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화: 노래 부르며 돌아가다
“누이, 입구에 팔던 것들, 그것도 조금 사서 먹어 보고 싶어. 조금이면 돼. 어때?”
오황자는 잘도 기회를 잡고 기어올랐다.
“좋지!”
이동이 매우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이야기하는 사이, 두 사람은 독채로 들어갔다. 여인은 이동이 분부하기도 전에 아래층에서 갖가지 간식을 파는 사람을 부르고, 노래꾼 여인도 불렀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주루 일꾼이 주루에서 이름난 요리 몇 가지를 늘어놓았다. 오황자는 간절한 눈빛으로 이동을 바라봤다.
“이거, 다 맛있어 보여!”
“어서 맛봐.”
이동이 피식 웃으며 하는 말에 오황자는 환호하면서 젓가락을 들고는 하나씩 맛을 봤다.
“누이! 내가 먹어 본 생선 중에 가장 맛있어! 가장 맛있는 새우! 가장 맛있는 가지! 가장 맛있는…….”
“알았어. 다 제일 맛있다는 거, 누이도 알았어. 녹매, 좋은 쌀밥 있는지 알아보고 한 그릇 가져다주렴. 가장 맛있는 걸 조금 더 먹게 해주자.”
이동은 순순히 녹매에게 분부했고, 녹매는 금세 쌀밥 두 그릇을 가지고 왔다.
“이거뿐이에요. 그럭저럭 먹을 만해요. 저희가 집에서 평소에 먹는 거랑 비슷해요.”
오황자는 그릇을 받아서 얼른 한 입 먹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다, 맛있어! 쌀밥만으로도 매우 맛있다!”
“음식이 좀 짜니까, 많이 먹진 마.”
이동도 쌀밥을 받아서 천천히 먹으면서 오황자를 바라봤다. 녹매는 오황자 곁에 서서 생선 가시부터 발라주었다.
영원은 맞은편 골목에서 마차 안에 앉아서 휘장 틈으로 주루를 지켜보고 있었다. 들어간 지 한참 되었는데, 어째서 아직 나오지 않는 거야. 이런 볼품없는 곳에서 정말로 밥을 먹는단 말이야?
오황자는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더니 탕도 반 그릇 마셨다. 더 먹으려고 하는데, 이동이 말렸다.
“많이 먹으면 힘들어. 이따 출출해지면 녹매에게 간식 달라고 해. 조금 쉬다가 슬슬 돌아가야 해.”
“응.”
돌아가야 한다는 말이 조금 내키진 않지만, 지금까지만 해도 오늘은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그러니 돌아가지 뭐.
독채에서 나오자, 만 어멈이 바로 앞에 있었다. 그녀는 아래로 내려가지 않고 이동과 오황자를 데리고 구불구불 돌았다.
한참 그러다가, 이상한 걸 확실히 느낀 오황자의 걸음이 느려졌다. 이동은 걸음을 멈추고 안됐기도 하고 웃음도 나서는 허리를 굽히고 나지막이 설명했다.
“돌아갈 땐 마차를 타고 갈 거야. 올 때 배를 타고 왔는데 갈 때도 타고 가면 재미 없기도 하고, 마차를 타고 가는 게 더 안전해. 배로 돌아가려면 역풍으로 가야 하거든.”
“알았어!”
오황자는 곧바로 빨라진 걸음으로 걸으며 이동을 올려다봤다.
“멀어? 말을 타도 돼? 나 말 탈 줄 알아.”
“안 멀어. 말은 못 타.”
“왜?”
“내가 말을 못 타니까. 그래서 너도 못 타.”
“누이, 그건 아니지! 그럼 가는 길에 재미있는 거 있어? 마을이 있어? 역참은? 작은 성은 있어?”
“역참은 없고, 다른 건 다 있어.”
두 사람이 나지막이 말하며 걷는 동안, 만 어멈이 저 앞의 작은 문을 열었다. 햇살이 비치는 사이로 아주 작은 마당이 보였다.
마당으로 들어가고 나와서 또 다른 마당으로 들어갔다. 마당 곁채 안, 창가에 서 있던 장 태태는 만 어멈 뒤로 이동이 오황자의 손을 잡고 들어오는 걸 보고 살짝 안도했다. 그 모습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던 장 태태는 순간 짙은 슬픔에 휩싸였다. 아동이 잘못된 혼인을 하지 않았다면, 몇 년 뒤엔 어머니라고 부르는 어린애의 손을 잡고 서 있을 텐데.
이동은 오황자의 손을 잡고 상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서 기다리던 문죽과 청죽은 꽤 호기심 어린 얼굴로 오황자를 힐끔힐끔 살폈다.
이동과 오황자는 각각 옷을 갈아입었다. 오황자는 하늘색 옷을 묵록색으로 갈아입었다. 좁은 소매 묵록색 상의, 묵록색 바지에 각반을 두르니 아까와 비교하면 부잣집 소야 같은 느낌이 훌쩍 줄었다. 짙은 남색 옷으로 갈아입은 이동은 좁은 소매 상의에 큰 폭 치마, 땋은 머리를 말아 올리고 신선한 꽃 몇 송이를 꽂았다. 흔하게 볼 수 있는 천촉(川蜀: 현 사천성) 여인의 옷차림이었다.
“왜 이런 옷차림을 한 거지? 표사(鏢師: 고대 화물이나 사람을 호위해서 이동하는 사람)야? 우리 뭘 옮기는 거야?”
오황자가 잔뜩 들뜬 얼굴로 이동을 올려다보며 묻는 말에 청국은 피식 웃었고, 수련은 못 말린다는 듯 말했다.
“소야, 설사 표사로 위장한대도 소야와 낭자는 그 ‘표’가 아니겠죠.”
“표가 뭔데? 표라는 게 바로 표사 아니야?”
“표사는 표를 호위하는 사람이고, 표는 표사가 보호해야 하는 화물이에요!”
녹매가 조금 짓궂은 얼굴로 설명했다.
“아…….”
오황자는 길게 말꼬리를 늘리며 이동의 손을 잡았다. 그러고는 수련을 향해 콧잔등에 주름을 만들며 콧방귀를 뀌었다.
“이만 가자.”
이동이 분부하자, 수련이 서둘러 문을 열었다. 마당에 어느새 오동나무 마차 몇 대가 서 있었다. 이동이 오황자를 데리고 그중 하나에 타자, 문죽과 녹매는 똑같이 생긴 마차에 타고 수련과 청국은 마당에 남았다. 마당을 나선 마차는 경성으로 들어가는 길고 긴 상단 무리에 섞였다.
장 태태는 마차가 마당을 나서는 걸 보고 밖으로 나와 다른 마차에 타고 다른 문을 통해 나갔다.
영원은 골목에 세운 마차에 앉아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는데, 조바심이 나서 안절부절못했다.
“누구든 좀 가보라고 해라. 어째서 나오지 않는 거냐?”
“예.”
유월이 호위에게 눈짓하자, 호위가 성큼성큼 주루 안으로 들어갔다가 잠시 후 종복으로 보이는 사내를 데리고 돌아왔다.
“어떻게 된 일이냐?”
종복이 다가오는 걸 본 영원은 거칠게 휘장을 걷고 매섭게 물었다.
“아룁니다, 나리. 저희 낭자가 낭자는 소야를 모시고 후문으로 나가서 마차를 타고 돌아간다고 나리께 전하랍니다. 나오는 건 쉬워도 돌아가는 게 까다로워 그런 것이니 양해해 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혹시 괜찮다면 나리는 다시 배를 타고 돌아가시길 바란답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종복은 조금 두려워 보였지만, 할 말은 꽤 명확하고 시원스럽게 말했다. 영원은 얼굴이 시퍼렇게 질려서 주먹을 꾹 쥐고 부들부들 떨었다.
나까지 따돌려?
그러나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녀의 말대로 그가 다시 수로로 돌아가는 게 오가아 쪽이 더 안전했다.
“돌아가자!”
마차에서 내린 영원은 성큼성큼 부두를 향해 빠르게 걸었다.
부두에 있는 이동의 배는 모든 걸 예정대로 준비했다. 수련과 만 어멈이 뱃머리에 서서 종복을 지휘해서 배 위로 물건을 나르고 있었다.
영원이 막 배에 올라갔을 때, 이동의 배가 뭍을 떠났다. 건장한 뱃사람들이 긴 대나무 삿대로 배를 지탱하고, 그 뒤로 네 사람씩 두 줄로 노를 저었다. 배는 매우 빠른 속도로 물살을 타고 이동했다.
영원의 배는 그 뒤를 바짝 따라서 보림암 방향으로 돌아갔다.
이동과 오황자가 섞여 들어간 상단은 올해 새로 나온 차를 운반하는 무리였다. 상단은 적당한 속도로 작은 마을을 빠져나갔다. 이동은 마차 한쪽의 접이문을 한쪽으로 밀고 휘장을 뗀 다음에 오황자를 향해 손짓했다. 두 사람은 다리를 마차 밖으로 내놓고 마차 가장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오황자는 들떠서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누이! 마차를 이렇게 타도 되는 거였나?”
“이 마차는 사람도 태우고, 화물도 실어요. 그래서 이렇게 앉을 수 있는 거예요. 보통 마차는 이쪽을 뜯을 수 없게 되어서 이렇게 앉을 수가 없어요.”
이동은 접이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오황자는 한참 동안 유심히 들여다보다가 흡족한 듯 평가했다.
“이런 마차, 참 좋구나! 나도 이런 마차를 만들어야겠다!”
녹매가 뒤쪽 마차에서 뛰어내려서 재빠르게 이동과 오황자의 마차 쪽으로 달려왔다. 그러더니 두 사람의 마차를 옆에서 따라가면서 손에 든 찬합을 열었다.
“당연자(糖蓮子: 연밥 위에 설탕을 입힌 것), 은행 볶음, 꿀산사, 배 절임, 그리고 해바라기씨가 있어요. 소야, 뭘 드실래요?”
“당연자.”
녹매는 하얀 도자기 그릇을 오황자에게 건네고 비단 주머니를 이동에게 건넸다. 이동은 다리를 흔들면서 주머니 안에서 해바라기씨를 꺼내서 먹었다. 오황자는 연자 하나를 먹더니 이동의 손에 들린 해바라기씨를 빤히 보다가 그릇을 이동 품에 안겨 주었다.
“누이, 이것 좀 먹어 봐. 나 해바라기씨 먹고 싶어.”
이동은 피식 웃고는 그릇을 마차에 내려놓고 비단 주머니를 두 사람 사이에 놓았다. 오황자는 해바라기씨를 한 움큼 손에 쥐고 이동을 힐끔 보면서 껍질을 깠다. 연달아 몇 개나 깐 후에야 겨우 완전한 알맹이가 나오자 흥분해서 깔깔 웃었다.
마차 대열 맨 앞에서 표사들이 고함치는 소리가 들리자, 오황자는 놀라더니 흥분했다.
“누이, 저 사람들 노래하는 건가?”
“노래는 아니에요. 여기까지 온 거면 이번 일거리가 무사히 끝났다는 뜻이고, 표사들이 고함치는 건 기쁘다는 뜻이에요.”
“소야, 노래 듣고 싶으세요?”
줄곧 말고삐를 쥐고 두 사람 옆에서 걷던 공 대랑이 껄껄 웃으며 물었다.
“무슨 노래를 듣고 싶으십니까?”
“어떤 걸 부를 줄 아는데?”
오황자는 노래를 들어본 적 없으니 무슨 노래를 듣고 싶은지는 모르지만, 되묻는 건 할 줄 알았다.
“소인은 노래를 잘못합니다. 유노삼이 꽤 부르긴 하는데, 고향 노래밖에 못합니다. 불러 보라고 할까요?”
“좋다!”
“노삼!”
공 대랑이 큰 소리로 부르자, 유노삼이 웃으며 대답했다.
“대랑, 또 나를 파는군! 좋지! 눈 질끈 감고 불러 보지, 뭐가 무서워서! 부르면 되지! 잘 부르진 못해도 어찌 됐든 두어 소절 부를 줄은 압니다. 소야, 잘 들으십시오!”
유노삼이 우선 길게 고함치며 목을 가다듬었다.
“하이고, 하이고, 하이고. 우리 두 사람 만나기는 쉬워도, 아이고, 아이고, 이야기 나누기는 어렵네. 하나는 저 산에서 야호, 야호, 또 하나는 저 골짜기에서…….”
오황자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게, 이게…… 이게 노래란 말이야?”
“노삼, 자네 또 마누라 생각하는가? 조재는? 조재, 자네가 노삼과 같이 불러 보게!”
앞에 있는 표사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누군가가 크게 고함치는 말에 여인을 흉내 내어 날카로운 목소리를 내는 소리가 순간 울렸다.
“하이고, 하이고, 하이고, 하이고, 내 눈물이 닭똥처럼 뚝뚝뚝. 아이고, 아이고, 푸르른 숲이…….”
오황자는 배를 잡고 깔깔 웃으며 뒤로 넘어갔다.
이동과 영원의 배 모두 매우 빠르게 움직였다. 내내 평온하게 달린 두 배가 보림암 곁 작은 강으로 이어지는 곳에 가까워졌을 때 영원의 배는 뭍에 정박했다. 배에서 내린 영원은 말을 타고 보림암 밖 황가 별원으로 직행했다.
영원은 유월을 비롯한 심복을 여럿 데리고 숲에 숨어서 기다렸다. 그렇게 한 시진 정도 기다리고 해가 뉘엿뉘엿 기울기 시작했을 때 찬란한 노을 사이로 종복들이 호위하는 마차 두 대가 느긋하게 다가왔다.
애태우며 기다리던 영원은 마차를 보자마자 후다닥 말에서 내려서 달려갔다.
앞쪽의 마차 문이 반쯤 열리고, 마차 가장자리에 앉은 이동 옆으로 종복 품에 안긴 오황자가 보였다.
흥분해서 두 뺨이 발갛게 달아오른 오황자의 모습에 영원은 입가까지 맴돌던 포효를 꾹 삼키며 채찍으로 이동을 가리켰다.
“오가아를 이리 보내라. 내가 돌려보낼 테니, 낭자는 이만 돌아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