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130화 (130/463)

130화: 오물덩어리들

“장공주는 오늘 어때 보였습니까?”

문 이야가 묻자, 이동이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기분 좋아 보였어요. 홀가분해 보이더라고요.”

이동은 복안 장공주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말씀을 아주 많이 하셨어요.”

“좋습니다!”

문 이야가 손뼉을 쳤다.

“그럼 어제 논의하던 일로 돌아가 보십시다. 낭자에게 오가아를 데리고 나가라고 한 이유가 무얼까요?”

문 이야가 모두를 둘러보았다. 장 태태는 근심거리가 있는 듯이 눈살을 찌푸렸고, 이동은 조용히 문 이야를 바라보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이신이 입술을 달싹이자, 문 이야는 지극히 직무에 충실한 선생의 모습으로 말해 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런 선생이기도 했다.

“무슨 상황이 벌어지는지 보려는 걸까요? 아니면 누군가가 어떻게 나오는지 보려는 것이거나.”

문 이야는 칭찬하는 얼굴로 이신을 바라봤다.

“바로 파악했군! 대야, 역시 보통이 아니군. 요즘 많이 성장했네!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소생의 소견으로는 장공주는 우리 이가를 지켜보려는 것 같습니다!”

이동은 눈을 내리깔고 장공주가 말했던 춘시 시험관 일을 생각했다. 장공주는 그 후로 그 일을 거론하지 않았지만, 이동이 생각하기엔 장공주가 나설 뜻이 있는 듯했다. 그러니 당연히 이번 일을 통해 이가를 살펴보려 하겠지.

가늘게 뜬 문 이야의 두 눈이 밝게 반짝였다.

“이가 말고도 영원, 영 칠야도 있겠지요! 어쩌면 계가도요! 장공주는 손을 쓸 생각인 겁니다. 무엇을 위해서일까요?”

문 이야는 길게 한숨을 내뱉으며 말을 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두서가 잡히지 않습니다. 다만.”

문 이야가 다시 모두를 둘러보고는 장 태태를 바라봤다.

“태태, 장공주가 무슨 생각이든, 이번 일이 일어난 이상 우리 이가는 이미 이 판에 끼어든 것입니다. 태태께서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장 태태가 이신을 바라봤다.

“신가아, 이 일은 네가 결단을 내려라. 우리 이가를 끌고 갈 사람은 너다.”

이신은 입을 꾹 다물고 문 이야를 보다가, 옆에서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이동을 바라봤다. 그리고 한참 있다가 겨우 장 태태의 말에 대답했다.

“어머니, 너무 중대한 일이라 저 혼자 결정할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우리 가족 세 사람이 함께 정하지요.”

“그건 쉽지. 손바닥은 합류, 손등은 물러서서 방관. 제가 셋을 세면 동시에 손을 내미십시오.”

문 이야가 재빨리 대답하고는 장 태태와 이동 모두 고개를 끄덕이자 셋을 셌다. 장 태태, 이동과 이신이 일제히 손바닥을 내밀자, 문 이야가 껄껄 웃었다.

“이가는 앞으로 훌륭한 관리가 나오는 번성한 가문이 될 겁니다!”

네 사람은 잠시 더 의논하다가 일어섰다. 다들 물러가겠다고 인사하자, 장 태태는 문 이야를 바라보며 잠시 주저하다가 그를 불렀다.

“이야, 잠시 남으시게. 이야에게 가르침 청할 일이 좀 있네.”

눈을 내리깔고 차를 마시던 장 태태는 잠시 후 찻잔을 내려놓고 문 이야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늘 오전에 요 상궁이라는 분이 찾아왔네. 장공주의 별장을 수리해야 하는데 은자를 곧바로 융통할 수 없다고 말일세.”

문 이야는 순간 눈을 반짝이며 숨을 죽이고 물었다.

“어떻게 하셨습니까?”

“장공주의 사람이 확실하길래 이자(李字) 인장을 주었지.”

장 태태는 문 이야의 어리둥절한 얼굴에 곧바로 설명했다.

“우리 가문엔 이자 인장이 두 개 있네. 이 인장만 있으면 모든 이가 점포, 그리고 복륭 전장에서 은자를 가져갈 수 있네. 한도는 없고.”

문 이야는 살며시 숨을 들이마시며 장 태태를 빤히 바라봤다. 그는 한참 만에 숨을 훅 내쉬고는 살짝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태태의 대범함에 이 문도, 탄복하기 그지없습니다. 절받으십시오.”

문 이야가 일어서서 허리 숙여 장읍하며 활활 타는 눈빛으로 장 태태를 바라봤다.

“태태, 이왕 마음먹은 일 아닙니까. 너무나 잘하셨습니다. 우리는 어차피 장공주에게 의탁해서 가야 할 몸, 성의를 보이려면 이렇게 철저하게 보여야지요. 이런 처지에 갈대처럼 이리저리 변덕을 부리는 것은 절대 금기입니다. 그렇게 보여서도 안 되고요. 대단하십니다, 태태!”

“이야가 그렇게 말해주니 마음이 놓이네.”

장 태태가 살며시 숨을 내뱉었다.

“장공주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노릇일세. 어찌 됐든 여인네고, 긴 세월 수행해온 사람이…….”

문 이야가 무의식적으로 주변을 훑어보며 입을 열었다.

“태태, 낭자의 행동으로 보아, 낭자는 장공주의 계획을 어느 정도는 짐작한 모양입니다. 말을 못 할 뿐이지요. 낭자도 이가가 이 판에 들어가는 건 찬성한 걸 보면 적어도 첫걸음은 우리 이가에 해로운 것은 없습니다.”

장 태태는 눈살을 살며시 찌푸린 채 한참 만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아동은…… 심사가 참 깊지.”

장 태태는 딸이 변한 걸 생각하면 너무 걱정되고 또 마음이 아팠다.

“태태, 마음 푹 놓으십시오. 낭자는 큰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지금 경성은 예전과 다릅니다. 영원은 절대로 평범한 자가 아닙니다. 장공주가 첫수를 써서 오황자를 내던지다니. 이 일이 참으로 공교롭습니다!”

문 이야가 눈을 가늘게 뜨고 허허 웃었다.

“첫걸음은 첫걸음일 뿐. 손을 댄 이상, 지금의 형국으로 보아 장공주가 나중에 그만하고 싶어도 쉽게 그만둘 수 없을 겁니다. 한 걸음, 한 걸음, 큰일에 휘말리게 되겠지요. 황상에겐 아들이 넷, 장공주는 주가와 사이가 지극히 나쁩니다. 주 귀비하고는 더더욱 서로 미워하고요. 장공주는 대범하게 용납할 수 있지만 주 귀비는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니 주 귀비 쪽은 생각할 것도 없습니다. 그쪽을 제외하면 진왕과 오황자가 남지요. 진왕은…….”

문 이야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진왕은 매우 좋은 인선입니다. 나약하고 무능하고, 지지 세력도 하나도 없고. 태태, 이왕 판에 끼어든 이상, 남에게 끌려가기만 하면 안 됩니다. 강환장이 지금 진왕부 장사입니다. 진왕이 지극히 신임한다고 들었습니다. 그 점만으로, 우리는 진왕이 장공주 눈에 드는 일을 반드시 막아야 합니다. 장공주에겐 선택이 둘이겠지만, 우리로서는 하나뿐입니다!”

장 태태가 무심결에 옷깃을 부여잡자, 문 이야가 실실 웃었다.

“태태,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이건 태태께서 늘 하는 장사와 다를 것이 전혀 없습니다. 그저 조금 판이 클 뿐이지요.”

“한 걸음만 잘 못 가도 절대로 돌이킬 수 없는 길이지.”

장 태태는 심장이 조여오고 가슴이 서늘해졌다.

“태태, 걸음을 내디딘 이상, 용맹하게 앞으로 나가야만 합니다!”

“알았네, 걱정하지 말게.”

장 태태가 나지막이 대답하자, 문 이야는 한 걸음 물러서서 다시 깊이 장읍하고 물러갔다.

수녕백부.

동생 강녕을 데리고 한동안 집안일을 맡은 강완은 순탄하게 집안을 관리하면서 갈수록 기세가 등등해졌다. 집안일이 뭐가 어렵다고. 내가 관리하면 백부가 대수일까. 왕부라고 해도 나한텐 식은 죽 먹기야!

집안일은 쉬웠으나, 곳간이 너무 비었고 은자가 거의 없었다. 은자가 없으니, 웅대한 계획을 펼칠 수가 있어야지. 예를 들면, 그녀와 아녕 모두 대시녀, 작은 시녀 몇 명씩 들여야 하지 않나. 아무리 못 해도 영리하고 내놓을 만한 대시녀 넷, 예법과 사리에 밝은 작은 시녀가 잔뜩 있는 이씨처럼은 되어야 하는 것 아니냔 말이다.

고 이낭 곁에도 대시녀가 둘이나 있는걸. 그런데 그녀와 아녕은 겨우 시녀 하나뿐이었다. 집안일을 맡지 않았던 예전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집안일을 맡아서 이렇게 바쁜데, 하나는 너무 부족하지 않나. 두셋도 부족하고, 꽉꽉 채워야 한다. 그렇게 셈해 보면, 그녀와 아녕 각자 적어도 시녀 열은 더 채워야 했다.

하지만 저택에 있는 시녀를 모두 살펴보았는데 하나도 눈에 차지 않았고, 밖에서 사 올 수밖에 없는데 뜻밖에도 제법 값이 나갔다. 입만 열면 은자 백 냥을 부르다니!

그런 돈이 어디서 나올까? 강완은 아무리 주판알을 굴려도 돈이 나올 구멍을 떠올리지 못했는데, 강녕이 먼저 궁리해냈다.

“언니, 이씨의 혼수, 그 금붙이들 있잖아. 다 밟혀서 엉망이 됐대!”

강완은 순간 두 눈을 반짝였다.

“네 말이 맞아. 혼수가 다 엉망이 되었으니 수리해야지! 가자, 어머니에게 열쇠를 받아야겠어!”

강완은 강녕을 데리고 신이 나서 상방으로 달려갔다. 대내내의 혼수를 확인하고 수리할 건 수리해야 하니 열쇠를 달라는 두 사람의 말에 오 어멈은 끽소리도 하지 않고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고 이낭이 그 오물을 짊어지게 될 줄 알았더니……. 이렇게 될 줄이야. 음, 고 이낭보다 대낭자와 이낭자가 더 적당하겠군.

열쇠를 받은 강완은 강녕과 시녀들, 그리고 마음에 드는 관사 어멈 몇을 불러 곳간으로 곧장 달려갔다. 곳간 문이 열리고, 바닥에 가득가득 쌓인 적금 장신구를 본 강녕은 저도 모르게 환호했다.

“언니! 일단 몇 개 고르게 해줘! 이렇게 많잖아. 분명 다 기억하지도 못해!”

“꼴이 그게 무어니!”

그래도 강완은 강녕보다는 감정을 잘 다스렸고 자중하며 동생을 훈계했다.

“대내내 말 못 들었어? 혼수는 모두 공공 장부로 넘기겠다잖아! 기억하고 말고가 어디 있어? 다 우리 물건이야. 일단 함부로 건들지 마. 다 확인하고, 기록을 남긴 다음에 이야기해.”

강녕은 내키지 않는 듯 알겠다고 대답하고는 금빛 번쩍이는 장신구들을 눈도 떼지 못하고 바라봤다. 어멈들이 곳간 문을 활짝 열고, 둘둘 짝지어서 한 사람은 확인하고 한 사람은 지켜보면서 대조하기 시작했다.

일일이 대조하며 몇 가지 살펴보던 한 어멈이 의아한 듯 행동을 멈추고는 강완을 향해 주저하며 말을 꺼냈다.

“대낭자, 이 물건, 조금 이상합니다.”

“이상하다니, 무엇이?”

강완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는 이상하다는 말이 제일 싫었다.

“이것 좀 보세요.”

어멈이 일어서서 적금 조두함을 내밀었다. 강완은 이리저리 뒤집어 보다가 싸늘한 얼굴로 미간을 찌푸렸다.

(※澡豆: 팥이나 녹두를 갈아서 만든 가루 비누)

“뭐가 이상한지 그냥 말해. 이런 작은 일도 일일이 내가 가르쳐야 해?”

강완이 전혀 알아보지 못한 걸 눈치챈 어멈은 허허 웃으며 밖을 가리켰다.

“대낭자, 햇볕 아래서 보세요. 보면 바로 아실 겁니다.”

강완은 어멈을 흘겨보며 싸늘하게 웃었다.

“수작을 부리려고? 너희들, 다 일어서서 밖으로 나가!”

나를 밖으로 내보내고 그 틈에 물건을 훔치려고? 날 뭐로 보는 거야? 이 저택에서 날 속여 넘길 사람이 있을 것 같아?

그 어멈은 수치스럽고 화나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한걸음에 밖으로 나갔다. 강완은 다른 세 어멈도 곧바로 내보내고 뒤따라 나간 후에야 밖으로 나가서 햇볕 아래 함을 들고 자세히 들여다봤다. 이렇게 봤더니 정말로 이상한 게 보였다.

“응? 금의 색이 바랜 것 같은데?”

다른 어멈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금의 색이 바랠 리가 있나요. 대낭자, 생각 좀 해 보세요. 대내내의 혼수는 모두 적금이었습니다, 적금! 아주 무겁다고요!”

“조금 가벼운데? 속이 빈 것인가?”

강완은 다른 사람에게 쉽게 현혹되지 않았다. 그녀는 항상 견해가 독특한 사람이었다.

옆에 있는 어멈들은 비아냥거리는 기색이 가득한 모습으로 서로 눈짓해댔고, 강완과 이야기 중인 어멈은 헛웃음 칠 뿐 대답하지 않았다.

“다른 것도 몇 개 가지고 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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