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122화 (122/463)

122화: 장공주를 거스르지 말라

밖으로 나온 녹운은 이동이 나가는 걸 보고 연달아 한숨을 내쉬었다.

“장공주도 참. 오가아가 어떻게 밖에 나가요.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오가아가 아니라, 영 황후와 이 낭자가 난처해진다고요.”

복안 장공주가 싸늘하게 코웃음 쳤다.

“주택헌이 갑자기 북부 서생을 신경 쓰기 시작했어. 주가에 서생이 있어? 뭣 때문에 신경 쓰겠어? 왜 갑자기 그런 걸 신경 쓸까? 영원이 아주 계획을 잘 세웠지. 이번에 북삼로 서생이 얼마나 많이 급제하겠어? 4, 5년 지나고 나면, 영원이 경성에서 그들을 돌봐 줄 거고, 조정에서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되겠지. 그때쯤이면 오가아도 어른이 될 거고. 딱 좋겠지.”

녹운은 분노한 듯한 복안 장공주를 눈을 깜빡이며 바라봤다.

무슨 상관이시길래? 아! 그렇지. 영원의 계획 때문에 이 낭자의 오라비 이신이 떨어지게 생겼구나!

“정말 좋은 수야. 푼돈으로 거금을 번다더니, 손 하나 까딱해서 판을 성공시켰어. 흥!”

복안 장공주가 꼰 다리를 흔들어댔다.

“우리 임가가 하나같이 어리석은 줄 아나.”

“오가아는 절대로 아니죠.”

녹운이 대수롭지 않게 하는 말에 복안 장공주가 콜록거렸다.

“영원에게 화가 났더라도 오가아에게 화풀이하실 건 없잖아요. 오가아가 얼마나 귀여워요. 또 얼마나 가련해요. 정말로 무슨 일이라도 생겼다간…….”

녹운은 계속해서 장공주를 설득했다. 오가아를 별장에서 데리고 나가서 변하에 놀러 가다니. 그랬다가 무슨 일이 나라고.

복안 장공주가 퉁명스럽게 눈을 흘겼다.

“네가 뭘 알아! 그 영원이라는 자가 음으로 양으로 수하를 얼마나 많이 경성에 데리고 왔는지 몰라. 두고 봐. 오가아가 궁에서 나가는 순간 바로 알게 될 거야. 아동에게 오가아를 데리고 나가달라고 한 건, 첫째, 영원의 수하와 수단을 보려는 것과 둘째, 이가의 실력을 알고 싶어서야.”

녹운은 멍하니 한참 있다가 갑자기 겁에 질린 듯이 말했다.

“장공주! 설마…… 이 일만 할 거라고 하셨잖아요. 끝나면 다시 수행하신다면서요? 지금 그 말씀은…….”

“이게 다 한 가지 일이야! 끝나면 계속 수행할 거야. 하지만 이 일이……. 네가 말해 봐, 우리한테 사람이 있니? 사람 없이 어떻게 일을 해? 어디서 사람을 찾아? 당연히 이가가 제일 적당해. 그럼 이가가 능력이 있는지는 봐야 하지 않겠니? 사람이 없어서 이번 일도 잘 처리하지 못한다면, 그 일도 그만두어야지. 헛수고야. 앞으로 이신이 벼슬길에 오른들, 다른 사람 손에 좌지우지될 것이고, 그럴 바엔 그냥 집에서 부자 나리로 살라고 해.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잖아.

그리고 이동도, 너무 어리석으면 안 돼. 아니면……. 영원은, 첫째, 수단과 실력을 보고 싶고, 둘째.”

복안 장공주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약점이 있는 이상, 날 건들지 말라는 걸 알려 줘야지! 난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아!”

“장공주!”

녹운은 못 말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장공주의 성격으로 일단 손을 대기로 한 이상 그만둘 사람이 아니었다. 기세가 보통이 아니었다.

설사 이 모든 것이 영원의 음모, 계책이라고 해도, 영원이 어디 장공주께서 이신을 급제시킬 생각이라는 걸 알고 한 일이겠어요! 괜히 건드렸다가, 화를 입을 수 있다고요!

가능한 한 서두르라고 마부에게 당부해서 빠르게 자등 산장으로 돌아온 이동은 중문을 지나서 곧바로 문 이야를 찾아갔다.

이 일을 상의할 사람은 문 이야뿐이었다.

문 이야는 이동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벌떡 일어섰다.

“오황자입니까? 내일 생신, 여덟 살, 오황자입니까?”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이야와 상의하려고 일찍 돌아왔어요.”

“보통 일이 아니군요. 장공주는 무슨 생각이시랍니까? 갑자기 떠올라서? 그럴 리가 없지! 어째서 낭자일까요? 성에 들어가는 건 아니라서 다행입니다만……. 어째서? 무슨 생각으로? 혹시……. 아니야, 그것도 아니야. 그럼 왜?”

문 이야는 갈피가 잡히지 않은 듯이 장삼 자락까지 펄럭이며 방 안을 빙글빙글 돌았다.

“이야, 일단 그건 생각하지 말고, 내일 어떻게 하면 무사하게 일을 끝낼 수 있는지, 그게 중요해요.”

이동은 눈이 어른거려서 한숨을 내쉬며 문 이야를 상기시켰다.

“맞습니다! 하지만, 이유를 알아야 어떻게 해야 내일 일도 무사하게 마무리할지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장공주의 의중을 알아야, 이 놀이의 중요성이 무엇인지, 위험은 또 무엇인지 알 수 있어요. 뭘 해야 하는지, 뭘 조심해야 하는지도요. 하지만 장공주의 저의가 대체 무엇일까요? 그 판에 이가를 끌어들이려고?”

문 이야는 즉각 부인했다.

“이가가 그럴 자격이 어디 있어서. 그럼 무얼 하려고? 설마…….”

문 이야의 말이 뚝 멈췄다. 설마 여 승상을 노리고? 나를 통해서? 그것도 말이 안 돼! 고작 나와 여 승상의 인연으로 내가 어떻게 여 승상을 움직인다고. 말이 안 돼.

“오황자를 밀어주려고? 이런 식으로 밀어주진 않겠지. 그런 게 어디 있어. 대체…….”

문 이야의 머릿속이 별안간 환해졌다.

“영 칠야에게 경고하려고?”

이동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문 이야는 한참 동안 넋 나간 듯 서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 높은 곳에 계신 분은 역시 다르군요. 됐습니다. 그건 그만 생각하고, 내일 일은 이가 전체의 일이니, 대야를 모셔 오지요. 그리고 태태를 만나세요. 내일 일만 말씀하고, 다른 건 꺼내지 마세요.”

문 이야는 은근히 지치고 서글퍼 보였다. 이동도 그의 의중을 이해했다.

이따 오라버니와 어머니를 모시면 그냥 표면적인 이야기만 하면 돼. 내일 하루 놀러 나가는 일만 이야기하고, 다른 건 길게 말할 것 없어.

장 태태와 이신은 장 태태의 상방에서 이동의 이야기를 들었다. 문 이야가 보태는 말까지 들은 이신은 순간 넋이 나갔고, 장 태태는 살며시 한숨을 내쉬었다.

“아동이 보림암에 가기 시작했을 때부터 언젠간 이런 날이 오리라 생각했었다. 걱정할 것 없다.”

문 이야는 순간 두 눈을 크게 뜨고 매우 감탄한 눈빛으로 장 태태를 바라봤다.

스물 넘어서 거대한 이가의 가업을 홀로 지탱해 온 이래 짓밟히기는커녕 갈수록 장사를 키운 사람답구나. 역시 단순하지 않아!

문 이야는 순간 마음이 놓였다. 이런 주인이 있으면 일이 매우 쉬워진다.

“일단 이것부터 이야기하자. 우리도 2층 배가 세 척 있다. 내 말은, 2층 배를 쓰지 않는 게 좋겠구나. 강은 몰라도 변하에서 2층 배는 너무 눈에 띈다. 삼장선(돛 세 개 달린 배)을 조달하마. 클 필요는 없지만 작아도 안 되겠지. 변하엔 삼장선이 가장 많고, 가장 편하기도 해. 따로 화물선도 다섯 척 정도 준비해서 과일, 먹을 것을 싣자. 변하에 과일, 식량을 운반하는 배는 쇠털처럼 많아서 눈에 띄지 않을 것이다. 배 문제는 그렇게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야?”

장 태태가 한숨 한 번 내쉬고는 곧바로 본론에 돌입하자, 문 이야도 눈살을 찌푸리며 재빨리 대답했다.

“2층 배도 한 척 준비하는 게 좋겠습니다. 만일을 대비해서요. 배에 사람은 필요 없습니다. 반 시진 늦게 출발하고, 뱃사람만 태워서 따라가게 하면 됩니다. 똑똑한 사람은 속지 않겠지만, 주가, 그리고 그 두 황자, 모두 똑똑하지 않으니까요.”

“좋습니다.”

장 태태는 곧바로 대답하고는 이어서 말했다.

“성 밖 장원에 실력 있는 사람이 좀 있습니다. 다 남쪽 사람이고, 물을 잘 압니다. 내일 절반은 배에, 절반은 화물선에 안배하지요.”

“절반은 낭자의 배에 보내고, 나머지는 저에게 주십시오.”

문 이야는 잠시 생각하다가 건의했다. 이동과 이신은 나란히 앉아서, 어머니와 문 이야가 주거니 받거니 준비하는 걸 지켜봤다. 이동은 그래도 괜찮은 편인데, 이신은 몹시 놀랐다. 지금 장 태태와 문 이야의 모습은 그가 생각해 본 적 없는 모습이었다.

네 사람은 한 시진 넘게 상의하면서 세부 사항을 정했다.

이신은 내일 평소처럼 여염, 계소영 무리와 문회에 참여하기로 했다. 하지만 분위기를 살펴보며 수시로 소식을 전하기로 했고, 원래 화물 창고에 화물을 살펴보려고 했던 장 태태는 종일 화물 창고에 머무르며 지휘하기로 했다. 문 이야는 사람들을 데리고 작은 배를 타고 이동의 배를 따르며 상황에 따라 움직이기로 했다.

저택 사람들은, 소유와 도 어멈은 내일 배에서 먹을 음식과 간식을 준비하고, 대교는 마차를 몰고, 수련과 녹매는 배에서 시중들고 만 어멈도 배에서 지휘하기로 했다.

모든 준비를 끝마쳤을 때, 모두가 잠들어 고요한 시각이 되었다.

다음 날, 이동은 약속한 시간에 딱 맞춰서 복안 장공주의 별장 측문으로 향했다. 녹운은 벌써 측문 안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이동을 데리고 들어갔다.

별장 안엔 나무와 화초가 유난히 푸르르고 생기가 넘쳤다. 그러나 이동은 별장의 풍경을 감상할 겨를 없이 녹운을 따라 꽃과 나무를 돌아 화원에 있는 난각으로 향했다.

오황자는 난각 안에서 푸른 장삼을 입고 난간에 기댄 채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녹운이 손짓하자, 오황자가 다급하게 일어서서 이동을 돌아봤다. 이동은 미소 지은 채 그를 살폈다.

키는 작지 않은 편이고, 같은 나이 아이들과 비교하면 조금 말랐다. 꼿꼿한 자세와 반짝이는 눈빛에는 은근히 우울한 기색이 느껴졌다. 물론 지극히 예쁘장한 어린 사내아이였다.

“나는 이가, 이름은 외자 동이야. 오동할 때 동.”

이동은 오황자 앞에 웅크리고 앉아서 가지고 온 동상(銅像) 한 쌍을 오황자 앞에 내밀었다.

“오늘 생일이라고 장공주께 들었어. 내가 준비한 생일 선물이야. 마음에 들어?”

“인형? 유치하긴.”

오황자는 동상을 바라볼 뿐 받지 않았다.

“응, 인형이야. 하지만 이 인형, 싸움할 줄 안다? 이것 봐.”

이동이 동상을 탁자에 올려놓고 누르개를 누르자, 동상 둘이 주거니 받거니 주먹과 발을 휘둘렀다.

“장권(長拳: 권법 중 하나)이군! 음, 조금 재미있네. 고마워.”

“응. 이름이 뭐야?”

“나도 이가다. 이 소야라고 불러.”

오황자는 개구진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다.

“알았어. 이 소야. 장공주는 오늘 일이 있으셔서, 나더러 너랑 놀아주라고 했어. 변하에 가서 배 타고 놀아. 어때?”

이동은 녹운을 힐끔 보고는 본론을 꺼냈다. 이 소야라고 자칭하는 오황자는 같은 나이 아이보다 훨씬 성숙했다.

“장공주께서 변하에 데리고 가라고 하셨다고?”

오황자는 의심 가득한 얼굴로 녹운을 바라봤다. 녹운은 아무런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오황자는 다시 이동을 바라봤다. 주저하는 기색도 있지만, 그보다 들뜨고 기대되는 모습이 더 컸다.

“배를 처음 타 보는데. 변하도 처음이고. 변하는 재미있나? 난 헤엄 못 치는데.”

오황자가 탁자 위에 놓인 동상을 집어 들었다.

“꽤 재미있어. 나도 헤엄은 못 쳐. 하지만 괜찮아. 배에 있는 사람, 우리 둘 말고는 다 헤엄을 아주 잘 쳐. 게다가 물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면 되지.”

오황자는 망설여지는 듯이 녹운을 바라봤지만 녹운은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이동이 웃으며 말했다.

“별원에서 나가면 우선 마차를 탈 거야. 이각 정도면 강가에 도착해. 하지만 그 강은 변하가 아니고, 변하로 가는 작은 강이야. 작은 배를 타고 또 이각 정도 가면 변하로 들어가는데, 거기서 큰 배로 갈아탈 거야. 그리고 변하를 따라 동으로 갈 거야. 동쪽엔 떠들썩한 부두가 아주 많아. 경치도 좋고. 게다가 오늘은 동풍이 불어서 순조롭게 배를 타고 움직일 수 있어. 진하 부두에 도착하면 밥을 먹을 거야. 진하 부두엔 이런저런 걸 파는 작은 배가 아주 많아서 재미있어. 밥을 먹은 다음엔 다시 변하를 따라 돌아올 거야. 저녁 식사 전엔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거야. 어때?”

“좋아!”

오황자는 결단을 내린 듯이 녹운을 바라봤다.

“장공주께 감사 인사 전해라.”

“별말씀을요, 이 소야.”

녹운이 무릎을 구부리며 예를 갖췄다.

“그럼 가지.”

오황자는 동상을 쥐고서 이동에게 눈짓…… 아니 분부했다. 이동은 녹운에게 예를 갖추고 오황자를 뒤따라가며 살짝 무릎을 구부리고 오황자의 손을 잡았다.

오황자는 너무 의외였는지 달리 반응하는 것도 잊고 말았다. 그렇게 손을 잡힌 채 몇 걸음 가다가 뿌리치려고 했다. 그러다가 잠시 주저하고는 손을 잡힌 채 후측문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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