한걸음에 다가가 앞을 막았다.

“움직이기만 해, 이 자리에서 때려죽일 테니까!”

묵란은 털썩 무릎을 꿇고 꿈쩍도 하지 못했다. 때려죽일 거라는 강완의 말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낭자들의 눈에 그녀 같은 종복은 개보다 못한 존재라서 때려죽인다면 때려죽인다.

“뭐 하는 짓이야? 잘 들어, 오라버니가 돌아오면 뭐라고 말해야 할지 생각 안 해?”

묵란이 무릎을 꿇고 꿈쩍도 하지 않자, 막다른 골목에 몰린 고 이낭은 표독스럽게 굴었다. 강녕은 당황한 얼굴로 강완을 화들짝 바라봤다. 강완은 입술을 꾹 다문 채 고 이낭을 노려봤다.

“새언니 혼수를 훔쳐놓고, 내가 오라버니에게 뭐라고 말할지를 걱정해? 네가 오라버니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나 생각해! 어서 뒤져!”

고 이낭이 오라버니 이야기를 꺼내자, 강완도 가슴이 떨렸다. 그러나 강녕과 달리 어찌 됐든 버텼다. 고 이낭 거처에서 물건만 찾아내면, 오라버니가 돌아와도 무서울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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