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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125화 (125/463)

125화: 거리 구경

오황자가 빨리 가자고 졸라서 돛 세 개를 올리고 달리는 바람에 예정보다 반 시진 이르게 진하 부두에 당도했다. 배가 서서히 부두에 정박하는 틈을 타, 수련과 녹매가 노느라 온몸에 비린내가 가득한 오황자를 간단하게 씻기고 옷을 갈아입혔다. 그 사이에 이동은 선창 문 앞에 서서 저쪽 배에서 지휘하는 문 이야를 바라봤다.

영원도 문 이야를 보았다. 그는 배를 이동의 배 옆에 정박하고 잠시 이동을 빤히 바라보다가 곧장 배에서 내렸다. 오황자를 데리고 진하 부두에서 놀려는 이동의 의중을 짐작한 것이다.

영원도 진하 부두는 처음이었고 수하도 이곳이 익숙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와 수하 모두 북삼로에서 온 것이라 경성과 경성 주변에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래서 사전에 타당한 준비를 할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아마도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으리라.

부두에 오른 영원은 아직도 바삐 움직이는 문 이야를 돌아봤다.

오황자는 매우 빠르게 옷을 갈아입고 뛰어나왔고 수련이 허리띠를 들고 뒤를 쫓았다.

“소야! 허리띠 아직 안 매셨어요!”

아이고, 어쩌면 이렇게 개구쟁이지. 낭자는 어릴 때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오황자는 이동 앞으로 뛰어가서 허리띠를 매라고 팔을 펼치면서 이동을 올려다봤다.

“지금 바로 가나? 은자는 있어? 물건을 사야 하면 어떡해? 물건을 살 때 은자를 써 아니면 동전? 동전은 꽤 무거운데, 많이 가져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이동이 뱃사람들을 가리켰다.

“저들이 들고 갈 거예요. 비싼 물건을 사려면 몇십 명이 들어야 하는걸요.”

“정말?”

오황자는 눈이 다 휘둥그레졌다.

“농담이에요!”

수련이 허리띠를 매주면서 깔깔 웃었다.

“낭자가 놀리시는 거예요. 몇 푼 하는 물건은 동전으로 사고, 비싼 건 은자, 더 비싼 건 은표를 써요. 누가 물건 사는 데 몇십 명이나 데리고 가겠어요. 웃음거리 되려고요?”

오황자가 이동을 흘겨봤다.

“흥! 거짓말일 줄 알았다! 수련, 난 네가 제일 좋다.”

수련이 웃음을 터트렸다.

수련과 녹매는 오황자의 옷을 다 갈아입히고 재빠르게 뒷정리를 했다. 녹매는 멱리를 이동에게 씌워 주었고, 만 어멈은 일부러 골라서 데리고 나온 어멈들을 거느리고 이미 부두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동은 오황자의 손을 잡고 배에서 내려 계단을 따라 부두에 올라갔다. 곧 진하에서 가장 떠들썩하고 번화한 거리 앞에 도착했다.

“이게 무엇이냐?”

오황자는 가장 먼저 고기 파는 노점을 주목했다. 돼지 반 마리가 고리에 걸렸고, 옆엔 돼지머리, 심장이 있는 걸 보고 오황자는 식겁해서 이동의 멱리에서 늘어진 경사(輕紗: 아주 얇고 가벼운 고급 천)를 잡아당겨 얼굴을 가렸다.

“이건 돼지고기입니다!”

고기 파는 이가 칼을 도마에 쿵 내려놓으면서 큰소리로 웃었다.

“소야, 돼지고기는 먹어만 봤지, 본 적은 없으시지요? 보세요. 이 앞엔 죽은 돼지, 뒤엔 살아있는 돼지가 있습니다.”

오황자가 이동에게 바짝 붙어서는 상반신을 벗은 건장한 고기 파는 이를 호기심도 나고 두렵기도 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살아 있는 돼지 본 적 있어요?”

이동이 고개를 숙이고 묻자, 오황자가 고개를 저었다. 이동은 웃으며 그의 손을 잡고 안쪽으로 둘러 가서 돼지를 보여주었다. 오황자가 코를 틀어막았다.

“더러워!”

“더러워야지요! 그래야 맛있습니다!”

고기 사는 사람이 없어서 심심하던 사내가 머리를 내밀었다. 보들보들 귀티 나는 얼굴로 무얼 봐도 신기해하는 소야를 놀리는 재미가 있었다.

“앞으로 돼지고기 안 먹을래!”

오황자는 이동을 끌고 허둥지둥 달아났고, 사내는 뒤에서 껄껄 웃었다.

영원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이를 갈며 바라봤다.

“가서 고기를 전부 사들여라! 그래야 얼른 가지!”

유월은 어이없다는 듯 영원을 힐끔 보고는 호위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돈을 넉넉히 주어라. 우리 나리가 적선을 베푸는 거라고, 고기를 자유국(慈幼局: 고아원)으로 보내라고 해라.”

계속해서 걸어 나가니, 점포가 연달아 줄지어 있었다. 진하 부두는 경성으로 들어가기 전 가장 큰 부두였고, 대량 거래하는 상인의 점포가 많이 모여 있었다. 고작 거리 하나였고, 거리 양쪽에 있는 점포 크기도 크지 않았지만, 안은 별천지였다. 부두와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 창고도 줄지어 붙어 있었다.

장 태태는 지금 바로 이가 창고에서 장부를 살피면서 소식을 듣고 있었다.

오황자는 이동을 붙잡고 보는 것마다 묻고, 만져댔다. 그렇게 일각 정도 걸었을 때, 오황자가 이동을 잡아끌고 어느 점포 안으로 들어갔다.

“소야, 낭자. 정말 미안합니다. 우리 점포는 소매상이 아닙니다.”

일꾼이 얼른 그들을 맞이하며 매우 예의 바르게 말했다.

“나도 아네. 아우를 데리고 물건 좀 보러 온 걸세.”

이동이 미소 지으며 일꾼의 말을 잘랐다.

“소인, 안목이 없어 몰라뵀습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낭자, 어떤 물건을 보실 건지요? 어느 상점에서 오셨습니까?”

“힐수방에 들어가는 실, 이 집 물건이지? 색이 별로더군. 새 물건이 들어왔다길래, 아우를 데리고 와 본 걸세. 여기 것도 별로면…….”

“힐수방에서 오셨군요. 몰라봬서 죄송합니다. 낭자, 걱정하지 마세요! 이번 물건은 분명 마음에 드실 겁니다. 하나같이 색이 곱습니다! 어서 대장궤를 모셔와라! 경성 힐수방에서 낭자와 소야가 실을 보러 오셨다! 낭자, 죄송합니다. 지난번 화물 건으로 저희 동가가 일부러 나오셨습니다. 낭자, 안쪽으로 가시지요.”

일꾼이 공손하게 두 사람을 안으로 모시자, 오황자는 놀라서 일꾼과 이동을 번갈아 보다가 참지 못하고 이동을 잡아당겼다.

“누…… 누님. 그…… 힐수방이…….”

오황자가 눈을 깜빡였다. 정말이냐는 뜻이었다. 또 거짓말하는 건 아니겠지? 이동은 오황자를 향해 눈을 찡긋했다.

“힐수방은 외조모의 사업이야. 어머니가 나이가 있으시니까, 슬슬 우리가 배워야 한다셔. 그래서 널 데리고 온 거란다.”

“아이고! 그랬군요. 낭자와 소야 모두 신선 같은 인물이더라니. 소동가셨군요!”

일꾼이 냉큼 다시 예를 갖췄다.

이가 정도 되는 가문은 구성원이 어떻게 되는지, 일꾼도 다 어느 정도 파악을 해두게 된다. 하지만 이 소야는……. 아, 그렇지. 이가에서 최근에 양자를 들였다고 했지. 이분인가 보군. 오누이 사이가 꽤 좋은걸…….

영원은 점포 맞은편에 서서 부채를 힘껏 비틀었다. 하마터면 부채가 부러질 뻔했다.

이제 뱃속 가득 분노가 들끓었다. 이렇게 오가아를 데리고 거리를 활개 치고 다니다니. 무슨 생각으로? 화를 부르려고? 아니면 사람을 부르려고? 이 소식이 행여 경성에 들어가면…….

영원은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는 맞은편 점포 안으로 곧장 뛰어 들어갔다. 마침 사람이 얼마 없었다.

얼른 오가아를 데리고 돌아가라고 말해야겠다!

영원이 들이닥치는 순간, 이동은 빨간 실을 가득 늘어놓고 햇살 아래 들어 올려 오황자에게 보여주었다.

“붉은색 실은 꼼꼼하게 잘 골라야 해…….”

“거기 나리…….”

영원이 곧장 달려 들어오는 걸 본 일꾼은 말리고 싶어도 말릴 수가 없었다.

저 기세, 저 차림새, 쉽지 않아!

“오라버니가 왔네. 이만 가자.”

이동은 오황자의 손바닥을 살짝 꼬집고는 생글생글 웃으며 영원에게 예를 갖췄다.

“더 볼 시간이 없네. 실을 색깔 별로 조금씩 우리 창고에 보내게.”

이동이 분부하자, 일꾼은 서둘러 대답하고는 공손하게 그들을 배웅했다.

점포를 나서자마자 영원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얼른 돌아가라!”

오황자는 안색이 변해서 무심결에 이동의 손을 잡고 뒤로 숨었다.

“오늘은 아우의 생일이에요. 진하 부두는 홀가분한 곳이라 아우를 데리고 구경 온 거예요. 1년에 한 번밖에 없는 생일이잖아요.

아우는 이 나이 되도록 아직 진하 부두가 어떤 곳인지 구경한 적이 없어요. 조금만 더 구경하다 돌아갈게요. 조금만요.”

이동의 목소리는 나긋나긋했지만, 속뜻이 분명했다.

영원은 목구멍이 뻑뻑해졌다. 이동이 하는 모든 말이 무슨 뜻인지 명백하게 알아들었다. 오황자가 태어난 몇 년 동안 내내 옥살이하듯 살면서 1년에 딱 한 번, 생일에야 장공주 별원에 갈 뿐이었다. 오늘 처음으로 별궁과 장공주의 별원에서 벗어난 것이다. 옥에서 나와 세상에 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자신이었다면, 사흘만 갇혀 있어도 미쳤을 것이다.

안 된다는 말이 도저히 나오지 않았다.

“그럼 내가 같이 있지.”

영원은 잠시 침묵하다가 고개를 떨군 채 말했다.

“그럴 것 없어요. 중요한 일이 있으시잖아요.”

이동이 잠시 말을 잠시 멈추더니 주위를 둘러보며 목소리를 낮췄다.

“칠야의 모습은 너무 눈에 띄어요. 누가 보면 어떡해요. 우리 오누이끼리 조용히 구경하면 돼요.”

영원은 입을 뻐끔거릴 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이동의 말이 너무 옳았다. 그동안 경성에서 그렇게 활개 치며 나댔으니, 진하 부두에서도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가 여덟 살 남짓한 소년과 있는 걸 보면, 그게 누구라도 곧바로 그 소년과 오황자를 연상할 것이다. 이동과 오가아가 둘이 느긋하게 구경하도록 두는 게 정말로 나았다. 이동 같은 어린 낭자가 손을 잡고 데리고 다니는 것이 깊은 별궁에 갇혀 사는 오황자라고 누가 연상이나 할까.

영원 역시 오가아 때문에 잠시 다급해져서 분별을 잃은 것이라서 금세 깨닫고는 끽소리 없이 돌아섰다.

그가 멀어지자, 오황자는 살며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동은 그의 손을 잡고 웃어 보였다.

“계속 구경하러 가요.”

몇 걸음 걷다가, 오황자가 잡아당기자 이동이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숙였다. 오황자가 진지한 얼굴로 다시 잡아당겼고, 이동이 허리를 숙이자 오황자가 귓가에 속삭였다.

“저 사람이, 바로 내 일곱째 외숙이지?”

“네.”

이동은 매우 확실하게 대답했다.

오황자가 이동의 손을 잡고 몇 걸음 내딛다가 별안간 입을 열었다.

“마음에 안 들어!”

“저도 그래요.”

이동이 담담하게 대답하자, 오황자가 눈썹을 휘날리며 깔깔 웃었다.

두 사람은 점포 몇 곳을 더 구경하고 진하 부두에서 가장 크고 좋은 주루로 들어갔다.

주루로 들어가자마자, 오황자는 눈이 부족한 듯 사방을 둘러봤다. 입구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사환, 회랑에서 노래하는 예인, 과일, 밀전(蜜餞: 과일절임)을 파는 사람, 그리고 푸른 수건을 허리에 차고 두 사람에게 다가와 인사하는 여인을 정신없이 바라봤다.

“누이, 여인이 왜 이렇게 많은 거지? 여인은 밖을 돌아다니면 안 된다고 들었는데?”

오황자가 그게 제일 궁금한 듯 묻자 이동이 피식 웃었다.

“그럼 내가 어떻게 널 데리고 나왔겠어.”

두 사람을 위층으로 안내해서 올라가던 여인도 웃었다.

“가아, 딱 보니까 부귀한 집안 자제시군요. 밖을 못 돌아다니면 우리 같은 사람은 뭘 먹고 삽니까? 낭자, 계단 조심하세요.”

“누이, 여기 참 재미있어.”

오황자도 웃음 지었다.

“응. 이따 노래꾼을 불러서 노래를 듣자꾸나.”

“그…… 노래꾼 말이야?”

오황자는 흥분해서 눈을 휘둥그렇게 뜨더니, 심 대가의 이름을 내뱉으려다가 꾹 참고 삼켰다.

“심 대가랑 비교할 순 없지. 그래도 색다른 느낌은 날 거야. 신선하게 듣기엔 충분하단다.”

이동은 오황자를 힐끔 쳐다봤다. 천상 황가 핏줄이구나. 이렇게 들떴는데도 신중하고 조심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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